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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이소미(濃而少味)
짙고 맛이 적다는 뜻으로, 이것은 영웅이 사람을 속이는 수법이다. 즉, 그림의 숲속 안개가 짙어 그림을 읽는 맛이 작아진다. 이는 영웅이 평범한 사람을 속이려는 솜씨를 비유한 말이다.
濃 : 짙을 농(氵/13)
而 : 말 이을 이(而/0)
少 : 적을 소(小/1)
味 : 맛 미(口/5)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첩 중 '자연(自然)'을 그린 그림의 화제(畫題)에는 "진한데 맛은 적으니, 이것은 영웅이 사람을 속여먹는 솜씨이다(濃而少味, 此英雄欺人手也)"는 평이 달려 있다.
안개 자옥한 풍경 속에 우모(雨帽)를 쓴 낚시꾼이 낚싯대를 펼 생각도 없이 안개에 지워져 가는 건너편 풍경을 바라본다. 안개 낀 풍경은 지나치게 세세하면 안 된다.
그래서 건너편 숲은 아주 흐린 먹으로 뭉개듯 붓질을 겹쳐 놓았다. 맛이 적다고 말한 것은 맛을 일부러 줄여 감쇄시켰다는 뜻이다.
잘 그릴 수 있지만 일부러 못 그린 그림처럼 붓질을 어눌하게 해서 그림의 맛을 담백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이 영웅기인(英雄欺人)의 솜씨라고 설명했다.
영웅은 자신의 역량을 아무 때나 드러내지 않는다. 보통 때는 어수룩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스르렁 칼을 뽑는다.
그제야 세상이 비로소 그를 알아본다. 평소에 재주를 못 이겨 남을 우습게 보며 깝죽대는 것은 영웅의 기상이 아니다.
이 말은 명나라 이반룡(李攀龍)이 '선당시서(選唐詩序)'에서, "7언 고시의 경우, 오직 두보만이 초당(初唐)의 기운과 격조를 잃지 않고 마음대로 하였다. 이백도 자유자재로 했지만, 이따금 강한 쇠뇌의 끝에다 중간중간 장황한 말을 섞었으니, 영웅이 사람을 속인 것일 뿐이다"고 한 데서 처음 나온다.
七言古诗, 唯杜子美不失初唐氣格, 而縱横有之. 太白縱横, 往往强弩之末, 間雜長语, 英雄欺人耳.
두보는 한결같이 굳센데, 이백은 중간에 군더더기를 섞었다. 그게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재능을 숨기려는 속임수라는 말이다.
이반룡이 고른 당시가 일반적 기준에서는 들쭉날쭉해 보였던 듯, 왕세정(王世貞)은 이 말을 받아, "영웅은 사람을 속이니, 전부 믿어서는 안 된다(英雄欺人, 不可盡信)"고 그의 안목을 평가했다.
맛을 조금 덜어내야 농밀함이 평정(平靜)을 얻는다. 영웅은 아무 때, 아무 데서나 예기(銳氣)를 드러내지 않는다.
맛을 덜어내라. 힘을 빼고 더 어수룩해져야 한다. 가장 빛나는 절정의 한 순간을 위해 참고 또 기다린다. 나뭇가지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매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후기 겸재(謙齋) 정선(鄭敾) 그림과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글씨로 구성된 사공도(司空圖) '24시품(二十四詩品)' 서화첩 중 열 번째 작품인 '자연(自然)'입니다. 이광사의 글씨는 아름답고 예스러운 전서(篆書)로 가지런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사공도(司空圖)는 당나라 말의 시인으로, 그의 대표적 시(詩) 작품인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은, 시의 의경(意境)을 24품(品)으로 나누어, 각 품에 4언의 운어(韻語)에 12구를 형성하여 모두가 288구로 장문의 시작을 하였는데, 각 의경(意境)의 품격을 상징적이며 해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시는 당나라 말기에 으뜸으로 꼽혔으며, 특히 고결한 기품이 있기로 알려져 오고 있다.
10. 自然(자연) / 사공도(司空圖)
(조화에 의해 이루어짐)
1
俯拾卽是(부습즉시)
구부려 주우면 곧 이것이니
不取諸隣(불취제린)
모든 걸 근처에서만 찾지 말고
俱道適往(구도적왕)
도(道)와 함께 여기저기 가니
著手成春(저수성춘)
손만 대면 봄이 되네.
2
如逢花開(여봉화개)
피어난 꽃을 만난 것과 같이
如瞻新歲(여첨신세)
새해를 보는 것과 같이
眞予不奪(진여불탈)
참된 나를 뺏기지 말고
强得易貧(강득이빈)
억지로 얻을려면 모자라기 쉽네.
3
幽人空山(유인공산)
숨어사는 사람이 빈산에서
過雨菜蘋(과우채빈)
비온 뒤에 마름을 캐며
薄言情晤(박언정오)
적은 말로도 뜻이 밝으니
悠悠天鈞(유유천균)
유유히 자연스러운 균형이네.
(註解)
○ 自然(자연) : ①몸소. 혼자. ②본성. ③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④스스로 존재함. ⑤막힘이나 걸림이 없고 자유로움. ⑥인식의 대상이 되는 바깥의 모든 현상.
○ 俯拾卽是(부습즉시) : ①몸을 굽혀 줍기만 하면 얼마든지 있다 ②(찾으려는 증거나 틀린 글자 따위가) 수두룩하다 ③손쉽게 얻다
○ 適往(적왕) : 여기저기 가다.
○ 著手(저수) : ①착수하다 ②시작하다 ③손을 대다
○ 成春(성춘) : 병이 낫다.
○ 着手成春(착수성춘) : 손을 대기만 하면 병이 낫는다. 명의(名醫)에 대한 칭찬의 말
○ 如逢(여봉) : ~와의 만남과 같다
○ 薄言(박언) : 짧은 언변
○ 悠悠(유유) : 1.길다. 장구하다. 아득히 멀다. 요원하다. 2.느긋하다. 유유하다. 여유 있다.
