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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上
서늘한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아슬아슬하게 올라서 양팔을 벌리자 마치 날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옷자락이 퍼덕이면서 살갗을 때렸지만 그것마저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감았던 눈을 슬쩍 다시 뜨자 까마득한 멀리까지 시야가 확장되어 보인다.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도심에, 장난감마냥 작게 보이는 분주하게 빛을 뿜으며 움직이는 자동차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멀지않은 곳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벌리고 있던 팔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아래쪽으로 향하자 어지러울 정도로 까마득한 지상이 내려다 보였다. 무의식중에 기대어있던 난간에 좀 더 몸무게를 실었다. 다시 한 번 밑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흔들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기익. 탕.
더위가 풀리고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한껏 높아져버린,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올려다 보는 사이 누군가 옥상에 왔는지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늦을 거야. 먼저 먹어. 그래. 미안하다. 아니, 먼저 자고 있어. 그래. 끊는다”
나직한 저음이 홀로 옥상위에 떠돌았다. 전화 통화를 하는지 일방적인 목소리만 들리더니 이내 말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곤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모습을 보게 되면 분명히 기겁을 할 것이었으므로 나는 오늘도 뛰어내리길 포기하고 돌아서기로 결심했다. 재빨리 난간 안쪽으로 몸을 옮기기 위해 뒤를 도는 순간 막 담배를 물다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제법 넓은 옥상이고, 내가 있는 곳은 옥상 문이 있는 공터에서 보기에는 사각지대였기 때문에 그와 마주치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단숨에 무색해졌다.
“어…?”
“조심해!”
거기에 더해 나 역시 적잖이 놀랐는지 순간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 마주친 눈이 경악에 물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 일주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왔지만 단 한 번도 뛰어내리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사고로 인생을 버리게 되다니. 몸이 기울면서 딛고 있던 바닥이 사라졌다. 그리고 날아가는 듯 한 부양감을 느끼는 순간 오른쪽 팔이 강한 힘에 붙잡혀 당겨지면서 내 몸은 단번에 난간을 넘어 옥상바닥으로 쓰러졌다. 찰나의 순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나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아… 죽고 싶은 건가”
멀어지려는 정신을 간신이 부여잡고 있는데 정수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몇 번 들었던 목소리였다.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들자 목소리의 주인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나를 잡아당겨 안으면서 쓰러지는 바람에 나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 채였고 혼미했던 정신이 돌아오자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몸까지 전이되었는지 머리를 울리는 현기증에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으윽…”
머리를 감싸 안으며 주저앉고 나자 이제야 죽을 뻔했었다는 충격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고 절로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불안하게 두근대는 심장의 박동이 온몸에 울리며 나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젠장”
발작을 일으키려는 내 증상을 알아 챈 건지 그가 재빨리 나를 안아들었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지만 불규칙한 호흡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별로 어렵지도 않게 그런 나를 안고 그가 옥상을 벗어났다. 축축 늘어지는 시야를 억지로 잡아채면서 까맣게 잠기는 의식사이로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의 하얀 가운에 달린 명찰의 ‘최기문’이라는 이름이었다.
* * *
의도하지 않은 자살소동으로 인해 부모님이 많이 놀라셨는지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외출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지내는 병실에는 티비든 컴퓨터든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언제나 바라보던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 나를 답답하게 했다. 내 방 창문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강도, 하늘도 없었고 다만 네모진 시멘트 건물들만 가득했다. 소동 이후 나는 며칠 정신과 상담도 받았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어려운 병’을 가진 이들이 모두가 가지는 우울증이라는 판명이 났고 부모님도 어떻게든 납득하신 듯 보였다. 그리고는 전보다 자주 찾아와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의 외출금지령은 보름 전에 풀렸으나 나는 나가지 않았다. 그저 창가에 주저앉아 조금씩 노랗고 붉게 물들어가는 세상을 하루하루 셈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덩달아 내가 져버리기 전에 저렇게 화려하게 필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똑똑
나 홀로 지내는 1인실인 병실은 찾아올만한 사람이 나의 담당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 그리고 부모님뿐이었다. 노크소리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나는 벌써 약 먹을 시간인가 고민하면서도 창밖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나의 무반응에 한 번 더 문을 두드린 상대는 이내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광욕을 하는 마냥 햇빛을 있는 그대로 쪼이고 있던 나는 들어와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방문객이 의아해졌다. 의사선생님이면 몸은 어떠냐, 괜찮냐 물을테고 간호사누나들이면 혈압재자, 약 먹자 등등 잡다한 것을 지시 할테고, 이시간이면 부모님은 오지 않을 텐데. 쉽사리 나오지 않는 답에 결국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얼굴을 마주보았음에도 방문자는 그 자리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기위해서 애를 썼다. 그러다 방문객이 걸치고 있는 것이 의사가운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의 명찰에 쓰인 이름을 확인했다.
