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왜 안싸우나 했다.
“옳아. 몸소 갈등을 빚어보자.”
“바라던 바다. 덤벼, 개새야.”
송여름과 송겨울은 화창한 일요일에 또 우리집에서 붙었다. 우현이형은 왜 마트 가서는 돌아오질 않는건데……. 역시 앞집누나랑 데이트하러 간게 분명해. 이놈들 싸움을 중재할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포함해서 세 명밖에 없다만, 지금 왠지 끼어들기가 싫다. 귀찮다기 보다는 아침부터 내가 저런일에 휘말려야하나ㅡ게다가 저 싸움이 근본적으론 ‘누가 포카칩을 차지할 것이냐’라는 명제에서 비롯된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휘말리기 싫다ㅡ 하는 내 자신에 의한 동정심 때문이다.
“병신이랑 호구, 뭐하냐?”
이 목소리는? 이놈들 싸움을 세상에서 제일 빨리 말릴 수 있는 목소리잖아.
“형?”
“아가. 문은 항상 잠궈둬야지. 열어두면 어떡해?”
최도진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뭘 저렇게 잔뜩 들고왔대.
“옛다.”
최도진이 새까만 비닐봉지를 송씨네 악마들에게 던지자 이놈들은 언제 싸웠냐는듯 봉지로 달려왔다. 안에는 각종 식량이 가득 들어있다. 햄버거에 빵에 음료수에, 저놈들이 목숨걸고 사수하려던 포카칩도.
“형님, 존경합니다.”
“니네 존경은 정말 값싸구나.”
최도진이 피식 웃고는 다가와서 내 머리카락을 휘휘 뒤저었다. 머리 아직 안감았는데.
“정형사는 공원에서 미인이랑 데이트하고 있더라.”
“그쵸? 아, 그럴줄 알았어.”
“그래서 나도 미인이랑 데이트하러 왔지.”
“헛소리 작작해요, 이 인간아.”
입을 막아버리려 옆에 놓여있던 바게트빵을 최도진 입에 쑤셔넣었다. 데이트는 무슨. 이건 엄연히 따지면 무단가택침입이잖아. 나도 썰어놓은 바게트조각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냉장고를 열었다. 참담하다. 아무리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지만 먹을게 이렇게 없다니. 결국 물이나 꺼내 컵에 따르는데 최도진이 불쑥 말을 꺼냈다.
“너희 방학 언제지?”
“다음주 수요일요.”
“보충수업은 언제부터 하는데?”
“그 다음주 화요일요.”
“그렇단 말이지…….”
최도진이 손바닥으로 턱을 쓸으며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렸다. 또 무슨 황당한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럼, 병신이랑 호구야.”
“네, 형님.”
“바캉스나 갈까?”
갑자기 귓속에서 ‘일주일간 설마 바캉스를 떠나는 정신나간놈이 없길 바란다.’라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바캉스요?”
“어. 두 글자로 줄이면 여행.”
“지금 고3한테…….”
말꼬리를 흐린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나도 여행 가고싶단 말이야…….
“가자, 아가.”
“…어디로요.”
“물 있는데로 가자. 계곡 갈까? 펜션 빌려서.”
물……. 펜션……. 가고싶다…….
“저희는 가겠슴다.”
송여름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야, 너희 가게?”
“무슨 소리냐. ‘저희’에 너도 포함이야, 정도현.”
“뭐?”
“너 지금 존나 가고싶다는 표정이면서 아닌척 하지마라.”
너무 티났나.
“그럼 다 가는거다?”
여행이라……. 괜히 설레네.
이런 미친
“안돼.”
“아, 선배에.”
강윤아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귀엽거든. 방학식날 행사때문에 학생회를 소집했더니 회의 끝에도 얘가 학생회실에서 날 안내보내준다. 참 돌겠네.
“그 사람 사촌형이에요?”
“그냥 좀 아는 형이야.”
“근데 왜 소개를 못시켜준다는 거에요!”
“그 인간은 너무 또라이야.”
사실 그냥 소개시켜주기 싫을 뿐인데 왜 자꾸 꼬치꼬치 물어보니.
“괜찮아요.”
“그리고 아주 악랄한 인간이고.”
“나쁜 남자가 대세잖아요.”
“힘은 더럽게 세서 폭력을 잘써.”
“어머, 운동도 잘해요? 짱이다.”
“그리고 악성 변태야.”
“에이, 너무 순진한거 보다야 백배 낫죠.”
아니, 어떻게 말을 해야 최도진한테서 정이 떨어지냐고! 머리를 굴려라 정도현! 음……. 어……. 틀렸어. 어떻게 해도 저 강윤아를 이길 수는 없어.
“그래도 안돼.”
“왜요?”
“그냥.”
그러고 보니, 왜 싫은거지? 소개 시켜주면 오히려 귀찮지도 않고 좋을텐데. 응? 정도현아. 왜 싫은건데. 최도진이라면 단칼에 강윤아를 밀어낼 수도 있을텐데. 근데… 왜 싫지? 어?
“정도현!”
학생회실 문이 벌컥 열렸다. 송겨울이다.
“뭐야 넌. 바쁜애 잡아놓고.”
“부탁이 있어서요.”
“무슨 부탁?”
송겨울이 내 손목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송겨울 귀에 바짝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최도진 소개시켜달래…….”