○ 天鈞(천균) : 자연적인 균형
濃而少味. 此英雄欺人手也.
짙고 맛이 적다. 이것은 영웅이 사람을 속이는 수법이다.
'자연(自然)'의 사전적 의미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模樣) 또는 조화(調和)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체(一切)의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自(자)'는 '스스로, 저절로'라는 뜻이고 '然(연)'은 '그러하다'는 뜻이므로 두 글자를 합쳐서 '스스로 그리된다'는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공도(司空圖)의 시품 '자연(自然)'의 첫째 연은 자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단락으로 도(道)에 따라 행하면 저절로 아름다운 작품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으며, 둘째 연에서는 실천의 방법으로써 변화하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라고 하고 있으며, 셋째 연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천균(天鈞) 즉,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겸재의 그림을 살펴보면 멀리 앞산이 보이고 양쪽으로 오래된 소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냇가가 굽이쳐 흘러 내리는데 한 선비가 강가 언덕에 바구니를 옆에 두고 앉아 멀리 안개 낀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복과 모자, 바구니를 청(靑), 홍(紅), 황(黃)의 3색으로 표현하여 태극(太極)의 개념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겸재의 그림은 사공도의 시품 '자연(自然)'에서 마지막 셋째 연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 한 작품으로 한 선비가 비가 그친 뒤 마름을 캐다가 강 언덕에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선비가 앉은 곳을 중심으로 하면 화면의 양쪽으로 소나무 숲을 표현 하였는데, 오른쪽 강 언덕의 숲은 짙은 농묵(濃墨)으로 처리하여 가까우면서도 선명한 모습이고 왼쪽 강 건너편의 숲은 담묵(淡墨)으로 흐릿하게 처리하고 그 위쪽으로 숲과 산 사이에 여백의 공간을 두어 비가 내린 후 안개가 일부 끼어있는 상황을 특유의 대가다운 필법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 여백에 적힌 제화 글에서 '차영웅기인수야(此英雄欺人手也)'라 하여 겸재의 화법을 영웅에 비견하면서 이 그림을 보는 감상자를 희롱한다고 적고 있어 겸재가 그린 이 그림에 느낀점이 많이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겸재가 그린 이 그림은 가장 한국적인 산천(山川)의 모습인데 그림의 하단에 강물에 처리된 소나무 숲의 모습에서 강물이 매우 잔잔함을 느끼게 하고, 선비가 앉은 강 언덕에서 강물의 방향이 바뀌고 그 바뀐 강물의 문턱에 큰 바위와 작은 바위 하나가 강 속에 있어 강물이 자연스럽게 갈려짐을 느낄 수 있으니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물이 흘러가듯 하는 자연스러움과 낮춤의 자세를 마음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상단에 적힌 제화 글의 첫 대목에 '농이소미(濃而少味; 짙고 맛이 적다)'라고 하여 이는 그림의 하단에 표현된 소나무 숲과 강 언덕, 강 물결 그리고 바위 등을 두고 하는 말로 생각되는데, 이 부분은 그림의 왼쪽에 담묵으로 처리된 옅은 소나무 숲과 산과 숲 사이에 표현된 안개의 모습과 상대되면서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경물인데, 이를 짙어서 맛이 적다라고 표현한 것은 감식안의 정도가 다소 낮은 단계의 수준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겸재의 그림은 "음양의 조화와 물이 흘러가듯 하는 순리를 마음에 간직하면 태극으로 어우러져 천지의 조화와 일치된다"고 사공도의 시품 '자연(自然)'을 해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청대 말기 화가였던 제내방도 1885년 '시품화보(詩品畵譜)'라는 목판 간행본을 통해 사공도의 24시품에 대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그린 시품 '자연(自然)'도 산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강에 선비와 아내 그리고 아이가 탄 조각배에 선비가 먼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화면에 담아 결국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공도의 24시품을 표현한 겸재의 그림을 한편씩 살펴보면서 사공도의 시품을 해석하는 겸재의 능력과 기량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비범함이 계속해서 느껴집니다.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1. 웅혼(雄渾; 웅장하여 막힘이 없음)
大用外腓(대용외비) : 위대한 활용을 밖에다 덮어 둔다면,
眞體內充(진체내충) : 진실한 본체는 안쪽에 충만하리로다.
返虛入渾(반허입혼) : 빈 곳에 돌아와 막힘 없는 데로 들어오면.
積健爲雄(적건위웅) : 강건함을 쌓아 비로소 웅자하게 된다네.
具備萬物(구비만물) : 만물의 이치를 가추어 준비한다면,
橫絶太空(횡절태공) : 큰 허공을 단숨에 끊어버리네.
荒荒油雲(황황유운) : 뭉게구름처럼 마구 피어 오르고,
寥寥長風(요요장풍) : 기나 긴 바람은 자취 없이 사라진다네.
超以象外(초이상외) : 만가지 물상 밖을 밟아 뛰어넘어,
得其寰中(득기환중) : 그 세계의 중심을 얻는도다.
持之匪强(지지비강) : 중심을 유지함에 억지가 없고,
來之無窮(내지무궁) : 그것을 가져옴에 다함이 없도다.
2. 충담(沖澹; 조용하고 깨끗함)
素處以黙(소처이묵) : 말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나니,
妙機其微(묘기기미) : 오묘한 기틀은 더욱 기묘하도다.
飮之太和(음지태화) : 크게 조화로움을 마시고 나면,
獨鶴與飛(독학여비) : 외로운 학과 함께 날아다니네.
猶之惠風(유지혜풍) : 마치 남풍과도 같아서,
苒苒在衣(염염재의) : 부드럽게 옷에 와 닿는도다.
閱音修篁(열음수황) : 긴 대숲의 소리 견주어 듣고,
美曰載歸(미왈재귀) : 좋아서 싣고 돌아가리라 말하네.