“최…기문 선생님?”
그였다. 나를 죽음에서 구해준- 그 남자였다.
“몸은… 괜찮은 건가?”
“아…”
내가 입을 열 때까지도 움직이지 않던 그가, 마치 내가 기억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인형에 숨을 불어넣은 것 같이 갑작스레 살아났다. 언젠가 들어봤던 매력적인 낮은 음의 음성이 눈앞에서 직접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왠지 목 안쪽이 간질간질해졌다. 퍼뜩 정신이 들어 나는 창가에 걸터앉았던 몸을 내려 바닥에 섰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살폈다. 또래 애들보다 체구가 작은 나는 비쩍 마르기까지해서 왜소하기까지 했는데 눈앞에 서있는 그는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보였다. 나이는 서른 중반쯤 되었을까… 날카로운 느낌이 나는 얼굴은 굉장히 미남이었다.
“선생님…?”
“…아. 다행이군”
멍한 느낌이 나는 그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나는 곧 웃으면서 말했다.
“제 이름은 정선호라고 해요. 아, 이미 알고 계신건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흉부외과 전문의 최기문이다. 김교수님이 담당의라던데”
그리고는 내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 한번 내 병실을 훑었다. 이곳은 내가 2년 넘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병실이라기에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변해있었다. 살짝 병원 특유의 냄새가 배어있을 뿐 내 또래 남자애들의 방이나 마찬가지랄까.
“그냥… 궁금해서 한번 와봤다”
테이블 위에 놓인 파란색 가습기에 시선을 둔 그가 말했다. 왠지 그 모습이 변명하는 것 같이 보여서 눈을 껌뻑였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가 가운자락을 펄럭이며 돌아섰다.
“그만 가보지”
“아…”
-드르륵
왜인지 모르게 그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그를 쫓아가는 대신 그의 등 뒤에 대고 조금은 조급하게 말했다.
“또 오실 거죠?”
“……”
내말에 멈칫한 그는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그의 대답을 듣지 않았음에도 나는 다시 찾아오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최기문. 나의 생명의 은인.
* * *
이제는 창문을 열면 싸늘한 바람이 들이쳤다. 아직 겨울은 아니었지만 제법 쌀쌀해진 날씨가 병원에서만 지내는 나에게도 느껴졌다. 기온이 좀 더 떨어지려는지 오늘 오후부터는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여름 장마처럼 시원하게 쏟아지지도 않고 조용히 세상을 적시는 빗방울의 궤적을 천천히 훑으며 창문에 입김을 불어 하얗게 서린 김을 뽀득뽀득 칠하기를 반복했다.
-똑똑
“네”
노크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는 냉큼 대답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노크와는 관계없이 이방에 들어오곤 했지만 단 한명 ‘그’만은 내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절대 이 공간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긴 병원생활로 사라져 버린 ‘내방’. 나만의 공간이 그의 사소한 배려로 인해서 다시금 차곡차곡 쌓아져 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굉장한 기쁨을 주었다. 예상한대로 노크를 한 상대는 ‘그’였다. 처음 찾아왔던 그날이후로 그는 일주일에 많으면 서 너 번 나를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 여상스러운 안부를 물어왔고, 나는 언제나 ‘언제나 그렇지요’라는 대답을 했다.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대답하기에는 나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였고 아직은 그것을 숨길정도로 나는 성숙하지 않았다.
