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한 때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황태자이자
이젠 러시아의 국민영웅
그가 러시아로 귀화했을 때
선택한 이름
'빅토르 안'
그리고 그 '빅토르'를 이름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고려인 출신 로커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빅토르 최
때문이었다.
빅토르 최는 1962년
현재의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고려인 2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본명은 최동열.
할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이었지만,
스탈린의 무자비한 강제 이주 정책으로
머나먼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진 조선 사람이었다.
이후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빅토르 최는
빅토르 최는 17세부터 기타로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련이 통제했던
서구의 록 음악에 푹 빠졌고,
다니던 대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여러 밴드를 전전했다.
그리고 1981년
그의 재능을 알아본 보리스 그레벤시코프가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마련해준다.
명성을 얻은 빅토르는
이윽고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이름을 '키노'라고 지었다.
이듬해인 1982년 데뷔 앨범인 <45>를 발표.
자세히 들어보면 그의 음악 성향이 엿보인다.
난 아침부터 진료를 받으러 갔어야만 했는데,
근데 전기열차는 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어.
Электричка
- 일렉트로치카
난 웃음이 나지, 항상 웃긴 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리고 몹시 화도 나지. 누군가 내게,
지금 내 방식대로 살면 안된다고 할 때면.
대체 왜? 어쨌든 난 살아 있잖아.
그런 말에 난 누구에게도 답하지 않지.
Мои друзья
- 내 친구
사회주의 천국이라는 허울 아래
전체주의 독재체제,
전국민을 감시하는 감옥을 만들어냈던,
그리고 억압된 인민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지기 직전이었던
80년대 소련의 현실.
그는 은근히 전체주의가 가져다주던
허울과 폐해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소련 당국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서구의 퇴폐적인 산물'이라며
이들의 라이브를 금지한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퍼져나가는 엄청난 인기
키노는 계속해서 새로운 음반을 냈고,
나오는 노래마다 더 노골적인
반전, 반핵 메세지를 전달했다.
나는 선언한다, 나의 집을
비핵화 지대로
- Я объявляю свой дом
나는 선언한다, 나의 집을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다섯번째 정규 음반이었던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은 인민들의 허황된 마음을 달래주며
반전의 메세지를 담은 곡 '혈액형'
소매위에는 혈액형
소매위에는 나의 군번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이 들판에 남게되지 않기를
전투로 향하는 내게 행운을 빌어주게...
Группа Крови
- 혈액형
게임을 좋아하는 도탁서 분들은
GTA 4를 한번쯤은 플레이 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데,
채널을 돌리다보면 러시아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채널이 있다.
채널 이름은 Vladivostok FM인데,
(23분부터 나오는 노래가 '혈액형')
그 중에 나오는 노래이며
가장 유저들의 반응이 좋은 노래가
이 곡, 혈액형이다.
아무튼, 이 노래는 초대박을 치며
소련의 국민가요가 된다.
이미 이 즈음 키노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6만 명의 관객을 모을 정도로
거대한 밴드가 되어있었다.
키노의 성공 비결은
당시 서구에서 유행하던 뉴 웨이브 풍의 록을 흡수했고,
러시아 문학 특유의 운율에 적합하는
가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시대정신
전체주의를 거부하려는 소련 인민들의 저항
그것이 키노를 만들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련의 대중음악에 엄청난 발전과 영향을 끼친
'동구권의 비틀즈', 키노
그러나 비틀즈의 레논의 운명이 그러했듯이,
빅토르 최의 운명도 비극적이었다.
1990년 8월 15일 광복절
새로운 음반의 녹음을 마치고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
갑작스럽게 당한 비극적인 교통사고.
맞은 편에서 다가온 버스와 정면 충돌,
빅토르 최는 그대로 사망했다.
소련 당국은 버스 기사의 졸음 운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사건 실마리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버스기사의 존재가
그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마땅치 않게 여겼었던
KGB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짙은 의심을 남겼지만
여전히 소련 시절의 입장은
러시아로 변한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의 할아버지의 조국,
한국 땅에서의 첫 해외공연을
한 달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에서
자살시도 횟수가 무려 30%나 늘었다고 한다.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묘지에 안장되었고,
그 곳은 성지가 되어
지금도 많은 팬들과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묘지 주변은 그와 관련된 그래피티들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사후 27년이 된 아직도 그를 기억하며
빅토르 최가 누워있는 그 곳을 자유의 상징으로 여긴다.
심지어 묘지기를 자청하는 이들도 여전히 수두룩하다.
영원히 28살의 나이로
길게 기른 장발과 담배 한 개비로 표현되는
고려인 빅토르 최의 모습
소련 공산당의 탄압 아래에서
이보다 더 강력하게 민중들의 메세지를 전한 뮤지션은
빅토르 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노래는
러시아인들에게 여전히 불리워지고,
윤도현을 비롯한 우리나라 가수들 역시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바 있다.
(러시아 갓 탤런트에서어린 아이가 '혈액형'을 부르는 동영상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이들이 부르며 따라할 정도의 국민가요이다.)
(윤도현의 '혈액형' 리메이크.
링크를 들어가보면 전부 러시아인들의 댓글 뿐이다.)
그의 사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러시아인들에게 여전한 메세지를 주고 있으며
러시아의 대중음악사에서
엄청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B%B9%85%ED%86%A0%EB%A5%B4%20%EC%B5%9C
http://egloos.zum.com/oblomov/v/7857201
http://blog.naver.com/dbwogy/220618073574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Fj2N&articleno=6576744&categoryId=242117®dt=20090217102126
https://ru.wikipedia.org/wiki/%D0%93%D1%80%D1%83%D0%BF%D0%BF%D0%B0_%D0%BA%D1%80%D0%BE%D0%B2%D0%B8_(%D0%B0%D0%BB%D1%8C%D0%B1%D0%BE%D0%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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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레토였나 영화 ㅠㅠ 진짜 좋았음
혈액형 좋다. 외모나 목소리나 굉장히 매력적이야.
와우 이 글 보자마자 혈액형 궁금해서 틀었는데 비트랑 멜로디가 진짜 세련됐다! 글쪄줘서 고마워 여샤!
오 멋있다
이렁 사람이 있었다니 와 80년대....한국 공연 한달 전에 돌아가신 거 너무 가혹하다 곡 분위기랑 목소리랑 찰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