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불모 동천(洞天)
더위가 정점에 이른 팔월 초순 주말이다. 공단과 주거 지역이 혼재한 창원에선 팔월 첫째 주는 직장인들 휴가 기간이다. 시내 상가도 덩달아 문을 닫고 휴무에 들었다. 이즈음 주말 전후 평일 아침 시내 도로 출근길은 차량도 뜸해 소통이 원활함은 익히 알고 있다. 공장들이 일시에 조업을 중단하니 전력 소비량도 줄어 당국에선 간당간당한 예비 전력도 시름을 놓는다고 들었다.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어 더위를 식힐 만한 곳을 찾고 있다. 일전 도서관에서도 하루를 보내기도 했으나 열람석을 개인 서재처럼 연일 홀로 차지하려니 사서에게 눈치가 보였다. 그제는 동선이 제법 먼 상점령을 넘어가 장유계곡이 발원하는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나왔다. 어제는 불모산동 저수지 안쪽으로 들어 불모산터널 입구에서 가까운 계곡으로 올라 더위를 식히고 왔다.
팔월 첫째 토요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불모산 계곡을 찾아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섰다. 집 근처 정류소에서 불모산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차량 소통이 원활한 간선도로와 주택지 이면도로를 번갈아 가며 종점 불모산동에 닿았다. 20여 년 전 불모산동 저수지 둑 아래 살던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떠나고 지금은 공영버스 차고지로 바뀌었다. 문득 그 당시 모습이 떠올랐다.
저수지 안쪽 기축골은 전부터 살던 주민들이 그대로 눌러살아 시골의 원형질이 보존된 곳이기도 했다. 계단식으로 벼농사를 짓던 논은 밭으로 바뀌었다. 모두 과수원이나 채소를 가꾸는 텃밭으로 되었다. 넓은 산자락을 품은 용제봉에서 흘러온 물이 풍부해 벼농사에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어느 시점부턴가 모두 밭으로 바뀌었다. 과수나 채소 경작이 벼농사보다 수익이 나은 듯했다.
저수지 안쪽 텃밭 구역에서 닥풀을 가꾸어 노랗게 피운 꽃이 아침 햇살에 아름다웠다. 닥풀꽃은 아욱과 한해살이로 여러해살이인 부용꽃이나 접시꽃과도 닮아 보였다. 나는 올여름 불모산동 저수지를 찾아와 처음 보게 된 닥풀꽃은 귀화종으로 금화규나 황촉규로도 불리는 비슷한 꽃이 몇 가지 되는 듯했다. 약용이나 관상용으로 가꾸고 뿌리는 점액질이 있어 한지 재료로 삼는단다.
계곡에서 흘러온 물길이 저수지로 모여드는 개울 건너 산비탈도 개간이 되어 텃밭이었다. 농로를 지나 불모산터널과 가까운 산기슭으로 들어 상점령에서 오는 숲속 길과 합류해 성주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등산로를 벗어났다. 전날 다녀온 인적 끊긴 계곡의 물웅덩이를 겨냥해 숲을 헤쳐 올라갔다. 어제 머물다 나온 물웅덩이보다 아래에 수량이 더 많고 이상적인 알탕지가 나왔다.
올여름 들어 몇 군데 물웅덩이를 찾아 몸을 담갔다. 멀게는 의림사 계곡으로 가고 용제봉 기슭도 찾았다. 장유로도 넘어가 불모산이 화산으로 뻗친 계곡에도 알탕을 하고 왔다. 엊그제는 상점령을 넘어간 계곡으로 들었다. 불모산터널에서도 거기 말고 다른 골짝 물웅덩이를 찾아 몸을 담갔다. 용추계곡이나 달천계곡은 물웅덩이가 있어도 조건이 충족되질 않아 알탕을 하질 못했다.
개울을 건너 상점령에서 오는 숲속 길을 따라 걷다가 개척 산행을 감행해 부엽토가 쌓인 바위 더미 구간을 올랐다. 낭떠러지 곁으로 나가 절벽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섰다. 태초엔 모가 났을 바윗돌은 오랜 세월 흘러간 물살에 둥글게 마모가 되거나 평평해져 있었다. 배낭과 함께 옷가지는 훌훌 벗어 던지고 투명한 웅덩이에 몸을 담그니 시원함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사방은 우거진 활엽수림이 에워싼 벼랑이고 맑은 물이 흐르는 그윽한 계곡이라 바깥에서 찾아올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설악 백담계곡에 견줄 정도야 되겠느냐마는 웅덩이를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몸을 담갔다가 밖으로 나와 물기를 말렸다. 바깥 사정이야 관심도 없고 마음을 두지 않아 옷가지와 함께 던져둔 휴대폰은 착신음이 울려도 못 들은 척하고 외면해 버렸다. 불모 동천에서. 23.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