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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넘어질라. 조심하렴…."
조곤조곤 이르는 말에 어린 두 딸이 품에 와 안겼다. 작은 콧망울과 잘 여민 꽃잎 끝머리같은 눈초리가 자신을 꼭 닮은 두 딸은 심장 안턱에 걸린 가시같다. 안을수록 아프고, 그러나 빼낼 수 없는 두 딸은 삶의 의미와 다름이 없는……. 어미는 볕 나린 뜰이 눈부셔 눈을 감았다. 가을 햇살을 헤집다 안긴 아이에게선 여물지 못한 꽃내음이 나는 듯도 하고, 그보다는 생기로운 풀내음이 향긋하다. 꽃같은 어미는 두 싹을 꼭 품었다. 두 싹이 조심스레 감싼 새로운 꽃씨도 함께.
여름 초입, 기미가 보여 은밀히 진맥을 해본 결과는 세번째 회잉이었다. 그러나 의원이 미처 내당을 벗어나기도 전에 수란당을 대동한 시모의 눈에 걸리고 말았다. 영악한 첩은 시모의 비위를 잘 맞추었고, 정실의 앞에서도 장자를 둔 자신의 위세를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차씨 문에 들어와 단박에 아들을 낳아 수란당 마님으로 불렸고, 그것은 문주의 자리를 위협하기에 모자르지 않았다.
정처이건만 내리 두 딸만 둔 며느리가 눈에 차지 않아, 시모는 어리고 화려한 여자를 저 대신 아들을 생산케 하리라 하며 첩으로 들였다. 그녀가 수란당이었고 그녀의 아들은 갓 두 돌이 지났다. 어엿하게 별당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정실이 적자를 낳는다면 그녀의 입지는 위태로워질 것이니, 늘 문주의 곁을 감시하길 쉼이 없었다. 두 달째 월경을 걸렀다는 내당 여종의 수런거림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중, 의원을 부르러 간 것을 눈치채고 첩은 시모의 팔을 부축하여 산책하자 나섰다.
<회잉이라, 이제…세 달째 접어든다 하였습니다.>
시모는 기꺼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심 적자에 대한 기대는 있었는지, 서둘러 태아의 성별을 알고 싶었던 시모는 무녀를 찾아 며느리를 끌고 갔고 무녀의 답은 문주의 기대가 무너지게 했다. 귀한 꽃을 품으셨소. 그러나 더럼탄 세사에 휩쓸리겠으니 시련이 무수할 터요…….
배태된 아이의 잘못이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너는 왜 딸이어서 어미를 힘들게 하느냐 원망하는 자신이 싫었다. 축복으로 태어나야 할 생명에게 존재를 부정하고파 하는 무정한 어미여서, 심장이 에이는 고통이 슬펐다.
어미의 배에 손을 모아 입을 댄 작은 딸이 속삭였다. 동생아, 어서 나와 나랑 놀자. 여긴 꽃이 많아.
두 팔로, 두 딸을 안은 여자의 숨이 물기 젖어 내쉬어졌다.
나를, 용서해주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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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대로에 활기가 가득하다.
원영부인-관료의 직위에 따른 부인의 품계. 문주를 이른다.-은 녹옥으로 장식된 요대를 하나 들곤 이리저리 살피는 눈길이 부드러웠다. 아들을 대동하여 나선 부인이 퍽 쾌활한 모양으로 이것 저것 집어드는 모습은 즐거움만 가득해 보였다.
"이것과 저기 청옥으로 만든 것으로 하겠소."
재빨리 물건을 포장하곤 내미는 주인의 얼굴이 날처럼 밝았다. 귀부인과 그의 소생으로 보이는 공자가 돌아서는 뒤로 인사를 하는 목소리도 더러 높았다.
천천히 저자를 걷던 부인은 또다시 한 곳에 멈추어섰다. 빛을 반사하는 비단이 곱고, 꽃다운 처녀들이 모인 곳. 저마다 장신구를 하나씩 집는 그 곳에 멈추어선 부인을, 그러나 운은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당연히 저저들의 것을 보기 위해 멈췄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운은 자신의 고운 저저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문주는 멍하니, 고운 것들을 눈에 온전히 담질 못하고 서성였다. 두 누이를 위해 선물할 것을 고르는 아들의 옆모습이 이상하게 닮아 기묘했다. 가슴에 깊게 품은 것이 너무도 잔인한 사실이어서 평생을 내어 말하지 못할 진실 하나. 문주는 가슴이 아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처녀들을 자리에 앉히고는 함을 열어 보석과 지환 등을 보여주는 소녀가 분주했다. 문주는, 소녀의 눈과 입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어머니, 지은 누님은 이것이 좋겠……어머니?" "……."
