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비가 내린다는 전설의 산 청우산을 가다
(기행 수필)
루수/김상화
희망을 실은 봄바람이 불어온다. 엷은 햇살은 봄을 맞이한 이 땅을 아름답게 꾸며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봄은 잎과 꽃을 피울 수 있는 적당한 온도도 남쪽에서 바람에 실어 왔다. 나무들은 봄이 되면 저마다 햇볕이란 자양분을 받아 자기 몸을 성장시키고 DNA를 번식시키려고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겨우내 자란 봉우리를 터트려 연초록의 나뭇잎이 뾰족이 나오기 시작한다. 또 후세를 번식시키려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자마자 꽃망울을 잉태하기 시작한 진달래는 봄을 장식하려고 처녀 젖가슴처럼 예쁘게 볼록 솟아 올랐다. 그 꽃봉오리가 지금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진순이를 순산하기 위해 꽃망울이 이토록 부풀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꽃봉오리를 바라만 보아도 대견하다. 성미 급한 놈은 봄이 왔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헤벌레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이렇게 봄은 대지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봄은 농부들에게도 희망을 준다. 그 댓가로 농부들은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분주하게 일을 한다.
화려한 차림을 하고 등장한 4월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이 낳은 시인 "엘리어트"는 "황무지(荒無地)"라는 시(詩) 구절에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이렇게 말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었다.
망각의 눈(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슈타른베르가제 호수를 넘어
여름은 소낙비를 몰고 갑자기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회랑에 머물렀다가
햇볕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봄비가 내리는 4월은 약간의 생명만 유지하며 망각과 무지에 갇혀 살고 싶은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싹을 틔우길 원치 않는데 자연은 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잔인한 4월이란 말은 한편 생각해보면 추운 겨울을 꿋꿋이 이겨내고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의 아름다움이 마치 잔인하리만큼 인내와 고통을 참고 피었다는 뜻일 것이다. 잔인한 고통도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피어난 꽃의 생명력과 화려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어트"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지만 얼마나 아름답기에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 필자 역시 4월은 가장 행복한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잠자고 있던 식물들이 솟아나기 시작하고, 꽃이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하면 그윽한 향기까지 뿜어내주니 얼마나 행복한가! 거기다 새들은 봄이 왔다고 아름다운 소리로 조잘대고. 개울에 얼었던 얼음을 깨고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을 보노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낭만이 어디 있을까! 해피 가족은 오늘 이러한 낭만적인 봄을 만끽하며 일 년의 무사고를 바라는 마음에서 산신령께 잘 보살펴 달라고 예를 갖추어 시산제를 지내러 가는 날이다. 들어보지도 못한 "청우산"이라고 하는 곳으로 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약간의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가 하면 찬 공기가 사정없이 몸을 파고든다. 서울에서 약 2시간 정도 차로 달리면 우리가 시산제를 지낼 "청우산이 가평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청우산은 서울에서 경춘국도를 따라 약 60km 거리에 있다.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이 일품이라 하는 청우산은 불기산, 깃대봉, 대금산 능선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다. 대부분 2-3개의 산을 묶어 연결 산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청평에서 은고개를 넘어 조종천을 건너자마자 있는 교통안내소(검문소) 삼거리에서 현리 쪽으로 37번 국도를 따라 약 4km 거리에 이르면 덕현리가 나온다. 이 산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0년 2월 서울시 산악연맹이 제9회 설제(雪祭) 행사를 이산에서 치루고부터였다. 당시 동원된 많은 버스가 주차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시산제를 지내기도 좋고, 교통편도 편리해서 수도권 당일 산행 대상지로 부상한 것이다. 버스는 덕현리 마을 느티나무 유원지 가든 앞에 멈췄다. 이곳에서 시산제를 맞이고 산행을 할 것이다. 식당 옆 공터엔 마침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추위도 피할 겸 비닐하우스에 자리를 깔고 산신령께 드릴 제상을 정성 들여 차려 놓았다.
