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미 마포구 의장님 조사>
김영미 의장님, 뭐라고 말할까요? 제가 김영미 의장님 영결식장에서 이렇게 조사를 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제 평생 누구의 조사를 하는 것은 김영미 의장님이 처음입니다. 원통합니다.
저를 볼 때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의원님 오셨어요?”하면서 다정한 눈빛으로 인사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도 금방이라도 나타나 웃을 것만 같습니다. 김영미 의장님, 이게 웬일입니까.
저를 처음 만난 것이 2010년이었지요? 골프 레슨 프로라면서 첫 구의원 홍보물을 만들 때 “굿샷~ 김영미”로 하자고 제가 제안하자 너무 좋다고 손뼉치며 기뻐하던 모습, 마포구청장 직속 민원실장이 되었다며 활짝 웃던 모습, 구의회 의장이 되었을 때 매사 조심하고 책임감있게 성실히 활동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항상 건강하고 긍정의 마인드가 넘쳤던 김영미 의장님. 센스 있고 유머감각도 남달라 주변을 즐겁게 해주었던 김영미 의장님, 왜 지금은 그렇지 않고 누워만 계십니까?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한달 전 문병을 갔을 때만 해도 농담까지 하면서 얼른 일어나서 저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왜 아무런 말도 없이, 한마디 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려 합니가? 야속합니다.
김영미 의장님, 저 정청랩니다. 우리가 14년 전에 동지로 만나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영미 의장님은 참 좋은 사람이었고, 참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김영미 의장님과 지낸 14년 기간 중에서 10년 넘게 병마와 싸우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김영미 의장님을 알고 지낸 기간 중에 김영미 의장님이 굳센 의지로 버텨낸 세월이 더 길었습니다.
암이 재발되었다고 제 앞에서 펑펑 울었을 때 저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 쉬는 게 어떻냐는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일에 대한 의욕이 너무 넘쳤고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오히려 김영미 의장님을 지켜준 수호신이었습니다.
처음 원주에 있는 요양원에 갔을 때 전화를 하니 ”의원님 지금 산책중이예요. 저 아무렇지도 않고 아주 건강합니다.“라고 밝게 말했을 때 저는 오히려 그 목소리가 슬펐습니다. 제가 그 때 말했지요. 삶에 대한 굳센 의지와 긍정 에너지가 김영미 의장님을 지켜줄거라고,
오른쪽 팔이 임파선으로 부어서 악수할 때 항상 왼쪽 손을 내밀면서 쑥스럽게 저를 쳐다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었고, 김영미 의장님은 ”괜찮다고.“ 이심전심으로 대화했었지요.
지금은 볼 수 없는 김영미 의장님, 그래서 더욱 보고 싶은 김영미 의장님. 그 동안 10년이 넘게 얼마나 마음 속으로 힘드셨을까?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건강하게 왕성하게 활동하려 했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응원의 박수를 보냈던 거 김영미 의장님도 잘 알지요? 김영미 의장님이 저에게 고마워했던 것도, 제가 김영미 의장님께 고마워 했던 것도 우리는 서로 잘 압니다.
10년 넘게 고통스럽게 지고왔던 집을 이제 모두 내려 놓으세요. 힘들어도 힘든척 하지 않았고, 병원에 갈 때도 저한테만 살짝 말하고 갔던 것도, 그 부담감도 이제 모두 내려 놓으세요. 앞으로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먹고, 병도 없고 근심걱정도 없는 그 곳에서 평안하세요.
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남아있는 우리가 어떻게든 잘 해볼테니 이 곳 걱정일랑 말고 편안하게 지내세요. 눈에 밟히는 아들 딸, 손주들 재롱들 볼 때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래요.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는 김영미 의장님, 이 세상에서 겪었던 모든 일 중에서 나쁜 기억은 버리고 좋은 것만 챙겨서 잘 가요.
이제는 볼 수 없는 김영미 의장님, 안녕히가세요.
김영미 의장님, 잘 가요.
김영미 의장님, 그 곳에서 잘 살아야 돼요.
김영미 의장님, 안녕.
삼가 故 김영미 의장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