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문화도 약이 된다
요즈음은 계절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여름인가 싶으면 눈이 내립니다. 계절의 변화가 불분명해지니까 삶의 패턴도 특별한 변화가 없습니다. 여름 날씨 같다고 해서 반소매 옷을 찾거나, 영하의 날씨라고 해서 속옷을 두둑하게 껴입지 않습니다.
젊은 층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겨울에도 날씨가 포근해지면 반바지에 반소매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며 편의점에 들락거리거나,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찾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일거리가 없었습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만화책이었지만, 워낙 산골이라서 만홧가게에도 신간이 두어 달에 한 번씩 들어왔습니다. 볼만한 만화책이 없으면 종이에 만화 주인공을 그립니다. 그마저 싫증이 나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밖으로 나갑니다.
아이들만 집에서 소일거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종일 낮잠만 잘 수 없고, 술잔만 기울이고 있을 수 없으니 밖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어른들 대여섯 명이 양지쪽 벽에 기대어 해바라기를 하며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바지저고리에 솜을 두툼하게 넣은 차림이거나, 미군 군복을 까맣게 염색한 재킷 차림으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눕니다.
“미끄러질라, 찬찬히 걸어가라.”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기라도 하면 점잖게 충고를 하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고리 양 소매에 손을 넣고 충고를 하시는 분들의 나이가 40대 정도였습니다.
회갑이라고 정희 아버지 등에 업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던 정희 할아버지는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는 61세였습니다.
학교에 낼 잡부금을 주지 않는다고 사립문 앞에서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찬물을 뿌리며 학교 가기 싫으면 산에 나무하러 가라고 악다구니를 치시던 어머니들의 나이는 30대였습니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에 시집을 가서 연년생으로 낳은 4남매, 혹은 6남매의 자식을 키우느라 등골이 휘던 어머니들의 나이가 30대였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노을이 질 무렵 지게에 솔잎을 한짐해서 지고 내려오는 동네 형들의 나이는 10대 중반이었을 겁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숨기고, 봄날이면 나뭇단에 꽂아 온 진달래 한아름을 동생뻘 되는 아이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늙은이를 칭하는 은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서 ‘꼰대기질’이라고 하면 현재 사정을 잘 모르고, 잘난 척 아는 척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엄마 말 안 들었다가는, 엄마 죽으면 그때는 울고짜고 해 봐야 소용없구먼.”
30촉짜리 알전구 밑에서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꼰대 말로 들려서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두어 달 후 지하철을 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지처럼 보이는 노파의 양쪽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문득, 저분이 내 어머니라면 당장 옆자리에 앉아서 손을 꼭 잡고 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솟구쳐도 어머니는 돌아오시지 못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문 시간에는 무조건 펜으로 글씨를 써야 하는 한문 선생님의 말씀도 꼰대 말로 들려서 만화만 그리며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취직을 해서 공문을 쓸 때야 한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한문 시간만이라도 펜글씨를 정성껏 썼으면 멋지게 쓸 수 있을 텐데 후회를 해도 꼰대는 볼 수 없습니다.
문화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을 합니다. 최근에 개그맨 몇몇이 영양군에 몰려가서 특산물을 먹은 후 지역 비하 발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선배 개그맨의 충고에 MG 세대의 개그 콘셉트를 모르는 꼰대적 충고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욕을 먹는 개그맨으로 우뚝 섰습니다.
유튜브를 본 영상인데, 여중생들이 무인편의점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깨트렸습니다. 여중생은 CC 카메라를 바라보며 배꼽 인사로 사과를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깨트린 물건 값을 사과문을 쓴 종이에 싸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걸 본 주인이 감격해서 인터넷에 올렸는데 조회 수가 300만을 가볍게 넘겼습니다.
경험적 충고를 꼰대질이라고 비하하는 젊은 층들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무례한 개그맨들을 키운 부모들입니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꼰대짓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심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여중생의 부모는 꼰대질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 딸의 작은 행동이 300만이 넘는 네티즌들의 갈채를 받게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른들이나, 형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던 문화였습니다. 지금은 꼰대질하면 욕을 먹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꼰대라는 비난이 두려워 수십 년만의 깨달은 세상의 이치를 후대들에게 전수해 주지 않는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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