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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서양인이 뽑은 아시아 미녀 박찬숙
박찬숙(1959년,190cm) 선수는 1975년부터 대표선수로 활동합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한 것은 박찬숙 선수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학창시절 박찬숙 선수의 국가대표 활동 대부분은 관광객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국제 대회 가서 출전은 거의 하지 않고 대회에서 뽑은 미녀 선수로 선발 되는 쾌거를 이룹니다. 언니들이 너무 져서 분해하는 바람에 어린 박찬숙 선수는 이 상을 받고 너무 좋았지만 담담한 척 했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박찬숙 선수의 190cm 라는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유연성이 매우 좋은 선수였습니다. 박찬숙 선수가 분명 동양인으로는 신장 대비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였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렇게 뛰어난 운동능력도 큰 신장도 아니였습니다. 이미 60 년대 부터 190cm 대 선수가 즐비 했던 곳이 바로 여자 농구였습니다. 평균신장부터 20cm 이상 큰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팀들은 2m가 넘는 센터들을 60년대부터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센터들을 상대로도 박찬숙 선수가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유연성에 있습니다. 2m가 넘는 선수를 상대로 포스트업으로 마무리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유연성을 바탕으로 직선적으로 올려 놓는 슛이 아니라 유연한 상하체를 이용 동선을 크게 그리며 슛을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아쉽게도 박찬숙 선수의 전성기는 79년부터 83년 까지입니다. 그 후에는 부상 등으로 신체능력과 운동능력이 예년만 못해 이런 멋진 마무리를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박찬숙 선수는 59년 생입니다. 84년 쯤 부터 신체능력이 예년만 못 했습니다. 당시 여자 선수들은 빨리 은퇴를 하는 경향이 있어 신체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운동량을 줄이는 것이 대세라 신체능력과 운동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박찬숙 선수는 당시 선수로는 정말 크고 운동을 악바리처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부터 박찬숙 선수를 보신 분들은 예년만 못하다는 소리를 많이 하셨습니다. 키가 큰데도 유연하고 센스가 정말 좋은 선수였는데 유연성이나 스피드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특히 센터 쪽 선수는 신체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참 선수생활하기 힘듭니다. 센터가 기초기술로 먹고 산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이죠. 남자와 달리 여자의 경우에는 20대 중후반이 되면 신체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운동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참 힘듭니다. 20대 중후반부터 운동량을 더 늘리는 여자 선수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여자농구 이야기들은 직접 눈으로 보기 보단 들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고 윤덕주 여사와 박신자선생의 이야기는 거의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이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Ⅴ. 괴물 성정아와 그녀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영원한 골밑 파트너 조문주
성정아 (1966년,184cm) 선수와 조문주( 1965년,184cm) 선수, 그리고 최경희(1966년,166cm) 선수는 빅3를 구축하며 중국 여자 농구 사상 최강이였던 팀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아시아 정상권이라는 한국여자농구의 자존심을 지킨 선수들이였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 했던 선수는 삼천포의 괴물 성정아 선수였습니다. 삼천포 여자 농구에 대해 아직도 큰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여자 농구에 수많은 인재들을 끊임없이 배출해 준다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기대할 수 있도록 어린 선수들의 기초기술을 철저하게 잘 다듬어 준다는 것, 그리고 팀플레이에 대한 좋은 습관을 만들어 준다는 것 때문입니다. 삼천포의 수많은 스타 중 괴물 성정아선수야 말로 최고였습니다. 동향인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성정아 선수의 경기력은 정말 황홀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어릴 때 미숙함 속에 묻어 나오던 그 어마어마한 운동능력과 억척스러움 , 그리고 작은 동양선수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을 이용한 농구는 정말 꿈 같았습니다. 성정아 선수가 전국민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게 된 때가 바로 LA 올림픽입니다.