“밥은 먹었나?”
방에 들어서 문을 닫자마자 그가 물었다. 이것역시 그의 여상스런 안부질문중의 하나였다. 아무렴 병원에서 먹고 자는 내가 밥을 굶었을까.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나의 병에 좋은 음식들로 딱딱 맞춰서 나오는데. 하지만 정말 이상하지. 그런 당연하고 답마저 정해져있는 질문임에도 나는 그것이 기꺼웠다.
“네. 선생님은요?”
“이제 먹어야겠지”
“8신데 아직 이세요?”
“일이 많아서”
그가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내 침대 맞은편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창가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나의 움직임을 쫓던 그가 내가 옆에 앉기 무섭게 내 오른손을 잡아챘다.
“또 몇 시간이나 창가에 있었던 거냐”
“그냥…”
“이제 날이 많이 추워졌다”
“열지는 않는다구요…”
“닫아놔도 그렇게 가까이 가있으면 냉기는 들어와”
그야말로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내게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 속에 섞인 걱정과 식어버린 손에 온기를 나눠주는 그의 커다란 손에 나는 실없이 웃어버렸다.
“집에 빨리 가야 하지 않아요? 원우가 기다릴텐데…”
“가야지…”
그에게는 제법 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처음 그를 보고 30대 중반쯔음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는 38살이었고, 막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까지 있었다. 내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테니 그의 아들과 나는 세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셈이다. 왠지 조금 마음이 답답했다.
“선생님”
“음”
“선생님”
“그래”
“선생님…”
그가 이번에는 대답 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찾아오겠다는 매번 하는 말을 남긴 채 문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슬쩍 그의 손이 닿았던 머리위에 손을 갖다 댔다. 그가 닿았던 손과 정수리가 서늘한 공기와는 정반대로 화끈거렸다.
* * *
지겨웠던 가을비가 끝나고, 기온이 뚝 떨어진 채로 맑은 하늘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오랜만의 외출을 계획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병원을 나서서 약 2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공원까지의 산책이었지만 나에게는 바깥세상과 함께 숨 쉬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지긋지긋한 병원 복을 벗어 던진 뒤 병실 한쪽구석의 옷장을 뒤적였다. 청바지와 니트 티, 코트를 꺼내 침대에 던져놓고 목도리까지 찾아냈다. 얼마나 오래 입지를 않았는지 옷장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킁킁거리며 옷 이곳저곳을 확인하다 결국 한구석에 있던 섬유탈취제를 뿌리고 한쪽에 걸어두었다. 옷을 바로 입지 못해 상의를 벗은 채였지만 병원복을 다시 걸치고 싶지는 않았다. 옷이 적당히 마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수건을 들어 아직 젖은 머리칼을 훔치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짧은 내 대답이 울리자 뚜벅뚜벅 구두소리가 울리며 누군가 문안으로 들어섰다. 9시가 조금 넘은 회진시간이었기에 나는 뒤돌아선 채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오늘은 짧게 해주세요. 저 정말 괜찮거든요? 오랜만에 나가는 거라서 정말 꼭 나가고 싶어요. 허락해주시고선 이제 와서 무르시는 거 아니죠?”
“……”
“한 시간, 아니 두시간 내로 돌아올게요! 뛰지도 않고 무리 안 할테니까… 선생님?”
“너……”
당연히 김교수님일거라 생각했던 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가온 그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선생님…”
“이 꼴이 도대체…”
수건을 머리에 얹은 채로 굳어버린 내 손에서 그가 수건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내 머리를 말려주었다. 그 기분 좋은 따뜻함에 내가 수건 밑에서 미소를 짓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재밌어”
“선생님이 머리말려 주셔서 좋아요”
“……”
내말에 당황한건지 황당한건지 입을 꾹 다문 그가 아까보다 조금 거칠게 내 머리를 털었고 곧 수건이 멀어졌다. 왠지 모를 아쉬움에 나직하게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뺨위로 온기가 스몄다.
