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Arlie Hochschild는 감정 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내 솔직한 감정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포장해서 전달하는 것'
이 사회의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감정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사회 속에서 온갖 감정 노동을 하다 지친 나머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내 솔직한 감정의 한풀이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감정의 토로를 받아들이는 지인들 입장에서는 당사자의 한풀이를 들어주며
본인 역시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가 에너지가 빨리고 소모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감정의 전염성)
지인들끼리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일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에요.
하지만, 이 과정이 "감정쓰레기통"으로까지 변질될만큼 청자 쪽에 불편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건 감정 교류 과정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표출과 표현의 차이
"내가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을 때 어떻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심리학 계통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들어 본 질문 중 하나입니다.
그냥 지극히도 개인적인 관점을 먼저 밝히자면,
어떤 화자가 특정 청자에게 지속적으로 감정을 배설하고 있다면 크게는 두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① 자기중심적이면서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
(내 감정 해소가 우선이며,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릴 줄 모름)
② 소중한 사람끼리는 필터링 없이 다 받아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 사이에서까지 감정 노동해야 해? 난 솔직하고 싶어. 나 또한 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돼 있어)
저 같은 경우에는,
나랑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싶으면 ①번이라 보고 멀리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②번의 경우, 즉, 나랑 가까운 사람일 때는 노력이 필요하죠.
대화를 감정 조절 매뉴얼대로 이끌면서 상대방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어떻게 돕느냐?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유려하게 "표현"할 수 있게끔 돕는 겁니다.
우리가 SNS를 할 때,
감정적인 상태에서 우리의 생각을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것과
남들이 볼 것을 생각해서 최대한 내 생각을 합리적이고 유려하게 표현하는 것은 천지차이죠.
똑같습니다.
대화로 감정을 교류할 때도
듣는 사람을 고려해서 내 감정을 유려하게 표현할수록 유익한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못하고 있다면 그 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겠죠.
마치 내가 변호사나 대변인이 된 것처럼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듬고 보완해주면 되는 겁니다.
정리 : 아 그래서 이러이러이러한 상황이구나.
질문 : 그 때 네가 느낀 감정이 정확히 뭐였어?
유도 : 그 부분 나 좀 이해가 안 가는데, 다른 식으로 한 번 설명해 봐.
※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들의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유능한 심리상담사일수록 내담자의 감정 "표현"을 이끌어내는데 전문가들이죠.
사람들은 흔히 감정을 분출시키면
속이 후련해지고 홧병에 걸릴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배설 효과는 일시적일 뿐, 다른 치명적 부작용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감정의 표출에 익숙해질수록, 우리의 뇌는 편도체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편도체는 부정적 감정의 중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편도체가 활성화될수록 우리는 분노, 짜증, 불안 등에 더욱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어요.
즉, 화는 내면 낼수록 더 분노하게 된다는 겁니다. 일종의 습관이자 악순환인 셈
또한, 감정 표출의 후폭풍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죄책감이나 수치심, 자괴감 등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데,
사회적 상황에서 내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시켜 버렸다면,
그러한 내 모습에 대한 2차 감정이 뒤따라 날 괴롭히게 되요.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왜 그렇게 바보처럼 굴었을까??
이러한 감정(표출)에 대한 감정을 심리학에선 "메타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화를 내서 그 땐 시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 냈던 화에 대한 메타 감정, 즉, 죄책감, 수치심, 자괴감 등이 2차로 날 괴롭히게 되는 겁니다.
※ 특히, 부모님들께서 육아를 하면서 이러한 메타 감정으로 인해 우울감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내가 그랬다는 것에 대해 메타 감정을 느끼며 지속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이죠.
메타 감정을 더이상 느끼지 않으려면,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을 나 혼자서(일기 등) 또는 누군가에게 표현함으로써 "종결"시켜야 합니다.
가장 좋은 일은 사람들이 널리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은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죠.
물론 그때그때 감정을 억누르면서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만의 노하우가 있으면 좋은데,
저 같은 경우에는,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되더라구요.
무명자야, 네가 지금 SNS를 한다고 생각해봐. 네 감정을 배설해서 욕 먹을래?
아니면, 최대한 유려하게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을래??
화가 날 때마다 이 화를 어떻게 잘 표현해야 대중성, 작품성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을까?
하고 10초간 고민해 보세요.
그 10초의 생각과 표현이 이 세상에서 감정쓰레기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저번에 무명자님에서 글에서 봤었는데 글쓰기도 한 대안이 되지 않을지..
소설이든 에세이든 일기든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으니깐요 ㅎ
물론 비스게에 글쓰기도 좋은 대안이라고 보여집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저는 글쓰기가 감정 표현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표출이 아닌 표현이다." <- 크게 깨닫고 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