遇之匪深(우지비심) : 만나보면 그리 깊지 않으나,
卽之愈稀(즉지유희) : 다가가면 더욱 희소해 지는도다.
脫有形似(탈유형사) : 형상에 비슷한 점 있음을 털어버리니,
握手已違(악수이위) : 손으로 잡으면 이미 어긋난다네.
3. 섬농(纖穠; 날씬함과 통통함의 비례적 아름다운 표현)
采采流之(채채류지) : 이리저리 다니며 캐고캐어,
蓬蓬遠春(봉봉원춘) : 저 멀리 떠다니는 아득한 봄날이여.
窈窕深谷(요조심곡) : 그윽한 깊은 골짜기에서,
時見美人(시견미인) : 때때로 미인을 바라보네.
碧桃滿樹(벽도만수) : 푸른 복숭아 나무에 가득 열리는데,
風日水濱(풍일수빈) : 바람부는 날의 물가로다.
柳陰路曲(유음노곡) : 버드나무 그늘 이는 길모퉁이에,
流鶯比隣(유앵비린) : 사방을 날아다니는 앵무새로다.
乘之愈往(승지유왕) : 잡아 타면 더욱 멀리 가고,
識之愈眞(식지유진) : 알게 되면 더욱 더 실감난다네.
如將不盡(여장부진) : 만약 다하지 않음 이용하면,
與古爲新(여고위신) : 옛사람과 더불어 새로워진다네.
4. 침착(沈着; 작품 내용이 들뜨지 아니하고 차분함)
綠杉野屋(녹삼야옥) : 초록 삼나무 늘어선 시골집에,
落日氣淸(낙일기청) : 지는 해에 공기는 맑기만 하네.
脫巾獨步(탈건독보) : 두건을 벋고 혼자 걸으며,
時聞鳥聲(시문조성) : 때때로 새소리 듣는다네.
鴻雁不來(홍안불래) : 기러기는 오지도 않고,
之子遠行(지자원행) : 그대는 멀리 떠났도다.
所思不遠(소사불원) : 그대를 생각함은 멀어지지 않으니,
若爲平生(약위평생) : 평생을 같이 하는 듯하여라.
海風碧雲(해풍벽운) : 바닷 바람 이는데 푸른 구름 피어나고,
夜渚月明(야저월명) : 밤 물가에 달빛이 밝도다.
如有佳語(여유가어) : 이 기분 표현할 좋은 말 있다면,
大河前橫(대하전횡) : 큰 강물 앞에 가로누운 듯하여라.
5. 고고(高古; 세상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고풍스러움)
畸人乘眞(기인승진) : 기인이 참된 기운 타고,
手把芙蓉(수파부용) : 연꽃을 손에 잡고 있으면서.
泛彼浩劫(범피호겁) : 저 무한한 영겁의 시간에 띄운,
窅然空蹤(요연공종) : 아련한 빈 발자취이어라.
月出東斗(월출동두) : 달이 동쪽 두수의 자리에서 나오나니,
好風相從(호풍상종) : 좋은 바람이 뒤따르는도다.
太華夜碧(태화야벽) : 화산의 밤은 푸르기만 한데,
人聞淸鍾(인문청종) : 사람들은 그 맑은 종소리 듣는다네.
虛佇神素(허저신소) : 우두커니 서서 신령한 본 바탕을 보니,
脫然畦封(탈연휴봉) : 한계를 뛰어넘어 초탈해 진다네.
黃唐在獨(황당재독) : 황제와 요임금의 경지를 홀로 지니니,
落落玄宗(낙락현종) : 드물고 드문 현묘한 최고의 경지로다.
6. 전아(典雅; 법도에 맞아 아담함)
玉壺買春(옥호매춘) : 옥으로 만든 병속에 봄을 사 담고,
賞雨茅屋(상우모옥) : 초가집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 하네.
座中佳士(좌중가사) : 자리엔 좋은 선비들로 가득하고,
左右脩竹(좌우수죽) : 좌우엔 기다란 대나무숲이라네.
白雲初晴(백운초청) : 갓 비개고 흰구름 두둥실 피어나는데,
幽鳥相逐(유조상축) : 그윽히 지저귀는 산새들 날아다니네.
眠琴綠陰(면금녹음) : 숲 그늘 속에서 거문고 베고 자는데,
上有飛瀑(상유비폭) : 위로 나는 듯 떨어지는 폭포수로다.
花落無言(화락무언) : 떨어지는 꽃 잎은 말이 없는데,
人澹如菊(인담여국) : 사람의 마음 담담하기 국화꽃 같도다.
書之歲華(서지세화) : 이것을 한 해의 풍광으로 글을 지으면,
其曰可讀(기왈가독) : 사람들은 읽을 만하다고 할 것이로다.
7. 세련(洗練; 문장에 어색함이 없이 잘 다듬어짐)
如鑛出金(여광출금) : 광석에서 금이 나오는 듯,
如鉛出銀(여연출은) : 납에서 은이 나오는 듯하여라.
超心鍊冶(초심련야) : 담금질하는 곳에서 마음이 벗어나오면,
切愛緇磷(절애치린) : 마음은 부처의 경지를 지극히 좋아한다네.
空潭瀉春(공담사춘) : 빈 못에 봄의 기운 쏟아내는데,
古鏡照神(고경조신) : 오래된 거울에 정신을 비춰본다네.
體素儲潔(체소저결) : 몸을 소박하게 하고 정결함을 쌓아,
乘月返眞(승월반진) : 달빛 타고 진리의 본체로 돌아 오도다.
載瞻星辰(재첨성진) : 온갓 별빛에 바라보는 눈을 싣고,
載歌幽人(재가유인) : 숨어사는 사람에 노래 싣는다네.
流水今日(유수금일) : 흐르는 물은 오늘의 모습이요,
明月前身(명월전신) : 밝은 달은 전생의 내 모습이어라.