“감기 들겠어. 옷 입어라”
“아, 네…”
충분히 마른 니트 티를 입고서 옷매무새를 다듬는데 왠지 모르게 옷이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딱 맞는 옷이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거울 앞에 서니 비쩍 말라서 볼품없는 몸 위에 남의 옷을 걸친 것 마냥 촌티를 풀풀 풍기는 이가 눈에 띄었다. 순식간에 기분이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몰골이라니. 옷을 입었는데 이 모양이면 방금 아무것도 안 입었을 땐 얼마나 앙상했을까. 병색이 완연해 창백한데다가 뼈가 툭툭 튀어나와 몸의 굴곡도 투박하기 짝이 없었겠지. 그런 몸을 그가 보았다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부끄러웠다.
“왜그래. 열이 나는 건가?”
그때 그의 손이 등 뒤에서 다가와 내 이마를 짚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위로 그의 서늘하고 커다란 손이 닿으면서 내 시야까지 가려버렸다. 거울 속에 비추던 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눈앞에서 괴물이 사라지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열은 없는데… 어디 몸이 안 좋은가?”
그렇게 말하며 떨어지려는 그의 손을 잡아 눌렀다. 등 뒤에서 움찔하는 그가 느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서늘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손은 뜨거웠다. 화끈거렸던 나의 열기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그의 손은 끓는 용암 같았다. 불같았다. 내가 그의 손을 놓지 않자 포기했는지 그가 힘을 뺐다. 그리고 내 머리위에 다른 손을 얹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넌 충분히 예쁘다”
내 마음을 알아채고 나를 달래는 그의 다정한 말에 울컥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 눈물까지도 그의 손에 가두어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가려주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매일같이 찾아오던 둔통이 아닌, 온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불같이 번져오는 진동이었다.
* * *
“바쁘신 거 아니에요?”
“괜찮아”
“그치만…”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와 그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한발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나란히 걸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마스크에 목도리에 후드까지 둘둘 둘러맨 나와 달리 그는 멋진 정장위에 코트를 걸쳤다. 굴러가는 곰 같은 나와 달리 정말 멋진 그를 보면서도 이상하게 질투심은 생기지 않았다.
“선생님”
“?”
“나 손잡아 주면 안 되나요?”
“……”
나는 한발짝 떨어져있던 거리를 반보로 좁히면서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무리였을까. 실망하는 순간 그가 내 손을 잡아 끼고 있던 장갑을 벗겼다. 그리고는 맨살이 드러난 손을 꼭 쥐더니 자신의 코트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좁은 주머니 속에 나와 그의 손이 정신없이 부대꼈다. 민구스러움에 꼬물거리는 내 손을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조심스럽게 문지르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만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왠지모르게 키득키득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나도 걸음을 옮겼다. 나의 보폭을 맞춰주는 그의 걸음에 난 또 한 번 남몰래 웃었다.
그날, 내가 옥상에서 죽을 뻔 한 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
* * *
“가까이 가보면 안돼요?”
“안 돼”
“하지만…”
공원은 규모가 꽤 컸다. 덕분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오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널찍한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광장근처에 한 무리의 비둘기 떼가 바닥을 쪼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공원에 나오신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간간히 과자 부스러기 등을 던져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 나의 낌새를 알아챈 그가 바로 나를 제지 했고 나는 떼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먹이 줘보고 싶은데…”
“…안 돼.”
“선생님…”
간만에 허락된 외출이었다. 그것도 선생님과 함께였으니 망정이지 혼자라면 택도 없었다. 이제는 언제 ‘다음’이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 기회가 올 때까지 내 몸이 버텨줄는지도 알 수 없었다. 우울한 생각이 뻗쳐나가기 시작하자 끝이 없었다. 결국 발끝까지 침울해진 내가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바닥을 노려보면서 울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그가 내 턱을 잡아채 들어올렸다. 가까운 거리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하아”
살짝 굳어진 얼굴로 나를 보던 그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방울을 닦아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눈물을 연신 닦아주면서 한숨을 내쉰다.
