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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로 잡혀간 스데반(2)
행 6:8-15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 설 교 >
천사같은 얼굴을 갖자
행 6장 8~15절 / 김 조목사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중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외부적으로 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처음 만날 때에 얼굴 보며 사귀고 싶은 사람과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에브라함 링컨은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말했던 것이요,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 것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간혹 회사에 직원 채용시에 관상 보는 사람의 조언을 듣는다고 합니다. 관상 보는 것이 좋고 맞다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보아 얼굴에 성격이나 성품이 나타나고 있기에 그러는가 봅니다. 그러기에 오늘 누가 보아도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스데반 집사의 얼굴의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 하는 말씀을 중심하여 “천사와 같은 얼굴을 갖자” 제목하고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초대교회에 첫 일곱 집사로 뽑힌 스데반은 빌립과 함께 베드로 사도의 바통(baton)을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에게 인계하는 다리 역할을 질감 당한 분으로 그의 붙잡힘과 설교와 선교가 7:60까지 계속됩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은 그가 붙잡혀 공회에 거짓 고소를 당하는 장면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성령 충만하여 민간에 기사와 표적도 나타내고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함에 대적자들이 위증자를 세워 하나님을 모독하고 율법과 성전을 무시한다고 했을 때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천사의 얼굴”이 어떤 얼굴이겠습니까? 이목구비가 잘 생겼거나 시적인 표현일 뿐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영적으로 기쁨이 넘치고 남에게 신뢰를 주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평화가 깃들고 얼굴이 천사의 얼굴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인격수양이나 세상에 것 얻어 잠시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스데반 집사가 어떠했기에 천사같은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8-9절)
하나님과 늘 함께 하여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어 성령 충만 받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행하게 하심에 표적과 기사로 일어나게 됨에 하나님의 권위 있는 그 얼굴이 천사와 같습니다. 스데반은 3,5절에 이미 성령과 믿음, 지혜가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혀주시고 권능이란 권세와 능력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나타나는 모습이 천사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도 성령 충만 받고 하나님과 영적 육적으로 깊이 사귀어 하나님이 힘을 주시어 세상에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하시고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천사의 얼굴이 되시기 원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오래시간 같이하여 돌판에 새겨주신 십계명 들고 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백성이 가까이 못하여 모세가 수건을 가리웠던 것이(출34:) 천사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 즉 기도하는 성도되어 성령 충만 받으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어 세상 사람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존경과 인정을 받는 천사의 얼굴을 갖는 성도되시기 원합니다.
2. 권세 있는 말을 했습니다. (10-11절)
스데반 집사의 말을 흠 잡을 수 없어 거짓말 만들어 붙잡아오게 하였던 살기가 등등한 그 악한 모습과는 달리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으니 그 말씀이 권세가 있어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며 위로하고 권면하는 사랑의 음성과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이기에 병든 자 고침 받고 상처난 자 싸매이며 악한 자가 회개하는 스데반 집사의 말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 간음한 여인 잡아와 모세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어떻할까요 묻게 되니 죽이라면 도마법을 위반하고 죽이지 말라면 모세의 법을 어기게 됩니다. 이때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하심으로 양심에 가책은 받은 그들이라 흩어졌던 것(요8:1-11)이 말씀의 권세 앞에 도망 가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세 있는 말에 병든 자 고침 받고 악한 자 회개하며 낙심하고 좌절한 자에 새 힘과 용기를 주며 새 소망을 갖게 되고 어두운 사회가 맑게 됨에 누가 보아도 천사의 얼굴 갖게 됩니다. 부정적인 말, 비판이나 비방의 말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 기쁨과 평화를 주는 말로 천사의 얼굴 갖기를 원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15절)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기쁨과 평화가 넘쳐나나 밖으로 표현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어 보이게 나타냈던 것입니다. 자기의 권익 위해 시기하고 거짓말하는 그들의 얼굴과 달리 자신의 영리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고자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였으니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됨에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고자 영적으로 변화된 모습과 믿음의 확신을 갖고 강하고 담대하게 여유있게 서 있는 그 모습은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입니다. 이러한 모습 갖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 모습이 멋있고 아름답고 평화와 기쁨이 깃든 천사의 얼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영적 사귐 즉 기도 생활 열심 하시어 성령 충만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며 우리의 말에 권세가 있어 듣는 자가 하나님을 깨닫고 믿고 그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권세 있는 말을 하며 질병도 사단도 다 물리치고 참된 평화가 넘치게 하며 자신의 것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 위함으로 “천사의 얼굴”을 갖고 세상을 밝게 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천사의 얼굴
행 6장 8~15절 / 박봉수목사
사람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육체적인 얼굴입니다. 이것을 용모(容貌)라고 합니다. 거울 앞에 서면 늘 자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얼굴이지만 오래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화장을 하거나 악세사리로 포인트를 줘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니면 성형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거울 앞에 서면 자신만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얼굴인데도 자꾸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위 얼짱들이죠. 그런데 이런 분들은 늘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그래서 공주병, 왕자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도 꼴불견이어서 사람들이 꼴값한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용모를 잘 관리하는 일은 중요하겠습니다. 남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지는 일은 좋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둘째로, 정신적인 얼굴입니다. 이것을 표정(表情)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표정이라고 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표정과 감정의 관계를 연구해왔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에크만(Ekman) 박사는 얼굴표정과 사람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식별해 낼 수 있는 기준을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이 분은 사람의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저마다 같은 표정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행복한 감정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답니다. 우선 입 가장자리가 뒤로 당겨지고 위로 올라간답니다. 그리고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이가 보인답니다. 거기에다 뺨이 올라간답니다. 자세히 보면 아래 눈꺼풀 밑에 주름이 생기고, 눈초리의 주름이 눈의 바깥 가장자리로부터 바깥쪽을 행해 생긴답니다.
사실 용모보다는 표정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만날 때 얼마간은 용모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표정에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밝은 표정, 행복한 표정은 모두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 역시 교인들의 표정만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표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정을 밝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 영적 얼굴입니다. 우리 얼굴에는 용모와 표정 외에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있습니다. 영적 분위기입니다.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는 영적인 얼굴입니다.
