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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CARLOS TEVEZ (Corinthians to Westham United, 2006)
회계 담당 수사관과 주브라시안만이 이 선수의 잉글랜드 이적의 숨겨진 면모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건 웨스트햄에서 보여준 그의 존재감은 결국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OT로 옮겨가기 전까지 06-07시즌 말미의 10경기에서 7골을 기록,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냈다.
23 TONY CASCARINO (Crokenhill to Gillingham, 이적료 : 트레이닝 장비, 1982)
이 전 아일랜드 포워드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이적에 들어간 돈은 “몇 벌의 트랙수트와 같은 트레이닝 장비 조금”이 전부였다. 5년 뒤 그는 25만 파운드에 밀월로 갔다.
22 DIMITAR BERBATOV (Leverkusen to Tottenham, 1090만 파운드, 2006)
토트넘으로 갈 당시에 오간 이적료는 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첫 시즌에 그가 보여준 활약을 보면 바겐세일 수준이다. 지금 이적료는 2500만 파운드까지 치솟고 있고, 첼시와 유나이티드의 관심을 받고 있다.
21 MARC OVERMARS (Ajax to Arsenal, 700만 파운드, 1997)
또다른 아르센 웽거의 이적작품. 700만에 사들여서, 3년 뒤 바르셀로나에 2500만을 받고 팔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골을 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스페인에선 쓸모가 없었다.
20 DARREN BENT (Ipswich Town to Charlton Athletic, 250만 파운드, 2005)
입스위치 타운이 대런 벤트를 넘긴 것은 그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찰튼이 협상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250만 파운드의 저렴한 가격에 마무리되었다. 31골의 골을 기록하고 나서 2년 뒤, 이 선수는 토트넘에 16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팔렸고, 찰튼의 이윤은 1400만에 달했다. 영리한 이적 조항을 만들어 넣은 덕분에 입스위치 역시 이것으로 250만 파운드를 챙겼다.
19 ROY KEANE (Nottingham Forest to Manchester United, 375만 파운드, 1993)
OT 이적이 확정되기 전엔 거의 블랙번행이 유력했다. 케니 더글리쉬의 패배는 곧 유나이티드의 승리를 의미했다. 그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가에 대해 감을 못 잡는 이가 있다면 1999년 맨유의 유벤투스 원정 경기를 한번 보라. “이 경기에서 로이 킨은 내가 본 플레이 중 최고로 이타적이면서도 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잔디 하나하나를 모조리 밟으면서, 패배를 하느니 차라리 뛰다 지쳐죽는 걸 택하겠다는 식으로 그는 뛰었다. 그와 같은 선수를 밑에 데리고 있는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퍼거슨 감독의 논평이다.
18 DAVID NUGENT(Bury to Preston North End, 10만 파운드, 2005)
리버풀에서 족적을 남기는 데 실패. 10만 파운드에 프레스톤으로 가기 전까지 기본부터 다시 해야 했다. 2년 뒤, 포츠머스에 700만 파운드 가량의 금액으로 포츠머스로 이적.
17 IAN RUSH (Chester City to Liverpool, 30만 파운드, 1980)
그의 이름만 들으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복장은 뒤집어지지만, 그의 위대한 골 기록엔 누가 반문을 제기하겠는가? 유나이티드와 유벤투스를 상대할 때를 빼고는 거의 ‘재미’로 골을 넣은 선수였다. 퀄리티 논쟁은 집어치우고, 그냥 조용히 서서 스탯에 주목하라 – “658경기에 346골, 5개의 타이틀, 3번의 FA컵, 한 번의 유러피언 컵, 5번의 리그 컵과 4번의 채리티 쉴드. 에버튼 서포터가 보더라도 ‘나쁘지 않은’ 기록 아닐까?
16 PETER WITH (Newcastle United to Aston Villa, 50만 파운드, 1980)
아스톤 빌라의 역사에 남을 사이닝. 피터는 1981년에 타이틀을 획득하고 20골을 득점하면서 이적료의 값어치를 증명해 보였다. 1982의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뮌헨을 상대로 결승골까지 기록.