“울지 마라”
빨리 지쳐. 그만 울어라. 끊임없이 달래 오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좀 더 떼를 부렸다. 그의 자상함은 언제나 나를 물렁하게 만든다. 삶에도, 죽음에도 나의 병에도 초월하려고 노력했던 나의 모든 견고한 마음을 유리상자 마냥 연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유리벽에 갇혀있었던 나의 삶과 평범에 대한 열망은 작은 균열을 일으키곤 한다. 지금처럼. 안타까움이 스며있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멈출 수 없는 눈물을 끊임없이 내보내던 나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코트 안에 감추어진 그의 뜨겁고 단단한 몸을 끌어안고 가슴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묻었다.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매만지던 그가 나의 행동에 놀랐는지 긴장으로 굳어진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를 놓지 않았다. 고집스레 그의 품에 얼마나 매달렸을까. 그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품은 단단했고 안락했으며, 나의 연약하기 짝이 없는 유리상자 대신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 같았다.
“흑… 흐윽… 으어엉…”
그 안도감에. 나는 내가 병원에 갇힌 이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어주겠다는 것처럼.
* * *
사소하면 사소할 비둘기 때문에 일어났던 사건 때문인지 그는 몇 일 후 다른 제안을 해왔다. 김교수님께 허락을 받는다면 함께 동물원에 가자는 것이었다. 내게는 눈이 번쩍 뜨일만한 일이었고 그런 제안을 하는 그에게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은 자신이 받겠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는지 그 주 주말에 외출을 해도 좋다는 김교수님의 은혜가 내려졌다.
“절대 무리라고 생각되면 내 판단 하에 데리고 나올 거다. 알겠지”
“네”
“그래…”
그가 조금의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그는 아직도 내가 비둘기 때문에 엉엉 울었던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에 대한 공포감과, 그의 품이 주는 안도감 때문이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내게 느끼는 것이 죄책감이든 동정이든 상관없었다. 난 그의 온기를 알았고 그가 필요했다. 부모님도 병원의 그 누구도 줄 수 없었던 것을, 그는 내게 줄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만 가봐야겠다. 많이 지체했군. 또 오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얼떨결에 따라 일어섰다. 그러자 나오지 말라는 듯 머리를 슬쩍 쓰다듬은 그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그의 백의가 사라진 잔영을 쫓듯 멍하니 문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감았다. 내 마음이 눈을 감은 시야처럼 검게 물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이 병원의 선생님이고, 바쁜 의사선생님이라는 것을 머리는 잘 알고 있는데 자꾸만 나에게서 그를 가져가는 것 같았다. 빼앗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못된 생각이 나를 잡아먹었다. 그런 부정한 마음을 먹는 나를- 난 부정하지 않았다. 나의 첫사랑은 내 몸과 마음이 한걸음 뒤에 절벽을 두고 있는 것처럼 절박했다. 포기하듯 내버렸던 몸뚱이를, 실수였지만 분명 죽음의 문턱에 닿았던 나를 도로 이곳에 돌려놓은 그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담아 버렸다. 그것은 그가 나를 살려냄으로 인해서 돌아온 필연적인 결과였다.
* * *
나는 차창에 비친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덧그렸다. 그에게는 마치 바깥세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마냥 보이도록 하면서 나는 내 속의 끈적한 감정을 그 몰래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 그 어디에도 나를 의식하는 느낌은 없었다. 난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함께 있는 용인에 위치한 놀이공원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기왕 가는 김에 놀이기구도 타면 좋겠다는 나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고 그것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몸에 무리가 간다는 이유 때문에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등의 사람의 긴장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못 탈 테지만 나는 회전목마만 탄다고 해도 즐거울 것 같았다.
“선생님은 놀이공원 간적 있으세요?”
“……”
나의 질문에 그가 나를 힐끔 쳐다 보았다. 하지만 곧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고,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지 침묵했다. 언제나 성실하게 대답해주던 그였기에 나는 그가 대답을 회피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챘다. 나는 나쁜 아이였다.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버린, 검은 속내를 전부 인정해버린 나였기 때문에 나는 캐물었다.
“네? 가본적 없어요?”
“…있다”
“언제요?”
