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장; ※※※이상한 나라, 사이보그
‘아, 그렇구나. 이 애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이미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와 버린 이상 나가지도 그렇다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음파.
생각하면 할수록 잔인하게 자신을 갈라놓는 그 무언가 때문에
딱 붙어버린 입술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냥 뿌리치자, 무시하자 머리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 함께......함께.
“음파야!”
“아.”
호월이 자신의 어깨를 약간 강하다 싶을 정도로 쳤을 때쯤에야 정신을 차리고
음파는 찬찬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마치 즐겁다는 저 표정. 나도 같이 즐거울 수 있을까.
“만약 니가 우리에게 거절한다고 말해도 우린 그 거절을 받아주지 않을 생각이야.”
“뭐?”
단호하게 음파의 앞에 서서 말하는 호월 덕에 음파의 표정은 잠시 황당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거절한다는데 거절을 받아주지 않는다니.
“우린 절대 널 포기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거야, 알겠지?”
“......”
“너의 그 목소린 타고 났어.
들으면 들을수록 더 빠져드는 그 목소릴 그냥 쓸 게 아니라 노랠 부르는 거야.
마음을 울릴 노래를, 그래도 싫어?”
“......”
“싫어도 할 수 없어. 절대 우린 너 아니면 다른 보컬을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잔인하다고 해도 난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이호월. 안타깝게도 난 너희들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다.”
“이제 우리에겐 니가 없으면 안 돼, 그리고 너도 우리가 필요하잖아?”
자신의 말을 듣긴 들었을까, 한 번 더 거절한다고 말해야할까.
쓸 때 없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쯤 마지막 호월의 말에 그는 어떠한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이럴 땐 울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왜 나에게 너희들이 필요한 건데?’
차마 입 밖으로 내던지지 못한 질문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어째서 그렇게 근거 없는 말을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 할 수 있는 거지? 왜?’
“왜 너에게 우리가 필요하냐고 묻고 싶은 거지? 원래 사람의 눈을 보면 다 안다잖아.
나에겐 너희가 필요해, 딱 너의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
“정 힘들다면 이렇게 하자. 억지로 너한테 이러는 우리도 마음이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우선은 우리 사이보그에서 지내보는 거야, 그리고 그 언젠가 너의 생각을 말해줘.
음, 이렇게 하는 건 너한테 손해가 갈지도 모르니까 한 가지 더 추가할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우리 사이보그 세상에 자유롭게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주지!”
“뭐야, 그게.”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호월 덕분에 하마터면 웃음소릴 낼 뻔한 음파이다.
어차피 같이 지내게 되면 이곳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게 아닌가.
근데 어째서 이곳에 들어오는 게 추가 목록에 들어가는 건지 그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
한심하다는 듯 호월을 쳐다보고 있던 태빈이 그제야 호월을 막아서면 음파에게 말했다.
“항상 웃게 해준다는 조건 아래 들어오지 않을래?”
“......”
“항상 웃게 해준다는, 그리고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해준다는
조건 아래에서도 우리와 함께 지낼 생각이 없어?”
‘항상 웃게, 그리고 즐겁게 라고?’
이젠 더 이상 웃을 일이, 즐거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터에 태빈의 말은 그야말로 음파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만약 태빈의 말대로 모든 게 실현된다면
2년 전부터 굳게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가루처럼 흩어져버릴 테니까.
“......좋아.”
흩어지길 원했던 것들이 영영 자신의 마음속에서 사라진다는 것 또한 좋은 조건이었다.
환하게 웃는 그들처럼 아마 음파의 마음에도 희미한 빛이 비춰졌을지도.
처음으로 사이보그의 모든 것을 접한 음파의 표정은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처음으로 만져본 드럼의 감촉도 특별했고, 기타라든지 베이스 또한 음파에게 만은 특별한 감촉이었다.
이런 걸 만지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신고식은?”
어린아이 마냥 교실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 음파에게 비현의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아, 맞아요, 선배. 이제 우리 사이보그의 보컬이 되셨으니 노래 한 곡 뽑으셔야죠.”
세원이 보기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음파에게 도도도 다가왔다.
그리곤 음파를 잡아끌어 마이크 앞에다 딱 세워놓았다.
“부르고 싶은 곡 아무거나 불러봐.”
기다렸다는 듯이 태빈이 차가운 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갑작스레 노래를 부르라니.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도 못하고 있는 음파를 부추기는 건 역시나 호월이었다.
