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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22:1-6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내용분해 : A. 유대 종교 지도자 들의 예수님 살해 음모(1-2절)
1. 유월절 절기가 가까워 옴(1절)
2.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수 있는 묘책을 강구함(2a절)
3. 그들이 섣불리 예수님을 잡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 다수가 예수님을 추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2b절)
B. 가룟 유다의 예수님 배반(3-6절)
1.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감(3절)
2. 유다가 대제사장과 군관들에게 예수님을 비밀리에 체포하고
또 예수님을 처형할 빌미를 제공하기로 제안함(4절)
3. 그들이 유다의 제안에 기뻐하며
예수님을 넘겨 주는 대가로 돈을 주기로 약속함 (5절)
4 . 유다가 돈에 매수되어 무리가 없을 때에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음 (6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제자에게 팔림을 당하셨고, 끝내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의 값으로 우리는 주님이 사신것과 같이 우리도 살게 되어진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 가룟 유다의 배반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조차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누가복음22:1-6절 말씀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예수 살해 음모와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22장과 23장은 19:28 에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마지막 한 주간인 성 고난주간(Holy Passion Week)을 다루는 기사의 연속 부분으로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고 죽으시는 사건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사건 (the Crucifixion) 을 보도하고 있는 22장과 23장은 본서에서 가장 긴 장(章)들로서 두 장을 합하면 무려 127절에 이르고 있는데, 이렇게 십자가 수난 부분을 길게 보도하는 것은 마태나 마가 역시 마찬가지로, 이는 십자가 사건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절정 (Climax) 에 이르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 사건 역시 십자가 수난 사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부활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은 십자가 사건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한 긴밀하게 연관된 사건이기 때문에, 복음서 기자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십자가 수난의 과정을 가장 길고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22.23장의 본문은 크게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보도하고 있는 22:39-46 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의 22:1-38의 내용과 그 이후인 22:47-23:56의 내용을 양분할 수 있습니다.
우선 22:1-38의 네 문단은 십자가 죽음을 대비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먼저 22:1-6의 첫 문단은 고난 주간의 셋째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사건으로, 예수님을 살해하고자 혈안이 된 산헤드린의 종교 지도자들이 배반자 가룟 유다와 결탁하여 은밀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음모를 꾸민 사실을 보도합니다. 이어 22:7-38의 세 문단은 고난 주간의 다섯째 날인 목요일에 있었던 사건을 보도하는데, 이 날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시며, 이를 통해 자신의 구속 사역을 예표하는 유월절 기념의 법을, 그것의 실체인 십자가 구속을 기념하는 성만찬의 법으로 새로이 바꾸어 제정하셨고, 후에 이것은 세례와 더불어 신약 시대의 2대 성례 중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만찬 석상에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시는데(7-23절), 이 부분에서 누가는 공관복음서 중 유일하게 만찬 직후에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큰가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24-30절) . 즉 누가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그 동안 수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에서 수난을 당할 것임을 예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사건이 임박한 순간에도 전혀 엉뚱한 곳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에 실망치 않으시고 베드로의 부인 사건을 예고하시고, 환난에 대한 권면을 주시는 등(31-38절),차분히 제자들을 향하여 마지막 교훈을 베푸십니다.
22:39-46은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Gethsemane) 동산에 가서 기도하신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 겟세마네 기도 사건은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서 있었는데, 여기서 누가는 천사가 나타나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힘을 더하였다는 것(43절)과, 예수님께서 땀이 마치 핏방울처럼 될 정도로 간절하고도 힘을 다하여 기도하셨다는 것(44절)을 기술함으로써,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복음서 저자들 중, 가장 인상 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모습을 인상 깊게 제시한 것은, 기도의 주제를 강조하고자 하는 누가의 신학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 22:47-23:56까지에서는 성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일종의 삽화(揮話)로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사건을 보도한 22:54-62 부분을 제외하고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시점부터 무덤에 장사 지내기까지의 연속적인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긴박감 넘치는 필치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하속들에 의해 체포되신 (22:47-53)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대제사장의 사저로 끌려가 수욕을 당하신 후, 유대 최고의 의사 결정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 (the Council of Sanhedrin)로 부터 신성 모독 죄인으로 정죄되어집니다(22:63-71). 그러나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 아래에 있었던 관계로, 산헤드린에는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곧 예수님을 사형 집행권을 가진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고소합니다.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23:1-25까지의 세 문단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심문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데, 먼저 23:1-7의 문단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1차로 심문하는 장면이 나는데, 여기서 먼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정죄했던 것과는 달리, 정치적 범죄, 곧 반란죄로 고소하게 됩니다(1.2절).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였으나 죄를 발견치 못하자 난감해 하게되고,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알고는, 마침 그 때 예루살렘에 와 었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에게로 예수님을 이송합니다. 이어 23:8-12 은 마태와 마가는 생략한 누가만의 고유한 기록으로서, 헤롯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과 빌라도에게로 재이송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어 23:13-25은 빌라도의 2차 예수님의 심문 과정을 보도하고 있는데,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광분한 무리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합니다. 23:26-56까지의 세 문단은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형 집행과 예수님의 운명 및 장사의 과정을 보도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관한 기사에서 누가만의 독특한 부분은,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으로의 이동 과정과 십자가상에서의 한편 강도의 회심을 보도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마태와 마가는 단 한 구절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으나(마 27:32 ; 막 15:21), 누가는 26-31절의 여섯 절에 걸쳐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상의 한 강도의 회개와 구원에 관하여 마태와 마가는 생략하고 있으나, 누가는 이를 빠뜨리지 않고 섬세하고도 감동적인 묘사로 보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사건의 의미와 교훈은 한두 가지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고도 방대하나, 일단 누가복음의 문맥 흐름에 따라 볼 때, 십자가 수난을 중심으로 한 본문의 기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죽음은 무죄한 자로서의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은 심문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신 것을 빌미로 그를 신성 모독죄를 범한 것으로 정죄하고 사형을 결의(22:70,71)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 종교적 차원의 문제만 가지고는 빌라도에게 사형 판결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예수님이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자칭 왕이라고 칭하였다고 함으로써 정치적 반역죄를 예수님께 덮어씌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2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로마 정부에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신 적이 없었으며, 정치적 의미에서 왕이라고 주장하신 적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죄목이 예수님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빌라도의 심문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23:14, 22)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고서도 무리들의 간악한 요구에 부응하여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저자 누가는 이렇게 예수님께 대한 고소와 심문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이 예수 자신의 죄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누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의 죄가 아닌 타인의 죄를 위한 대속(代觸)의 죽음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사 53:12).