LA 이전 80년대 초반의 상황을 먼저 대충 이야기 하겠습니다. 70년대까지 상대전적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었지만 80년대 들어 오면서 중국은 확실히 쉽게 볼만한 상대가 아니였습니다. 중국 스스로도 이제 우리를 넘어 세계로 나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오면서 우리에게 중국의 홈이라고 생각되어지는 홍콩에서조차 대패를 당하게 되면서 중국여자 농구는 엄청난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중국은 74년 부터 아시아 무대에 모습을 들어냅니다. 남자농구가 거의 저항 없이 아시아 왕좌를 차지한 것과 달리 여자농구는 우리여자 농구에게 계속 발목을 잡힌 것이 결국 이런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게 됩니다. 중국 각지에 수많은 장신 인재들을 모아서 거인류 센터와 장신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을 만들게 됩니다. 하드웨어 상으로는 당시 세계 농구의 지배자였던 소비에트 연방을 따라가면서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우리의 여자 농구 장점을 흡수한 중국적인 농구팀을 만들게 됩니다. 이후부터 우리는 중국을 상대로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박찬숙 선수가 있었지만 포악한 진월방이 있던 중국이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골밑파트너였습니다. 분명 박찬숙 선수가 골밑 파트너 복이 있는 편이였지만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180을 넘지 못했습니다. 초기 조영란 선수를 제외하면 중기 차양숙세대 후기 김화순까지 전부 국제전 키로는 작은 편이였습니다. 진월방의 파트너였던 유청이나 송 ... -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지송 유청은 유퉁하고 비슷해서 기억하는데...^^;;- 하여튼 진월방의 파트너들은 190이 넘는 선수들이였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크게 작용 했습니다. 특히 진월방은 더티함의 대명사였습니다. 툭하면 팔꿈치 내려 찍기, 그냥 주먹으로 얼굴 때리기등 때문에 우리 빅맨들이 진월방 근처에 가는 것을 참 싫어했습니다. 높이를 사용하는 능력은 떨어졌지만 이런 더티한 플레이 때문에 골밑에서 상당히 고전하면서 LA 직전까지 중국에게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83년 프레 올림픽에서 중국에게 대패를 당하고 6위를 기록하면서 올림픽 티켓을 획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개최국 미국을 제외한 5개 팀을 선발하는 대회였는데 6위로 대회를 마감하면서 아쉽게 올림픽 첫 진출이라는 꿈도 날아가게 됩니다. 76년 부터 여자 농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서 처음으로 올림픽 진출에 꿈을 가졌던 여자 농구였지만 이렇게 그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80년 미국등의 불참에 대한 반발로 소비에트 연방이 84년 올림픽을 불참하게 되면서 당시 6위였던 우리여자농구는 극적으로 올림픽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여자 농구도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박찬숙 선수와 몇몇을 제외한 기존의 주축 선수들 중 대부분의 선수들 대신 어린 선수들을 대표팀에 합류시킵니다. 이 명단에 당시 고등학생이였던 성정아 선수가 가장 어린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괴물 성정아선수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의 주전 4번으로서 믿을 수 없는 활약을 보여 주게 됩니다.
진월방의 더티함 때문에 박찬숙선수는 진월방을 밀착 수비하는 것을 꺼려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부상도 많이 당해 83년 부터는 진월방을 수비하면 거의 떨어져서 수비할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게 됩니다. 특히 부상과 나이로 인해 신체능력과 운동능력이 많이 떨어진 박찬숙 선수가 진월방을 수비한다는 것은 우리팀 입장에서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였습니다. 이 때 혜성처럼 나타난 어린 괴물 성정아 선수가 진월방을 밀착 수비합니다. 프로필 상으로 184cm로 나와 있지만 실제 경기장에서 보신 많은 분들이 180cm 가 겨우 넘을 것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성정아,조문주 선수는 크지 않았습니다. 프로필상 187cm로 나와 있던 정은순 선수와 4~5cm 정도 차이가 났던 점과 정은순 선수의 실제 신장이 185cm임을 감안하면 180 ~181cm 정도가 성정아,조문주 선수의 실제 신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 신장이 188.7 ~ 188.9 cm 였던 박찬숙 선수도 프로필 상으로 216cm 였던 진월방과의 키 차이가 어마어마 했는데 성정아 선수와의 차이는 그야 말로 초등학교 저학년과 대학생 같은 느낌 마저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힘의 농구를 구사하며 어마어마한 운동능력과 끈질기게 상대를 제압해 나가던 성정아 선수의 수비는 진월방을 무득점으로 막으며 당시 이제 막 농구를 하기 시작한 정하이샤와 교체되는 수모를 안겨 주게 됩니다. 물론 아직 농구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정하이샤는 성정아 선수의 적수가 아니였습니다. 중국 여자 농구를 세계 4강 전력으로 올려 놓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두 선수가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한 상대가 겨우 19살의 180cm가 조금 넘는 선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지.. 