빨리, 빨리 하며 어린애 같이 보채는데 안 하겠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는 지
뻣뻣하게 굳은 손으로 겨우 마이크를 잡아 쥐는 음파이다.
“오오오-.”
일자로 쭉 앉아 환호 아닌 환호를 하는데 쑥스러운 건 다들 당해보면 그렇겠지.
처음에 마이크를 만졌을 땐 차가웠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아는 노래 없는데.”
“아무거나 괜찮아,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그런 것만 아니면.”
“멍청아, 그런 노래 생각 해내는 것도 너밖에 없을 거다.”
“아, 왜 때려!”
태빈에게 머리를 한 대 맞고 나서야 호월은 꾹 입을 다물었다.
이젠 아무도 떠들지도 않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으니 부담스러운 건지
한참 눈동잘 이리저리 굴리다 입을 떼는 음파.
꿀꺽 저 목소리에서 어떤 노래가 나올까 잔득 기대를 품고 그들은 음파를 똑바로 응시했다.
살며시 눈을 감고 시작된 음파의 노래는 아주 슬프면서 잔잔했다.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ow I wonder what you are.
Up above the world so high, Like a diamond in the sky.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ow I wonder what you are.”
마이크에서 손을 떼며 음파가 눈을 떴을 때 노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장난 끼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있던 호월마저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음파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분위기에 안 맞는 노랠 불렀나 싶어 뒷머릴 긁적이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넨 건 역시나 일지도 모르겠지만 비현이었다.
“미쳤군.”
“암, 맞아 미친 거야.”
“분명 미친 게 틀림없어.”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목소리가 나올 리 없잖아!”
즉 그들의 말을 모두 분석해보자면 한 마디로 음파는 미쳤다는 결론이 떨어졌다.
“나 저 노래 영어로 끝까지 들어본 거 처음이야.”
“눈물이 주룩주룩, 이거야 말로 눈물이 주룩주룩 이야.”
“아무래도 우리가 대단한 녀석 하나 건진 것 같은데?”
무거운 태빈의 손이 자신의 머리에 얹혔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음파는
멍하게 서서 그저 그들이 하는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친 건 자신이 아니라 이들 같다는 생각을 하며.
“노래도 노래지만, 선배 영어 발음 너무 좋던데요? 저 진짜 감동 받았어요.”
“뭐야, 뭐! 세원이 너 내가 할 말을 가로채가다니!”
“난 가로채 간 적 없어.”
“그건 내가 음파한테 할 말이었다고!”
“언제부터?”
토닥거리며 싸우는 호월과 세원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는 사실을 음파는 알고 있을까.
“아저씨, 소보로 빵 하나 주세요!!!”
언제나 학생들이 북적이는 매점에서 호월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이보그 보컬로 음파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온 전교에 퍼진 건지
안 그래도 음파를 향하던 시선이 더 많아진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 먹어.”
먹기 싫다는데도 억지로 소보로 빵 하날 결국엔 사오더니 덥석 음파의 품에 안겨주는 호월이다.
자신 한번, 소보로 빵 한번 번갈아보는 음파의 시선이 뭔가 더 필요하다는 뜻인지 알았는지
곧 매점을 벗어나려던 호월은 인심 쓴단 표정으로 ‘에라이!’를 외치며
갑자기 어딘가로 폴짝 뛰어가 버렸다.
얼떨결에 홀로 남겨진 음파는 그저 호월이 있던 자리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먹기 싫은데.”
중얼거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단 건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음파는 빵을 먹기 싫었다.
빵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으며
빵을 먹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사라진 호월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착잡한 마음에 사라진 호월이나 찾을까 싶어 발을 떼려던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음파의 볼에 와 닿았다.
놀라 그 방향으로 시선을 내던지자 손에 초코우유를 들고 있는 호월이 포착되었다.
“원래 빵 가는 데에 우유 간다잖아, 목 막힐 테니까 같이 먹어.”
“바늘 가는 데에 실 간다아닌가?”
“지금 넌 빵이 바늘로 보이고 우유가 실로 보여?”
단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호월의 찌푸려진 인상에 뭐라 대꾸도 못하고
차가워서 물기가 잔득 묻어있는 초코 우유를 받아드는 음파. 하필 초코 우유라니.
호월의 정신 상태를 조금 알만도 하다.
“안 먹고 뭐해?”
“그냥, 별로 안 먹고 싶어서.”
“내가 또 직접 빵 뜯어주고 우유 뜯어주기는 처음이네.”
