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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농구 게시판 [퍼온글] 82년 중국전과 장신가드 신동찬
kr3456 추천 0 조회 998 09.08.06 14:08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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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06 14:40

    첫댓글 최애영 선수가 고인이 되었나요? 84년 LA 은메달리스트 중에 가장 곱상한 외모였는데... 아마 박양계 선수가 부상으로 나가 들어온 가드였고요. 실력은 한참 아래지만 외모가 좋아서 좋아했는데요. 아쉽네... 88올림픽때는 깃발을 들고 입장했었는데...

  • 09.08.06 16:11

    박수교 선수는 리딩가드로 알고 있었는데 포드라?? 혼란스럽네요. 이충희 선수가 한참 뛸 때, 실업 현대 라인업이 박수교-이원우-이충희-이문규-박종천(->김성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박수교 선수도 키가 184였다고 하니 지금 기준으론 꽤 큰 PG네요.

  • 09.08.06 16:24

    박수교 선수가 포워드는 아니죠. 박 선수는 신장 185였고, 실업팀에서의 포지션은 리딩 가드 겸 슈터였습니다. 당시의 '슈터'는 슈팅 가드와 득점형 스몰 포워드를 모두 포함하는 포지션이었습니다. 박 선수가 김동광 선수와 함께 대표팀에서 뛸 때는 슈터 역할이었고, 현대에서는 리딩 가드였죠. 이원우 선수와 이충희 선수가 바로 현대의 슈터였습니다.

  • 09.08.06 16:37

    제가 알고 있던게 맞군요... 그나저나 국대 리딩가드의 키가 182를 넘지 못하네요. 30년 전에 190 리딩가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180이라니 답답합니다.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KBL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안타깝습니다.

  • 09.08.06 16:37

    용병제 폐지말고는 답이 없는 것인지....

  • 09.08.06 17:18

    kr님이 높이 덕후로 변신하셨군요................ 그전에는 bq덕후로 알고 있었는데.........;;;;;;;;;;;;;;;;;;;;;;;;ㅋ

  • 작성자 09.08.07 10:22

    전 원래부터 키크고 패스 잘하는 선수 좋아했습니다^^;;

  • 09.08.06 18:41

    박수교의 당시 대표팀 포지션은 정확하게 리딩가드가 맞겠지만 광의의 포워드로 분류해도 크게 무리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확실히 당시 1번은 공격능력도 요구되었고 특별히 다재다능했던 박수교는 경우에 따라 골밑 센터 비슷한 역할까지 담당하곤 했죠. 센터인 신선우나 임정명도 볼 배급이나 어시스트에 탁월한 시야를 보여준 반면 가드인 박수교도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등 당시 농구문화가 지금보단 토털 바스켓에 훨씬 근접했던 거 같다는.... 박수교와 신동찬은 연세대 시절에도 절친한 선후배 사이라 졸업후 한 팀에서 뛰기로 약속했는데 둘 사이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농구발전을 위해서라는 삼성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 작성자 09.08.07 10:27

    제가 당시의 농구가 지금보다 훨씬 선진화했던 것이라 여기는 이유입니다. 그야말로 선수전원이 패스와 공격, 리바운드에 모두 참여하는 식의 구성이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보다 국제전 성적이 훨씬 좋았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장 열세가 있는건 똑같은데 오히려 전술이나 선수기용은 후퇴했다고 봅니다.

  • 09.08.06 18:35

    합니다. 현대 - 삼성 라이벌전때마다 신동찬이 이충희를 전담마크했는데 아마도 삼성 벤치에선 리치가 긴 신동찬이 이충희 수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겠죠. 하지만 정작 이충희는 라이벌 삼성전은 학창시절 고연전처럼 심리적 부담이 문제였지 누가 막든 큰 차이는 없다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 가끔 박수교의 공격성향을 들어 최근의 정통 포인트 가드 계보인 강동희나 이상민보다 낮게 평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시 농구문화나 전술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던거 같습니다. 센터(신선우, 임정명)의 시야나 피딩도 리딩을 분담할수 있을 정도로 국가대표 가드급이었으니까요. 박수교가 화려함을 지향하는 태양같았다면 신동찬은

  • 09.08.06 18:41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달 같았죠. 언젠가 현대 - 삼성 라이벌전때 노마크 레이업 찬스에서 덩크 시도하다 퉁겨 나가는 바람에 실패해서 머쓱해 하던 신동찬 선수의 표정이 떠오르네요. 벤치의 김인건 감독도 어이없어 하고... 공격은 비슷한 네임밸류의 일류 선수들과 확실히 차이가 있었죠. 농구대잔치 초창기엔 이원우, 권혁장 등이 군복무 중이라 이원우가 박수교와 현대에서 함께 뛴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던거 같습니다. 농구 대잔치 원년 그리고 그 직전 실업리그 제패 당시 현대 라인업은 박수교 - 이충희 - 이문규 - 조명수 - 박종천 그리고 삼성은 신동찬 - 진효준 - 김현준 - 박인규 - 임정명(조동우)가 더 일반적이었던거같네요

  • 09.08.06 18:59

    알면 알수록 옛날 선수들이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농구했다는 느낌입니다.....;;;;;;;;;;;;;;;;;;;;;;

  • 09.08.06 19:15

    여담이지만 어렸을때 정은순선수의 팬이었는데... 이쁜 외모에 환상적인 피벗... 센터가 우아하다고 느껴진 유일한...ㅋㅋ 물론 파워도 겸비하셨던 은순누님 ㅠㅠ

  • 09.08.07 10:18

    제 기억으로도 신동찬 보다는 박수교가 당시 대표팀 주전 가드였다고 생각됩니다. 박수교의 특기 중 하나가 탑에서 장거리 슛이었죠. 당시는 3점 제도가 없었던 시기여서 2점이었지만 현재 3점 라인 보다도 훨씬 멀리서 자주 2점을 넣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어쨌든 80년 정도에는 가드라는 포지션이 있었지만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이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없었다 더군요. 당시 선수 생활한 선배님 이야기가 본인도 한참 나중에 농구 매니아들을 통해 그런 개념을 정확히 알게되었다고 그러더군요.

  • 09.08.07 10:21

    그리고 전주원 양정옥의 투가드는 남자농구의 투가드와 달리 신장이 되는 투가드였었죠. 전주원은 176 양정옥은 175 정도 됩니다. 정은순은 확실히 정선민 보다는 큰데 맨발 187정도 되었던 것 같고요. 정은순은 박찬숙과 가장 많이 비교되었었는데 좀 스타일이 달랐었죠. 슛에 대해서는 박찬숙이 우위라고 보고 피봇에 이은 레이업은 정은순이 더 잘했던 것 같네요. 정선민은 지금까지 여자 농구에서 그런 올라운드 스타일은 거의 유일무이한 것 같네요. 제 2의 정선민이 나오기 정말 힘든 스타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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