창 4:5-6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가인이 얼굴빛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굴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출 34:29-30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과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 두 가지 가인과 모세의 예를 보면 사람의 얼굴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용모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표정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경우 그 얼굴에 영적인 그늘이 드리워 진 것이고, 다른 하는 영적인 광채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나타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그 얼굴에 영적인 어두운 그늘이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벨을 죽이고 나자 영적 어둠이 그 얼굴을 뒤덮어버렸습니다. 모세는 40일 동안 오직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가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 누구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영적 광채가 빛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얼굴에 영적 광채가 나는 상태를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반대로 가인은 마귀의 얼굴을 한 것입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된 분이 제게 와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목사님 같지가 않아요? TV나 무대에 나오는 분 같아요?”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그분은 아마도 저 듣기 좋으라고 나름대로 칭찬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목사 보다 조금 잘 생겨서 그저 TV에 나오는 조연이나 엑스트라 정도 아니면 삼류 가수 정도로 생겼다고 나름대로 칭찬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도 그 말이 마음에 걸려있습니다. 목사가 목사처럼 보여야지 삼류 가수처럼 보여서 되겠는가?
그런데 최근에 신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머리를 깎으려고 목욕탕 안에 있는 이발소에 갔습니다. 처음 본 이발사입니다. 이분이 머리를 깎다 말고 제가 조용하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목사님이시죠?”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교회 다니거든요 감이라는 게 있죠!”
집에 와서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도대체 그분이 뭘 보고 내가 목사라는 것을 알아차렸을까? 내가 이발소에서 기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으라고 찬송을 부른 것도 아니고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어쨌든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목사 같지 않은 목사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목사 된지 15년이 지나니까 이제 목사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 이발소는 다시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얼굴이 변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점점 천사의 얼굴처럼 변해 가야 합니다. 우리 얼굴 안에 드리워 있는 영적 그늘이 걷혀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이 영적으로 빛이 나야 합니다. 이것은 표정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용모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얼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얼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스데반의 얼굴입니다. 15절을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모인 사람들 스데반이 어떻게 처벌 받는가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 그들이 스데반의 얼굴을 보니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스데반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천사의 얼굴 같은 스데반의 얼굴은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그 얼굴은 사람들에게 어떤 얼굴로 비쳐졌을 까요?
1. 고난 중에 빛난 얼굴
행 6:8을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교회 안에 구제 일을 보도록 집사로 세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 민간에서는 사도들처럼 복음을 전하며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거센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의 복음 전파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절을 보니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스데반을 논리적으로 반박해서 이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공작을 꾸밉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람들을 사주했습니다.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우리가 들었노라” 둘째, 당시 유대인들과 지도자들을 격동시켰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그래서 스데반은 공회에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거짓 증인을 세웠습니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 하는 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너무 억울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스데반에게 감당키 어려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스데반은 7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끔찍하게도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맙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이 났다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 거세게 밀려드는 그런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평안이 넘쳤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빛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의 얼굴에는 여전히 평안을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의 얼굴에는 기쁨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감당키 어려운 절망의 순간에도 영적인 어둠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에서 영적이 그늘을 몰아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얼굴에 영적인 광채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령으로 조명된 얼굴
스데반이 어떻게 이런 절망의 순간, 공포의 순간에도 천사와 같은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요? 누가는 7:55절에서 이렇게 답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스데반이 남다른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원래 영적으로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워할 줄도 알았고 죽음 앞에 떨 줄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성령이 충만하고 그가 온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절박한 순간에도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절망의 그늘 대신 천사와 같은 평안과 기쁨의 광채가 났던 것입니다. 성령이 스데반의 얼굴을 밝게 비춰주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영상에 비친 제 얼굴이 실물보다 미남으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제가 영상 미남이랍니다. 가까이서 실물을 보면 별거 아니랍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저 3층 위를 보시면 저를 비치기 위해 여러 개 조명이 설치되어있습니다. 제가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빛이 저를 비춰주고 비춰진 모습을 영상이 담기 때문에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옵니다. 조명을 끄면 너무 흐려서 얼굴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우리 심령을 조명해 주시면 우리 얼굴에 천사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우리 심령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얼굴이 변합니다. 천사처럼 변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심령을 조명하지 않으시면 우리 얼굴에는 천사의 얼굴이 사라집니다. 사람이 얼굴이 되고 심하면 저 가인처럼 마귀의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얼굴
3. 깊은 인상을 남긴 얼굴
행 7장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의 숨겨진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7:58절을 보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지금 사람들이 공회에서 끌고 성밖으로 끌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기 위해서 옷을 벗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벗은 옷을 사울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왜 갑자기 여기에서 사울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나올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 회장이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이름이 나옵니다. 당시 행정수반이었던 총독 빌라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십자가 처형을 결정한 책임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에는 산헤드린 공회 책임자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당시 총독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뜻밖의 인물 사울의 이름이 나옵니다.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울이 산헤드린 공회의 명령을 받아서 처형을 집행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답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당시 처형 때도 책임자인 로마 군인은 단지 백부장이라는 직함만 나올 뿐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도 사울이라는 이름이 구지 소개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울이 이 때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에 서린 천사의 얼굴을 보고 심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순교하는 장면을 보고 이미 그 심령에 주의 일꾼일 될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해석에 동의합니다. 사울이 변화되어 바울이 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수없이 박해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극심한 공포와 절망의 순간에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죽어가면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절망의 순간에도 이럴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경우 우리 얼굴로 전도합니다. 우리 얼굴에 드리워있는 천사의 얼굴 이것이 감동을 줍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2차 대전 시 다니엘 폴링이라는 젊은 군목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군함을 타게 됐답니다.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부탁했답니다. “제가 군함을 타고 전장에 나갑니다. 살아서 돌아오기 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 군함은 유감스럽게도 전장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적군의 어뢰에 맞아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승선인원 9백 4명 중에 6백 78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배가 침몰해 갈 때 이 폴링을 비롯해 군목들은 구명대를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찬양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답니다. 그때 구명대를 양보 받고 살아난 군인들이 훗날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들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들을 대신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고 그들의 그 얼굴을 평생 기억하며 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요? 스데반처럼, 폴링이라는 젊은 군목처럼 천사의 얼굴로 비쳐질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 얼굴 속에 마귀의 얼굴이 묻어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얼굴에는 여러 가지 얼굴이 담겨져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용모 곧 육체적인 얼굴이 있습니다. 기왕이면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면 좋겠죠? 이것보다 더 중요한 얼굴이 표정 곧 정신적인 얼굴입니다. 할 수 있으면 우리 표정이 밝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더 중요한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얼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밝게 빛나고 멀어질수록 어두워지는 얼굴입니다. 때론 천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마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천사와 같은 얼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행 6장 9~10절 / 양향모목사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보통은 장남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었지만 요셉은 야곱이 제일 사랑하던 아내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체는 그렇게 훌륭하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형들에게 미움을 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 하거나 형들의 미움을 살만한 꿈 이야기 같은 것을 형들에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힘이 있거나 어려움을 이길만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힘이 있거나 지혜가 있었다면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나 노예로 팔려고 할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똑똑한 머리나 지혜나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고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된 후에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결국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노예보다 더 비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때 하나님께서 그를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왕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애굽과 자기 온 집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도 크게 지혜롭거나 큰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우리 앞에 늘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환난도 있고 고통도 있고 인간의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가, 우리 혼자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런 어려운 일들이 다 해결이 되고 그런 어려운 일들이 오히려 더 좋은 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혼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지혜로 세상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는 삶이 금년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해지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혼자 힘들게 살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힘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본문 10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입니다.