시산제가 시작되었다. MBC에서 수사반장으로 맹활약을 했던 탤런트 김한일 회원이 사회를 멋들어지게 본다. 제주인(祭主人) 이상갑 회장이 무릎을 꿇고 잔을 올리고 3번 절을 한다. (시산제는 여느 제사와 달리 절을 3번 한다.)뒤이어 필자가 축문을 읽었다. 해피 가족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는가 하면 신앙인은 가볍게 목도를 한다. 이렇게 정성껏 제를 올리고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오솔길 양옆으론 잣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었다. 아직 추운데도 푸르름이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잣나무들은 반갑다고 향을 토해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새들의 조잘대는 아름다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까만 털옷을 입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재주를 부린다. 아마도 외로웠나 보다. 우리를 보고 반갑다고 이렇게 서커스 하듯 곡예를 하며 반긴다. 그 또한 일품이다. 자연은 어디를 가든 인간과 공존을 한다.
청우산(靑雨山)은 왜 청우산(靑雨山)이라 했는가? 이산은 과연 푸른 비가 내리는가? 그럼 얼마나 맑고 고운 비가 내리기에 청우산(靑雨山)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었을까?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청우산(靑雨山)의 높이는 619.3m이다. 산 전체의 절반 이상이 잣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섰다. 그래서 늘 푸른 산이라 청우산(靑雨山)이라 했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아도 의문이 풀리지를 않는다.
의문을 품고 올라가다 보니 양지바른 바위틈에서 연분홍색의 진달래가 아홉 공주의 꽃을 피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아름답고 예쁜지 보기만 해도 행복이 넘쳐 흐른다. 그 예쁜 얼굴에 행여 땀방울이 묻을까 두렵기도 하고 또 손자욱이 날까 두려워 만져 보지도 못했다. 서로 반가움을 참지 못해 미소로 인사를 나눴다. 그러곤 눈을 깜박이며 수화를 하듯 서로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도 했다. 때로는 애인처럼 윙크하며 미소를 짓는다. 메마른 가슴을 아름다운 진순 이의 미소가 촉촉이 적셔준다. 그러고 나니 훈훈한 온기가 몸 전체에 퍼진다. 이렇게 진순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따사로운 미소가 흐른다. 눈으로 대화를 하는 순간 정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헤어지기가 싫은지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한참을 망설이다 윙크 한번 주고받으며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다. 오늘은 진순이란 당신을 본 것만으로도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다. 이렇게 서로가 정만 듬뿍 주고 기약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헤어지기 섭섭해 무거운 발길로 오솔길을 걷다 보니 계류(溪流)가 나온다. 왼쪽으로 2백m가량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계류(溪流)를 건너야 한다, 조금 걸으니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있다. 그 갈림길에서 계류(溪流)를 따라 올라가니 왼쪽으로 또 계류(溪流)를 건너게 된다. 그때부터 등산로가 파손된 돌이 깔린 길을 약 3백m쯤 오르게 된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끝나면 물이 마른 계곡을 두 번 건너게 된다. 해묵은 잡초가 우거진 둔덕 위로 오르면 수천평 넓이의 분지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약 20여 평의 풀밭으로 이루어졌다. 정상 석이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가냘프게 생긴 정상 석은 묵묵히 우리를 기다렸나 보다. 반가운 나머지 정상 석에 애인 입술을 지그시 깨물듯 향기로운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 나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서쪽으로 축령산과 서리산 능선이 보이고 북으로는 운악산, 청계산, 명지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역시 정상은 어느 산이나 아름답다.
정상에서 청우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녹수계곡의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북서쪽으로 걷다 또 하나의 능선길로 들어서면 된다. 삼거리에서 서북 능선길을 타고 4O뿐 가령 내려오면 잣나무밭이 나온다. 이곳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서면 허름한 농가 세 채가 있는 덕현리 마을이 나온다. 우리가 시산제를 지낸 마을이다. 우리는 이곳의 느티나무 유원지 가든에서 백숙으로 점심을 즐겼다. 이 마을은 개울가에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키가 23m이고 둘레가 5.8m 되는 매우 큰 느티나무다.
해피 가족은 이상갑 회장을 비롯해 오늘 시산제도 잘 지냈다. 또 청우산(靑雨山) 산행도 모두 무사히 맞췄다. 앞으로 해피 가족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산행을 할 것이다. 해피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9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