“…….”
그가 망설이듯 입을 달싹였다. 그의 저런 모습도 처음이었다. 그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아주 확실한 남자였고 망설임이란 것은 없었다. 정말 곤란한 내용인 것일까. 그가 곤란한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더 보고 싶다는 가학적인 심정이 이율배반적으로 일어섰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으나 침묵했다. 결국 그가 완전한 문장을 뱉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내와 갔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뻔 한 것을 간신히 버텼다.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괜히 들었다. 아니 듣길 잘했다.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격렬하게 휘저었다. 아내. 아들. 그래, 왜 난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까. 그는 결혼했고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음을. 그의 아들은 나와 세 살밖에 차이나지 않고,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나는 학력으로 따지면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 그에겐 그들이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맞장구쳤다. 나의 필사적인 연기에 넘어갔는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내. 아내. 그의 평생을 차지한 여자. 그 여자가 갑자기 너무 부러워졌다. 난 한 번 더 차창에 비친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얼굴윤곽을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내가 여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 * *
놀이공원에 도착해 그가 자유이용권을 구매해서 내 손목에 팔찌처럼 직접 둘러주었다.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을 타고 사파리로 향했다. 좀 더 놀이기구들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가 재미가 없어보여서 포기했다. 사파리입구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잔뜩 들떠서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가 한 번 더 나의 옷깃을 여며주었다. 날씨는 전혀 포근하지 않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옷을 전부다 벗고 돌아다녀도 춥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새에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이곳에 오기 전 검색해놨던 것처럼 운전사 아저씨의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가 야생동물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추천해주는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사이 버스가 출발했다. 바글바글 사람들이 들어찬 버스가 정비된 길을 따라 지나갔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자들과 조우했지만 모두 바위에 늘어져서 생기가 없어보였다. 덕분에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렸고, 다음은 호랑이들이었는데 버스가 지나가는 길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 길로 식량을 보급하러 들어오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배가고파서 얼쩡대는 거라고 했다.
“달려들지는 않을까요?”
“최대한 야생의 환경을 제공해주려고 했겠지만 어차피 동물원이다. 동물들도 제주인은 알아보는 법이지”
버스 바로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백호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감흥 없이 대답했다. 그 이후 다른 여러 동물들을 만났고, 제일 즐거웠던 건 운전기사아저씨에게 애교를 부리며 먹을 것을 종용하던 반달곰이었다. 나보다 덩치가 네 배는 더 커보이던 놈이 답지도 않게 아양을 떠는 모습이라니. 나름 귀여워서 더 무서울 지경이었다.
“우와…”
“한번 줘볼래요?”
입을 헤 벌리고 신기하게 보고 있자 운전기사아저씨가 인자하게 웃으면서 들고 있던 것을 건네줬다. 손에 받은 것을 살펴보니 정확한건 알 수 없었지만 저 곰 녀석에게는 간식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조심스럽게 곰에게 던졌고, 시커멓고 커다란 곰은 날렵하게 그것을 입으로 받아먹었다.
“우와!!”
찹찹 대며 입맛을 다시는 녀석을 뒤로하고 아저씨는 버스를 움직였고, 나는 방금 내가 던진 먹이를 받아먹은 거대한 생물에 대한 경이로 곰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이후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그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자리에 앉혔다.
