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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 우리대표팀 주전 신장은 신동찬 190cm, 박수교 184cm, 이충희 180cm, 신선우 188cm, 임정명 188cm 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확하게 분류를 하면 1 리딩가드( 신동찬) - 2 스몰포드 ( 이충희, 박수교) - 2 파위포위드 (신선우 ,임정명) 입니다.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1가드 - 4 포위드 라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드니 여농은 2가드( 전주원, 양정옥) - 2 포위드 ( 박정은 , 정선민 ) - 1 센터 (정은순) 이고 상세 분류를 하면 리딩가드(전주원 180cm) - 슈팅가드 ( 양정옥 176cm) - 스몰포위드( 박정은 180cm) - 파워포워드 (정선민 185cm) - 센터( 정은순 185cm) 라는 아주 정석적인 포지션조합인 것에 반해 82 뉴델리는 참 재미있는 포지션조합입니다.
그런데 이 조합이 중국을 꺽고 우승을 합니다. 경기를 보는 내내 참 재미있습니다. 중국의 전반 대 삽질 쇼와 당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우리에게 조금은 유리한 심판콜 등 때문에 우리의 승리를 폄하 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 내내 장신을 이기는 정석적인 룰로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200%로 해준 우리 선수들의 선전 때문에 참 재미있었습니다. 저에게 뉴델리 우승의 청부사를 물으신다면 신동찬 선수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스탯이나 눈에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 미약했지만 강팀을 상대할 때 리딩가드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선수였습니다.
일단은 먼저 아주 정석적인 포지션 조합을 보여준 시드니 여농팀과 비교를 통해 이 특이한 포지션 조합에 대한 분석을 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시드니 여자 농구 팀의 전술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던 전술에 대한 비교로 뉴델리 남자농구팀의 전술도 분석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동찬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까 합니다.
올드팬께서 우리나라는 2 가드 - 2 포워드 - 1 센터의 정석적인 포지션으로 구성 우리나라 특유의 농구로 장신군단들을 제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박신자 선생때 부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존의 키가 작은 팀이 장신의 팀을 상대하는 지공시 딜레이 전술과 속공시에는 공수 전환상황에서 빠른 템포 전술을 한국식 전략으로 정착시키는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선수가 바로 박신자 선생입니다. 장신을 상대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식을 우리에 맞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선수가 바로 박신자 선생입니다. 리바운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끊질긴 보드 장악 능력이 없는 단신 팀은 장신 팀을 이기기 힘듭니다. 여자 농구가 남자 농구와 달리 세계의 강팀을 상대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끊질기게 상대의 골밑을 공략하고 온 힘을 다해 우리 골밑을 지킨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이 바로 우리나라 최강 센터 박신자 선생입니다.
그럼 먼저 여자농구팀의 정석적인 포지션 구성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자 농구 팀은 강력한 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포지션을 구성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본 여자농구 센터들이라는 글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에는 박신자,박찬숙,성정아,조문주,정은순 이라는 강력한 센터들이 있었습니다. 이 선수들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곽에서 안정적으로 득점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득점 능력 뿐 아니라 지공,속공시에 작전 수행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였습니다. 