15 NICOLAS ANELKA (Paris St-Germain to Arsenal, 50만 파운드, 1996)
분위기 잡는 17살 소년, 하이버리 도착. 2년 반 동안 유모차 밖으로 장난감을 내던지는 아기처럼 애를 태우고, 아스날이 레알 마드리드의 2300만 파운드 오퍼를 받아들이면서 아스날 생활 끝.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17살 소년으로 2250만 파운드를 벌 수 있는 사람이 웽거 외에 누가 있을까?
14 GIANFRANCO ZOLA (Parma to Chelsea, 450만 파운드, 1996)
나폴리 시절 같은 팀메이트였던 마라도나의 트레이닝과 플레이를 열심히 관찰한 덕에, 로만이 오기 전까지 첼시에서 뛰면서 각종 트로피를 따낸 인물. “조그맣고 영리한, 정말 싫은 놈이야” 퍼거슨 감독의 논평이다. 수천 명의 수비수들이 동의할 말이다.
13 KEVIN KEEGAN (Scunthorpe United to Liverpool, 3만5천 파운드, 1971)
그 별난 머리 모양과 잉글랜드 감독 시절은 잊어라. 키건은 잉글랜드 선수로서 발롱도르를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323경기에서 100골을 득점했고, 1977년 유러피언 컵을 팀에 선사하면서 떠났다. “팬들이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기 시작하면 눈에 물기가 맺힙니다. 실제로 경기를 뛰면서 감격하여 운 적도 여러 번이었죠.”
12 PETER SCHMEICHEL (Brondby to Manchester United, 55만 파운드, 1991)
퍼거슨 경은 몇 번의 시원찮은 골키퍼 영입을 한 바 있지만, 슈마이켈을 영입할 때는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이 덴마크 골키퍼는 90년대를 휩쓴 유나이티드의 핵심 멤버였고, 퍼거슨 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20세기의 영입”이다.
11 CRISTIANO RONALDO (Sporting Lisbon to Manchester United, 1200만 파운드, 2003)
그를 사랑하든 혹은 증오하든, 지금에 와서 1200만 파운드는 헐값으로 보인다. 스포르팅 리스본과 맨유의 프리시즌 친선경기에서 그가 맨유의 수비를 궤멸시키기 전에는 퍼거슨 경은 그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현재 세계 최고 5명에 들어간다.
10 PETR CECH (Rennes to Chelsea, 700만 파운드, 2004)
무리뉴는 06-07시즌에 체흐가 3달 가량 아웃되지 않았다면 첼시가 분명 타이틀을 획득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누가 그 말에 반박할 수 있을까? 유벤투스가 3200만 파운드를 써서 데려온 부폰을 제외한다면 체흐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다.
9 DENNIS BERGFAMP (Inter Milan to Arsenal, 750만 파운드, 1995)
Bruce Rioch는 딱 2 가지로 아스날 팬들에게 기억된다 : 베르캄프 영입, 그리고 등신 같은 감독.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선수 선정에서 앙리를 눌렀으며, 그의 수비를 절묘히 쪼개는 패싱 능력에 아스날 서포터들은 열광했다. “그건 기적입니다. 그의 패스를 보고 있으면, 선수들이 가득 들어찬, 좁디좁은 경기장이 갑자기 확 커지는 느낌이죠.” 한 데니스의 팬이 말했다.
8 PAUL MCGRATH (Manchester United to Aston Villa, 40만 파운드, 1989)
맥그라스는 음주를 좋아했고, 퍼거슨 경은 음주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유나이티드에서 나갔지만, 계속해서 그가 자기 시대 수비수들 중 최고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자기 자서전에서 종종 술에 취한 상태로 경기에 뛰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 안쓰러운 무릎과 음주를 해야만 경기가 되는 습관이 없었다면 어느 수준이 되었을지 소름이 끼친다.
7 JOHN BARNES (Sudbury Court to Watford, 이적료 : 도구 한 벌, 1981)
그레엄 테일러는 잉글랜드 감독으로서는 영 아니었지만, 그가 왓포드에서 손을 뻗은 모든 선수는 황금이 되었다. BARNES는 당시 17살이었고, 서드버리에서 뛰고 있었다. 테일러가 왓포드 리저브 팀을 제안했고, 1986년 90만 파운드에 리버풀행을 택하기 전까지 92골로 신뢰에 보답했다.