중얼거리면서 뭘 또 그리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음파의 품에 안겨있던 빵과 우유를 빼앗더니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빵 봉지를 뜯고 우유를 뜯은 후 다시 음파에게로 넘기는 호월이다.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나보다 손이 많이 가네. 이제 먹어라!”
“안 먹는다니까?”
“아, 진짜! 뜯어줘도 안 먹는데!”
“처음부터 그러니까 안 먹는다고 했잖아.”
“언제, 언제! 어쨌든 이미 샀으니까 쳐 먹고 교실로 와!”
이미 종은 쳐서 지금가도 맞아 죽을 판에 쳐 먹고 들어오라니.
그는 어이없단 표정으로 저벅저벅 먼저 걸어가 버리는 호월의 뒤통수만 바라보았다.
사준 사람 뒤통수에다 대고 뭐라 윽박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론 아무래도 호월이 뭔가 사준다고 할 땐 거절할 때 귀에다 대고 말해줘야겠다 생각하는 음파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복도를 걸으며 꾸역꾸역 빵을 씹고 있는 음파.
이게 빵인지 돌덩이인지 헷갈릴 만큼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말로 호월은 가버린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가끔 지나가는 학생들의 이상하단 시선을 받자니 또 뭔가 꺼림칙하고.
몇 번이고 그냥 버릴까 하다 결국은 배 속에 다 집어넣고 나서야 음파는 조심스레 교실 뒷문을 열었다.
“우와, 빵하고 우유 먹는 데에 너처럼 오래 걸리는 녀석 처음 봤어.”
겨우 속이 울렁거리는 걸 참고 처참히 호월의 말을 무시해 준 음파는
뒤늦게야 교실에 자신과 호월밖에 없다는 걸 알아챘다.
‘뭐지, 여기가 아닌가.’
혹시나 싶어 교실을 나가 반을 확인해봤지만 분명 여긴 3학년 1반.
즉, 음파가 공부하는 교실이었다.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지금 체육 시간이걸랑.”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런 속담만 없었더라면 아마 음파는
마음껏 호월의 얼굴에다 대고 침뿐만이 아니라 주먹을 선사했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음파 너 체육복 없잖아?”
“근데 넌?”
“아, 나? 나는 종종 이렇게 체육 시간을 빼먹곤 하지!”
“......”
“그리곤 좀 있다 종이 치면 체육 선생님이 달려와 이러는 거야.
‘이호월, 이 자식 너 또 이번 시간 빠졌단 거지?! 오늘은 반성문 10장이다!’ 라고.”
‘병신이다, 정말. 처음 봤을 때도 이상한 놈이라곤 생각했지만.’
“그 쌤은 매일 반성문 10장이래, 노망 들었나봐.”
떡하니 다릴 책상 위에 얹어놓고 체육하고 있는 반 애들을 구경하는 호월.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걸 구경하며 호월의 입에선 노래가 튀어나온다.
점심시간 때 음파가 불렀던 동요가.
“이 다음엔 뭐지?”
호월의 흥얼거림에 깜빡 엎드려 잠이 들었던 음파가 뭐냐는 눈으로 호월을 쳐다봤다.
“Twinkle, twinkle, little star, How I wonder what you are 다음에 뭐지?”
“한참동안 반주만 하더니 겨우 부른 건 그 한 소절이냐?”
음파의 한심하단 눈초리에 삐죽 입을 내밀며 가르쳐달라는 호월.
가르쳐줄까, 말까 고민하다 상체를 일으켜 갑자기 커튼을 치는 음파다.
불을 안 켜고 있어서 겨우 햇빛으로 밝던 교실이 커튼을 치자 금세 어두워졌다.
“한 번만 불러 줄 테니까 듣고 잠이나 자라.”
뭐라 반박하려던 찰나 조용한 교실에 음파의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번을 들어도 지겹지 않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을 목소리가.
마치 아이 재우듯 고요하게 적막한 교실에 울려 퍼졌다.
‘하음파, 너 그 노래 부를 때 엄청 슬퍼 보인다는 거 아냐?’
뜻하지도 않게 살며시 음파의 어깨에 머릴 기댄 호월이 흐릿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첫댓글 담편!!!^^빨ㄹ~ㅣ ㅋㅋ 재밌어여~헤헤^_^
음파 ㅇㅁㅇ 반짝반짝 별을 부르다니>_< 어우>_< 생각만해도 넘 귀엽겠다>_<
재미있어요^^ 음파 왠지 멋진것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