“날이 추워서 전부 들어가 있는지 생각보다 볼거리가 적었다. 다음에 날이 좋아지면 다시 오자”
그 말에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은 나를 재주부린 곰에게서 단번에 빠져나오게 했다. 그가 먼저 꺼낸 먼 훗날에 대한 약속은 내게 희망이 되어 박혔다. 그 빛은, 그때까지 내가 그를 잃지 않을 것이며, 내 가느다란 명줄조차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아주 사소한 희망이 되었다. 왠지 벅차는 마음을 그러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병실에 누운 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근래 들어 기분이 가장 좋았다. 따로 이유를 찾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 이것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음음~ 음~”
정체불명의 음정을 허밍으로 부르면서 나는 탁자위에 놓인 액자를 집어 들었다. 오늘만 몇 번을 들었다 놓았는지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액자 속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는데,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사진 안에는 두 마리의 동물인형 사이에서 나와 그가 어정쩡하게 서서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어색하게나마 웃으려고 노력했던 나는 조금 일그러졌고,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난 다시없을 보물을 대하듯 보고 또 보고 닦고 닦았다. 사진의 밑 공간에는 ‘E랜드 광장 앞에서’라는 글귀와 그 옆에 ‘첫 번째 기억’이라는 글귀가 나란히 쓰여 있었다. 앞의 것은 ‘그’의 글씨였고 뒤는 나의 것이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그를 끌고 또 끌고 설득해 겨우겨우 건진 한 장이었다. 난 수십 수백 번도 더했지만 부족할까 싶을 정도로 소중하게 닦았다. 처음 보는 그의 글씨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단정하기 그지없었고, 또 그것이 나를 즐겁게 했다.
-똑똑. 드르륵
노크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침대에 앉아있던 내가 고개를 돌리자, 부모님이 병실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선호야, 잘 있었어?”
“어제도 봤으면서 뭘”
“그래도 엄마는 매일매일 선호가 보고 싶어”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엄마가 내 곁에 다가와서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짓던 아빠도 내 발치에 와 섰다. 엄마가 침대 한 켠에 엉덩이를 걸치더니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제 외출했었다며?”
“응”
“김선생님도 어디 갔었는지 모르던데, 어디 다녀왔어?”
“놀이공원”
“놀이공원-?”
내 뺨을 연신 문질 거리던 엄마가 의외의 장소에 놀랐는지 말꼬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재차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보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최선생이 같이 다녀왔다던데”
나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물론 내가 최기문선생님과 다녀왔다는 것을 부모님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빠의 말투는 마치 ‘아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친근한 느낌은 없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지 않았달까.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최선생이면 최기문?”
“그래”
나는 이번에는 정말 놀라 엄마를 돌아봤다. 엄마랑 아빠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인건가.
“최기문선생이면 너희 아빠 대학후배야. 대학시절부터 굉장한 수재였다고 했지?”
“제법 하는 놈이었지”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의 궁금증을 풀었지만, 아빠는 그렇다 치고 엄마는 어떻게 아는 이인지 궁금했다. 그런 마음을 실어 엄마를 쳐다보자 내 몸에 좀 더 가까이 붙어 앉아 말했다.
“엄마는…”
순간 엄마의 얼굴에 어두움이 드리웠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자 엄마는 어렵게 입 꼬리를 올리면서 조금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랑 많이 친했던 친구 남편이야”
“……!!”
난 이번에야 말로 경악으로 굳어졌다. 그의 아내. 그와 평생을 법 앞에 묶인 여자. 한 번 더 법 앞에 서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여자. 잠시 잊고 있었던 불같은 뜨거움이 목을 타고 끓어올랐다.
“그래… 미연이가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내 검은 질투가 드러나기 전에 엄마가 고개를 떨구고 슬프게 말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아빠에게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빠는 마치 직접 들으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어색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에 나는 엄마가 조금 진정하길 기다리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고개 숙인 엄마의 옆얼굴을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가 발갛게 충혈 된 눈을 내게 마주쳐왔다.
“미연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였어. 최선생과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었지. 어찌나 급하게 하던지, 역시나 알고 봤더니… 아이를 가졌던 거야. 그래도 둘이서 바쁜 인턴과 레지던트과정을 밟으면서도 아이를 성심성의껏 키웠었지. 나와 네 아빠도 꽤 많이 도와줬었어.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둘이 붙여두면 꽤나 잘 놀았었단다. 아마… 너보다 서너살 아래일거야”
정확히는 세 살 차이였다.
“그랬는데… 음… 벌써 7년전인가… 미연이가 사고로…”
엄마는 또 한 번 감정이 복받쳐오는 듯 나를 끌어안았고, 그런 엄마를 아빠가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나는 그 일련의 장면들을 보면서 미동도 없이 눈만 깜빡거렸다. 사고로. 사고로?
