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조에 볏짚을 넣고 황토를 치대 완성한 집. 흙집의 기본은 지키되 돋보이는 외관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이 집은 ‘봄을 부르는 파랑새’라 불린다.
오래 전부터 자연을 동경해 온 건축주 부부는 언젠가는 꼭 흙집에 살리라 마음먹었지만 그건 그저 은퇴 후의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다 갑자기 집을 짓게 된 건 아내의 건강검진 결과 때문이었다. 평생 아픈 줄 모르고 살았던 아내에게 갑상선암을 비롯한 여러 증상이 발견되어 바로 흙집을 지을 부지를 물색했다.
큰 도로가 아닌 조용한 외곽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가장 컸고, 파주에서 사업을 하는 부부가 집을 편하게 드나들며 쉴 수 있도록 회사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아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회사와 5분 거리가 채 안 되는, 풍광 좋은 땅을 찾았다. 부부는 바로 땅을 계약하고 집짓기에 나섰다.
좋은 환경, 잘 지어진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목적과 함께 디자인적 요소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흔한 스타일의 흙집은 부부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흙집 자료를 모아 원하는 시안을 들고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 이웅희 소장을 찾아갔다. 이 소장은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부부에게 동화 속 마녀의 집을 콘셉트로 디자인한 집을 내보였다. 부부의 요구사항 역시 디테일하고 평범하지 않아 시공기간이 다른 집 보다 두 배 정도 더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취향에 딱 맞아 떨어지는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흙집은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첫 흙집을 지어본 건축주 부부가 느낀 교훈이다. 물론 흙집을 짓는 데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할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하기 때문에 시공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래서 집을 짓는 내내 매일같이 현장을 찾아 이소장과 소통하며 관계를 돈독히 유지했다. 중간에 실수도 있었다. 바닥 마감재로 코르크 소재를 선택했는데, 구들을 지피고 나니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 변형이 심한 코르크가 들뜨고 말리는 일이 벌어진 것. 애써 작업한 바닥재를 죄다 걷어내고 광목천에 풀을 발라 다시 마감하기로 했다. 역시 흙집에는 광목천이 최고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건축주 부부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지붕이다. 경사도 가파르거니와 처마부분이 둥글게 말려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시공하는 사람들을 가장 어렵게 했던 작업이기도 하다. 적삼목 너와를 쌓아 마녀의 모자를 연상케 하는 모양을 완성했다.
흙집 특유의 구불구불한 선과 투박한 질감의 벽을 좋아하는 부부의 취향을 반영해, 집 전체에 자연스러운 곡선을 살렸다. 나무 기둥이나 서까래, 계단, 심지어 문까지 흐르는 듯한 곡선으로 만들었다. 또한 지하에는 탑차에 다는 냉동고를 묻어 식품저장창고를 두고, 지붕에는 뒷산과 바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도 만들어 부부만의 전용 산책로가 되었다.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집을 꾸미고 싶었던 건축주 부부는 집을 짓기 전부터 발품을 팔아 모아온 소품으로 집안 곳곳에 포인트를 주었다. 천장에 다는 조명 하나를 구하기 위해 청주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국내에서 잘 쓰지 않는 수입 빈티지 제품을 주로 구입하다 보니 욕실은 타일을 판매한 업체에게 따로 맡겨야 했고, 조명이나 스위치는 따로 부탁한 업자가 손을 놔버려 직접 달아야 했다. 그래서 소품마다 사연이 없는 게 없다.
INTERIOR
내벽마감재 : AURO(석회 라임워시) / 바닥재 : 염색 광목천
욕실 및 주방 타일 : 키엔호 / 주방 가구 : 한샘
조명 : SLAMP(거실), GLOBIAN(부엌, 계단) / 계단재 : S.P.F 집성판
현관문 : 오크 원목 현관문 / 방문 : 홍송도어
아트월 : 광목조명아트월 / 붙박이장 : 집성판재 자체제작
데크재 : 방부목
Tip 흙집을 원하는 건축주에게 전하는 세가지 조언
➊ 건축 부지는 모든 시간대에 방문해 결정하라 집을 선정할 때 집만큼 중요한 것이 땅. 가장 좋아 보이는 낮 시간대에 집을 잠깐 보고 계약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람이 바뀔 때 분진과 함께 악취가 불어오는 경우나 특정 시간대에 예상치 못한 소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이나 한밤 중, 제일 덥거나 추운 시간에도 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➋ 디자이너와의 궁합을 잘 살펴라 흙집은 짓는 사람의 개성이 많이 담기는 건축이다. 따라서 나와 잘 맞는 디자이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가 이전에 작업했던 집들을 직접 찾아가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➌ 마음을 비워라 벽면이나 마감의 질감이 거칠거나 울퉁불퉁한 벽면이 특징인 흙집은 시공과정의 대부분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만든 집처럼 반듯하지 않다. 또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집이 반드시 평평해야 한다면 흙집보다는 일반주택과 잘 맞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비울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건축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왜 진작 흙집에 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건축주 부부.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아파트 안에서의 일상은 휴식뿐이었는데, 흙집은 부부에게 자꾸만 새로운 일거리를 준다. 집이 완성되고 지금까지 편하게 쉬려던 계획은 매번 다음날로 미뤄지면서, 정원을 가꾸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덕분에 아내는 전보다 한층 건강해졌다. 텃밭에서 수확해 매일 채식 위주로 자연식을 만들어 먹게 된 것도 두 사람에게 일어난 큰 변화다. 남편은 이 집이 아내의 쾌유와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 줄 것 같은 믿음에 ‘봄을 부르는 파랑새’라 이름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