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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안 그래도 요 며칠, 누나 일로 한 껏 예민해 있는데, 오늘 기분은 완전.. 뭔가 내키지 않는다. 무언가 맘 속에서 캥기는 것이, 괜히 걸리적 거렸다.
교복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꺼내 낮에 찍은 영상을 들여다 봤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도대체 왜 내가!... 녀석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뭔지 모르게, 굉장히 외설적이었다. 나는... 비웃질 못했다. 애들 밑에 깔려 버둥거리는 녀석을 보면서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왜 맘이 불편하지.. 내가 왜!... 하아- ... 내 딴엔 괴롭힌다고 괴롭히는 중이었다. 이런!... 도리어 화가 치밀다니. 그 화가 왜 녀석이 아니라 애들, 이현욱과 김선형에게 화가 난 것인지. 이상하게.. 분명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잘못하면, 녀석이 아닌 난.. 이현욱과 김선형을 칠 뻔 했는지... 하- 이현욱이 권지용 몸을 만지고, 핥고, 그러는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리곤... 나를 끝까지 놓지 않고 올려다 보는 녀석의 시선을... 난 외면하지 못했다. 녀석은. 애가 탔었다. 녀석은 끝까지.. 내게 도와달라고 하는 눈빛이었다. ...자기 딴엔, 그게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었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겠지만... 그럼 난 뭐지. 나더러 뭐 어쩌라고!...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아, 내가 ... ...? ! 방법이 틀렸나. 삼 대 일로 괴롭히는 건.. 좀 너무 했나. 거추장스럽게 이 놈 저 놈 들먹거리면서 괴롭히는 내 방식이, 좀 같잖은가. 막상 권지용이 이제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지용이 날 보고 그냥 치를 떨듯 미친듯이 싫어하면 됬는데 그게 아니라, 속으로 날 비웃고 있을 것 같다... 존나 어이 없지만 날 같잖게, 내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날 불쌍하게 바라보는 게 아닐까. 혼자서 안 되겠다 싶은 거라고. 그래서 내가 애들까지 동원해서 자길 괴롭히는 거라구. 그렇게 또 한 차례 날 내리 깎아 생각하겠지. 왜냐구?!.. 혼자선 벅차니까. 내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거라구, 그렇게. 괜히 애들 뒤에서나 자길 보는, 그런 겁쟁이 같은 이라구. 그러면서 지금도 막 나를 비웃을까. 비웃겠지. 사실 겁쟁이는 내가 아니라 최승현 너지! 이러면서, 막 나를 비웃을 거야.
'최승현 너는 진짜 끝내준다! 그래 알아, 너 혼자 날 괴롭히기는 무리겠지. 그치!?... 너는 괜히 그래. 사실 용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어! 넌 겁쟁인 거야! 봐! 니가 한 건 없잖아! 애들은 그저 니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그래, 그래도... 니가 한 건 없어! 넌 그저, 애들 뒤에 서서 그런 날 지켜볼 뿐이잖아! 바보 같은 이라구. 겁쟁이다! 아마 니가 그 순간, 날 보면서 웃지 못한 건.. 그건... 너도 너가 겁쟁이라 걸 알기 때문이야! 그치!? 고작 나 하나 괴롭히며서 삼 대 일은 너무 하지 않아? 혼자서 괴롭히기는 자신이 없던 모양이지. 정말 같잖다. 너란 놈..'
식은 땀이 흘렀다. 내가 권지용 대변인이라도 되는 냥, 내가 내 욕을 하다니... 정신 차리자 최승현! 후아- ... 아니잖아 너~ ... 최승현 너 그런 거 아니잖아! 침착해! 흥분할 거 없잖아!.. 하-... 그냥 내가 좀.. 예민해서 그래. 그래서 정신이 어떻게 됬나봐...
...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웃기지도 않아!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너 따위 쯤은..
'겁쟁이- 겁쟁이야. 겁쟁이야 넌.'
아니야!... 아니라고.
'... 비겁한 새끼- ...'
아닌데... 나 진짜 아닌데...
'변명은 하지 마- 듣기 싫어!'
... ... .
신경이 곤두 섰다. 이마에 난 땀을, 애써 손으로 닦아냈다. 방에서 나와 맞은 편, 누나의 방을 쳐다본다. ...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아직 베일에 싸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이 내 마음 한 곳에서 막 도사리고 있었다.
짙은 갈색의 복도를 따라 누나의 방 문 쪽으로 한 발 한 발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 한 때 누나가 썼던 방. 문고리를 잡으려고 뻗었던 손이 다시 주먹을 진다. 이제는 뻗었던 팔 마저 내렸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고 다시 문고리를 바라본다. 잠시 문고리를 바라보고는, 문고리를 살짝 비틀어 밀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딛었다. 방 안을 찬찬히 살폈다.