“아하.”
“도움을 줘봐. 친구놈아.”
송겨울이 썩소를 짓고는 문 밖에서 상체만 빼꼼 들어와서 강윤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강윤아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송겨울을 쳐다보고있다. 화이팅 송겨울. 핵폭탄보다 무서운 병신력폭탄을 날려다오.
“야. 그 형은 포기해라.”
“네?”
“그 형, 얘랑 사귀거든.”
그 말을 끝으로 송겨울은 나를 끌어당기고 학생회실 문을 닫아버렸다. 한참을 송겨울에게 끌려오고 나서야 겨우 상황파악이 됐다. 이… 이런 미친!
“야!”
“뭐.”
“죽을래? 어디서 개… 개소리를…….”
내 목소리가 컸던 모양인지 교실에서 짐을 싸던 송여름도 밖으로 나와 나랑 송겨울을 번갈아 쳐다봤다. 다른애들은 다 간게 불행 중 다행인가.
“도와달라며.”
“미친소리 하라는 뜻은 아니었거든! 너 진짜…….”
“야, 근데.”
갑자기 송여름이 내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냐?”
* * *
“형아.”
“어?”
“밤중에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셔?”
“퇴… 퇴근했지.”
“뻥치지마. 최도진이 형 여섯시에 퇴근했다고 하던데?”
지금 시간이 벌써 11시다. 다섯 시간을 퇴근하는데 썼다고 하지는 않겠지.
“뻥칠 궁리 하지마. 애인 생겼지?”
“뭐?”
“앞집 누나말이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건 뭔가 바가지긁는 마누라 느낌이지만 일단 형을 추궁하는게 먼저니 끼고있는 팔짱을 풀지는 않았다. 형이 우물쭈물한다. 여기서 한 타만 더먹이면 끝이다.
“일요일에, 다 봤으니까 사실대로 말해.”
사실 내가 본 건 아니고, 최도진이 본거지만. 내가 봤다고 하진 않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형이 말을 안하겠다면 뭐, 앞집 가서 물어봐야지.”
“야야, 도현아.”
“그 누나 이름이 희주 누나였던가.”
“사귄다, 그래!”
형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열 아홉이 스물 일곱한테 하기엔 좀 웃긴 말이지만 진짜 너무 귀여운거 아냐? 어쩐지 형이 요새 자꾸 헤실헤실 웃고 다닌다고 했어. 지금도 웃음이 얼굴에 걸려있잖아. 나도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식 새어나왔다.
“그렇게 좋아?”
“어…….”
형이 또 실실 웃었다. 희주 누나. 다 좋은데 우리형 정신은 돌려주세요…….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 시도 때도없이 생각나고, 생각만 해도 좋고……. 같이 있으면 너무 좋고…….”
“흐음.”
“그래도 도현아. 형한테는 니가 넘버원이야.”
“됐거든요.”
형이 사실대로 말해줬으니 이젠 뭐 어떻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사실 그 누나 너무 예뻐서 조금 아깝긴 한데, 우현이형도 외모로 어디가서 밀리진 않으니까, 봐줘야지.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 액정을 한번 확인했다. 새 메세지 0건.
“…오늘은 일찍 자나.”
+)
오늘도 하루만에 왔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열다섯시간만에 왔어요.
일곱 페이지로 줄이니까 쓰는데도 한결 수월하네요. 부담도 없고!
진작에 이렇게 할걸 그랬슴다 ㅠ^ㅠ..
이러다가 장르게시판이 이런 미친으로 가득 찰것같네요..ㅋㅋ...
댓글이 큰 힘이 됩니다! 댓글 달아주신분들 모두 너무너무 감사해요!
첫댓글 빨리와주셔서감사^^ 도현이가 아직 자기맘을모르네요~ㅋㅋ 여행가는모습빨리보고싶어져요~ㅎㅎ
여행가서 러브러브모드로 ~~ ㅎㅎ 10편본지 몇시간안됬는데 11편올라오니 너무 좋네요 ^^
재밌게 잘 봤어요..^^~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재밌습니당 ^ ^ 다음 편도 기대 만땅!
ㅋㅋㅋㅋ넘 재미있어요!!!!얼른도현ㅇㅣ가 인정해야할텐뎁ㅋㄲㅋㅋㅋㅋㅋㅋㄱ
이힝힝ㅎ이 완젼 재밋어 이힝ㅎㅇ힝히 이렇게 쭉 쭉 폭풍 으로 업뎃을 해야해요!!!!이힝힝ㅎ이 더 읽고싶엌ㅋㅋㅋㅋㅋㅋㅋㅋ
흐흐....이런미친으로 도배되도 상관없어요~ 행복합니당~~ㅎㅎ 진짜 도현이도 이제 슬슬 입질이 온거죠잉?ㅋㅋㅋㅋㅋ으컁컁 흐미 허벌나게재미써여라~ 다음편도 고고싱!!ㅎㅎ
와우~~~좋습니다 좋아요...이런 미친으로 완전 도배 해 주세요.
이번편에는 병신 호구가 계속 등장이네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송송이들...
도현이 여행가서 도진이한테 확 잡아먹히는건 절대 아니겠죠...송송이들더러 잘 지키라고 해야겠다...
전혀 도움 안될 녀석들이지만...오히려 팔아먹을 녀석들이려나...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