공격적인 측면을 떠나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골밑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빠른 속공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박신자 선생 은퇴 이후 박신자 선생의 뒤를 이을 센터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런 포지션조합이 어려워집니다. 73년 부터 세계 베스트5번에 몇번이나 오른 장신가드였던 강형숙선수가 중심인 대표팀을 구성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합니다. 75년부터 박찬숙 선수가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역시 79년도 부터입니다. 인터뷰에서 스스로도 이때가 가장 몸이 좋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앞선의 영리한 가드와 내곽의 강력한 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포지션 구성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79년 ,80년 대표팀의 주장이며 국대 은퇴를 눈 앞에 둔 강형숙 선수는 전성기에 접어 들던 박찬숙 선수와 함께 세계선수권 준우승 , 아시아 대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리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박신자 선생의 시대 - 강현숙 선수의 시대 - 박찬숙 선수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우리 여자 농구는 여러차례의 시행착오로 우리나라 특유의 포지션 구성을 하게 됩니다. 아주 정석적인 포지션 구성의 틀 속에서 내외곽의 두축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 가는 형태로 포지션을 구성하게 됩니다. 여자 농구 대표팀이 이런 구성이 가능 했던 이유는 역시 박신자선생 덕분입니다. 박신자 선생을 통해 세계와 맞서게 되었고 세계의 강력한 센터들과도 맞상대할 수 있는 센터가 있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강력한 센터를 키우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찬숙 선수도 성정아 선수도 정은순 선수도 고등학교 때 부터 대표팀에 합류해 기량과 경험을 쌓아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성인이 되어서는 더욱더 강력한 모습으로 세계 강팀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잇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강력한 센터의 명맥을 유지하던 여농과는 달리 남농은 강력한 센터 자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센터들이 있었지만 세계 강팀의 센터는 커녕 중국의 센터들과의 맛대결도 힘들어 하는 수준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포지션은 바로 슈터였습니다. 근래 들어 극단적으로 중장거리 슛을 중심으로 하는 선수들을 축으로 하는 대표팀 구성이 더더욱 강해지게 된 이유도 이런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뉴델리의 포지션 구성은 4명의 돌파와 중거리 슛을 던지는 포위드와 한명의 경기 컨트롤을 하는 가드로 구성된 아주 변칙적인 구성입니다. 신동파선생 이후에 더더욱 이런 구성이 눈에 뛰게 높아졌는데 이 경기 후 그 뒤를 이어 대표팀의 중심이 되는 이충희 - 고 김현준 선수 이후에는 신장마저 낮아지면서 슈터에 대한 집착이 더 높아져 갑니다.
"여농은 남농과는 달리 골밑도 주득점 장소였다. 70~80년대 대중국전 우위도 M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박찬숙, 성정아, 조문주 등 레전드 센터들로 로우 포스트에서도 득점이 강해서 내외곽 공격 균형을 맞출 수 있어 후반전도 경기력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남농은 외곽슛과 속공 일변도인데, 속공은 F님 지적처럼 경기 중 많을 수가 없고, 결국 지공이건 얼리오펜스건 외곽슛 위주인데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에는 슛이 들어가지 않으니 점수차가 쫙 벌어져 가비지가 되거나 역전패하기 일쑤였다. 88 승리에 김유택의 적극적 페이스업 골밑 득점, 93, 94 전반전 김유택과 서장훈의 로우 포스트 어택이 경기를 대등하게 만든 건 증거로 남아있다.
84년 상하이에서 사상 최초로 애국가가 경기장에 울려펴지게 한 여농 아시아선수권 결승전 기사에는 후반 리바운드 열세로 패색이 짙은 상태에서 박찬숙과 성정아 골밑슛으로 추격한 뒤 故최애영 중거리슛으로 역전승했다고 나온다. 3점 난사질로는 장신 중국에게 경기를 뒤집기는 힘들다." - R님의 내곽득점이라는 글입니다.