8. 경건(勁健; 묘사력이 굳세고 힘참)
行神如空(행신여공) : 마음을 씀에는 공중을 지나듯,
行氣如虹(행기여홍) : 기운을 씀에는 무지개 피우듯 하여라.
巫峽千尋(무협천심) : 무협 천길 낭떠러지에,
走雲連風(주운연풍) : 달려가는 구름이요 불어대는 바람이어라.
飮眞茹强(음진여강) : 진리를 마시며 강함을 먹이고,
蓄素守中(축소수중) : 바탕을 쌓고 중심을 지킨다네.
喩彼行健(유피행건) : 저러한 운행을 건강함에 비유하나니,
是謂存雄(시위존웅) : 이것이 바로 웅자함을 지닌다 할것이로다.
天地與立(천지여립) : 하늘과 땅과 함께 더불어 서고,
神化攸同(신화유동) : 신령의 변화와 함께하는 바로다.
期之以實(기지이실) : 충실함을 지키고,
銜之以終(함지이종) : 마지막까지 지켜나가야 하는도다.
9. 기려(綺麗; 작품속에 표현력의 다양함이 있어 곱고 아름다움)
神存富貴(신존부귀) : 정신에 부귀함을 지녀야,
始輕黃金(시경황금) : 비로소 황금을 가벼이 여길 수 있도다.
濃盡必枯(농진필고) : 짙은 것 다하면 반드시 메마르나,
澹者屢深(담자루심) : 담담한 것은 자꾸 깊어만 진다네.
霧餘水畔(무여수반) : 물가에 자욱히 안개 끼어 있는데,
紅杏在林(홍행재림) : 붉은 살구나무는 수풀 속에 있도다.
月明華屋(월명화옥) : 화려한 저택에 달은 밝디 밝고,
畵橋碧陰(화교벽음) : 그림 그려진 다리에 푸른 그늘이 진다네.
金樽酒滿(금준주만) : 아름 다운 술잔에 술이 가득한데,
其客彈琴(기객탄금) : 객이 주인을 위해 거문고를 탄다네.
取之自足(취지자족) : 이를 듣고난 객은 만족하나니,
良嬋美襟(양선미금) : 진실로 마음 속이 아름다워진다네.
10. 자연(自然; 조화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체의것)
俯拾卽是(부습즉시) : 내려보고 주우면 곧 그 것이라도,
不取諸隣(불취제린) : 이웃에서 그것을 취하지 않느니라.
俱道適往(구도적왕) : 길을 갖추어 알맞게 가고,
著手成春(저수성춘) : 손을 대면 곳 따뜻한 봄이로다.
如逢花開(여봉화개) : 만나보면 꽃이 피고,
如瞻新歲(여첨신세) : 보라보면 해가 새로워진다네.
眞予不奪(진여불탈) : 진정으로 준 것은 빼았지 않고,
强得易貧(강득이빈) : 억지로 얻은 것은 쉽게 가난해진다네.
幽人空山(유인공산) : 인적 없는 빈 산에 숨어사는 사람,
過水菜蘋(과수채빈) : 물 가를 지나면서 마름을 따노라.
薄言情晤(박언정오) : 말은 적어도 마음은 밝아,
悠悠天鈞(유유천균) : 자연의 법칙은 그윽하기만 하도다.
11. 호방(豪放; 의기가 장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음)
觀花匪禁(관화비금) : 꽃을 구경 함에 금하지 않으며,
呑吐太虛(탄토태허) : 천지 허공을 삼키고 토해 내는도다.
由道返氣(유도반기) : 도리를 따르다가 기로 돌아가고,
處得以狂(처득이광) : 광기로서 한 자리 얻기도 한다네.
天風浪浪(천풍낭랑) : 하늘에 바람은 낭랑하고,
海山蒼蒼(해산창창) : 바다와 산은 푸르기만 하도다.
眞力彌滿(진력미만) : 참된 힘이 가득차고.
前招三辰(전초삼진) : 앞으로는 달과 별과 해를 부르고,
後引鳳凰(후인봉황) : 위에서는 봉황새를 데려온다.
曉策六鼇(효책육오) : 해 뜰 무렵 여섯 큰거북을 채찍질하여,
濯足扶桑(탁족부상) : 동해 바다 부상에서 발을 씻는도다.
12. 함축(含蓄; 깊은 뜻이 집약되어 간직됨)
不著一字(부저일자) : 한 글자 짓지 않아도,
盡得風流(진득풍류) : 풍류를 다 터득하나니.
語不涉己(어불섭기) : 말은 자기를 표현해 주지 않아도,
若不堪憂(약불감우) : 우려하지 않는 듯 한다네.
是有眞帝(시유진제) : 여기에는 진리의 제왕이 들어있어,
與之沈浮(여지침부) : 더불어 그것과 뜨고 가라앉음 계속하네.
如淥滿洒(여록만쇄) : 술을 가득히 걸러놓은 듯하여,
花時返秋(화시반추) : 꽃 피는 때에도 가을로 돌아간다네.
悠悠空塵(유유공진) : 먼지 한 점이 아득한 하늘,
忽忽海漚(홀홀해구) : 홀홀히 잠기는 바닷물결이어라.
淺深聚散(천심취산) : 얕고 깊고, 모이고 흩어짐,
萬取一收(만취일수) : 만가지에서 단 하나를 취해들이노라.
13. 정신(精神; 물질과 육체에 대하여 마음의 목적의식)
欲返不盡(욕반부진) : 돌아가려 하나 가지 못해,
相期與來(상기여래) : 서로 기다리다가 만나 함께 온다네.
明漪絶底(명의절저) : 맑은 물결 속까지 보이고,
奇花初胎(기화초태) : 기히한 꽃이 갓 봉오리 맺는도다.
靑春鸚鵡(청춘앵무) : 싱그런 봄날의 앵무새들,
楊柳樓臺(양류누대) : 버들 사이 누대에 노니네.
碧山人來(벽산인래) : 푸른 산에 사람이 찾아 오니,
淸酒滿杯(청주만배) : 맑은 술이 술잔에 가득하도다.
