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어놓은 페이지
안 희 연
목동은 양의 목을 내려친다 양들이 휘청거리다 쓰러진다 너는 새하얀 것을 믿니 여기 새하얀 것들이 쌓여 있어 목동은 양의 발목을 잡아끈다 돌을 쌓듯 양을 쌓아 새빨간 성벽을 만든다 밤 그리고 밤 목동은 미동도 않고 서 있다 그 고요가 숲의 온 나무를 흔들 때 여름의 마지막 책장은 넘어가고 다시 밤은 부리가 긴 새들을 키운다 두 눈을 찌르러 올 것이다 얼마나 멀리 온 발일까 벽에 걸린 그림자를 떼어내도 벽에는 그림자가 걸려 있고 얼마나 오래 버려진 책일까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모래 알갱이가 되어 바스러지는 목동은 구름처럼 양들이 평화롭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가볍고 포근한 심장을 찌르러 오는 빛 목동은 부신 눈을 비비며 서 있다 언덕 너머에 진짜 언덕이 있다고 믿는다
- 시집〈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예스24
우린 오늘도 하루치의 슬픔으로 반짝인다실패 앞에서도 기꺼이 노래할 수 있다는 빛나는 믿음2012년 “실패를 무릅쓰고 부단히 다채로운 시공간을 창조”해내면서 “감각적인 언어를 수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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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창비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