이번에는 전술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전술 이야기의 핵심은 역시 딜레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딜레이는 맞는데 딜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여자농구 경기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딜레이경기를 펼치는 우리팀은 공격시간을 10초에서 8초 정도를 남겨 놓고 공격을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는 거의 공을 돌리고 많이 움직이면서 상대의 수비진형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뉴델리에서 우리팀의 지공은 조금 이상합니다. 지공이라고 말하기에는 공격타임이 빠를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상대코트로 넘어 오는 것만 늦게 하지 - 당시에는 8초룰이 없었습니다. - 상대 코트에서 공격 포메이션을 갖춘 후에는 아주 빠르게 상대의 림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공의 반 이상이 이런 모습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것을 딜레이 전술이라고 말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중국전 경기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결론을 내지는 못 했습니다. 단순하게 결론을 낸다면 역시 필살기의 유무가 아닌가 합니다. 필살기라는 것은 상대의 수비가 강할 때도 성공률이 높은 공격을 말하는데 과거 우리 여자농구강팀들과는 달리 남자 농구팀은 강력한 센터의 부재로 골밑에서 성공률이 높은 필살기가 없었다는 것 때문에 더 과감하게 공을 가진 선수가 찬스다 싶으면 시간에 관계 없이 공격을 감행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시드니 여농과 비교해 봐도 시드니 여농의 필살기는 양정옥, 전주원 선수의 면도날 컷인이였습니다. 이 필살기가 강력한 이유는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팀이 얼마나 멋진 팀인가는 보는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죠. ^^;;
러시아 전이였나요? 브라질전이였나요? 나이가 들어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네요... ㅠ.ㅠ 정은순 선수가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를 하게 만들었던.. 상대에게 비수를 꼽아 주던 양정옥선수의 바스켓카운트 컷인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멋진 필살기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시드니 여자 대표팀의 피딩은 거의 정은순 선수가 담당을 했습니다. 경기 후반이 되면 우리팀은 승리한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접전을 펼칩니다. 세계적인 강팀이 상대였던만큼 신장의 우위를 바탕으로 강력한 팀 수비를 보여주며 우리 팀을 압박하던 것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우리의 좋은 외곽 공격에 견제하기 위해 집중된 상대 수비의 헛점을 파고 들어 정은순 선수의 피딩을 받은 전주원, 양정옥선수의 면도날 컷인 - 이 표현은 H님이 한 것 같은데 , 참 마음에 드는 표현입니다. - 으로 안정적으로 득점을 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시드니 여농팀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정은순 - 전주원, 양정옥선수로만 이어졌다면 결코 필살기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앞에 말한 컷인이죠. 상대의 수비는 더더욱 견고해져 외곽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도 컷인의 시작점인 정은순선수에 대한 수비도 아주 타이트하게 합니다. 정은순 선수는 자기 수비수인 상대 센터를 미들에서 붙혀 놓고 잘 보여 주지 않던 정선민선수의 피딩, 그리고 세컨 커터 - 사실 센터 커터라고 말하기 뭐하지만 비슷한 평득을 보인 전주원 선수보다는 삼점 비중이 확실히 양정옥 선수가 높습니다. - 라고 말할 수 있는 양정옥 선수의 컷인, 당연히 상대 빅맨들의 반응은 늦을 수 밖에 없고 거리도 있으니 반칙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시드니 여농팀은 모두가 피더 , 모두가 커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박정은 선수도 컷인 시도는 거의 없었지만 중요할 때 삼점 뿐 아니라 컷을 시도해 주었고...ㅡㅡ;;
이런 여농과 달리 남농은 확실한 필살기가 없습니다. 무턱대고 시간만 소비해서는 강팀인 상대가 장신의 힘을 이용해 골밑에서 안정적으로 득점을 하면서 타이트한 수비를 펼친다면 아예 공격 시도조차 못한체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더라도 상대에게 경기를 내 주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경기에서 보여준 장면이였습니다. 99년 중국전에서도 대등한 전반과 달리 후반에 경기를 내주게 된 이유도 이런 맥락입니다. 딜레이 경기를 펼쳐 저득점 경기가 되었지만 우리는 40점대도 겨우 넘는 빈약한 공격력을 보여 주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뉴델리는 분명 딜레이 경기를 펼쳤지만 상대 림에 대한 공략을 먼저 생각하는 딜레이 경기였습니다. 언제나 찬스라면 과감하게 시간에 관계없이 공략하는 것이 바로 뉴델리 남자 대표팀이 승리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감한 공략이 가능했던 이유에는 역시 신동찬이라는 장신가드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190cm 장신 1번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좋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높이 덕후라고 해도 나름의 장신 선수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신동찬 선수는 낙제점입니다. 대표팀 최장신이지만 포스트업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없어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초반 상대의 골밑으로 치고 들어 가서 포스트업을 시도할려고 했지만 높이와 힘을 가지고 골밑에서 자신을 수비하던 선수가 전혀 밀리지 않아 드리블 펌프질을 했습니다. 이 한번으로 겁을 먹어 상대의 골밑에서 자신의 큰 신장을 이용한 포스트업이라는 장점이 단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신장대비 스피드가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팀 사정상 상대 3번이 수비를 하니 신장의 효용도 거의 없고 그래서 개인 공격은 별로였습니다. 득점은 거의 속공과 중장거리 점퍼... 이러면 딱히 필요가 없습니다. 수비 말고는 지금의 가드들과 딱히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수비에서 장신이라 거의 대부분 사용한 2-3 지역방어의 뒷선의 임정명선수 가운데 양사이드에 신선우 - 신동찬 선수 라인인데 딱히 별 차이가 없죠 . 이부분만 조금 도움이 되고 사실 별로..... 장신이니 리바운드 하는데 조금 도움되고 그런데 따지고 보면 3번으로 나오면 그 정도는 리바운드는 하죠. 그리고 가운데 임정명선수가 빠르게 외곽라인과 공조수비를 할 때 림 밑 센터부분에 들어와 센터 장악해 주고 이런 것도 3번이면 당연히 하는 부분이죠. 딱히 장신가드라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앞선이 낮으면....하지만 차이는 역시 공격입니다.