6 GARY PALLISTER (Billingham Town to Middlesbrough, 이적료 : 도구 한 벌, 공 한 상자, 골네트 하나. 1984)
유나이티드의 동료 선수들에 의해 ‘겁 많은 녀석’이라고 불린 팔리스터는 맨유에서 4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을 이끌어냈었다. 하지만 좀 더 이전에는, 1984년에 19살의 수비수로서 빌링엄에서 뛰고 있었고, 도구와 공 한 벌, 골네트 하나에 보로로 스카우트되었다. 1989년에 230만 파운드에 맨유로 갔다.
5 IAN WRIGHT (Greenwich Borough to Crystal Palace, 이적료 : 바벨 한 세트. 1985)
1985년에 이언 라이트는 그린위치에서 만년 파트타임 알바 신세로 뛰는 것을 거부했다. 마침 스티브 코펠이 그에게 테스트를 받아볼 것을 권했고, 그의 플레이에 감명받아 바벨 한 세트 주고 데려왔다. 그 후 277경기에서 117골 기록. 1991년에 250만 파운드에 아스날로 이적.
4 THIERRY HENRY (Juventus to Arsenal, 1050만 파운드, 1999)
98-99시즌에 유벤투스에서 단 3골을 기록한 이 프랑스 윙어가 아스날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유벤투스 팬들은 기뻐했다…하지만 그 때 그 팬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기술과 주력에 괜찮은 외모까지 겸비. 간혹 보면 모든 걸 가진 선수들도 종종 있는 법이다.
3 KENNY DALGLISH (Celtic to Liverpool, 44만 파운드, 1977)
야심차게 리버풀로 온 토레스여 일단 슬퍼하라. 키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밥 페이슬리가 영입한 케니는 데뷔 시즌에만 31골을 기록했고, 1978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가져온 결승골도 기록했다. 11만 명이 넘는 리버풀 서포터들이 선정한 “더 콥을 뒤흔든 100명의 선수”에서 1위 차지.
2 DIXIE DEAN (Tranmere Rovers to Everton, 3천 파운드, 1925)
단돈 3000천 파운드 – 참고로 이 액수는 쉐브첸코가 요새 한 시간에 받는 돈이다 – 에 에버튼이 영입한,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풍부한 골을 기록한 선수. 한 시즌에 60골을 득점한 영국 축구 유일의 선수이기도 하다. 에버튼에서 433경기 출전하여 383골을 넣은 기록은 리버풀의 명장 Bill Shankly마저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딘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그 때의 사람들은 베토벤, 셰익스피어, 모짜르트를 얘기하는 것과 같이 딘에 대해 얘기했죠. 그는 그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1 ERIC CANTONA (Leeds United to Manchester United, 120만 파운드, 1992)
맨체스터로 왔고, 경기 때면 유니폼 상의의 칼라를 세웠고, 그리고 모든 걸 지배했다. 하워드 윌킨슨은 퍼거슨에게 전화를 걸어서 “데니스 어윈 팔 생각 없냐”고 물었고, 이에 퍼거슨은 없다고 말하면서 뻔뻔스럽게도 “칸토나 좀 안되겠냐”고 응했다. 딜은 성사되었고,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다.
http://www.timesonline.co.uk/tol/sport/football/article2058123.ece
**2007년 7월 11일에 원문이 작성된 기사임을 밝힙니다.
그니까 1위~24위에 없는게 이상하다구요 ㅋ
이적료에 도구한벌 , 바벨한셋트 이런게 뭐에여 ? ;;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금액 대신 트레이닝 각종 도구 모아놓은 한 세트 혹은 바벨(운동기구) 한 세트 구단에 주고 선수 데려왔다는 뜻입니다.
앙리가 1위일줄 알았는데...칸토나옹..ㅋㅋㅋ
역시 칸토나..........
이안 라이트... 이적료 바벨 한세트.. ㅎㅎㅎ
칸토나 ㄷㄷ
역시 칸토나
근데 반니가 왜 없지... ;
50~25위보면 그안에있음
드록바, 에시앙이 없다는게 의문 ㅎ
50~25위보면 에샹잇음
셰브첸코가 한시간에받는돈.. ㄷㄷㄷ
케니달글리쉬..공포
난 또 최고 이적료인 줄 알았네...ㅡㅡ
윌킨슨 "야, 데니스 어윈 안팔래?" 퍼기 "시러. 근데 야, 너 칸토나 안팔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25~30위 사이였나..? 거기에 브레드 프리델도 있는데;;
칸토나 ㅎ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