生氣遠出(생기원출) : 생기는 멀리 뻗어가고,
浮蛆死灰(부저사회) : 식은 재는 붙어있지 않는다네.
妙造自然(묘조자연) : 스스로 그렇게 교묘히 이루어졌으니,
伊誰與哉(이수여재) : 그 누구와 함께 하리오.
14. 진밀(縝密; 섬세하고 신중하여 빈틈이 없음)
是有眞跡(시유진적) : 이곳에 참 자취 있으나,
如不可知(여불가지) : 알 수는 없을 것 같도다.
意象欲生(의상욕생) : 형상의 의미가 살아나려하니,
造化已奇(조화이기) : 조화가 이미 기이하도다.
水流花開(수류화개) : 물 흐르는 곳에 꽃 피니,
淸露未晞(청로미희) : 맑은 이슬이 마르지 않는도다.
要路悠遠(요로유원) : 중요한 길은 아득히 멀고,
幽行爲遲(유행위지) : 그윽한 곳 가는 길도 더디지만 하도다.
語不欲犯(어불욕범) : 말로는 범하기를 바라지 않고,
思不欲癡(사불욕치) : 생각은 어리석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도다.
猶春於綠(유춘어록) : 봄날에 초촉 풀빛에 있는 것같고,
明月雪時(명월설시) : 흰 눈에 밝은 달빛 비치는 때 같도다.
15. 소야(疎野; 작품 내용이 활달하여 예법에 얽매이지 않음)
惟性所宅(유성소택) : 성품에 따라 머무나니,
眞取弗羈(진취불기) : 천진하게 취하고 얽매이지 않는도다.
拾物自富(습물자부) : 물건을 주워 사용해도 부자로 여기고,
與率爲期(여솔위기) : 언제나 솔직하기를 바란다네.
築屋松下(축옥송하) : 소나무 아래에 집을 지어,
脫帽看詩(탈모간시) : 모자를 벗고서 시를 살펴본다네.
但知旦暮(단지단모) : 다만 아침과 저녁만 알 뿐,
不辨何時(불변하시) : 시간이 어느 때인지를 가리지 못한다네.
倘然適意(당연적의) : 어쩌다 기분에 맞겠지만,
豈必有爲(기필유위) : 어찌 반드시 일부러 그렇게 했겠는가.
若其天放(약기천방) : 만약 그것이 천성의 방림이라면,
如是得之(여시득지) : 이렇게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리라.
16. 청기(淸奇; 작품의 깨끗한 소재와 남다르게 기이한 분위기)
娟娟群松(연연군송) : 아름다운 여러 소나무 숲,
下有漪流(하유의류) : 아래엔 맑은 물이 흘러간다.
晴雪滿汀(청설만정) : 개인 날, 물가에 눈이 가득하고,
隔溪漁舟(격계어주) : 개울 건너엔 고기잡이배가 떠있네.
可人如玉(가인여옥) : 마음에 맞는 사람 옥 같고,
步屐尋幽(보극심유) : 나막신 신고 깊숙한 곳을 찾는도다.
載行載止(재행재지) : 가다가 또 섰다가 하며 가니,
空碧悠悠(공벽유유) : 푸른 하늘은 아득하기만 하노라.
神出古異(신출고이) : 옛적의 기이함이 묘하게 나오니,
澹不可收(담불가수) : 담담함을 담을 수가 없도다.
如月之曙(여월지서) : 달이 밝아지는 듯하고,
如氣之秋(여기지추) : 공기가 마치 가을이 된 것 같도다.
17. 위곡(委曲; 작품 내용의 자세하고 소상함)
登彼太行(등피태행) : 저 태행산에 오르노라니,
翠遶羊腸(취요양장) : 푸르름이 구비진 산길을 에워싼다.
杳靄流玉(묘애류옥) : 아득한 안개는 옥빛 흐르는 듯,
悠悠花香(유유화향) : 꽃향기가 아득히 풍겨나오는구나.
力之於時(역지어시) : 이때에 힘을 주어 불어대니,
聲之於羌(성지어강) : 호돌기 피리소리가 일어나는구나.
似往已回(사왕이회) : 가버린 것 같아도 이미 돌아오고,
如幽匪藏(여유비장) : 그윽한 것 같아도 감춰지지 않았다네.
水理璇洑(수리선보) : 물은 옥무늬 생긴 못처럼 흐르고,
鵬風翶翔(붕풍고상) : 붕새는 바람처럼 날아오르는도다.
道不自器(도부자기) : 도는 처음 모양 고집하지 않고,
與之圓方(여지원방) : 정황에 따라 둥글게도 모나게도 되도다.
18. 실경(實境; 생각과 마음의 대상이 되는 실제의것)
取語甚直(취어심직) : 말을 선택함이 심히 직접적이고,
計思匪深(계사비심) : 생각함이 깊지 아니하네.
忽逢幽人(홀봉유인) : 숨어 편히 사는 사람 갑자기 만나니,
如見道心(여견도심) : 마치 도심을 보는 것 같도다.
淸澗之曲(청간지곡) : 굽이 굽이 흐르는 맑은 골짝물에,
碧松之陰(벽송지음) : 푸른 소나무의 그늘이 지네.
一客荷樵(일객하초) : 한 나그네는 나무를 지고가는데,
一客聽琴(일객청금) : 한 나그네는 피리소리를 듣고있도다.
情性所至(정성소지) : 성정이 가는 곳에 있지,
妙不自尋(묘불자심) : 묘하게 자의로 찾지는 않는도다.
遇之自天(우지자천) : 하늘로부터 우연히 얻었지만,
冷然希音(냉연희음) : 맑게 울리는 드문 소리일 것이로다.
19. 비개(悲慨; 작품 속의 슬퍼하고 개탄함)
大風捲水(대풍권수) : 큰 바람이 물을 말아올리고,
林木爲摧(임목위최) :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꺾인다네.