역시 경기는 많이 봐야 합니다. 이런 유형의 장신가드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참 신기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선수 하나 차이가 뉴델리 멤버였던 신선우감독이 99년 뉴델리의 재현을 꿈꾸며 결승전에서 펼친 딜레이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전술과 자신이 멤버로 뛰어던 뉴델리 대표팀의 딜레이 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전술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경기력은 정말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더 웃긴 것은 센터의 차이만 봐도 99년 대표팀이 압도적인데도 뉴델리가 더 경기력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센터의 대결에서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친 99년이 일방적으로 밀린 뉴델리보다 더 경기력이 좋지 못했습니다.
배구를 별로 좋아 하지 않고 잘 모르지만 배구에 리베로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베로를 쫓아 경기를 보면 자기편 선수가 토스를 받아 때릴 때 상대 블로커에게 블로킹을 당해 자기 코트로 다시 공이 넘어 올 경우 공을 리시브하기 위해 때리는 선수 근처에 가서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농구의 공격리바운드와 비슷한 부분인데 이런 점이 비슷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공격 리바운드 참여를 꾸준히 해주기는 했지만 리베로 만큼이나 블로킹 된 공을 리시브 하는 확률이 높지 않았습니다.. ㅡㅡ;; 리베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런 부분을 포함한 토스를 정확하게 편안게 하기 위해 안정적으로 리시브해서 세터에게 공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찬스라고 생각 될 때 공격을 감행하지만 중국의 수비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신이 즐비한 골밑을 파고 들어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트랩처럼 조금만 판단을 잘못하면 상대 수비에게 둘러 쌓이기 일쑤였고 높은 벽 같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수비수 때문에 파고 들다가도 멈추고 방황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때 마다 빠르게 나타나 공을 받아 주고 다시 공격을 할 수 있게 안정적으로 공을 돌린 선수가 바로 신동찬 선수였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플레이가 중국의 림을 돌파로 빠르게 공략할려고 했던 4명의 다른 팀원들의 공격력을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신동찬 선수의 움직임 때문에 더 완벽한 찬스에서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동찬 선수의 진가를 잘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후반입니다. 후반 2분을 넘게 남겨 놓은 상황에서 골밑에서 가장 센터 같은 모습으로 수비를 해 주던 임정명선수가 5반칙으로 벤츠로 물러나게 됩니다. 점수차도 거의 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충희 선수의 득점과 자유투 그리고 신동찬 선수의 득점으로 1점차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 대부분의 득점 장면에서 신동찬 선수의 역할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후반 들어 오면서 안정적인 골밑 득점을 하는 중국에게 대표팀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골밑 선수들의 반칙은 늘어 가고 결국 골밑 수비의 핵심인 임정명선수가 5반칙으로 없는 상황에 이르자 더더욱 중국은 안정적으로 골밑을 파고 듭니다. 우리의 점퍼에 의한 득점은 번번히 실패를 하지만 중국은 차곡차곡 골밑에서 안정적으로 득점을 하면서 경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 때 부터 신동찬 선수는 공운반하는 선수에 대해 기습적으로 압박을 해 주면서 상대의 공이 쉽게 내곽으로 들어 가지 못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압박의 기습적인 강약조절로 상대의 실책을 유도하면서 공격권을 우리에게로 가져 오게 만듭니다. 모션만으로도 상대의 허를 찌를 줄 아는 정말 훌륭한 수비였습니다. 일관된 전면 압박으로 상대에게 대처할 방법을 주기 보다 강약을 조절하면서 상대의 방심을 이용할 줄 아는 정말 훌륭한 수비였습니다. 이런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힘들게 하고 공격에서는 빠르게 공을 넘기고 미들지역으로 들어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상대 수비수들에 대한 강한 스크린으로 결국 이충희 선수의 돌파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이 경기에서 우리나라 농구 팬으로서 가장 압권인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멋진 점퍼도...마치 스탁턴의 클러치샷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필요할 때 한방 해주는 선수.... 하지만 대부분은 동료의 득점에 공헌하는 선수....참 좋은 가드였습니다.
