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이
기도하는 마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곽승룡 신부님의 영혼 돌봄에서
'조심하고 주의하는 것'이 기도하는 마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 수도생활의 대부 성 안토니오는 악마의 공격올 경계하고 깨어 지켜보는 것을 반대합니다.(참조: 1. Hausherr, 'L'hesichasme', OCP 22(1956)273ff) 그런데 시나이의 헤시키우스에게 '충만하게 지켜봄' 곧 깨어서 관찰하는 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긴 시간 공들여 실천하기만 하면, 우리를 열정적인 생각, 열정적인 말, 악한 행동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해주는 영적인 수련방법이었습니다. (Hesychius, Century I, I.PG 93:1490D)
에바그리우스의 문장 가운데 두 개의 단어가 하나 같이 자주 인용됩니다. 이는 '주의'(조심)와 '기도'입니다. 주의는 기도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가 지속적으로 그 마음가짐과 상태를 유지하면 결국 기도하는 마음에 온전히 도달하게 되고, 주의하는 길을 찾게 됩니다. (De Oratio 149: 1. Hausherr, La Methode
d'orasion hesychaste, (Rome 1927) 134ff)
마음의 문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침입해 들어오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쫓아내는 방어 수단입니다. "네 마음의 문지기가 되라. 낯선 이가 들어오지 않도록. 그리고 말해라. 당신은 우리 편인가, 아니면 우리의 적인가?" (Evagrius, Antirrheticos, 'Pride'17. <Frankenberg 539>, Letter 11.<Frankenberg 675>) 그러므로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요한 5, 13)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흐르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조심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피앗미히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