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움(Enmity)
미움(Enmity)은 원망을 통하여 싹을 틔운단다. 미움은 상대의 모든 것들이, 즉 마음과 성향과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더 이상 그에게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함에 따라서 발생하는 것이란다. 싫어함이 미움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성서의 기록을 보자꾸나.
<창세기 27:41/37:3,4/ 출애굽기 23:5/ 레위기 19:17/ 열왕기상 22:8/ 잠언 10:12,18/13:24/15:17/ 전도서 2:17/이사 야 61:8/ 마태복음 6:24/10:22/24:10,11/ 누가복음 6:22/21:17> -KJV-
그의 아비가 축복해 준 그 축복으로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더라. 이스라엘이 요셉을 그의 모든 자녀들보다 더 사랑하였으니, 그의 형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는 말도 온순하게 하지 않았더라.
만일 네가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깔려 누워있는 것을 보거든 그를 돕는 것을 삼가지 말고 반드시 그를 도울지니라. 너는 네 마음속에 네 형제를 미워하지 말며 너는 어떻게든지 네 이웃을 책망하여 그에게 죄를 짓도록 허용하지 말라.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말하기를 “아직 한 사람이 있으니 임라의 아들 미카야(Micaiah)니이다. 그를 의지하여 우리가 주께 물을 수 있으나 내가 그를 미워하오니 이는 그가 내게 좋은 것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나쁜 것만 하기 때문이니이다.”하니 여호사밧이 말하기를 “왕께서는 그리 말씀하지 마소서,” 하더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나, 사랑은 모든 죄들을 덮어 주느니라. 미움을 숨기는 자는 거짓말하는 입술을 가졌으며, 참소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니라.
매를 들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알맞은 때에 징계 하느니라. 나물로 마련한 저녁에 사랑이 있는 것이 살진 수소가 있으나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삶을 미워하였나니, 이는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이 내게 슬픔이기 때문이라. 모든 것이 헛되고 영의 고통이라. 이는 나주가 공의를 사랑하고, 내가 번 죄를 위해 강도질 하는 것을 미워함이니 내가 진리로 그들의 일을 인도하고, 내가 그들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때에는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될 것이며, 서로 잡아서 넘겨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또 많은 거짓선지자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인자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그들의 동료들에게서 따돌리며, 욕하고, 너희의 이름을 악하다하여 너희를 버릴 때 너희는 복이 있도다.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12:25/15:18,19/디도서 3:3~6/요한일서 2:9~11/3:13~15/4:20,21/요한계시록 2:4~7>-KJV-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생에까지 보존하리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은 너희를 미워하기 이전에 나를 미워한 것임을 알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세상으로부터 선택하였느니라. 이로 인하여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도 한때는 어리석고 복종치 아니하며, 미혹당하고, 여러 가지 욕심과 쾌락에 종노릇하며, 악과 시기 속에서 살고, 가증스러우며, 서로 미워하는 자였으나, 그 후 인간을 향한 우리 구주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이 나타나서,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
그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두움 가운데 있느니라.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며 자기 안에 실족할 계기가 없으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있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되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나의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살인자요. 살인자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이 그의 안에 거하지 않음을 너희가 아느니라.
어떤 사람이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노라.” .”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라. 눈으로 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본적이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 ? 이것이 우리가 그분께 받은 계명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하느니라.
너를 책망할 것이 다소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첫사랑을 저버린 것 때문이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고 회개하며, 너는 처음 일들을 행하라. 만일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너에게 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즉 네가 니콜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라. 나 역시 그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가운데 있는 생명나무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미움(enmity)은 이렇게 사랑과 반하는 것으로 나타난단다.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관심을 받지 못함으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함으로서 ‘미움’이 들어선다는 것이란다. 특히 부모의 사랑을 다른 형제에게 빼앗겼다고 받아들이면 형제를 향한 미움이 자리하고, 부모에게는 원망이 돌아간단다. 그 미움이 증폭되어 증오(憎惡:hatred)로 전환되면 ‘살인’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고, 또 죽음을 방치하거나 교사(敎唆:abetment)하게 된단다.