요셉이 세상을 살면서 당한 환난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많은 환난을 당했을 것이지만 성경은 특별한 것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형들에 의해서 죽을 고비를 맞은 것이고 그러다가 노예로 팔려간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귀한 아들이었지만 남도 아닌 형들에 의해서 그런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요셉이 형들에게 좀 얄미운 짓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형들이 잘못한 것을 아버지께 고자질을 했고 자신이 형들로부터 절을 받는다는 꿈을 꾸고 그 이야기를 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의 편에서 보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없는 사실을 고자질 한 것이 아닙니다. 형들이 못된 짓을 하니까 아버지께 그대로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꾸지도 않은 꿈을 거짓으로 이야기 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꾼 꿈이 하도 희한하니까 가족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 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정을 위해서 바른 말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를 하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유혹을 했을 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모함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범했다면 감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모함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참으로 억울한 옥살이었습니다.
이런 억울하게 당하는 환란에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몰라주고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고 사람들은 비웃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아주고 개입을 하시고 도와주시고 그 환난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상인을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조금 마음착한 형을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형들의 마음을 더 악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모면하고 비록 노예였지만 생명을 연장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가 노예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가 하는 일이 형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한 가정의 총무가 되어서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셔서 형통한 삶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를 높이시어 노예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일국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해주시고 함께 해 주실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시대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디 요셉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 시대는 인권이라는 것도 없고 법이라는 것도 정당하게 집행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힘이 없고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억울함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억울함 가운데 요셉이 당한 억울한 일에만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환난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환난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일개 노예에서 일개 죄수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는 엄청난 반전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참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환난도 많이 당하면서 삽니다. 누구나 다 귀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삽니다.
때로는 부모님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형제들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몸이라고 생각한 남편에게 아내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친한 친구에게 가까운 친척 이웃에게 배반을 당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잘못된 제도 때문에 잘못된 법 때문에 잘못된 세상의 환경 때문에 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잘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모든 사람에게 그 모든 억울한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노력한 대가를 얻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억울한 누명을 받고 그런 고생을 하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그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억울한 일이 어디 그런 인간관계뿐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잘 해주고 사는 것도 별 문제가 없이 잘 산다고 해도 반드시 어김없이 찾아오는 억울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세월을 따라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세월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한 인생에 개입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스런 삶에 개입을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을 하셨는데 왜 나는 계속 고통 속에 사는가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면 모든 일들이 다 잘 되어야 할 텐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삶에 일시적으로 개입을 하시고 일시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런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어려움에서 완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을 하시는 것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팔고 속이고 죽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그런 죄악이 없는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월 따라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그런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오래살고 그런 일시적인 것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아프거나 죽거나 이별이 없는 영원한 세상 완전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을 하실 때 이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서 완전히 외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그때마다 개입을 하십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여야 했고 노예가 되어야 했고 죄수의 몸이 되어야 했던 요셉의 삶에 개입하시어서 일국의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개입을 하셨습니다. 죄인의 몸이었고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영원한 형벌로 달려가는 우리의 인생에도 개입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은총과 지혜를 주시며
요셉의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일어난 일은 은총과 지혜를 주신 일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라는 단어인데 호의, 은사, 선물, 은혜 등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의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이 은총이 누구의 은총인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본문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조금 다른 의미로 구체적으로 이 단어를 해석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은총은 바로에게 받은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하게 해주셨고 그로 인해 바로가 은총을 베풀어서 그를 인정하고 총리가 되게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삶을 살면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받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괜히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말 한마디 잘 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면 성경에서 지혜롭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 사는가,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가를 결정하는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로 지혜로운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짜로 중요한 하나님의 지혜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지혜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엉뚱한 것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이신칭의의 진리를 아는 너무나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알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일이 이 일입니다. 믿음은 절대로 인간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가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친하다고 제가 잘 안다고 제가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들어오셔서 지혜를 주실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통해서 얻는 은혜입니다. 지혜를 통해서 알게 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과 온 집안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에 개입을 하셔서 주신 것은 통치자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애굽의 온 나라와 궁정을 통치하는 총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천한 노예와 죄수의 삶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로 통치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예로 죄수로 남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고 오히려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통치자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헤게오마이(ἡγέομαι)입니다. 이 단어는 이끌다, 길잡이가 되다, 인도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길잡이가 되고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시면 우리의 삶이 노예처럼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끌고 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과거에는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죽음으로 멸망으로 이끌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끌고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스스로 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의 타락한 습성입니다. 이 타락한 본성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죄악의 길로 불신앙의 길로 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런 죄악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신앙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를 이끌고 갈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삶에 개입하셔서 요셉의 삶을 바꿔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개입하셨습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환난이나 고통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은총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를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악한세력에게 끌려가지 않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여러분의 생애에 항상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더 왕성하게 역사하셔서 영육간에 왕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열매를 맺읍시다
김중석목사 / 사 6:9-13 요 15:1-8
Let’s produce fruit! 지난 주간의 꽃샘추위로 이제 추위는 가고 본격적인 봄이 될 것 같다. 예배당 앞 목련도 이번 주에 활짝 필 것이고, 작약도 꽃을 피울 준비가 한창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어김없이 봄을 주시고 꽃을 피우신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은 그렇게 한결같지 못하다. 열심히 수고하면 열매가 생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데 열매가 신통치 않고 열매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섭섭하다. 아! 왜 내가 하는 일에 열매가 잘 안 맺을까?
