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오마주
김대호
저녁 검문소는 속 깊은 울음 끝자락에 있다
터지는 속을 지나고 울음을 통과해야지 나타나는 검문소
나는 검문소 앞에 내용 없이 서서 살아온 날짜들을 세어본다
지독하고 때로는 지루한 낮과 밤들
커다란 편지봉투에 담기고 싶었다
산 채로 어디론가 배달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었던 것
저녁은 내게 신앙
기도하고 낮추고 도망칠 수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바람의 유언을 들으며 동절기를 견디곤 했다
유통기한 지난 희망을 안고 살았다
저녁이 더욱 촘촘해지면 물 샐 틈 없는 어둠이 온다
어둠은 저녁의 유언을 밤새 건너편으로 옮긴다
그 건너편
아침이 도착하면
유언으로 읽히는 저녁의 유충들은 햇빛 속에서 반짝인다
다시 저녁이 올 때까지 환한 빛에 자신을 숨긴다
길도 없는 길을 걸어 다시 저녁이 된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김대호 시인
1967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 2012년 상반기 《시산맥》 신인상 당선. 시집으로 『우리에겐 아직 설명이 필요하지』(걷는사람, 2020)이 있음. 2019년 천강문학상 수상.
[출처] 저녁 오마주 - 김대호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68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