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八寺ㄹ(97) - 가산산성의 해원정사

[이동민]

가산산성의 해원정사(解園精舍)

      지인이 가산산성의 해원정사가 무척 아름다운 절이라고 추천했다. 나도 그 절을 안다. 가산산성은 답사로도, 산행 때는 출발하는 곳이므로 열 번도 더 들린 곳이다. 들릴 때마다 으레 이 절을 둘러보았다. 절 이름부터, 절의 분위기까지 전통 사찰과는 달라 보여서, 답사 절에 포함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불자라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이번 답사지는 가산산성과 해원정사로 정했다.

  내 차를 없애고 나서는, 절집 답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교통편이다. 거리를 계산하고,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하고 ------. 그래, 가산산성까지는 택시를 이용하고,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니 동명까지 걸어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돌아오자.

 3호선 지상철로 칠곡 방면 종점에서 내려 버스로 동명에 간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차비도 많지 않으리라. 택시 한 대가 3호선 종점에서 내린 우리 앞에 선다. 계획에는 없는 택시이다. 타기로 했다. 차비가 많이 나올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 차가 있을 때보다는 경제적이다 라는 계산을 하면서 차를 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다닌 길이다 송림사 앞으로, 기성동 3충 석탑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한티재를 오르는 길로 접어들더니, 금방 가산산성 앞에 내려주었다.

 성과 성루가 웬지 예전보다는 초라해보인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내 눈이, 내 생각이 달라져셔 일까. 주차장에는 승용자들로 가득하다. 성문을 지나 다듬어지지 않는 산길을 조금 오르니 절이 나타났다. 절은 온통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뒤덮고 있어 경치가 무척 좋다. 꽃들도 아직 남아 있고, 수국은 봉우리를 맺은 체 방금이라도 터트릴 자세이다. 예전에 눈에 거슬리던 화강석 돌조각들이 숲을 이룬 나뭇잎들 속에 가리어져서 절의 정경은 무척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가산산성은 등산로의 출발점이다. 나도 예전에 이곳에서 출발하여 한티재에(티가 고개라는 우리 말이나,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한티재이다.) 이르고, 다시 능선을 따라 파계재까지 가서, 파계사로 내려온 일이 있다. 그래선지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아주 많았다. 그들만이 아니고, 절 마당을 돌아다니는 가족들도 많이 보인다. 우리 부부도 절집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는 절에 가면 산신각을 찾아뵙는 버릇이 있다. 절의 뒤편에 산신각이 있었으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어쨌거나 일반 절집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러나 절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 꽃들, 그리고 분재 작품을 보니, 정갈하게 다듬어 놓은 정원같다.

 가산산성은 예전부터 존속되어 온 산성이 아니고, 임진란을 겪으면서 혼줄이 난 조선 조정이 임란 이후에 쌓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성문 주위의 성곽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산 아래를 바라보니 송림사 쪽으로 뻗어있는 골짜기가 아득하다. 골짜기가 끝나는 쯤에 송림사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저수지이다. 저수지 앞에는 동명 들이 펼쳐진다. 아마도 산 아래 마을에는 많은 백성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으리라.

 대구를 지키는 산성으로 팔공산에 공산성이 있었다. 임란 때 조선군이 공산성으로 찾아 갔으나 성은 허물어졌고, 성의 기능을 잃은 체 버려져 있었다.

 임란과 병자란을 겪은 조정은 산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조 17년(1639)에 가산산성을 쌓았다. 성을 쌓으면서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이 팔공산 절의 스님이라고 한다. 이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어서, 불경 공부는 뒷전이고 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절을 버리고 도망가는 스님들이 많아지면서 폐사가 된 절도 한 둘이 아니다.

 스님들보다 더 고통받은 사람은 산 아래 고을에 사는 백성들이었다. 고을 백성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있었지만 더 힘드는 일은 부역을 나가서 노역에 시달리는 일이었다. 부락민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원성이 높아지자 성 쌓는 일을 잠시 중단한 적도 있었다. 인조 26년에 성 쌓기는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이 성의 돌 하나하나에는 부락민의 원성과 스님들의 피눈물이 얼룩져 있다.

내가 예전에 답사를 와서 해원정사라는 지금의 이 절을 기웃거린 이유라면, 기록에 의하면 가산산성 안에는 천주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서 이다.