하나님은 분명 풍성한 열매를 주신다. 한 알을 심으면 적어도 30배 60배 100백 열매를 주신다. 이것이 분명한데도 우리가 수고한 것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어떻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까? 성경으로 가 봐야 한다. 성경에서 해답을 찾고 다 열매 잘 맺는 인생 되기를 축원한다. [열매를 맺읍시다]
1. 내 안에 거하라.
성경을 보니 답이 아주 간단명료하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신다. :5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이시고,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고, 우리들은 가지라고(1,5).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지 붙어있지 않으면 어떻게 열매를 맺겠느냐고. 이처럼 너희가 내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그러면 ‘내 안에’ 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세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동시성(同時性)이다.
가지가 나무에 항상 붙어있듯이 내가 예수님과 항상 함께 붙어있는 것이다. (찬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예수 함께 아니 가면 낙 없고 예수님과 함께하면 겁 없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열매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바로 그곳이 천국이요, 그 순간이 천국이니까 열매 뿐이랴!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전도하라고 보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풍성한 열매가 있었다. 예수님 말만 믿고 가니까 예수님이 함께 하셔서 열매가 많았다. :2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더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그대로 행하는데 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행하지 않으면 열매 없다.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자!
2) 교통성(交通性)이다.
나무와 가지는 서로 주고 받는다. 교통하는 것이다. 나무는 가지에 수분을 공급하고 영양분을 공급한다. 가지는 나무에 꽃을 달아주고, 열매를 달아주고, 새 가지를 내서 나무로 크게 자라게 하고, 씨를 내서 새로운 나무가 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신앙이 자라고, 인격으로 꽃피우며, 행동으로 열매를 맺어 보답한다. 그리고 전도하여 새 가지를 냄으로써 예수님의 몸인 교회가 자라게 한다. 이 교통함이 ‘안에’ 있는 것이다. 혹시 막히지는 아니했는가? 고로쇠 나무처럼 중간에 수액을 탈취당하지는 않는가?
3) 동등성(同等性)이다.
가지와 나무는 함께 수고하고 함께 좋은 것을 얻는다. 우리가 잘하면 함께하신 성령님이 기뻐하신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얼굴이 드러난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그러나 우리가 잘못하면 성령님을 근심시키게 된다. 예수님의 얼굴을 떨어뜨린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이리하여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어 열매를 많이 맺자.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아 더욱 많은 열매를 맺자. 이것만도 좋은데 보너스가 있다.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것이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렐루야! 또 있다.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된다. :8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2. 열매를 맺지 못하면? 제거된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과 나 사이에 동시성 교통성 동등성이 없어서, ‘주 안에’ 있지 못하면 열매를 못 맺고 그런 가지는 잘라지게 된다.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주님과 나 사이갈 막혀서 ‘주고 받는’ 교통이 없고, 그 영이 마르게 된다. 교회를 떠나게 된다. ‘사람’ 곧 천사가 그를 심판 날에 지옥 불에 던져 넣는다.얼마나 불쌍한가! 안타까운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첫째 불쌍하고, 예수 믿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둘째로 불쌍하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찬522)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질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사랑하는 내 동포여 주께로 나오라 십자가에 못박힌 주 너를 사랑하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으나 종내 열매를 맺지 아니하여 제거당한 민족이 있다. 이스라엘이다. 사6:9 여호와께서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를 선지자로 불러 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며)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렇게 너희가 열매를 맺지 아니하니 내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무를 벨 것이다, 이미 결정하였으니 더 이상 말하기도 싫다, 차라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듣고 깨닫고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된다. 하시면서 바벨론 포로를 예언하신다. 11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사람들을 멀리 옮기신다. 13 그러나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할렐루야! 열매 맺지 않아 베임을 당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신약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롬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원가지’는 이스라엘이고 우리는 ‘접붙여진 가지’다. 롬11:19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2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땅도 하늘도 열매를 내지 않게 된다. 신28: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그러니 농사가 되겠는가? 북한의 하늘과 땅이 그렇다. 아프리카도 그렇다. 일본과 중국의 경제성장은? 하나님 없는 경제는 불타기 위해 준비되는 장작과 같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열매를 제대로 못 맺었는가? 그런지가 오랜가? 잘 왔다. 소망이 있다.
호10:12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 기경’은?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즉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라 그리하면 용서받고 비를 내리사 열매 맺게 하신다.
