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MBA 신입생 900명全員 창업 현장에 뛰어들다
케이스 스터디만으로 부족하다는 여론 일자
"학생들 피부 속까지 제대로 된 경영가르쳐 보자" 학장이 프로젝트 기획
창업 기지로 이름난 스탠퍼드大에 도전장
‘FIELD’ 첫 번째 시기
두 달에 걸쳐 ‘워밍업’ 단계, 리더십·팀워크 개발 배워
‘FIELD’ 두 번째 시기
겨울방학 이용해 개발도상국 150개 회사와 소규모 사업 프로젝트 진행
‘FIELD’ 세 번째 시기
아이디어·비즈니스 모델 구체화한 뒤 창업
학교로부터 사업자금 3000달러 받아 시작
창업 아이디어 봇물
病간호 앱·네일케어 파티… 다양한 창작물 잇달아 내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플 때 여러분은 곁에 있어 주고 싶으시겠죠. 그러나 물리적 거리나 시간상 이유로 항상 함께해 주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제가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언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증상은 어떠했는지, 의사와 상담한 내용은 어떠했는지, 약은 언제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다음번 의사와 진료 약속은 언제 잡아야 하는지 확인하고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노트에 직접 쓰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모바일 앱 케어라이트(Carewrite)는 여러분 가족의 진료 기록과 상담 내용 및 매일매일의 의료 기록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획기적 병간호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지난 5월 14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버든홀. 1학년 학생 900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케어라이트 창업자 에바가 전교생을 향한 프레젠테이션을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마쳤다.
10m가 넘는 대형 스크린에 애플리케이션 시연(試演) 동영상이 비쳤다. 그 화면에는 환자의 진료 기록, 주의 사항, 처방전 목록, 그리고 다음 진료 예약 기록과 매일매일의 환자 상태에 대한 기록이 나타났다. 2개월 만에 개발했다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의 기능과 사용 편의성을 보여줬다.
최종 10개 팀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모바일 폰을 통한 투표가 시작됐다. 900명이 휴대전화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와 동시에 투표 결과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10분 뒤 심사위원장과 학장 노리아 니틴 교수가 심사를 마치고 강단으로 올라왔다. "이번 학기의 우승자는 케어라이트입니다." 케어라이트 팀의 에바, 린다, 루크를 비롯한 멤버 6명은 환호하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학생들의 박수가 버든홀을 가득 채웠다.
신입생 900명 전원 창업 실험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설립 90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을 최근 성공리에 마쳤다. 이른바 '필드(FIELD)'. 신입생 900명 전원을 창업 현장에 투입해 진정한 창업자를 가려내는 프로젝트를 일컫는 말이다.
신입생 전원이 창업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전 세계 경영대학원 역사상 최초의 시도다. 창업 기지로 이름난 서부 스탠퍼드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셈이다.
기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커리큘럼은 기업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놓고 토론하고 문제를 푸는 강의 방법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케이스 스터디만으로 부족하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피부 속까지 제대로 된 경영을 가르쳐 보자'는 비전을 바탕으로 노리아 니틴 학장의 리더십 아래 필드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현장 교육을 강조하는 필드는 신입생이 입학하는 9월부터 약 1년간 진행되는데 총 3단계로 나뉜다. 첫 두 달은 리더십과 팀워크 개발을 배운다. 둘째 시기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학교와 연계한 브라질·중국·인도·가나·칠레 등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150개 회사와 실제 소규모 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것이다. 셋째가 실제 창업하는 것이다.
넉 달이 주어지는 셋째 시기가 진정한 성패를 가리는 시기다. 실제 사업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해 사업을 출범시키고 법인을 등록한다. 첫째와 둘째 단계를 통해 동기 학생들의 자질과 인성을 가늠한 900명이 6~7명씩 팀을 각자 조직한다. 치열한 인재 모집 경쟁이 벌어진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보유한 학생, 프로그래밍, 마케팅, 재무 관리 등 필요한 내부 역량을 가진 학생이 주된 영입 대상이 되는데, 다국적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물밑 영입 작업 못지않게 철저한 보안에 부쳐진다. 창업을 하고 나면 각 팀은 초창기 사업 자금 3000달러를 학교에서 받으며, 기업에서 일하는 졸업생 선배들로 구성된 이사회(alumni board)를 통하여 조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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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리아 니틴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장
기업 공개 후 실제 법인 전환
1년 동안 예비 창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는 고(Go) 데이와 기업공개의 날(IPO Day). 고 데이는 창업 팀 조직 후 한 달 정도 뒤에 열리는데, 학생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사업 설명회를 여는 날이다. 가상 주식시장을 만들어 학생들이 가상으로 주식거래를 하도록 한다. 가상 주식 거래는 FinSim(Financial Simulation)이라고 하는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주식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창업 팀에 학교는 사업 자금 2000달러를 더 준다.