요즘 너희들의 청소년들 사이에 집단 따돌림, 혹은 ‘왕따’라는 신조어가 자리를 잡은 것 또한 관심과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미움’이 자리하여 발생한 일들이란다. 현대사회는 더군다나 사랑이 점점 더 메말라가고 인정이 사라지고 있어서 무관심과 방치함이 주를 이루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주변에 자신 마음의 공허함을 폭력과 미워함의 한풀이를 하고 있음이 집단 따돌림과 집단 괴롭힘과 집단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받지 못한 사랑의 공백은 ‘미움’이 자리를 대신하게 되나, 그것이 비워진 마음을 채워 줄 수 없기 때문에 점차 공허함을 대신한 미움과 적개심만이 자리를 잡게 된단다. 미움과 적개심은 증오(憎惡)를 낳게 되니 사회적 문제로서 떠오르게 되는 것이란다.
아이들이 사랑이 없다보니, 동료들 사이에 집단 따돌림이 발생하고, 선생님에게는 적개심이 일어나 현재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며, 부모 또한 사랑대신에 공부만을 강조하다보니 공허해진 마음속은 미움과 적개심과 증오만이 넘쳐나서 부모와의 관계성도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것이란다.
이 모든 것들이 물질을 사랑하는 너희들의 마음 때문이니, 너희들의 마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대신에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홀연히 사라져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음이란다. 물질과 하느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란다. 세상은 물질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어서 너희들 사이의 모든 사랑이 돈과 물질이라는 조건이 따라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단다. 사랑의 척도도 물질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음이니, 사랑도 돈과 물질에 팔려 다니는 것이라는 것이구나.
부모의 사랑도, 형제간의 사랑도, 사제 간의 사랑도, 모든 인간관계도 물질이 없다면 성사될 수 없을 정도로 돈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그러니 물질이 없음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사랑은 물질을 담보로 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미움이 따라올 수밖에 없음이며, 미움이 너희들의 작은 사랑을 집어 삼켜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도록 한단다. 미움은 너희들의 마음을 차지하여 인류들 사이를 분리시키고 화합할 수 없도록 하게 한단다.
하지만 물질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물질을 섬기지 아니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구하는 이들은 물질이 주는 잠깐의 기쁨보다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란다. 하느님의 사랑은 너희들을 미움의 수렁에서 나오게 하여 영원한 생명수가 흐르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란다.
물질을 선택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한 이들을 물질을 선택한 이들이 미워함이니, 자신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란다. 물질의 사랑은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함을 저들도 알고 있음이란다.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주어진 기간 동안 사랑으로 역할을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 소멸하면 사랑 대신에 공허함과 짜증이 밀려 오며, 모든 일상이 덧없음이라는 상태로 변화함이니, 그 곳에서 어떤 기쁨과 만족감이 있겠느냐? 세상은 단편적인 사랑만을 제공함이니 그것이 물질의 속성이자, 물질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이라는 것이란다.
미움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사라지지 않는 것이란다. 미움을 통하여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고, 물질에서 추구하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며, 너희들을 영원히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과 채워질 듯한 그 마음의 공허함은 영원히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이란다.
세상의 사랑은 너희들에게 ‘미움(enmity)’을 양산하나, 하느님의 사랑은 너희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단다. ‘미움’은 부족한 사랑 때문에 발생함이니, 영원한 사랑인 하느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기를 바란단다. ‘미움(enmity)’은 너희들을 죄를 짓게 하는 원인으로 나타남이란다. 결국 부족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사랑하여 빚어진 것이구나. 부모와 인간들을 통하여 얻으려던 사랑도 이기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랑이어서 너희들이 받기를 원한다면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옴이니 그것이 너희들의 마음에서 ‘미움’이라는 싹으로 자라나는 것이란다.
하느님의 사랑은 주어도 끊임없음이고, 큰 기쁨과 행복을 불러오며 아무리 주어도 마르지 않고 오히려 더 넘쳐난다는 사실이란다. 그러니 너희들의 마음에서 ‘미움’은 사라지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란다. 진리를 사랑하는 이들은 물질을 사랑하지 않음이니, 물질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미움을 받을 것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음이니, 사라져 버릴 물질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음이란다.
‘미움’을 마칠까 한단다.
첫댓글 어려서 부터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서 성장하면 진실한 사랑을 배우건만,그것이 안되다 보니 증오속에 미움이 싹이 트네요~ 삐뚤어진 마음 따뜻한 사랑으로 녹여 보아요~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