‘열매를 맺으라’는 말은 소위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成果)주의’도 아니다.하나님은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중시하신다.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결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동기와 과정을 다 보신다. 그러면서도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안다’는 말씀처럼 열매를 요구하신다.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많은 투자를 하셨기 때문이다.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은 열매를 요구하신다.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가지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 맺으려면 ‘내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행 6장 9~13절 / 강문호목사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그 단체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루터기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끌려 간 사람들은 공부많이 하여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몸이 건강하여 노예로 쓰기에 적당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이 노리게감으로 삼기에 적당한 여자들이었습니다. 10분의 9의 사람들이 잡혀 가거나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10분의 1이었습니다. 그것도 남은 사람들은 바보 천치들뿐이었습니다. 병자들, 허약자들, 무식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끝장인 듯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까지 버린 상태같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 데 이제는 왕가도 모두 잡혀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같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다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 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9-13) 10분의 9가 죽거나 잡혀 갔습니다. 10분의 1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다 멸망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유다를 다시 살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를 이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됩니다. 1.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루터기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초목을 베어 내고 남은 뿌리와 그 부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언젠가는 그 곳에서 싹이 나고 다시 자라나게 됩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닙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그 나무는 생명이 있는 나무입니다. 다시 자라날 소망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에게 다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여자들은 정복국가 남자들의 첩이나 종이 되었습니다. 살아 남아 있는 사람조차도 절망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루터기들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한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욥은 자녀들이 다 죽고 병들어 잿더미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도 욥을 버리고 사람들도 욥을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자살이라도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때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어서 찍힐 지라도 다시 움이 날 것이다>(욥14;7) 욥은 그루터기를 보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 찍혀버리고 꺼여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움이 돋을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나는 9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어 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로 이도 닦았습니다. 발가락에 연필을 끼고 글을 썼는 데 명필이었습니다. 나는 졸필입니다. 한번은 은행에서 기록부를 작성하였더니 <초등학교 나오셨습니까?>라고 물어 보는 데 챙피하였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천재는 졸필이라는 데....> 그런데 발가락으로 쓴 글씨가 내가 손으로 쓴 글씨보다 잘 썼습니다. 그의 직업은 시계 수리공이었습니다. 작은 손목시계 톱니바퀴를 발가락으로 집어 끼우는 데 내가 손가락으로 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였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신체 불구라고 괜찮습니다. 돈 문제 그루터기 돈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큰 부자들은 처음에는 그루터기 돈가지고 시작한 이들입니다. 개울이 냇가가 되고, 냇가가 개천이 되고, 개천이 강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아무리 작아도 그루터기가 되어 크게 자랄 것입니다. 그루터기 돈이 재벌을 이루는 것입니다. 나는 몇 년 전에 송 기성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나성한인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송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베리 스쿨(Berry school)이 있습니다. 그 학교를 세운 마르다 베리여사(Martha Berry)에 대한 실화입니다. 베리 여사는 몹시나 가난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자기처럼 가난하여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하나 만들어 진전한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그가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보통 기도제목이 아니었습니다. 베리여사는 기도는 응답임을 분명히 믿고 끈기있게 기도하였습니다. 베리여사는 기도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당시 미국에서 제일 거부로 알려진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사정 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세울 돈을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정을 자세히 듣던 헨리는 10전 짜리 다임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약 80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100원 짜리 동전 하나였습니다. 모욕적인 거절 의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그 100원 짜리 동전을 내던지고 돌아왔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리여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한 행동인 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기도하고 되어지는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왔는 데 100원을 준다면 100원짜리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달랐습니다. 베리여사는 그것을 가지고 와서 씨앗 한 봉지를 샀습니다. 그리고 빈 공터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잘 가꾸었습니다. 그것을 추수하여 많은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였습니다. 해가 지날 수록 양이 점점 늘어 났습니다. 드디어 건물을 하나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물 한 동을 세운 후에 베리여사는 헨리 포드를 찾아 가서 말했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선생님을 찾아 와서 불우한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워 달라고 부탁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제게 다임 한 개를 던져 주셨습니다. 그 다임으로 이룬 성과를 구경하여 주십시오. 정직으로 선생님을 초청합니다" 포드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 던져 주었는 데 그 것으로 건물을 세웠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직법 확인하려고 그 농장에 세워진 학교에 갔습니다. 드디어 그 건물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교를 위하여 100만불을 헌금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베리 여사는 다임에서 건물을 보고 기도한 큰 기도의 사람입니다. 조그만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모테네스는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작은 챤스는 대사업의 시작일 때가 있다"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위대한 사업의 그루터기 돈입니다. 100원도 자본이 될 수 있습니다. 100 원으로도 학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을 잃지 마십시요. 2. 그루터기만 있으면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13) 아무 나무나 다 베게 되면 그루터기가 되어 나중에 싹이 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상수리 나무는 나무를 베게 되면 그루터기가 남습니다. 그러나 소나무 그루터기는 썩어 버려서 죽어 버리고 말게 됩니다. 나무를 자르면 그루터기도 죽는 나무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대로 밤나무나 상수리 나무는 나무를 잘라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싹이 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아무나 다 그루터기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중에는 여러 시람들이 생겼습니다. (1) 바벨론 사람들에게 아부하여 소위 출세하여 포로 해방 때 돌아 오지 않은 사람들이 수다하였습니다. (2) 포로로 잡혀 갔다고 절망하여 한숨만 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3)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술과 쾌락으로 그 날 그 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 그러나 그루터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셔서 다시 해방시키실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기여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그루터기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이 유다를 떠났다고 말하면서 절망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같은 이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캄캄할 때가 오히려 별빛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때라고 외치면서 이런 때일수록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그루터기 믿음의 소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일하시기 시작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이렇게 구별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그루터기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 믿음을 가진 자들을 언제나 사용하셨습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로 투쟁을 하다가 감옥에서 생을 마친 박 관준 장로님(1875-1945)은 의사로서 자기만을 위하여 산다면 편안한 생을 살아갈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럽고 신사참배 신앙으로 목사들도 일본과 합작하고 있었습니다. 신사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예식이라는 이론을 펼치고 있는 친일파 목사들이 우세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신사는 분명히 일본인들이 우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박 장로님이 새벽기도를 할 때였습니다.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를 위하여 피를 흘릴 자가 누구인고?> 박 장로님은 이런 음성을 듣고 깜짝 놀라서 하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사용하여 주소서!> 하나님의 음성이 또 들렸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십자가 군병을 뽑을 것이다> 박 장로님이 <주여! 이 생명 바쳐서 싸우는 십자가 군병이 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는 데 두루마리였습니다. 그 곳에 십자가 군병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 데 박 장로님의 이름이 제일 먼저 또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신문에 기사가 났습니다. <신사 참배 문제로 기독교가 위기에 처하다> 이 신문을 보고 박 장로님을 당장 총독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에게 절하게는 하는 신사참배를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당당하게 외치다가 그 날로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도 계속 신사참배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장렬하게 옥사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루터기가 되어 온 나라에게 신사참배운동이 불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도전하십시오. 지난 주간 우리 성막 수양관에서 성막 쎄미나 180기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맹인 목사님들이 27분이 오셔서 공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전체에 맹인 목사님들이 130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새벽 시간에 은평 침례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김 택수 목사님이 설교하셨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1965년 12월 4일 19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가성소다와 청산가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솟을 열다가 폭팔하여 얼굴에 뒤집어 쓰면서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위대한사람
행 6장 10절 / 백장흠목사
살아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따르고 존경하여 동상을 세웠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니까 동상을 없애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살아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비참하게 중한 벌을 받아 죽었는데 이후에 그가 영웅도 되고 열사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위인입니까? 업적이 그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많은 발명품으로 인간들의 삶에 유익을 주었던 에디슨 같은 사람이나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같은 이는 업적이 그를 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나 근대 미술과 건축의 아버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업적이 위인을 만들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스타들입니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농구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스타입니다. 하루에 1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며 다른 수입까지 합하면 2억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스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는 스타는 아닙니다. 그는 신앙의 영웅입니다. 오늘날 가장 아름다운 성도 상입니다. 살아있을 때에는 죄인이 되어 돌로 맞아 죽었지만 오늘에는 신앙의 스타요, 영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찬란하거나 명예나 권세가 없어도 이후에 주님 만날 때에 후회하지 않는 복된 그리스도인이고 신앙의 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위인을 만들었습니까?
