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령 너머로
더위가 절정인 팔월 초순 목요일이다. 그제는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고 어제는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서 교육단지를 거처 올림픽공원에서 창원수목원 일대를 둘러 와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다. 손수 국수를 끓여 점심을 때우고 에어컨을 켜 책을 펼쳐 보다 낮잠도 자는 호사를 누렸다. 그런 한편 근교 산행을 나서 숲길을 걷고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싶은 유혹은 떨치지 못했다.
장마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반나절 산행을 나서 활엽수가 우거진 숲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나는 창원 인근 산자락 식생은 꿰뚫고 있어 어디로 가면 어떤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는지 훤하다. 영지버섯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면서 돌너덜 지대가 아닌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가 덮여 어느 정도 수분을 함유한 산기슭에 자랐다. 폭염경보이긴 해도 영지버섯을 찾아 길을 나서고 싶었다.
이른 아침 집 근처에서 삼정자동으로 가는 214번 시내버스를 탔다. 프리빌리지 아파트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삼정자동 마애불상 곁을 오르니 꽃밭에는 여러 꽃이 피어 화사했다. 난 얼굴을 뵌 적 없지만 불심이 깊은 한 할머니가 정성 들여 가꾸는 꽃밭이라고 들었다. 할머니의 열성에 감동한 이웃이 함께 일손을 도와 아침마다 청소를 깨끗이 해두어 웬만한 공원보다 더 깔끔했다.
불모산이 안민고개를 거쳐 장복산으로 이어진 산등선은 안개나 구름이 끼질 않아 맑은 하늘과 푸른 숲이 뚜렷이 구분되었다. 상점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으니 무더위 영향으로 산행을 나선 이들이 드물어 호젓했다. 농바위를 지나니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불모산 정상부 방송국 중계소가 아스라이 보였다. 이제 불모산 정도 고도 산자락도 정상 등정은 하질 못하고 쳐다만 본다.
대암산에 건너온 숲속 길이 합류한 계곡에는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흘러내렸다. 계곡에는 아침 일찍 산행을 나섰을 아낙 셋이 발을 담그고 더위를 잊은 채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용제봉과 나뉘는 이정표에서 상점령으로 갔다. 몇 해 전 사방공사를 마친 계곡에는 계단식으로 댐이 축조되어 물이 가두어져 있었다. 나중 낮이 되면 발을 담글 사람이 찾지 싶었다.
상점령으로 오르는 비탈은 차량 통행도 가능한 임도여도 주변에 숲이 우거져 그늘이었다. 고갯마루에서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포장도로였다. 불모산이 동쪽으로 뻗친 화산에는 공군 부대가 있기도 해 굽이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정상부까지 자동차가 오를 수 있다. 나는 그쪽과는 맞은편 방향인 용제봉 가는 등산로로 들어 한동안 걷다가 산허리 길로 향했다.
산허리 숲길을 계속 나아가면 장유사에 이르는데 중간에서 등산로를 벗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했다.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이 나오긴 해도 돌너덜 지대라 영지버섯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었다. 영지버섯은 부엽토가 깔려 수분을 어느 정도 함유한 숲 바닥이라야 자랐다. 아니나 다를까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영지버섯이 자라 나오다가 성장을 멈춰 말라붙어 숟가락 만해 보였다.
참나무가 우거진 돌너덜 지대를 지나다 개옻나무 가지가 얼굴에 스쳐 신경이 쓰였다. 나는 숲에서 멧돼지나 뱀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대상이 옻나무다. 피부가 옻 알레르기에 민감해 올여름 두 차례 옻을 타 가려움을 느껴 상비약으로 준비해둔 연고를 발라 가라앉혔다. 옻나무에 살갗이 닿으면 며칠 뒤 발갛게 붓고 가려워졌다. 이번에도 증세가 나타나면 연고를 발라야 할 듯하다.
영지버섯을 만난 수확은 적어도 더위를 식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마주했다. 대청계곡 발원지에 해당하는 상점령 산자락 골짜기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너럭바위에 배낭을 벗어두고 순차적으로 맨살을 드러내 웅덩이로 들었다. 물이 차가워 잠시만 몸을 담가도 턱이 떨려와 밖으로 나와 물을 말렸다. 배낭에 넣어간 도시락까지 비워가면서 선계에 머물다 나왔다. 2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