“너무 일찍 가버렸지. 아이가 학교 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가버렸었어…”
슬픔에 잠겨,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꺼내보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엄마를 두고 나는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나쁜 마음에 손을 꾹 쥐었다. 죽었다. 나의 질투를 받던 그 여자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죽어버렸다! 그것도 7년이나 전에! 나는 기쁨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타인의 죽음에 이렇게 즐거워하는 나에게 역겨운 마음이 들었다. 기쁨과 더러움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었고, 격렬하게 뛰는 심장 때문에 호흡도 거칠어졌다.
“…? 선호야?”
불안하게 시야가 흔들렸다. 기쁘다. 무섭다. 기쁘다. 두렵다. 기쁘다. 달음박질치는 심장에 결국 무리가 왔는지 나는 극렬한 고통을 느끼면서 허리를 접었다.
“윽…!”
“선호야!!!”
얼마만의 발작일까. 단순한 고통이 아닌 그에 대한 기쁨과, 나에 대한 혐오로 인한 발작이라니 정말로 빌어먹을 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흔드는 부모님의 다급한 손길을 느끼면서 스스로 정신을 놓았다. 내 입가에는 미미한 웃음기가 걸려있을지도 몰랐다. 부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기를.
*안녕하쎄요 율입니다!!!!!!
으하하하, 너의목소리 끝내면서 시험본다고 내년까지 잠수탄다고 공언해놓고 이렇게 또 나타났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갑자기 엄청나게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것이 생각나서 손끝이 간질거려 견딜수가 없었죠.
아무튼 잠깐 아주잠시 돌아온 율입니다
*심장병은 단편입니다. 전작들에 비해서 매우 짧을 예정이고, 그래서 상중하로 나눴습니다.
지금 중편까지 썼는데 3일동안 매달린거라고 말하면 그 분량이 예상이 되시나요?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슬프게도 이번엔 1일1연재가 안될것같습니다.
띄엄띄엄 보여도 잊지말고 읽어주세요.
*연약병약수와 도둑놈공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댓글도 달아주시면 정말 기쁠거 같아요 호호호
첫댓글 허엉 너무 슬프잖아요ㅜㅜ
-안녕하세요 세스키님 오랜만입니다~ 슬...슬픈가요? 나름 덤덤하게 표현한다고 했는데 역시 시한부란 소재는 사람을 슬프게하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잉, 너무 재밌잖아요 ㅜㅜ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빨리 올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달달콩콩님. 세스키님 댓글을 따라하신건가요 ㅋㅋㅋ 재밌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쭉 재밌을 예정이니까 다음편도 꼭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율님 돌아오셨군요...
율님 덕에 여기 장르방에 또 계속 오게 생겼네요ㅋㅋ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아이쿠 연리지님 안녕하세요. 돌아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 저의 결심은 한낱 한지같은 존재였습니다 ㅋㅋ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절 알아보시는 분이 있어서 기쁘네요
읽던글 올라왔을까싶어 그냥 들어왔다가 율님이 보여서 엄청 반가웠어요.
율님과 잠수는 거리가 먼것같으니 잠수하지 마시고 간간히 들러서 이야기 보따리 하나씩 푸세요.
읽는내내 슬퍼서 눈물이 맺혔어요. 다음편 얼른 가지고 오세요.
-안녕하세요 하와이갑부님! 저도 하와이갑부님이 반갑네요. 저를 잊지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저는 잠수따위랑은 인연이 없나봐요. 두달이 가지못해서 타자를 치고있다니.......
간간히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준비되거든 지체없이 언제나 돌아오겠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해주세요!!
아아...잘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하녀기님~ 하녀기님도 오랜만입니다^^ 재밌게읽어주세요!
차라리 시한부라 더 애뜻한거 같아요..^^;; 나이차이도 꽤 나고...
율님이 다시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와서 읽었습니다..
중편도 기다립니다...^^
-안녕하세요 동글태양이님! 오랜만이에요~. 저도 처음설정할때는 별생각없었는데 막상 해놓고보니...... 나이가..
저도 동글태양이님의 댓글을 다시 보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중편 곧 올릴테니 재밌게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