1. 얼굴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 얼굴을 봅니다. 일생을 좌우하는 남녀가 만나 결혼하기 전에 선 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이란 얼굴을 중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얼굴을 간판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못 본체하면 외면한다고 표현합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면 뭐라고 표현합니까? 얼굴 본지가 오래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구별하게 됩니다. 젊은가 나이 드신 분인가를 얼굴보고 압니다.
소위 말하는 관상을 본다고 말합니다. 관상이 어디입니까? 얼굴입니다. 얼굴에 따라서 복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얼굴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스데반 집사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천사의 얼굴이라고 한 것은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얼굴이 아름다운 건 균형 잡힌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외모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미인이다 미남이다 라고 말할 때 무엇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까? 얼굴입니다.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라도 갖고 있습니다. 여자만이 성형수술을 하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한다고 합니다. 날마다 화장도 한답니다. 아니 어린아이들도 화장을 하려고 합니다. 유치원에 가는 어린아이가 엄마가 쓰는 립스틱을 입술에 칠해달라고 야단입니다. 입술에 그걸 칠하지 않아도 예쁘다고 말하니까 더 예뻐지고 싶으니까 칠해달라고 합니다. 이건 남녀가 공히 아니 어린아이들까지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예뻐지려면 자꾸 화장을 하여야 합니다. 화장을 어디에 합니까? 역시 얼굴입니다. 프로운동선수가 팬들에게 인기를 얻는 방법이 있답니다. 하나는 실력입니다. 무슨 힘이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이 외모입니다. 얼굴이 잘생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리머니랍니다. 표현을 잘하는 이라합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 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외모에 풍기는 덕이 보입니다. 『익지서』라는 글에 여자의 아름다운 네 가지 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부덕입니다. 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부용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운 것을 말합니다. (3) 부언입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것입니다. (4) 부공입니다. 부인의 솜씨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나 남자가 아름답다 예쁘다 미남이다 하는 말은 외모보다 내모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중국 송나라시대에 유명한 정치가 범중엄(990-1053)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명한 관상쟁이를 만나 내가 장차 정승이 되겠는가? 물었더니 관상쟁이가 그 사람을 쳐다보더니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정승감이 그렇게 없어서 당신 같은 이가 정승이 된다는 말이요. 그래요? 그러면 의원은 될 수 있겠소? 아니 아까는 정승 찾을 때는 의기가 왕성하더니 이제 의원이라는 말을 합니까? 내가 정승이 되면 이 나라를 위해 국태민안을 위해 일하려 하였는데 당신이 보다시피 내가 알다시피 정승감이 못 된다면 이 나라에 불쌍하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는 의원이나 하려고 합니다. 그때 관상쟁이가 벌떡 일어나 큰절을 하면서 제가 죽을 때가 되어 사람을 몰라 뵙게 되어 황송합니다. 어르신네는 정승 감입니다. 왜 관상을 볼 때에는 아무 것도 할 게 없으나 심상이 정승 감입니다. 이후에 이 나라 백성들을 잘 다스려주세요. 그 말대로 이후에 그는 위대한 정승이 되었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음이 외모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힘든 때입니다.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잘되는 곳이 있습니다. 피알(PR) 소위 선전이 잘된 집입니다. 이미지가 좋아야 피알이 잘 됩니다. 기업들이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 합니다. 사람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인상입니다. 첫인상이 좋아야 합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은 사람은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천사의 얼굴이란 천사의 특성을 가진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천사의 특성은 1) 순종이요 2) 경건입니다. 3) 현명함 4) 온유함 5) 강대함 6) 거룩함입니다. 위대한 사람 얼굴이 천사와 같아야 합니다. 링컨은 사람의 나이 40이상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고 하였습니다. 천사의 얼굴이란 어떤 얼굴인가요?