意苦若死(의고약사) :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 같아,
招憩不來(초게불래) : 쉬어가게 불러도 오지 않는다네.
百歲如流(백세여류) : 인생 백년이 흐르는 물 같이 지나고,
富貴冷灰(부귀냉회) : 부귀영화는 차가운 재가 되었도다.
大道日往(대도일왕) : 대도는 날마다 멀어지니,
若爲雄才(약위웅재) : 웅대한 재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壯士拂劍(장사불검) : 장사는 검을 털어버리고,
泫然彌哀(현연미애) : 확연히 슬픔이 가득하도다.
蕭蕭落葉(소소낙엽) : 쓸쓸히 낙엽지고,
漏雨蒼苔(누우창태) : 빗물은 푸른 이끼에 떨어진다네.
20. 형용(形容; 사물의 어떠함을 말, 글, 시늉을 통하여 드러냄)
絶佇靈素(절저영소) : 잠념을 끊고 신령한 바탕을 기다리면,
少回淸眞(소회청진) : 후에 대상의 맑고 참된 모습에 돌아가네.
如覓水影(여멱수영) : 물의 그림자를 찾는 듯 하고,
如寫陽春(여사양춘) : 따뜻한 봄을 그려내는 듯하여라.
風雲變態(풍운변태) : 바람과 구름의 변화하는 모양,
花草精神(화초정신) : 꽃과 풀의 정채로움이라.
海之波瀾(해지파란) : 바다의 찬란한 물결,
山之嶙岣(산지린구) : 산의 험준하고도 높음이라.
俱似大道(구사대도) : 모두가 대도와 유사하니,
妙契同塵(묘계동진) : 묘하게 결합되어 속세와 같도다.
離形得似(이형득사) : 형태를 떠나 유사함을 얻으면,
庶幾斯人(서기사인) : 이 사람과 거의 가까워지느니라.
21. 초예(超詣; 작품이 매우 뛰어나고 뛰어남)
匪神之靈(비신지령) : 정신의 영묘함이 아니고,
匪幾之微(비기지미) : 심기의 미묘함도 아니니라.
如將白雲(여장백운) : 흰구름을 거느린다면,
淸風與歸(청풍여귀) : 맑은 바람과 함께 돌아간다네.
遠引若至(원인약지) : 멀리 당겨 그곳에 이른 것 같으나,
臨之己非(임지기비) : 가보면 이미 그것이 아니니라.
少有道契(소유도계) : 어려서 도와 합치함이 있어,
終與俗違(종여속위) : 끝내 세속과는 맞지 않는도다.
亂山喬木(난산교목) : 어지러이 많은 산에 높이 솟은 나무,
碧苔芳暉(벽태방휘) : 푸른 이끼에 꽃다운 봄빛이로다.
誦之思之(송지사지) : 그것을 외우고, 그것을 생각하니,
其聲愈稀(기성유희) : 그 소리 더욱 희미해지는도다.
22. 표일(飄逸; 작품의 품격이 청신하고 뜻이 고원함)
落落欲往(낙락욕왕) : 뒤로 처져서 가려고 하나니,
矯矯不群(교교불군) : 교교히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도다.
緱山之鶴(구산지학) : 구산에 머무는 학이요,
華頂之雲(화정지운) : 화산 봉우리의 구름이라네.
高人畵中(고인화중) : 이름난 화가의 그림 속에,
令色絪縕(영색인온) : 아름다운 빛 온기에 싸여있도다.
鄕風蓬葉(향풍봉엽) : 쑥 잎 같은 자들이 흠모하고 추종하여,
泛彼無垠(범피무은) : 저 먼 곳에 마음 띄워 끝없이 흘러가네.
如不可執(여불가집) : 만약 잡을 수 없을 것도 같고,
如將有聞(여장유문) : 장차 소식이 있을 것도 같도다.
識者已傾(식자이경) : 아는 자는 이미 그것에 기울어지고,
期之愈分(기지유분) : 기대할수록 더욱 나누어지기만 한다네.
23. 광달(曠達; 작품 내용의 도량이 너그럽고 큼)
生者百歲(생자백세) : 살아 간가는것은 백년 뿐인데,
相去幾何(상거기하) :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가.
歡樂苦短(환락고단) : 환락과 고단함,
憂愁實多(우수실다) : 근심과 걱정이 실로 많도다.
何如尊酒(하여존주) : 술 한 말 함이 어떤가,
日往煙蘿(일왕연라) : 날마다 안개 낀 댕댕이 넝쿨 찾는도다.
花覆茆簷(화복묘첨) : 꽃은 초가집 처마를 덮고 있는데,
疏雨相過(소우상과) : 성긴 비 오면서 지나가네.
倒酒旣盡(도주기진) : 술잔을 기울여 다 마시고,
杖藜行歌(장려행가) : 지팡이 짚고 걸으며 노래를 부르네.
孰不有古(숙불유고) : 누가 예스러움을 지니지 않으리,
南山峨峨(남산아아) : 남산처럼 높고도 높도다.
24. 유동(流動; 글발이 아무런 지장 없이 흘러 움직이는 현상)
若納水輨(약납수관) : 물 모으는 바퀴채 같기도 하고,
如轉丸珠(여전환주) : 구르는 궁근 구슬 같기도 하네.
夫豈可道(부기가도) :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假體遺愚(가체유우) : 그래서 형체를 빌려 우매한 자에게 남기네.
荒荒坤軸(황황곤축) : 지축은 아늑히 황막하고,
悠悠天樞(유유천추) : 천축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載要其端(재요기단) : 그 단서만 찾아 두텁게 지닌다면,
載同其符(재동기부) : 그 부합됨이 같을 것이로다.
超超神明(초초신명) : 우주를 주관하는 신령은 초연하여,
返返冥無(반반명무) : 어두운 허무의 세계로 돌아가도다.
來往千載(내왕천재) : 천년을 두고 오고 또 가나니,
是之謂乎(호지위호) :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인가?
