중국의 광물자원과 공업의 분포
중국은 세계적인 포장수력를 가진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력자원이 산업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남서지방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개발효과가 작다. 이 때문에 포장수력의 개발이 주로 동부연안지방, 양쯔강과 황허강 중류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중 2006년에 완공된 쌴샤댐은 세계 최대규모로 1일 발전량이 1,820만kwdp 달한다.
쌴샤댐
5. 개혁과 개방으로 급속히 변하는 나라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공업은 외국자본에 의해 개발되었다. 동부해안지역과 양쯔강 저지에 집중한 방직, 제분, 담배 등의 경공업과 일본인들이 개발한 북동부 지린성(吉林省)과 랴오닝(遼寧省)에 중공업 정도였다.
더구나 장재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1949-1957년간에 중국 본토를 장악한 공산당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지도하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마오쩌둥은 근대에 중국을 점령한 서구열강에 대한 반감으로 해안지역의 개발을 포기하고 서진정책을 수립하여 중국의 서부 내륙의 개발에 치중하였다.
1950년대부터 공업개발이 시작되어 내륙지역인 충칭(重慶), 청뚜(成都), 란조우(蘭州), 꾼밍(昆明) 등에 새로운 공업지역으로 부상하였다.
1953년부터 5개년 계획을 착수하여 중화학공업의 발전에 우선을 두었으나 자본 부족, 숙련노동자의 양성과 비효율적인 생산성문제, 과학적 기술적인 전문지식의 부족, 교통과 통신의 미비 등으로 공업화의 속도가 완만했다.
1953년부터 동력, 원자재, 노동력 등을 고려하여 수 차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함으로서 6개 지역에 공업이 집적되어 있다. 6개 공업지역의 공업 생산량은 1957년에서 1974년까지 상대적인 변화는 없으나 동부공업지역에서 인구 1,000만명의 상하이가 단일 생산지역으로 가장 많아 중남부, 북서부, 남서부 등 3개 공업지역의 생산량을 능가한다.
뻬이징-텐진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공업지역은 주요 공업지역으로 부상한 반면 남서부공업지역은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1960-1962년간에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과 ‘인민공사(人民公社)’ 정책으로 인해 중국은 마이너스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9년부터 3년간 계속된 자연재해와 1960년에 소련의 원조단절로 중국 경제가 더욱 침체되었다. 비록 1963년부터 경제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으나 사상을 우선하는 정치체질과 권력투쟁으로 1978년까지 평균경제성장률이 2%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국은 공산주의가 지닌 경제체제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1978년에 ‘4대 근대화’의 경제개혁에 착수하였다.
1978년에 제정된 신헌법의 전문에 소위 4개의 근대화 계획을 명기하고 있다. 금세기내에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을 근대ㅣ작하였하고 국민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고 하고 있다. 신헌법에 의거해서 1978년부터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농기계의 보급을 통한 곡물생산 증대, 철강단지, 금속단지, 석탄단지, 유전 및 천연가스, 발전소 등의 건설, 간선철도, 항만 등의 운송망을 정비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 건설을 통한 공업생산의 획기적 증대 등 이었다.
또 자영농 육성, 농산물가격 인상, 중공업의 일방적인 발전 억제, 농업과 경공업에 대한 투자 증대, 생활필수품과 내구소비재의 생산 증대 등에 치중하였다.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서남(西南), 서북(西北), 중남(中南), 화동(華東), 화북(華北), 동북(東北) 등 6개의 경제구로 나누어서 조화있는 경제발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미약한 전력 및 수송부분으로 인해 3년간 조정기간 후 계획을 수정하여 신 10개년 계획을 구상하여 추진하였다. 6대 경제특구(經濟特區)와 14대 개방도시(開放都市)를 설치하여 경제개방(經濟開放)을 서두른 결과 큰 효과를 얻었다.
특히 개혁개방정책을 시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여 경이적 성장을 지속해왔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현재의 경제성장율을 유지하면 중국이 10년 내에 미국과 유럽연합 수준에 달하며, 15년내에 세계경제의 20%를 점유하여 서구경제를 압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은 국민총생산목표를 2010년까지 2000년의 배로 늘리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현대화를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화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성장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개항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기술과 자본이 개항장에 도입되면서 개항장의 거주자에게 새로운 직업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중요한 개항장인 상하이(上海), 꽝조우(廣州), 행조우(杭州), 산토우, 난징(南京), 우한(武漢), 칭따오(靑島), 텐진(天津), 따렌(大蓮) 등을 비롯한 해안이나 대하천 유역의 100여개 도시가 농촌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인구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인 중국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이나 공업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1950년대까지 도시화는 매우 저조하였다.
1953년에 중국의 도시지역 인구수는 전체 인구의 12-14%에 불과했다. 1950년대부터 급격한 인구증가와 농촌인구의 도시로 이동으로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그러하였다.
1981년에 도시화율이 20%, 1988년에는 36.6%, 2005년에는 40.4%로 크게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세계 평균(48.7%)보다 낮았다.
195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의 도시개발정책이 대도시 성장 억제, 중.소도시의 발달 촉진, 해안지역으로부터 원거리에 있거나 자원에 인접한 도시의 공업 중심지로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내륙도시의 발달과 성장을 자극하여 정조우, 시안, 우한, 란조우, 등이 급속히 성장을 하였다.
최근 중국 정부가 홍콩과 마카오에 인접한 도시에 수출지향산업을 장려함으로서 이 지역의 해안도시가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또 6대 경제특구와 14대 개방도시를 설치하여 경제개방을 서두르고 있어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샨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海南) 등의 5개 경제특구와 다롄(大連), 친황다오(秦皇島), 톈진(天津),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 롄윈(連雲), 난퉁(南通), 상하이(上海), 닝보(寧波), 원쪼우(溫州), 사먼(厦門), 광저우(廣州), 쭈하이(珠海), 웨이하이(北海) 등 14개 개방도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뻬이징을 포함하여 공업생산에 있어서 비교적 풍부한 자본과 기술 축적으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도시는 경제기반과 활동이 변화하게 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출지향적 공업도시가 소비지향적인 서비스도시나 역사도시 보다 급성장을 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해안지역에 있는 도시들은 과거 서구열강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흔적 위에 최근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외국자본이 투자가 이루어져 근대와 현재의 모습이 혼합되어 있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