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4:8- 9...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젠가부터 회개하면 된다고 교회에 와서 회개하면 된다고 그러니 무슨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8절에서 신앙의 미덕을 실천할 것을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실천해야 할 덕목이 8가지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이 말이 무엇입니까? 무엇에든지 라는 말은 진실하고 경건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덕목이 첫 번 째가 ‘참’이라는 말입니다. 참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이 참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 말씀에 비추어서 옳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 말씀에 근거해서 이것이 옳은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근거해서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삶을 자신의 삶과 빗대어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진리를 위해서 타협하지 않아야한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적당이란 말처럼 편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기도응답을 받는 것도 적당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적당히 대충 살지 않았습니다. 막15:39절에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그래서 백부장을 통하여 주님은 참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참된 성도라는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대학생 몇 사람이 주일날 교외로 나가 놀다가 하루를 묵고 학교에 가기 싫어 한 학생이 꾀를 냈습니다. “우리 하루 더 놀자. 그리고 완전히 결석하면 안 되니까, 이따 오후에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 들어가자 그리고 어제 놀러 갔다가 차 타이어가 펑크 나서 아침에 일찍 등교하지 못했다고 교수님께 말하자,
그리고 주일날 우리가 놀러갔었는데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났다고 하는 거야. 더욱이 타이어를 고칠 기구가 없어서 하루 종일 애쓰다가 가까스로 고쳐서 겨우 왔다고 하자.”그리고 그들은 월요일 반나절을 신나게 놀았습니다. 오후에 들어가서 입에 말을 맞춘대로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그럴수 있지 하고 네 사람을 분산시켜 앉으라고 하고 차 어느 바퀴가 펑크가 났는지를 쓰라고 종이를 주었습니다. 거짓은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신앙인은 타협하지 말고 학교로 가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말씀합니다. 시101:7절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참된 성도는 자기의 믿음을 자랑하지 않아도 인정받게 되어있고, 모든 것이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은 성도입니다.
다음으로 경건입니다. 경건은 ‘셈나’인데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 앞에서 사용할 때는 옳음으로 사용합니다. 참이나 경건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끼리의 상대성으로 비교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의롭고 공정한 것을 뜻합니다. 경건도 그래서 훈련이 필요 합니다.
다음으로 정결하며입니다. 우리는 곁에 두고는 살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쓰레기입니다. 다음이 화장실 오물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더러운 오물과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버려야 하고 씻어야 합니다. ‘정결은’ ‘하느나’의 원형 ‘하그노스’는 ‘순수한’혹시 귀저기 하기스가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진한’‘고상한’(고후11:2, 딛2:5)‘섞이지 않는’(벧전3:2) 정욕과 관계없는‘순결한’ 거짓과 간계가 없는‘흠없는’ 것으로 육신의 정욕에서의 자유함 외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에 적합한 정결을 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 전 삶에서 순수한 것, 동기도, 행위도 순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딤전5:22,약3:17, 요일3:3)
우리 앞에 유혹이 많습니다. 어제도 돌아오는 길에 저 뚝길을 걸어 왔는데 어느 젊은 여자가 전화를 하는데 들리는 소리가 그래 끊자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구요...왜 자기네 집구석에서 안하고 나와서 나팔을 부는지,.
다음으로 사랑할만하며 원어‘프로스 필레’의 원형 ‘프로스 필레스’는 ‘친한’‘우호적인’‘감사하고 있는’‘받아 들일수 있는’‘사랑을 야기 시킬수 있는’‘매력적인’등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적개심, 혹은 증오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좋아할만하고 애정이 가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또 친절하고 그러면 배려도 잘하겠지요? 이런 삶이 주님을 본받는 삶입니다. 좋은 예화가 성경에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입장에서 강도 만난 유대인을 반드시 도와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적대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갈등을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그의 삶의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시간과 물질과 자신을 헌신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사랑할만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친절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당신의 배려 덕분에 내가 살고 있습니다. 나도 이제부터 배려하고 살겠습니다.
다음으로 칭찬할만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첫 번째 좋은 소식은 뭡니까? 그 사람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소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저 사람 예수믿어 하면 다 믿어 줄만큼 그렇게 신뢰를 얻고 칭찬을 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교회 못가겠어 하면 안 되겠죠...
다음으로 무슨 덕이 있든지 덕으로 번역된 ‘아레테’는 ‘장점’‘은혜로운 행동’‘곧음’‘올바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 단어들은 복수를 사용했다면 이것은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개인 한사람이 도덕적으로 혹은 신앙적으로 탁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점도 많아야 하고 행동도 은혜가 되고 삶이나 정신이 곧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기림이 있든지 이것은 칭찬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칭찬,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받을 칭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안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라’ 는 위에 덕목들이 마음에 머물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생각’의 단어는‘로기스테’의 원형 ‘로기조마이’는 ‘계산하다’‘열거하다’‘생각하다’판단을 내리다‘’숙고하다‘입니다. 우리에게 위에 덕목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숙고하고 판단을 내려서 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힘들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바울은 (빌 4:9) 1)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고 하십니다. 받고는 무엇입니까? 직접 들었고 배웠고 본 것을 마음에 받아 들였으면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라고 성취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이것을 몸으로 순종할 때 다음으로 오는 것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를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누렸던 평강의 하나님을 우리도 누려야 합니다. 그럴려면 신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내면의 깊이 있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껍데기로 만나면 안되고 진짜로 만나시고 바울이 바라보는 면류관을 우리도 소망해야 합니다.
어느날 무디(D.L Moody)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때 무디는 말했습니다. “그럴때는 성경책을 놔두고 나가서 전도하고 지나가는 손수레라도 밀어주고 무슨 일이든 봉사를 하고 돌아와서 읽으면 깨달아 집니다” 바로 배운대로 깨달은대로 실천하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 신앙을 가진 자가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일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즉 주를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따를 때 짐이 거벼워 집니다.
그럴때 평강을 체험하고 누립니다.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바울의 권면을 오늘 받고 준행하여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아멘 하늘의 산소를 나르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