괴물 성정아의 끝을 알 수 없는 모습은 다음 경기였던 미국전에서도 나타납니다. WNBA 최고 스타이며 김화순 선수와 대회 득점왕 경쟁 중이던 미국의 에이스 세릴 밀러 선수의 페네트레이션을 기어이 따라가 블락하는 등 전담 수비하는 내내 세릴 밀러 선수를 따라다니면서 10 점대의 점수로 묶는 말도 안되는 수비력을 보여 줍니다. 물론 김화순 선수에게 대회 득점왕이라는 아주 멋진 선물도 해 줍니다. 이 끝을 알 수 없는 괴물의 모습을 어린 나이에 보면서 너무나 흥분했던 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다시 그 경기들을 보게 되었을 때 그녀의 엄청난 경기력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신께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그녀의 재능을 시샘한 것일까요? 그녀는 실업 진출 이후 끊임 없는 부상으로 제대로 된 모습을 거의 보여 줄 수 없었습니다. 국내 대회의 반 가까이 출전 못한 일은 다반사였고 국제대회조차도 제대로 된 몸상태로 출전한 것이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몸만 제대로면 그녀만 출전했으면'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게 만들었던 국제대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특히 조문주,최경희 선수가 있던 그 시절에는 더더욱 그녀에 대한 아쉬움으로 국제대회들을 봐야 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조문주,최경희 선수의 그 믿을 수 없는 활약으로도 경기를 아쉽게 내 주어야 할 때에는 그녀에 대한 아쉬움이 극대화 되는 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이 정하이샤로 바르셀로나에서 은메달을 딴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많은 선수입니다.
조문주 선수는 대기 만성형입니다. 엄청나게 기대를 받는 선수는 아니였는데 어느 순간 엄청난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신인상도 받고 제법 대형 센터라는 말들은 하기는 했지만 여자농구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 같은 기대는 거의 없는 선수였습니다. 그냥 어느 정도 하는 센터중 하나일 뿐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 성정아 선수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박찬숙 선수 이후 골밑을 든든하게 책임져줄 선수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제일 강점은 역시 그 어마어마한 보드장악력입니다. 성정아 선수와 같은 키인데도 지금 하은주선수가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보드 장악력을 보여주던 선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성정아 선수는 운동능력이 엄청나고 투지도 좋고 삼천포 출신답게 힘의 농구를 구사하면서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선수였습니다. 전성기 시절 보드 장악력 그리고 수비능력만 보면 하은주선수가 지금 여자농구에서 보여 주는 것 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문주 선수는 득점머신이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득점력이 좋은 선수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득점력이 좋아지면서 농구대잔치시절에는 최경희 선수 다음으로 평균득점이 높은 선수가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던 것은 두 선수의 대결은 창과 방패의 대결인데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반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됩니다. 성정아 선수가 화려한 피벗을 보여주며 조문주 선수의 수비를 뚫을려고 합니다. 공격력은 별로라고 말하던 성정아 선수가 조문주 선수를 앞에 두고 어마어마한 피벗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수비력이 별로라고 말하던 조문주 선수가 말도 안 되는 보드 장악력을 선 보이며 내곽을 철통 같이 지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농구대잔치 시절 보여 주던 두 선수의 대결은 전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 되어 졌습니다. 얼마전 H님과 보러 간 신한 대 신세계 경기에서 신세계의 박하나 선수를 보면서 경기 스타일 마음에 든다는 말을 계속 한 적이 있습니다. 죽어라 골밑만 파고 있는데 결국은 거의 다 실패 인데도 계속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문주 선수는 어떤 면에서 높이를 이용한 공격을 했습니다. 점퍼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성정아 선수는 높이를 이용한 공격이나 점퍼가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움직임이 많은 선수였습니다. 조문주 선수가 농구대잔치 평균 득점 2 위였지만 국제 대회에서 거의 개인공격을 잘 못 하는 편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곽공격의 핵은 성정아 선수였습니다. 5개 중에 하나도 제대로 성공 못하면서 죽어라 상대 내곽을 파고 듭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피벗이 환상적으로 변합니다. 