그 외에도 컷인 득점이 전무한 팀 주제에 언제나 골밑 선수들이 공을 잡고 골밑을 공략할려고 하면 컷인 들어가 주던 모습.. 마치 상대에게 우리도 컷인 공격이 있어 하며 보여주는듯한 모습, 속공 전개하면서 공을 빠르게 넘기고 속공을 들어 가는 자기편 선수들을 받쳐주며 같이 달려 가는 모습, 빠른 파울 트러블에도 내곽의 마지막 수비수 역할을 해 주던 모습 등 정말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에서 동료들을 빛나게 해준 너무나 좋은 장신 가드였습니다.
99년도의 경기를 보면서 이상민선수나 강동희 선수에게 신선우 당시 감독은 공격적인 부분에서 이런 역할을 원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민 선수도 허재선수도 강동희 선수도 대표팀의 모든 가드들은 박수교,이충희 선수의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수비가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 상대 골밑으로 돌진하면 막히는 것이 당연한데도 돌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뒤를 받쳐 주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지독할 만큼 딜레이에 대한 신선우 감독의 집착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lj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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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애영 선수가 고인이 되었나요? 84년 LA 은메달리스트 중에 가장 곱상한 외모였는데... 아마 박양계 선수가 부상으로 나가 들어온 가드였고요. 실력은 한참 아래지만 외모가 좋아서 좋아했는데요. 아쉽네... 88올림픽때는 깃발을 들고 입장했었는데...
박수교 선수는 리딩가드로 알고 있었는데 포드라?? 혼란스럽네요. 이충희 선수가 한참 뛸 때, 실업 현대 라인업이 박수교-이원우-이충희-이문규-박종천(->김성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박수교 선수도 키가 184였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론 꽤 큰 PG네요.
박수교 선수가 포워드는 아니죠. 박 선수는 신장 185였고, 실업팀에서의 포지션은 리딩 가드 겸 슈터였습니다. 당시의 '슈터'는 슈팅 가드와 득점형 스몰 포워드를 모두 포함하는 포지션이었습니다. 박 선수가 김동광 선수와 함께 대표팀에서 뛸 때는 슈터 역할이었고, 현대에서는 리딩 가드였죠. 이원우 선수와 이충희 선수가 바로 현대의 슈터였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게 맞군요... 그나저나 국대 리딩가드의 키가 182를 넘지 못하네요. 30년 전에 190 리딩가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180이라니 답답합니다.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KBL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안타깝습니다.
용병제 폐지말고는 답이 없는 것인지....