누나가 썼던 침대.. 옷장.. 화장대.. 책상... 책상 위에 있는.. 액자 속 사진... 참 행복해 보이는 미소들... 누나와 김 선.. 누나 볼에 김 선이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 누난... 진심이었는데.. 넌 다 가식이었구나. 아니지, 그 땐... 진심이었나. 하- ...
누나는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예전에 알던 누나의 모습은 없다. 사라진지 오래다. 무슨 일이 있다. 뭐가 있다. 그게 뭐든.. 그것이 누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소중한 일일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렇기에 누나는 더더욱 얘기를 안 해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캐 물어도.. 누난 절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날.. 김 선이 권지용을 만난다는 걸 안 그 때... 누나는 김 선 오피스텔에 들어간 지 20분도 채 안되서 김 선에게 거의 끌려 나오다시피 했다. 눈도 좀 부었고, 빨겠다. 김 선하고 만난다는 정도.. 로만 알고 있었다. 아직... 부모님께 말씀 드릴 정도는 아니라며.. 약간 부끄러워 하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던 누나 생각이 났다. 김 선이 누나의 잡은 손목을 탁- 놓았다.
'우리 다 끝났잖아! 이제 진짜 이러지 마!'
'차라리! 차라리 여자가 생겼다고 해! 내가 좀 납득할 수 있게 하란 말야!'
'그게 진심이고! 사실이야! 하아- ... 나 같은 놈 잊구, 좋은 사람 만나!'
'오빠 미쳤어!? 그 새파랗게 어린 앨 데리고 지금 뭐하겠다는 거야?!'
'예린아!... 나 그 애 없으면 안 되겠어! 다 알지만, 다 아는데! ... 포기가 안 돼!'
'오빤 정말 미쳤다!.. 미친 거야!.. 세상이 그거 인정해 줄 거 같애!? 아니, 절대 못 해!'
'알아. 그만 가!'
김 선이 오피스텔 쪽으로 돌아서서 몇 발자국 옮겼다.
'나도 오빠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나도 안 된단 말야!! 나도 포기가 안 되서 죽겠어! 예전에 내가 알던, 오빠로 돌아오면 안 돼?! 우리 다시 그 때로 가자! 어!? 내가 더 잘 할게! 오빠! 제발.. 가지 마!-'
김 선은 멈춰 서 있긴 했어도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미련도, 후회도, 사랑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범벅인 채로.. 김 선의 뒷 모습만 보고 있었다.
누나가 가고.. 그제서야 오피스텔로 들어가려던 김 선.. 그 앞에.. 그 앞에..?? ! 권지용?! ... 웬 권지용?!... 머리가 부스스 한 게, 자다 나온 사람 처럼 눈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 누가 봐도 권지용이었다. .. 먹구름 색 반팔 티에 다가.. 연 회색으로 물든, 무릎 위 까지 오는 면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정말 애 티가 잘잘 흘렀다.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외모 탓인지, 고딩이 아니라 중딩처럼도 보였다. 사복 입은 모습은 잘 못 봤는데 이번에 보니.. 한 참은 어려 보였다. .. 하얀 발목 양말에, 자기 발에 맞지 않은.. 훨씬 큰, 남색 나이키 슬리퍼...
김 선은.. 연 하늘색 남방을 입고 있었다. 남방 단추를 두 어 개 쯤 풀어 헤치고는.. 상아색 면바지를 입었섰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 일어났는데 쌤이 없잖아!'
권지용이 몇 발자국 더 가까이, 김 선 쪽으로 걸어오더니... 김 선 품으로 파고 들어 안겼다. 그런 권지용을... 김 선이.. 감싸 안는다...
익숙한 듯, 너무나도 당연한 듯, 마치 그 자리가 원래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이... 김 선 품에 파고들어 안기는 녀석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우리 다 끝났잖아! 이제 진짜 이러지 마!'
'차라리! 차라리 여자가 생겼다고 해! 내가 좀 납득할 수 있게 하란 말야!'
'그게 진심이고! 사실이야! 하아- ... 나 같은 놈 잊구, 좋은 사람 만나!'
'오빠 미쳤어!? 그 새파랗게 어린 앨 데리고 지금 뭐하겠다는 거야?!'
'예린아!... 나 그 애 없으면 안 되겠어! 다 알지만, 다 아는데! ... 포기가 안 돼!'
'오빤 정말 미쳤다!.. 미친 거야!.. 세상이 그거 인정해 줄 거 같애!? 아니, 절대 못 해!'
'알아. 그만 가!'