 숙종 27년에 이 성 안에 천주사라는 절을 지었다. 스님을 모시고 불경을 낭송하면서 수행을위하여 지은 절이 아니다. 임란 때 승군의 덕을 톡톡히 본 조정이 승군을 모아서 군사훈련을 하는 곳으로서 절을 지었다. 스님에게 인간구제를 위한 법도를 수행하게 하지 않고, 살상을 위한 군사훈련을 시켰다니, 조금 아이러니이다. 특히 궁술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승장을 뽑아 군대로 조직화 하였다.

 군위, 의홍, 신령, 하양의 네 고을을 관장하는 관아를 산성 안에 두었다. 백성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관공서 일을 보려면 백성들은 이곳까지 걸어서 올라와야 했다. 고을 사람들은 관아를 옮겨 달라고 여러번 청원했다.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중앙 정부에 보고하여 해결하였다고 한다.

 이번 절집 답사를 가산산성 안에 있는 ‘해원정사’로 정했다. 이전의 가산산성 답사 때에 여러번 들렸지만 전통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내 관심 밖이었다. 그때 옛 천주사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을까 하여 알아보았으나, 내력을 아는 분도, 관련 자료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절집 답사 때는 의구심 따위는 아예 가지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도 해원정사를 절집 참배라기보다는 천주사에 대한 희미한 기억 때문이라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내와 나는, 우린 불자가 아니잖아. 그냥 걷기 운동 삼아 가산산성을 가는거다. 나는 컴퓨터의 검색창을 열심히 두드리면서 계획을 세웠다. 지하철 종점에서 택시를 만났다. 계획은 동명에서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면서도 ‘여기서 택시를 타면 차비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좀생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차를 탔다.

 산성 앞에서 내려 골짜기며, 산마루를 둘러보니 온통 연초록으로 덮여 있다. 신록이라고 하든가. 마음까지 맑아진다. 성문을 지나, 산길을 조금만 걸으니 해원정사이다. 연초록으로 덮인 나무들에 싸여있는 절집의 풍광이 아주아주 보기 좋다. 아내는 법당에 들리고, 나는 마당과 산신각과 요사채 주변을 돌아다녔다. 주지 스님의 솜씨인지 분재들이 예술작품이다.

 본래의 계획대로 동명면까지는 걷기로 했다. 내리막 길이니 힘들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리가 아프지 않을까.

 골짜기를 따라 걸어서 내려오는 동안 주변의 풍광이 너무 멋져서 지루하지 않았다. 피로가 느껴지거나, 발바닥이 화끈거리면 길가의 돌 위에 앉아서 잠시 쉬곤 했다. 송림사가 곧 나타날 듯도 한데 끝없이 골짜기만 이어지고, 절은 나타날 기미가 없다. 골짜기 길도 전에 다녔던 길인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이 길이 맞아. 그럼 맞지 라는 말을 나누면서 걸어왔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10km는 넘는 길이라고 하여서, 우리 걸음으로는 송림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바로 내 눈 앞에 저수지의 수면이 햇빛을 받고 반짝이지 않는가. 집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송림사를 물으니, 송림사는 저 위에 있는데요. 한다. 우리는 다른 길로, 우리가 한 번도 다녀본 일이 없는 길로 내려왔던 거다. 저수지를 유원지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보니,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 부부도 커피 집에 들려 잠시 쉬고는 다시 걸었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동명면 소재지이다.

 이 저수지에 내 기억 하나가 있다. 아직 주열이가 태어나기 전의 신혼 때 장모님이 우리 부부를 이곳에 데리고 와서 밥을 사주었다. 저수지의 수면 끝인 그곳도 푸른 숲에 싸여 있다.

 동명에서 시내버스와 3호선 열차,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수성구 범어동의 우리집에 왔다. 집에 와서 만보기를 보니 2만 3천 보로 나온다. 오늘은 정말 많이 걸었다. 다리가 조금 뻐근할 뿐, 별다른 느낌이 없다. 다리도 많이 튼실해졌나 보다.

            2023. 5. 1

[난향 심인자]

남원리 해원정사 다녀 가셨네요.
지상철 종점 경대역에서 가산산성 아래 남원리까지 바로 오는 버스가 있습니다. 칠곡3번, 38번이 있고요. 주말에는 803번이 가산산성 한티재까지 갑니다. 또 오실 일 있으면 검색해 보시고 이용해 보세요.

[신형호]

뚜벅뚜벅 열심히 운동겸 답사 다니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 많은 절 답사 이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