둘째,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과의 대격돌(大激突)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의 산헤드린 공회, 갈릴리 분봉왕 헤롯, 그리고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는 각각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대변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평소 적대적 관계 혹은 갈등의 관계를 맺어 왔었으나,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데 있어서는 하나로 결탁하게 됩니다. 물론 군중 심리에 선동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쳐대는 무리들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무죄한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 모든 무리와 권세 잡은 자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을까? 누가는 이처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든 세력이 결집하는 과정을 회화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결국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세상 나라의 모든 세력, 즉 세상의 권세 잡은 사단의 세력이 총 결집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공관복음서 저자들 중 유일하게 예수님의 체포 음모 이전부터 이 사건이 사단의 역사에 의해 발생한 사건임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22:3).
사단은 총력을 기울여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죄와 죽음으로 다스려 온 자신의 나라에 침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끊임없이 확장시켜 온, 그리스도의 사역을 중지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로써 사단의 목적은 일견 성취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누가 복음의 마지막 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으로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는 이 부분의 기사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제자들 및 백성과 죄인들을 돌보시는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즉 누가는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서로 높아지기 위해 다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겸손의 교훈을 베푸신 것을 보도하고 있습니다(22:24-30). 또한 누가는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향하는 골고다 언덕길에서조차,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인하여 안타까워하시며,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향하여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권고하신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23:26-31).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병사들을 향하여 간절한 용서의 기도를 하는 모습을 제시합니다(23:34). 그리고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도, 회개하는 한 강도를 구원하신 장면 등을 보도하고 있기도 합니다(23:42-43). 이러한 것은 모두 누가만의 독특한 기사인 것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앞두고서도 다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변함없이 참으시고 권고하시는 모습, 또한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을 죽인 그 도시의 백성을 위해 안타까워하시는 모습, 자신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강포한 군사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시는 모습, 그리고 바로 직전까지 자신을 비방하다가(마 27:44 ; 막 15 :32)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강도조차도 구원하신 모습, 이것이 십자가를 앞두고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대사건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죄 많고 허물 많은 인간들을 향하여 사랑과 배려를 잃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을 묵상할 때, 우리의 가슴은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강이 됩니다. 누가가 전해 주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 곧 인류 구속 사역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가시면서도 연약한 한 사람을 향하여 배려를 잊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주님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체험하는 주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높은 자리 옆 자리에는 오류와 교만이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이미 결정을 했음을 시사해 줍니다. 즉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되, 어떻게 죽이는가 하는 방법상의 문제만을 남겨 놓고 연구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여러분,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자들이 아닙니까? 가장 먼저 예수님을 알고 메시야로 영접해야 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러한 그들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죽이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해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매우 귀중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높은 자리에는 오류와 교만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높은 자리에는 항상 오류와 교만의 위험이 똬리를 틀고 있으며, 여차 하는 순간에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하거나 유혹하는 것입니다. 실로 이 유혹과 공격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존귀와 영화를 누렸던 사울이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갔습니까(삼상 31장)? 바벨론 제국을 건설하고 중근동 일대를 호령하던 느부갓네살왕이 왜 그렇게 미쳐서 한때를 짐승과 같이 보내야 했습니까(단 4:32,33) ? 벨사살 왕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저울에 미달되어 허망하게 죽어갔습니까(단 5:30)? 헤롯 아그립바는 왜 충이 먹어 죽어가야 했습니까(행12:23)?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권좌의 옆자리에 교만과 오류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넘어지기 쉬운 어마어마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막10 :43.44 에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은 자리는 아예 성도들이 탐낼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거주할 곳은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낮음과 겸손이 성도들이 영원히 거주할 집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여우의 머리가 되기보다는 사자의 꼬리가 되는 쪽을 택하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우의 머리가 되어 온갖 범죄를 꾀하고, 또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자의 꼬리가 되어 정의의 길, 겸손의 길을 가는 것이 성도의 정도입니다. 그것이 나를 영화롭게 하고 나를 살리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는 반드시 오류와 교만도 함께 있음을 깨달아, 늘 낮은 자리에 서기를 힘쓰고 겸손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