kr님이 높이 덕후로 변신하셨군요................ 그전에는 bq덕후로 알고 있었는데.........;;;;;;;;;;;;;;;;;;;;;;;;ㅋ
전 원래부터 키크고 패스 잘하는 선수 좋아했습니다^^;;
박수교의 당시 대표팀 포지션은 정확하게 리딩가드가 맞겠지만 광의의 포워드로 분류해도 크게 무리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확실히 당시 1번은 공격능력도 요구되었고 특별히 다재다능했던 박수교는 경우에 따라 골밑 센터 비슷한 역할까지 담당하곤 했죠. 센터인 신선우나 임정명도 볼 배급이나 어시스트에 탁월한 시야를 보여준 반면 가드인 박수교도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등 당시 농구문화가 지금보단 토털 바스켓에 훨씬 근접했던 거 같다는.... 박수교와 신동찬은 연세대 시절에도 절친한 선후배 사이라 졸업후 한 팀에서 뛰기로 약속했는데 둘 사이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농구발전을 위해서라는 삼성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제가 당시의 농구가 지금보다 훨씬 선진화했던 것이라 여기는 이유입니다. 그야말로 선수전원이 패스와 공격, 리바운드에 모두 참여하는 식의 구성이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보다 국제전 성적이 훨씬 좋았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장 열세가 있는건 똑같은데 오히려 전술이나 선수기용은 후퇴했다고 봅니다.
합니다. 현대 - 삼성 라이벌전때마다 신동찬이 이충희를 전담마크했는데 아마도 삼성 벤치에선 리치가 긴 신동찬이 이충희 수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겠죠. 하지만 정작 이충희는 라이벌 삼성전은 학창시절 고연전처럼 심리적 부담이 문제였지 누가 막든 큰 차이는 없다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 가끔 박수교의 공격성향을 들어 최근의 정통 포인트 가드 계보인 강동희나 이상민보다 낮게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시 농구문화나 전술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센터(신선우, 임정명)의 시야나 피딩도 리딩을 분담할수 있을 정도로 국가대표 가드급이었으니까요. 박수교가 화려함을 지향하는 태양같았다면 신동찬은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달 같았죠. 언젠가 현대 - 삼성 라이벌전때 노마크 레이업 찬스에서 덩크 시도하다 퉁겨 나가는 바람에 실패해서 머쓱해 하던 신동찬 선수의 표정이 떠오르네요. 벤치의 김인건 감독도 어이없어 하고... 공격은 비슷한 네임밸류의 일류 선수들과 확실히 차이가 있었죠. 농구대잔치 초창기엔 이원우, 권혁장 등이 군복무 중이라 이원우가 박수교와 현대에서 함께 뛴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던거 같습니다. 농구 대잔치 원년 그리고 그 직전 실업리그 제패 당시 현대 라인업은 박수교 - 이충희 - 이문규 - 조명수 - 박종천 그리고 삼성은 신동찬 - 진효준 - 김현준 - 박인규 - 임정명(조동우)가 더 일반적이었던거같네요
알면 알수록 옛날 선수들이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농구했다는 느낌입니다.....;;;;;;;;;;;;;;;;;;;;;;
여담이지만 어렸을때 정은순선수의 팬이었는데... 이쁜 외모에 환상적인 피벗... 센터가 우아하다고 느껴진 유일한...ㅋㅋ 물론 파워도 겸비하셨던 은순누님 ㅠㅠ
제 기억으로도 신동찬 보다는 박수교가 당시 대표팀 주전 가드였다고 생각됩니다. 박수교의 특기 중 하나가 탑에서 장거리 슛이었죠. 당시는 3점 제도가 없었던 시기여서 2점이었지만 현재 3점 라인 보다도 훨씬 멀리서 자주 2점을 넣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어쨌든 80년 정도에는 가드라는 포지션이 있었지만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이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없었다 더군요. 당시 선수 생활한 선배님 이야기가 본인도 한참 나중에 농구 매니아들을 통해 그런 개념을 정확히 알게되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전주원 양정옥의 투가드는 남자농구의 투가드와 달리 신장이 되는 투가드였었죠. 전주원은 176 양정옥은 175 정도 됩니다. 정은순은 확실히 정선민 보다는 큰데 맨발 187정도 되었던 것 같고요. 정은순은 박찬숙과 가장 많이 비교되었었는데 좀 스타일이 달랐었죠. 슛에 대해서는 박찬숙이 우위라고 보고 피봇에 이은 레이업은 정은순이 더 잘했던 것 같네요. 정선민은 지금까지 여자 농구에서 그런 올라운드 스타일은 거의 유일무이한 것 같네요. 제 2의 정선민이 나오기 정말 힘든 스타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