사공도(司空圖, 837~908)가 '이십사시품 (二十四詩品)'을 지었던 당나라 말기는 환관의 전횡과 당쟁, 그리고 농민의 봉기 등으로 국정이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50여세부터 은거하여, 승려나 인사들과 시를 지으며 편안한 생활을 하였다.
당 제국이 망하자 그는 국가와 군주를 생각하며 부흥하기를 원했으나, 그것도 마음뿐 '은일'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따라서 사공도의 시학관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갈등하며 출사하지 않고 시로서 자신의 마음만을 달랬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사공도는 시가를 수준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없었다.
사공도의 '시품'은 사언 고시체로 '웅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유동'으로 끝을 맺는다. 각각의 구성은 4언 12구 48자 운문으로서 원문은 전체 1,152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품'의 24개의 풍격이 계절과 절기와도 관계가 있으며, 체제에 있어서는 무체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들은 작법에 의해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24라는 숫자가 이 십사산(二十四山), 이십사상(二十四相) 등 도교와 관련되었다 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품'을 도가적 미학으로 논하고 있다.
원교 이광사는 왕족의 후손으로 종형제들과 성장하며 유·불·도를 공부하였고, 상고당 같은 지인을 만나 비문, 골동품, 서예책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아 나갔다.
또한 21살에 서예의 스승 윤순(尹淳)을 만나, 조선 18세기 최고가는 시인, 화가, 서예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십사시품서화첩'에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글씨를 쓰게 되었다. 글씨는 현재 비록 6편은 산실되었지만 18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각 '시품'의 24풍격에 맞는 서체로 형상화하여 썼다.
그리고 서른 무렵에 하곡 정제두로부터 조선 심학을 배웠다. 이때 배웠던 심학이 한평생 그의 인생의 철학이 되었고 그의 집안 전주이씨 덕천군파 학문으로 계승되었다.
50여세부터 유배지 함경도 부령과 신지도에서 그는 '도(道)'에 정진하면서 저술하였던 '두남집', '원교집', '서결'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교체'가 동국진체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교는 '시품'의 첫 구절인 '웅혼'을 조선심학(하곡학)으로 "이 우주에서 가장 힘세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태양이다. 태양이 태허의 원기(元氣)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사람도 태허로 되돌아가서 근본적인 양기를 얻어야 한다. 원기를 얻으려면 수양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황도의 중심은 해에 끈을 묶어 놓은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가깝게 오지 않도록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돌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몸을 억지로 꽉 잡아도 안 되고 쥐는 듯 놓는 듯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처럼 수양하면 끝이 없을 만큼 크고 넓게 될 것이다고 이광사는 이해했을 것이다.
▶️ 濃(짙을 농)은 형성문자로 浓(농)의 본자(本字), 浓(농)은 통자(通字), 浓(농)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農(농)으로 이루어졌다. 본디 이슬이 많이 내린다는 뜻이었다. 醲(진한 술 농)과 통하여 맛이 진하다는 뜻이 전(轉)하여 진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래서 濃(농)은 (1)일부 명사(名詞) 앞에 붙어 진한, 농후(濃厚)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名詞) 앞에 붙어, 빛깔 같은 것이 짙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일부 명사(名詞) 다음에 붙어 농사(農事), 농민(農民)의 뜻을 나타내는 말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색이)짙다 ②(음식이)진하고 맛이 좋다 ③(안개 등이)깊다 ④(정의가)두텁다 ⑤이슬 맺힌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두터울 후(厚), 도타울 돈(敦), 넉넉할 유(裕), 풍년 풍(豊), 지나칠 주(足), 남을 여(餘), 넉넉할 요(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맑을 담(淡)이다. 용례로는 혼합 기체나 액체의 진하고 묽은 정도를 농도(濃度), 짙음과 옅음 또는 그 정도를 농담(濃淡), 진하게 졸임을 농축(濃縮), 빛깔이 진하거나 짙음을 농후(濃厚), 짙은 안개를 농무(濃霧), 짙은 빛을 농색(濃色), 짙은 붉은빛을 농홍(濃紅), 짙은 먹물을 농묵(濃墨), 짙고 빽빽함으로 서로 사귀는 정이 두텁고 가까움을 농밀(濃密), 심한 더위를 농서(濃暑), 깊은 시름을 농수(濃愁), 짙은 연기를 농연(濃煙), 짙은 구름을 농운(濃雲), 짙은 그늘을 농음(濃陰), 짙은 향기를 농향(濃香), 짙어짐을 농화(濃化), 무르익음을 농화(濃和), 무르익음을 농숙(濃熟), 짙은 화장을 농장(濃粧), 썩 진하게 쓰는 불투명한 채색을 농채(濃彩), 진하고 걸쭉함을 농탁(濃濁), 오랫동안 푹 고아서 진하게 된 국물을 농탕(濃湯), 눈썹이 짙고 눈이 크다는 말을 농미대안(濃眉大眼), 엷은 화장과 짙은 화장이라는 뜻으로 갠 날과 비 오는 날에 따라 변화하는 경치를 이르는 말을 담장농말(淡粧濃抹), 반하거나 홀려서 정신이 몽롱하고 마음이 노긋하다는 말을 신취심농(神醉心濃)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少(적을 소/젊을 소)는 ❶회의문자로 작을 소(小; 적다)部와 丿(별)의 합자(合字)이다.작은 물체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 적어지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적다를 뜻한다. 小(소)는 작다는 뜻과 적다는 뜻의 양쪽을 나타내었으나, 나중에 小(소; 작다)와 少(소; 적다)를 구별하기 위하여 한 가운데의 갈고리 궐(亅; 갈고리)部와 나눔을 나타내는 八(팔)을 합(合)하여 물건을 작게 나누다의 뜻을 가진다. 小(소)는 작다와 적다의 두 가지 뜻을 나타냈으나, 나중에 小(소; 작다)와 少(소; 적다)를 구별하여 씀을 조금 바꾸었다. 少(소)가 붙어야 할 말을 小(소)로 쓰는 일이 많음은 본디 한 글자였기 때문이다. ❷상형문자로 少자는 '적다'나 '많지 않다', '젊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少자는 작은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小(적을 소)자와 기원이 같다. 