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는 그런대로 세계적 강군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고 얼마나 부러웠던 일이였던가? 이젠 정말 자랑스런 일입니다.
특히 6.25때 탱크가 한대도 없던 우리는 200대가 넘는 탱크를 몰고 내려오는 인민군들 앞에서 참혹하게 무너지며
통탄을 하였지요.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인민군은 트럭에 전봇대를 베어 삐죽나오게 하곤 위장을 하여 탱크로
보이게끔 하여 국군의 사기를 꺽으려 했는데, 실제로 이 모습만 보고도 국군은 혼비백산하며 전의를 잃었다고....
도대체 아무리 쏘아대도 끄떡 않고 다가오며 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니... 당할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해군도 미약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적과 싸울만한 전투함이 없어 당시 해군참모총장이던 손원일 제독이 전투함을 장만하려고 쥐꼬리 봉급에서
장교는10%, 하사관과 병사들은 봉급에서 5%, 해군부인회에서 바자회로... 도합 15,000달러의 돈을 모았는데...
이 돈으로는 군함을 살 돈이 턱없이 부족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45,000달러를 지원하여 합계 6만 달러를
갖고 미국을 갔지만... 이 돈으로도 군함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이때 주미 대사로 있던 장면 대사의
도움으로 겨우 연안경비로 2차대전때 쓰던 구닥다리 600톤급 함정을 한척 구해오게 되었는데....
이 배를 인수하여 이름을 '백두산함'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가 1949년 10월 17일....
이 백두산함은 6.25가 일어나던 날 밤 9시에, 대한해협에서 600여명의 육전대를 싣고 부산으로 침입하는 인민군
함정을... 그것도 백두산함보다 두배나 더 크고 무장도 잘 되어 있는 인민군 함정 ... 그래서 원거리에서의
포격전으로는 우리가 불리하자 위험을 무룹쓰고 인민군 함정에 약 400m까지 접근하여 발포함으로 적함을
격침시켰습니다. 이때 우리도 적탄에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결국 수장시킨 것입니다.
이 전투가 6.25 전투를 통털어 우리국군의 첫 전과였습니다.
육군에서 첫 전과라고 하는 음성 동락리에서 김재옥 교사의 제보로 얻은 전과는 1950년 7월 5일이였습니다.
이 전투로 얻은 효과도 지대하였지만, 백두산함이 만약 육전대 6백명을 막아내지 못해 부산에 들어왔다면...
김일성이가 호언한 그해 8월 15일 이전까지의 함락은 이루어졌고, 우리나라는 끝이 되었을 겁니다.
우선 이 6백명이 항만시설을 모두 파괴하여 유엔군의 함정과 기타 함선의 접안과 물자하역을 불가능하게 하고...
후뱡교란으로 모든 보급이 중단되며, 부산에는 후속으로 연일 인민군들이 상륙하면 우리는 앞뒤로 적을 만나
그만 두손 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해군 백두산함의 전공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은인입니다.
백두산함은 이제 오래되어 그 마스트만 지금 진해의 해군사관학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또 백두산함 장병들은 전투에 나갈 때 모두 속옷을 새것으로 갈아 입고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가 죽어도 시체는
깨끗하게 하자는 마음이였다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에 나선 우리의 선배님들... 정말 장하십니다.
첫댓글 그런가요
다행한 일입니다
정말 위태했던 일을 막아낸 자랑스런 우리의 해군 장병들입니다.
그 후예들이 연평도 해전을 거쳐 지금까지 이르고 있지요. 감사합니다.
전사에도
상세하게 나오는 승전보더군요
만약에
침투하는 북한군을 막지 못 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없습니다
불행중 다행인 전투였습니다~^^
분명히 전사에도 자세히 나오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더군요.
당시 해군들의 노력...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런 선배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전에
본 내용인데 ....그래도 아니 아니....
수만번을 다시 본다해도 가슴을 벅차게 하는 사연입니다
감사합니다
가슴벅찬 일이지요. 당시 백두산함이 그 600여명의 육전대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헌신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나라는 육.해 공으로 나라를 지켜내야하니 전쟁 무기도 많이 필요하겠어요.
백전백승으로 평안한 나라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다행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육해공 모두 많은 발전을 이뤄 세계 강군의 대열에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의 성원이겠지요. 앞으로도 변함없는 강군유지가 계속 필요합니다.
그래야 처들어 오는 나라가 없어 나라가 평안해 집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을 올리신분도 애국자고 손원일 제독,장면 박사(주위의 미국사람에게 많은 노력을했을것으로 추측) 해군부인회 이승만박사 ,,,0우리 모두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구국위인이며
특히 해군부인회의 현신적이 노력은
백두산함과 같이 영원히 배 앞에 표식물로 기록해야할것입니다,, 오늘날 대양한국의 밑바탕인 이분들을
우리는 영원히 잊어서늠 않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두산호가 진해가까이에서 승전한것으로 기억합니다
백두산함과 해군의 첫 승리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똘똘뭉쳐 자유대한을 지켜내야 합니다.
적색분자들의 불온한 선전선동을 단호히 배척하고 이 나라를 지켜나가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는 땅위에서 싸움만 있었는 줄 알았어요.
지금은 바다위에서
하늘에서의 싸움인 것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망망한 바다에서 무서운 바다에서
해군이 고생합니다.
해군들 고생이 많지요.
인천에서 근무할 때 육군과 해군이 서로 상대의 입장을 경험하고자
교체하며 근무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매서운 바닷바람에 정신이 없는데
배멀미까지... 정말 정신이없더군요. 그때 나도 해군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육, 해, 공군의 장비와 조건이 좋아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전사(戰史)도 있었군요. 1950년7월4일 우리동네(죽미령)에서 북괴군과 미군이 최초로 교전했었는데 정보가 부족하여 스미스부대가 많은타격을 받고 물러났다가 전세를 정비하여 북진했다는 할아버지 얘기를 들은적 잇습니다. 우리집에도 미군이 도망쳐와 외양간 덤불에 숨겨주고 인민군에게 멀리 도망갔다고 거짓말 햇는데 나중에 그미군이 우리집에 찾아와 후사했다고 합니다.해군전사를 잘보앗습니다. 감사 합니다
오산에서의 인민군과 미군의 첫 전투...
당시는 미군이 인민군을 너무 몰랐고, 또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피란민 속에서 섞여 내려와서는
미군의 후방에 있는 포진지부터 갑자기 들이닥쳐 공격하는 바람에 미군들이 당했지요.
피란민인줄 알았는데 적군이라... 그 후로는 미군들이 피란민을 적군으로 보기 시작하여 불미스런 일들이
많이 생겼지요. 그 와중에서도 미군을 숨겨주어 살게 하셨으니 큰일을 하신거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군인들을 오합지졸로 만들어놨으니 ^~^
저렇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으로 꽉~ 차 있어야 하는데...
적이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아 정신상태를 멍때리게 해논 세력들이 있었으니 안타깝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