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이 되어
“장마가 물러간 뒤 한여름 극한 더위 / 신새벽 집을 나서 반나절 산행 마쳐 / 귀갓길 버스 정류소 목마름이 더해라 / 숲 그늘 빠져나와 드러난 뙤약볕에 / 찬 새미 대신하는 카페가 눈에 띄어 / 차가운 아메리카노 오냐 그래 좋아라” 앞 인용절은 어제 상점령을 넘어 장유계곡으로 내려서면서 인적이 없는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돌아오던 길 남긴 시조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어제 아침 얼음 생수와 도시락을 챙겨 폭염경보에도 상점령을 찾아 삼림욕을 하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계곡에서 알탕의 전제 조건은 인적이 없어야 하며 상수원보호구역이 아닌 곳이라야 한다. 나는 창원 근교 지형지물에 익숙해 어느 산자락에서 삼림욕이 가능하고 계곡 웅덩이에 몸을 담글 수 있는지 훤하다. 상점령 너머 장유계곡 발원지도 그 가운데 한 곳이었다.
팔월 첫째 금요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 재난 문자가 연이어 날아왔다.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니 노약자들은 온열 질환에 유의하고 야외활동을 자제하십사고 권했다. 날씨가 무덥기는 해도 반나절만이라도 바깥으로 나가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밭으로 가서 꽃대감을 만났다. 친구는 삼잎국화가 핀 꽃밭에서 모닝 카드를 작성해 보내는 중이었다.
여러해살이인 삼잎국화는 대마인 삼잎처럼 생겨서 삼잎국화로 불린다.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우리나라로 건너와 토종이 되다시피 했다. 씨앗이 냇가로 번져 창원천 하류에서도 볼 수 있다. 키가 1미터 이상 높이 자라는 잎줄기에서 한여름 노란색 꽃을 피웠다. 어린 순은 나물로 인기 있어 텃밭에 심어서 찬거리로 삼는 이도 봤다. 삼잎국화가 피운 꽃은 아침 시조 글감으로 할까 싶었다.
꽃밭에서 친구와 환담을 나누다 헤어져 정류소로 나가 불모산동으로 가는 101번 버스릍 탔다. 시내를 관통 남산동 터미널을 지난 종점에서 내려 저수지로 물이 흘러드는 계곡으로 향했다. 멀리 불모산 정상 송신소는 아침 해가 뜨면서 햇살이 비쳤다. 창원 외곽을 에워싼 불모산과 용제봉은 비교적 높은 산등선인데 동쪽에 해당하는 김해와 부산을 거쳐 떠오르는 햇살이 먼저 닿았다.
창원터널이 혼잡해 불모산터널 개통으로 외부로 통하는 교통량은 분산되었다. 불모산터널 입구에서 멀지 않은 두 군데 골짜기는 정상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불모산동 저수지로 모여들었다. 최근 상점령에서 성주사 주차장으로 가는 숲속 길이 트여 오가는 이들이 있기는 해도 인적이 드문 편이다. 내가 찾아가는 맑은 물이 흐르는 웅덩이는 그윽한 곳이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용제봉 기슭에도 알탕지를 몇 군데 알고 있어 올여름 세 차례 들렀다. 그때 장마가 끝나지 않았는데 영지버섯을 찾아내 폭포수가 쏟아지는 계류에서 땀을 씻고 나왔다. 용제봉 기슭까지는 이동 동선이 제법 되어 한더위에 오르기는 무리여서 접근성이 좋은 불모산 계곡을 찾아갔다. 불모산터널 입구로부터 멀지 않는 알탕지는 숲속 길에서 얼마간 개척 산행으로 비탈을 올라야 했다.
그제도 찾아간 불모산 계곡 물웅덩이를 향했다. 사람들이 다닌 숲속 길을 벗어나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밟고 가시덤불처럼 얽혀 낮은 키로 자라는 숲을 헤쳐 비탈을 올라갔다. 몇 해 전에 멧돼지가 출몰한 적도 있었고 바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도 봐 신중하게 나아갔다. 삼복염천 나만이 누리는 시원한 계곡을 찾으려면 그 정도 긴장감은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바위틈으로 제법 넉넉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찾아내 조심조심 다가갔다. 배낭을 벗어두고 순차적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드러내 물웅덩이로 들었다. 바윗돌은 흘러간 물살에 닳아 반질반질해 맨살로 닿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한기가 느껴져 물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물기를 말렸다기 들기를 반복했다. 자연인이 되어 반나절 머문 계곡은 선계나 마찬가지였다. 23.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