원체 빠른 선수인데다 힘과 억척스러움을 겸비한 선수라 계속 파고 드니 상대가 죽을 상을 하면서 막기를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농구광과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던 올드 팬께서 ' 성정아의 진가는 공격에서 나오고 조문주의 진가는 수비에서 나온다' 는 말을 하셨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잘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두 선수가 보여 주던 경기 모습은 성정아 선수는 자유투 라인쯤에서 내곽을 아예 자기가 다 점령하고 상대 선수들이 들어 오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보이던 선수고 조문주 선수는 미들과 골밑에서 어마어마한 득점을 퍼 붓던 선수인데 이런 이야기를 맞다고 생각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 때입니다. 올드팬의 말씀을 이해 하게 된 경기가 바로 92년 프레 올림픽 때 였습니다. 경기를 보는데 답답했던 것이 공격이였습니다. 농대 평균득점 1,2위가 있는데도 수비는 그럭저럭 되는데 -조문주 선수가 이렇게 수비를 잘 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보드 장악력 - 공격이 안 됩니다. 내곽을 파고 드는 선수가 분명 있었지만 성정아 선수의 존재가 정말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상대 센터를 붙혀서 공격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상대 내곽에 있는 선수 모두가 집중하고 막으려고 하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격이 영 풀리지 않았습니다. 틈이 없어니 먼거리 점퍼와 어쩌다 만든 오픈 미들 점퍼 ... 그후 시드니를 보면서 정은순선수가 레슬리를 비롯한 강팀의 센터들에게 그렇게 블락을 당하면서도 골밑으로 죽어라 들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 모습이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공을 가졌을 때 그녀의 패스가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패할지라도 안으로 치고 들어 간다는 것을 상대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성정아 선수를 보았기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안으로 치고 들어 가는 것은 아무리 정은순 선수의 광팬이라고 해도 성정아 선수가 한 두수 위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은순 선수는 국제전에서 오픈 미들 점퍼도 했지만 성정아 선수는 오로지 치고 들어 가는 것만 했습니다. 조문주선수가 옆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도 있지만 미들 점퍼만 생각하면 정선민선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니 더 낫죠.
두 선수의 수비 호흡은 환상이였습니다. 한 선수가 상대 엘리트 빅맨을 몸으로 버티며 밀착 수비하면 다른 선수는 내곽을 장악하고 어마어마한 보드 장악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문주 선수가 밀착수비하면 성정아 선수가 헬프와 내곽을 장악하고 반대로 성정아 선수가 밀착 방어하면 조문주 선수가 헬프와 내곽을 장악하고 정말 보기 좋은 내곽수비였습니다.
개인기량만 순수하게 놓고 본다면 정은순 선수가 두 선수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은순 선수의 광팬으로서 이 정도는 올드팬분들이 양보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장과 하드웨어적으로도 정은순 선수가 더 뛰어난 선수였고 기술적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정은순 선수가 더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력을 말씀하신다면 우리 여자 농구 빅맨에게 가장 중요한 팀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두 선수를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걸리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 선수를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어떤 역할이 주어지더도 내곽에서 그 역할 이상을 해 내던 두 선수이기 때문에 더더욱 할 말을 없게 만듭니다. 정은순 선수는 그냥 센터죠. 좋은 한국형 전통센터 조합하기 참 힘든 선수입니다. 정은순선수에 맞추어서 내곽을 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드니 때도 정은순 선수의 체력 안배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백업이 문제가 아니라 꼭 코트 밖에 나와서 체력을 안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할을 바꾸어 조금 덜 몸싸움이 가능한 자리로 가서 체력을 안배할 수도 있는데 이 것이 안 된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몸싸움이 가능한 자리가 아니면 그 역량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http://www.jumpball.co.kr/news/news.php?op=view&cid=74&seq=14 → 84년 LA 올림픽 관련 점프볼 기사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lj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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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임팩느는 위의 언급한 선수들 보다는 한수 하래였지만, 태평양화학 박찬숙의 대항마 한국화장품의 김영희선수도 생각이 납니다. 지금 거인병으로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