1) 인자한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합니다. 얼굴만 보아도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에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얼굴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금식기도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이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얼굴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 충만 받고서 얼굴이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인자하면 얼굴에도 나타납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얼굴을 생각해 보세요. 화난 것 같아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무섭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누구보다도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하기에 얼굴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얼굴에 인자함이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은 반드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얼굴은 항상 인자한 얼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겸손한 얼굴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굴에 교만하게 보이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교만이 인간의 죄 중에 기본이 됩니다. 성 프랜시스의 제자가 어느 날 하늘나라에 갔더랍니다. 제일 높고 좋은 자리가 있어서 묻기를 저 자리는 누구의 자리입니까? 대답이 프랜시스의 자리라고 합니다. 그 마음에 시기심이 나서 다음 날 프랜시스에게 묻기를 선생님 누가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입니까? 하였더니 대답인즉 바로 나야 그때 제자는 화를 내면서 그러면 선생님이 제일 악하다고 하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나는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그렇지 다른 사람이 나 같은 은혜를 받았더라면 더 아마 나보다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거야. 그때 자제는 그의 겸손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었답니다. 얼굴에 교만이 없어져야 합니다. 겸손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얼굴에는 화기가 있어야 합니다. 왜 원망이 있습니까? 교만해서 그럽니다. 왜 혼자 걱정합니까? 교만해서 그럽니다. 사람들이 부요 속에서 잘못되어지는 게 무엇입니까? 자꾸 교만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적은 병에 들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첫인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인상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납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속으로 무섭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면 문제입니다. 어쩐지 친절한 시골아저씨 같다든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같이 친밀하고 다정함을 느끼게 되는 순진한 아줌마 같은 인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대하기 편안합니다. 겸손하여야 친구도 많이 생깁니다. 겸손한 얼굴이 천사의 얼굴입니다.
3) 기쁨이 넘치는 얼굴입니다.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스마일 운동을 하잡니다. 왜 사람들이 하두 웃지 않아서 그런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1960년대 70년대에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인생 건설 컨설턴트였던 데일 카네기가 웃음 예찬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음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으나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아니하고 그 기억은 오래 남으며 웃음이 없이 참으로 부자 된 이가 없고 웃음을 가지고 살면서 정말 가난한 자도 없더랍니다. 얼굴에 미소가 있어야 합니다. 웃음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남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4) 단호한 얼굴입니다.
불의와 짝하여 적당하게 살려는 그런 얼굴이 아닙니다. 수시로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러운 얼굴이 아닙니다. 의지가 약하여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이중인격자의 얼굴이 아닙니다. 사자굴속에 들어가 사자의 밥이 된다고 하더라도 굽히지 않는 다니엘과 같은 결단한 의지의 얼굴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하여 그대로 따르는 주관 없는 그런 얼굴이 아닙니다. 죄와 불의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결단력이 있는 얼굴 이것이 천사의 얼굴입니다.
2. 위대한 사람은 보는 방면이 하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인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위대한 사람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성들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1) 지능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는 다른 이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쉬지 않는 연습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수없이 훈련하고 연습하였다는 것입니다. 간첩이 남파하였다는 정보를 듣고 일개 대대를 보내서 간첩잡기를 합니다. 못 잡습니다. 연대병력을 그래도 안 잡힙니다. 이제는 사단병력을 보내도 못 잡습니다. 왜 간첩은 이미 상당한 훈련을 받고 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사명을 갖고 수없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각오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훈련받아야 위대한 삶을 삽니다.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 훈련입니다. 전도 훈련입니다. 3) 에너지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큰 에너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쉽게 지치지 아니합니다. 피곤하지 아니합니다. 왕성한 활동력이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집중력입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에는 눈으로는 TV를 보고 입으로 식사하면서 눈으로 신문을 보고 귀로 라디오를 듣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보다 못합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분별도 못합니다. 5)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패는 상상도 하지 아니합니다. 누가 방해한다고 멈추거나 중단하지 아니합니다. 목표가 분명하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면 부지런해집니다. 민첩해집니다. 6) 모험심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관계없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랍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시선이 달랐습니다. 어디를 보았습니까? 하늘을 보았습니다. 보는 것을 관점이라고 합니다. 민족을 보는 눈을 가진 이가 애국자입니다. 돈을 보고 사는 사람은 수전노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불쌍한 노예를 바라보다가 그들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본주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보고 살면 사람을 통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상처를 입습니다.
영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신령한 것처럼 하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 주여! 를 잘 하는 게 아닙니다. 항상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까?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주변이 광야길입니까? 사면초가 라는 말과 같이 막혀있습니까? 환경만 볼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홍해를 보니 자기들을 위하여 장지로 마련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그때 모세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라. 홍해가 고속도로로 열립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린 사람은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보는 면이 다릅니다. 이것을 관점이라 합니다. 사울이 임금 되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침공해 왔습니다. 누구도 적장 골리앗을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어린 목동 다윗이 싸우러 나갑니다. 다윗은 모든 사람이 무서워하는 골리앗을 강아지로 취급하고 나간 것입니다. 강아지는 막대기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아지 때문에 대포나 로켓포가 필요하지 아니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민수기 13장을 보세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사람 대표를 선정하여 가나안정탐을 하게 하였습니다. 환경을 본 사람들이 보고합니다. 이 말을 듣던 이들이 모두 실망하였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닙니다. 분명히 잘 보았습니다. 그것도 실물까지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포도송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1)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민 13:27) (2)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였습니다. (3) 우리는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잘못 본 게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을 볼 줄 몰랐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1) 우리가 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민 14:7) 2)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3)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민 14:9) 4)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두려워 맙시다. 위대한 신앙인은 눈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입니다.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모든 것을 좋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위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 두 사람이 거리에 나와 서 있습니다. 마침 믿음 좋은 여자가 지나갑니다. 저 여자는 순돌이 엄마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아니한다는데 한 번 시험해 볼까? 그러자 합의하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면서 순돌이 엄마는 악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 대답하기를 악령에게도 좋은 점이 있습니다. 악령은 쉬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데 쉬지 아니 하고 일하거든요. 그리스도 인들의 눈은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이들이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링컨은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지라 하였습니다. 얼굴이 천사와 같아지도록 합시다. 이는 힘으로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눈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위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그리스도인의 얼굴표정
행 6장 15절 / 남 호목사
흑인 관광객이 조선호텔에 투숙했습니다. 호텔보이가 얼마나 친절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시중을 들었던지 그 사람이 자기나라로 돌아가는 날 자기에게 남아있는 돈을 몽땅 호텔보이에게 주고 갔더랍니다. 그 돈의 액수는 우리나라 돈으로 2천만원이나 되는 거액이었습니다.