시선을 빼앗겼던 모친이, 그러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이었으나 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자신이 멋쩍어 웃었다. 모친이 이따금 깊은 사념에 빠지는 모습을 보아온 적이 많은 까닭이었다.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구태여 묻지도 않았다. 알 수 없으나, 물어선 안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저기, 이리 와보겠어요?" "예?"
저들끼리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여자들의 앞에 서 있는 소녀를 문주가 손짓하여 불렀다. 이연, 이라고 했나? 들은 이름을 되묻는 목소리가 눈치 챌 수 없게 떨렸다. 그러나 운은 미세한 파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내부로 들어선 역광에 문주의 얼굴이 그늘 졌으나 그것이 그저 그 뿐인지 간파하지 못한 운이 혼란스러움에 소녀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그런 눈빛으로…. 때때로 깊이 침잠되는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는 것 같이. 그녀의 눈이 멍울지는 눈물인 듯 했다.
"내게, 딸들이 있어…무엇으로 해야 할까 고민이 되어 불렀어요."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부인. 신분이 낮은 아이에게 존대라뇨. 이연아, 이분은 원영 부인이시다."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는 소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던 문주는 겨우 늘어선 패물들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네가 한번, 골라 보겠니? 말하는 얼굴 곳곳에 다정함이 묻어 이연은 숨을 들이켰다. 자신은 갖지 못한 진주와 녹주석, 석류석 등의 것들을 내보이는 손이 이상하게 달달 떨렸다. 목덜미가 뜨겁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슬퍼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것. 이것도 하나 하겠소."
이것 저것 집어보던 손이 진주잠과 청옥지환을 고르곤, 마지막으로 연꽃이 그려진 화각빗을 집었다. 이보시오. 이것 값좀 치르려 하는데…. 비단을 고른 손님이 들어서자 주인은 이연을 보냈다. 일어서는 소녀를 따라 문주의 고개도 돌아갔다. 운은 의아히 모친을 바라보고, 이어 그녀의 시선이 닿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묘하게도 닮은 구석이 있는 느낌이었다. 자신과는 다른, 그러나 어머니와 닮은.
"이 빗은, 이연, 그 아이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니…." "예? 아, 예. 알겠습니다, 부인."
빗살을 두어번 매만지곤 넘기는 손길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가자, 운아. 가자꾸나…. 이내 황급히 자리를 뜨듯 발을 돌리는 것도, 단정히 묶었던 소녀의 목덜미에 드러난 상처로 가 닿던 눈길도 떨쳐지지가 않았다. 어머니의 행동에는 무엇인가 간절히 보호하고픈 느낌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속이 불투명해 운은 숨이 막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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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을 건네받은 소녀는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치맛 자락을 겨우 눈에 담았다. 빗살을 매만지는 손끝이 이상하리만치 따스했다. -
: 출생의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Hint:딸은 아들이 되고, 아들은 딸이 되었죠. |
첫댓글 사극되게 좋아하는데 요즘은 잘 안올라오더라구요 얼마전에 다른글을 정주행하고 다음편을 기다리는중에 새로운 사극이 올라왔네요 ^^ 뭔가 글표현이 되게 고와요 ㅎㅎ 프롤로그 처음시작하는부분도 그렇구........출생의 비밀로 운과 이연이 바뀌고 이연이 프롤로그에 죽은 황제의 반려가 될사람인가봐요 맞나요?ㅎㅎㅎㅎ뭔가 새드앤딩이 예정되있는거같아 서운하지만..ㅠㅠ 잘볼께요 ㅎㅎ
엔딩이 보여 서운하시죠^_ㅜ하지만 서운하지만은 않은 결말(?)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댓글 정말 오랜만에 쓰네요 윗 분 말씀대로 고운 문체가 맘에 듭니다. 성실 연재 부탁드릴게요^^
사실 너무 글이 늘어지는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칭찬 감사드려요^^~댓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