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에 기대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정호승 '가을' 전문
우린 모두 인생이란 등산길에서 헐벗고 굶주린 채로 순례 중인 거지꼴의 행인이 아닐까. 오를수록 숨이 가쁘고 들숨과 날숨의 반복에 고통받다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눈물짓다 떠난다. 가을은 지리멸렬한 삶의 언덕에서 잠시나마 먼 곳을 바라보기에 적당한 계절이다. 울창하고 뜨거웠던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이 꺼내드는 손수건은 나무들이 떨구는 단풍일까. 돌아보지 말라고 할수록 돌아보는 것들의 모든 이름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