마지막은 창업 프로젝트의 최종 평가 날인 기업공개의 날이다. 케어라이트가 10개 팀을 꺾고 우승한 지난 5월 14일이 바로 그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어떤 팀이든 실제 법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여름방학 중에 케어라이트가 미시간 의학대학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향후 환자 400명과 가족에게 시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2위를 차지한 '아월리 너드(Hourly nerd)' 팀은 경영대학원 학생들을 중소기업을 위한 '파트타임 컨설턴트'로 고용한 컨설팅 회사이다. 대형 컨설팅 회사에 용역을 발주하기에는 자금력이 떨어지지만, 외부 컨설팅이 절실한 중소기업을 위해 저렴하지만 고품질의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월리 너드는 투자자들로부터 100만달러를 모았고, 12만달러를 투자해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300여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아월리 너드의 롭 비더만 학생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할 때 매킨지나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는 하버드 선배들의 조언이 많이 도움됐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 중국풍 드레스를 수입한 후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팀도 있었다. 초기 트렁크쇼(Trunk show·제품을 직접 만져보거나 아이쇼핑할 수 있는 고객 초청 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호를 파악해 제품을 효과적으로 선별하는 한편, 학교 친구들을 모델로 드레스를 입은 다양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초기 구매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쿠폰을 발행하여 보스턴 번화가 곳곳에 뿌렸다. 팀은 2개월이 채 안 돼 2000달러 정도를 벌었다. 보스턴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파티와 칵테일을 좋아하는 앤드루는 전문 라운지바와 협업을 통해 칵테일 케이터링 박스인 스털링 박스(Stirling Box)를 개발했다. 한 달에 한 번 진기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조리법과 함께 재료가 배달된다. 대학 시절에 풋볼 선수였던 어느 학생은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 관리 앱을 개발했고, 소비자 회사에서 일하던 학생은 마케팅 경험을 살려 '그보다 더욱 부드러운(Smoother than he was)'이란 자극적이면서 재미있는 메시지를 담은 목욕용품 선물 세트를 개발했다. 이 밖에 인구가 폭증하는 인도 시장을 대상으로 한 결혼 서비스, 미국 내 임상실험을 위한 환자 모집 애플리케이션, 발달 장애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사업도 이목을 끌었다.
창업, 산을 넘었더니 또 복병이 있더라필자 역시 동료 학생 5명과 함께 팀을 꾸렸다. 컨설턴트, 마케터, 군인, 재무 담당자 등 경력은 다양했다. 처음부터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터졌다. 해변이나 공원에서 사용할 선크림, 부동산 시장의 미스매칭을 해결할 부동산 거래 애플리케이션, 여행 비용을 관리해 주는 여행 기록 및 결제 프로그램 등이었다.
우리가 '꽂힌' 아이디어는 네일케어 애플리케이션 개발이었다. 앱을 통해 매니큐어 색깔을 추천해 주고, 근처의 네일케어 살롱을 안내해 주겠다는 아이디어로, 타깃 고객은 20~40대 전문직 여성이었다. 비즈니스 모델은 제품 구매나 네일살롱 예약 시 일정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아이디어 실행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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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신입생 전원에게 창업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에 나온 학생들은 병 간호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인‘케어라이트’를 창업해 교내 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미시간 의대 부속병원의 환자 400명에게 시범 서비스될 예정이다. / 케어라이트 제공
"모바일 기기 화면에 나오는 매니큐어 색깔과 실제 색깔은 다를 것 아니야?" "소비자 불만은 어떻게 해결하지?" "기술적 전문성이 없는데 몇 개월 만에 할 수 있을까?" 어렵게 표적 고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구매 의향이 낮게 나와 팀의 사기가 저하됐다.
서로 좌절하지 말자며 밤을 새워 논의한 끝에 결국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 20~40대 여성들이 여는 파티에 네일케어 전문가를 불러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서비스해 주는 행사를 열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웹사이트 개발과 수요 조사, 다른 친구들은 네일케어 전문가 모집과 디지털 마케팅을 맡았다. 보스턴의 고급 네일살롱인 마니룩스(Manilixe)와 파트너십을 맺고, 두 번에 걸쳐 3~4명의 파티에서 실제 행사를 진행도 해보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큰 복병이 있었다. 그건 바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네일케어를 할 때 기구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감염 우려가 있는데, 만일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 책임을 개인 사업자와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 중 누가 최종적으로 져야 할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네일케어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중개 플랫폼의 방식으로 중개 수수료를 받으면서 간접 고용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다.
팀의 CEO를 맡은 션이 학교에서 선임한 변호사와 선배들에게 법률 조언을 구한 결과, 단기간 내 사업을 안착시키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쉽지만 팀은 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창업 팀 중에는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만, 사업 모델의 지속성 및 수요 검증에 실패한 경우도 많다.
씁쓸했지만, 우린 긍정적인 마음으로 실패도 성공으로 받아들였다. 실제 시장에서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나가는 경험을 통해 향후 성공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인턴 안 하고 사업에 올인필드의 파장은 방학 기간에도 이어졌다. 방학이 되면 컨설팅 펌, 금융회사 또는 대기업 인턴으로 일하던 학생들이 방학을 사업에 헌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공개 날에 최종 10개팀 중 하나에 뽑힌 '스플릿앤고(Split'N Go)' 팀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뒤 계산하기 위해 웨이터를 부르고, 영수증을 확인하고, 다시 카드나 현금을 내고 결제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테이블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한 번에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팀원인 스티브, 세르게이, 그리고 안드레스는 이번 여름 세부 비즈니스 모델을 짜고, 우크라이나 출신 프로그램 개발자와 함께 시범 모델(MVP·Minimum Viable Product)를 개발했다. 케임브리지와 알스톤에 있는 두 레스토랑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고, 추가 고객 확보와 펀딩에 나서고 있다.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던 앨런은 남성을 위한 온라인 옷장 서비스를 시작했고, 아시아의 사모펀드에서 일하던 루양도 중국 가구를 미국에서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하는 사업 모델을 수립해 뉴욕에서 영업 중이다. '필드3'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많은 친구가 실제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니틴 학장은 이렇게 말한다. "필드는 실제 이론과 현장 경험의 간극을 채워주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아는 것을 실제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리더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창업을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친구들에게 실제 창업 기회를 만들어주고,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만으로도 필드는 많은 학생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