'나도 오빠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나도 안 된단 말야!! 나도 포기가 안 되서 죽겠어! 예전에 내가 알던, 오빠로 돌아오면 안 돼?! 우리 다시 그 때로 가자! 어!? 내가 더 잘 할게! 오빠! 제발.. 가지 마!-'
이 모든 얘기가 다 권지용을 두고 하는 얘기었다. 누나와 김 선 사이에.. 권지용... 그래서 누나가 힘들어 하고 있었던 것... 김 선이 갑자기 마음이 변한 것도 다.. 권지용 때문. 차라리 여자이지 못한 점-, 그래서 더 납득이 안 가는, 납득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자기 같은 이상한 놈 잊으라는.. 좋은 사람- 그러니까 자기 같은 놈 말구.. 자기 처럼 같은 남자나 좋아라 하는. 거기에 미쳐 원래 애인도 버려대는.. 그런 미친놈 말구.. 여자 좋아하는, 아주 일반적이다 싶은, 그런 이성애자를 만나래.. 그 새파랗게 어린 애.. 그건 자기 학교 학생인.. 아직 성인도 채 되지 않은, 권지용을 말하는 거였어... 자기가 그 애 선생인 것도 까먹고.. 포기가 안 돼!?.. 하- 김 선은 문제가 정말 큰 사람이다.
누나 말대로.. 김 선은 정말 미친 걸 테지, 미친 거야.. 세상이 그거 절대 인정 못 하지- 누가 이해를 해. 동성만 해도 치를 떠는 인간들이잖아. 절대 못 해.. 그걸 다 알고 있다는 김 선, 너도 참.. 깝깝하다. 하지만 그런 김 선을 잊지 못하는 누나가 더 불쌍해.. 누나.. 김 선은 절대 예전에 누나가 알던 그 김 선이 아니야. 정신 차려. 김 선은 절대 누나가 알던 김 선으로 돌아오지 못 해. 걘 이미.. 다시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야. 돌아오지 않아. 다시 그 때는 없어.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그 때는 그 땐 거야. 누나가 더 잘할려고 애쓰지 마- 누나가 김 선 더 좋아하는 거 나도 아는데.. 그냥 가게 둬. 누나가 깨끗이 보내줘- 차이지 말고, 차버려. 누나가 차버리라고. 걘 어차피... 누나 꺼 못 돼 ... ... .
아직.. 장례도 치루지 못했다. 아무런 외상의 흔적 없이.. 누나는 그렇게 죽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부터 누나는 잠을 잘 못 잤다. 갈수록 살이 빠졌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누나는 다 죽어가고 있었다. 눈이 쾡했고, 다크써클이 눈 밑에 까지 내려 왔었다. 폐인이 따로 없었다. 숨만 쉬고 있었지 거의 죽은 사람 같았다. 갈수록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야할 누나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 자고 있었다. 누나는 계속 잠만 잤다. ... 아무리 깨워도 ...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더 자고 싶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걸.. 누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버렸다. ... 시간이 지나도... 누나는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계속 잠만 잤다. ... ... . 다시는 ... ... .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로 누나의 뜬 눈을 볼 수 없었다. 안부도 물을 수 없었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세상과 영원한 이별이었다. 세상을 놓았다. 누나는 영원한 잠을 택했다.
이건 누가봐도 누나의 자살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럴 것 같다는 것이지.. 진짜 누나가 자살을 한 건지.. 아니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는 건지.. ! ! ? ... 자살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 죽이기라도 했단 것인가 ? ! ! ... 어쨌든! ... 충분히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부모님은.. 부검을 의례하기로 결정했다. ... 만약, 자살이 아니라면 ... 누구도 예외 없이 그간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형사랑 직결이다. 곧 부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져만 간다. ...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타살 의혹이 제기 될까 두렵다. ... 예감이 별로 좋지가 않다... 날로 예민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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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안녕하세요ㅜ
잠시 친할머니 댁에 다녀와서.. 거긴 인터넷 자체가 안 되니까 그간 여기를 오고 싶어가지구.. 애가 탓네용~ㅜ
사실 항상 편수를 올려놓고는 엄청난 기대에 부풀어 들어오곤 하는데.. ^ ^ 앞으로 더 잘 해야 겠다는 생각만..ㅋㅋ
할머니 댁에 있으면서, 당연히 할머니가 연세도 있으시구 하니까
잘 못 알아 듣고, 잔소리도 많고, 옛 사고방식도 막 얘기하시구 그러시는 게 맞는데..
손녀로서 이해는 못해드릴 망정, 화만 내고 왔내용~ㅠ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좀 미안한 마음이..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4편 올리고 갑니당~ ^^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