다만 小자가 3개의 파편을 그린 것이었다면 少자는 4개의 파편이 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파편의 수와는 관계없이 小자와 少자 모두 '작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지금의 小자는 '작다'로 少자는 '적다'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少(소)는 ①적다, 많지 아니하다 ②작다 ③줄다, 적어지다 ④적다고 여기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다 ⑤젊다 ⑥비난하다, 헐뜯다, 경멸하다 ⑦빠지다 ⑧젊은이, 어린이 ⑨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장에 버금가는 벼슬에 붙이는 말 ⑩잠시(暫時), 잠깐, 조금 지난 뒤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사(些), 적을 과(寡),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많을 다(多), 늙을 노/로(老)이다.용례로는 적은 수효를 소수(少數), 완전히 성숙하지도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사내 아이를 소년(少年), 완전히 성숙하지 않고 아주 어리지도 않은 여자 아이를 소녀(少女), 적은 액수를 소액(少額),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함을 소장(少壯), 적은 분량을 소량(少量), 잠깐 동안이나 잠시 지나간 동안을 소경(少頃), 줄어서 적어짐을 감소(減少), 매우 적음을 사소(些少), 분량이나 정도의 많음과 적음을 다소(多少), 적고 변변하지 못함을 약소(略少),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노소(老少), 아주 적어서 얼마 되지 못함을 근소(僅少), 지나치게 적음을 과소(過少), 가장 적음을 최소(最少), 나이가 적음을 연소(年少), 드물고 썩 적음을 희소(稀少), 조금도 개의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소불개의(少不介意), 나이 젊고 건강한 사람은 날카롭다는 뜻으로 소장은 흔히 20~30세의 왕성한 지식욕과 행동력을 갖춘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소장기예(少壯氣銳),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소불동념(少不動念), 조금도 뜻대로 되지 않거나 조금도 뜻과 같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소불여의(少不如意), 어릴 때의 버릇은 천성과 같이 됨을 이르는 말을 소성약천성(少成若天性), 젊었을 때 저지른 잘못을 일컫는 말을 소시지과(少時之過), 남자와 여자와 늙은이와 젊은이 곧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을 남녀노소(男女老少),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즐김을 일컫는 말을 노소동락(老少同樂), 한 번 웃으면 그만큼 더 젊어짐을 일컫는 말을 일소일소(一笑一少), 노인도 소년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뜻으로 사람의 목숨은 덧없어 정명을 알 수 없으므로 죽음에는 노소가 따로 없음을 이르는 말을 노소부정(老少不定),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이라는 뜻으로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음을 일컫는 말을 식소사번(食少事煩), 시국이나 병세가 매우 위급하여 안심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위다안소(危多安少) 등에 쓰인다.
▶️ 味(맛 미, 광택 매)는 ❶형성문자로 苿(미)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未(미)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未(미)는 나무 끝의 가느다란 작은 가지, 잘고 희미하다의 뜻이다. 나무 끝에 여는 과일도 각각 조금씩 다른 데가 있고 미묘한 맛이 난다. 그래서 未(미)를 맛이란 뜻으로 썼으나 나중에 未(미)의 다른 쓰임과 구별(區別)하여 먹는 것에 관계(關係)가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를 붙여서 味(미)라 쓴다. ❷회의문자로 味자는 '맛'이나 '기분', '의미'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味자는 口(입 구)자와 未(아닐 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未자는 '아직~하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본래는 나무 끝의 가느다란 가지를 뜻하던 글자였다. 음식의 맛을 느끼거나 구별하는 데는 세밀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강조한 未자는 맛의 미세한 차이를 느낀다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味(미, 매)는 ①맛 ②기분(氣分) ③취향(趣向) ④뜻, 의의(意義) ⑤육진의 하나 ⑥오랑캐의 음악(音樂) ⑦맛보다 ⑧맛들이다, 그리고 ⓐ광택(光澤), 윤(매) ⓑ빛깔(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맛을 느끼는 감각을 미각(味覺),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는 일을 미독(味讀), 양념으로 쓰는 재료를 미료(味料), 어떤 맛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 또는 그러한 사람을 미맹(味盲), 말이나 글이 지니는 뜻이나 내용 또 그 의도나 동기나 이유 따위를 의미(意味), 어떠한 사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감정을 흥미(興味), 마음에 끌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흥미를 취미(趣味),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시나 노래를 읊어 그 맛을 봄 또는 사물의 의미를 새겨 궁구함을 음미(吟味), 맛이나 재미가 취미가 의미가 없음을 무미(無味), 유달리 좋은 맛으로 늘 먹는 것과는 다르게 만든 좋은 음식을 별미(別味), 음식에 다른 식료품이나 양념을 더 넣어 맛이 나게 함을 가미(加味), 음식의 맛을 고르게 맞춤을 조미(調味), 음식의 썩 좋은 맛 또는 그런 음식을 진미(珍味), 맛 보기 위하여 조금 먹어봄을 상미(嘗味), 음식의 고상한 맛 또는 사람의 됨됨이가 멋들어지고 아름다움을 풍미(風味),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이란 뜻으로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든 맛이나 좋은 음식을 일컫는 말을 산해진미(山海珍味), 살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일컫는 말을 고량진미(膏粱珍味), 말이나 글의 뜻이 매우 깊음을 일컫는 말을 의미심장(意味深長), 하는 말이 재미없다는 뜻으로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맛없음을 이르는 말을 어언무미(語言無味), 근심이나 걱정 따위로 음식 맛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식불감미(食不甘味), 재미나 취미가 없고 메마름을 이르는 말을 무미건조(無味乾燥), 흥미를 잃어 가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흥미삭연(興味索然)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