사람의 얼굴 가짐이 자신의 운명과 다른 사람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릅니다. 특히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얼굴표정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믿음의 확신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얼굴에는 사랑을 찾아볼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하면서 얼굴표정과 행동에 담대하고 확신있는 표정이 없다면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이 잘 생겨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 못생겨도 천사의 얼굴같이 보일 수 있고 잘 생겼어도 악마의 얼굴같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의 사람들과 같이 천사의 얼굴표정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와 믿음의 확신, 그리고 담력을 주는 신탄진침례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Ⅰ. 스데반의 얼굴입니다.
행6:15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더라"고 말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말과 거짓 고소를 당하고 있는데도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7:54-60 "저희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자기를 저주하고 돌을 들어 죽이는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던 스데반의 모습이 바로 천사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 지을 수 있는 표정입니다.
오늘 여기 모여있는 우리 성도들도 이런 얼굴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얼굴표정을 가지고 살면 많은 사람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죽음직전에 그리고 거짓과 모함 앞에서 천사의 얼굴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1. 스데반은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란 아무 공로 없이 주님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것이고,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오셔서 나의 삶을 지배하시고 그 지도하심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곳에 모여있는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 받아 은혜에 푹신 젖어 살게되면 어디서든 어떤 곳에서든 여러분들의 얼굴을 대할 때 천사의 얼굴을 대하는 것과 같을 줄로 믿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성도들이 구름 떼같이 모이게 하시고, 용신할 틈이 없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구원받지 못한 어린아이나 어른들이 두손들고 회개함으로 모여드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스러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있겠지만 우선 먼저 신앙생활 하는 우리들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로 변화되는 것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믿습니다.
2. 스데반은 사랑이 충만했기 때문에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악당들을 증오하거나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아니하고 머리와 가슴과 등과 온몸이 돌에 맞아 으스러지고 깨져서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그들을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죽었습니다. 극한 원수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주위에 용서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저주스럽고 분노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의 얼굴표정은 천사의 얼굴표정이 될 수 없습니다.
눅23:2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백성들과 많은 여인들이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자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아픔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시는 주님의 얼굴은 맑고 밝은 표정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원수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얼굴은 사랑의 극치를 이루는 표정, 모든 사람들이 결코 잊지 못할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신탄진침례교회 성도들의 얼굴표정도 예수님처럼 맑고 밝은 천사같은 얼굴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얼굴에 광채가 난 모세의 얼굴입니다.
출34:29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채가 나는 모세의 얼굴을 감히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성도들의 얼굴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광채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자하면서 영적인 위엄이 있어보이고 사랑이 있어보이는 얼굴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어떻게 살았길래 얼굴에 광채가 났을까요?
출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주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깊이 영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의 얼굴에 신령한 광채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면 성도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벌써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기도 많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시간이나 철야기도 시간에 영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성도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자주 보곤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기도에 사로잡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고 몸에서 빛이 발산되는 것을 느낍니다.
만나고 싶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천사의 얼굴이 있는가하면, 한 순간이라도 보기 싫은 얼굴표정이 있습니다.
1. 웃시아 왕의 얼굴입니다.
웃시아 왕은 유대나라의 선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나라를 크게 부강케 한 왕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부강해지고 성공하니까 그만 교만해 졌습니다.
대하26:16 나라가 강성해지자 그 마음이 악을 행하였고 그런즉 왕의 얼굴에 문둥병이 발생하여 죽는 날까지 별궁에 홀로 거했다고 말씀합니다.
교만하다가 웃시아의 얼굴이 흉직하게 문둥병이 발했듯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오면 악마의 얼굴이 되고 맙니다. 교만자의 얼굴은 문둥이 같이 보기가 싫어집니다.
잠16:5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벧전5:5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만한 자의 얼굴은 문둥이 얼굴 같으며 사람들로 보기 싫어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싫어하시는 얼굴입니다. 우리는 보기 싫은 악마의 얼굴이 되지 않도록 "주여! 늘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2. 게하시의 얼굴입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탐심 때문에 얼굴에 문둥병이 발했던 사람입니다.
왕하5: 이하에 아랍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문둥병 고침을 받고 많은 금은보화와 좋은 의복을 선물로 주려고 하자 엘리사가 이를 거절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장면을 본 게하시가 탐심이 생겨 몰래 뒤에 따라가서 "우리 주인께서 선지자의 생도에게 줄 옷 두벌과 은 한 달란트만 달라 한다고 거짓 말해서 취했더니 이것을 엘리사가 알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고 말한 즉시 게하시의 얼굴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습니다.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찬 얼굴은 성도들의 얼굴이 아니라 악마의 얼굴같이 보기 싫습니다.
그에 비해 욕심이 없고 마음이 청렴한 사람의 얼굴은 참으로 아름답고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지 않는 한 결코 에덴동산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참된 하나님과의 교제도 가질 수 없습니다. 탐욕의 죄는 사람에게서 그 아름다움과 광채를 빼앗습니다.
3. 미리암의 얼굴입니다.
미리암이라는 사람은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일시적으로 문둥병이 얼굴에 발했습니다.
민12: 모세가 구수 여자를 취한 것을 보고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면서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것은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는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내 충성된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진노하시며 미리암의 얼굴에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다가 동생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으니 그 얼굴이 얼마나 흉직했겠습니까?
사울왕도 자기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할 때 악신이 들어가 질투가 나게 만들고 불안을 이기지 못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질투하는 사울의 얼굴은 악마의 얼굴이었습니다.
잠14:30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음이니라"
갈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말지어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사무엘 죤슨은 질투는 결코 조용히 누워있지 못하고 언제나 초조해 하는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호레이스는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번영함으로 자기는 말라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될 때 교만하지 말고 남이 잘될 때 시기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질투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유발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여인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한 것 때문에 사울의 시기심이 발동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고 은혜의 광채가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거나 탐심이 생기거나 시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악마의 얼굴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을 볼 때 은혜가 되고 복음이 전해지는 천사의 얼굴 영적 광채가 떠나지 않는 성도들의 얼굴 표정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용서하고 사랑할 때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하나님과 영적 깊은 교제가 있을 때 지울 수 없는 광채가 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