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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2장 여불위(呂不韋)의 몰락 (1)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말기는 확실히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여불위(呂不韋)와 자초와 조희와 진왕 정(政)의 관계가 바로 그 증거였다.
-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비단 진(秦)나라에서만 만연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진나라의 라이벌이자 지금은 약소국으로 전락해 도읍까지 옮긴 초(楚)나라에서도 여불위가 행했던 것과 흡사한 형태의 일이 벌어졌다.
이원(李園)이라는 사람과 춘신군 황헐(黃歇)과 초고열왕과 그 아들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잠시 이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초(楚)나라가 아직 수춘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의 일이다.
전국사군(戰國四君)의 한 사람인 춘신군의 문객 중에 이원(李園)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趙)나라 태생이었으나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초나라 땅까지 흘러와 춘신군 밑에서 사인(舍人) 노릇을 하게 되었다.
대체로 전국사군(戰國四君)의 문객들은 유협의 기질이 농후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이원(李園)의 성품은 유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난세(亂世)의 시달림 때문인가, 아니면 천성인가.
그는 겉으로는 유약한 듯하면서도 속은 몹시 음흉하고 간교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이언(李嫣)이라는 아리따운 여동생이 있었다.
그는 이 여동생의 미모를 이용해 출세할 길이 없을까만 궁리했다.
'이 정도 미모라면 왕의 후궁으로 충분한데.......'
그러나 선뜻 내키지 않았다.
치사한 방법이라서가 아니었다.
당시 초고열왕(楚考烈王)은 왕위에 오른지 오래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후사가 없었다.
춘신군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무수히 많은 여자를 바쳤으나 모두 자식을 낳지 못했다.
'공연히 여동생을 바쳤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곧 왕의 사랑을 잃게 된다.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망설이는 중에 어느 날 섬광 같은 생각이 하나 스쳐갔다.
춘신군 황헐(黃歇)은 대범하고 지혜가 출중했지만 결점이 없지도 않았다.
권세욕이 크고 여자를 유독 좋아했다.
하긴 그런 것을 인간적 결점이라고 여기는 시대는 아니었다.
정의와 도덕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이지 않은가.
어쨌든 이원(李園)은 춘신군의 이러한 약점에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 먼저 여동생을 춘신군에게 바치고, 그 후 여동생이 태기를 보이면 그녀를 빼돌려 초왕(楚王)에게 바치자. 아들을 낳느냐, 딸을 낳느냐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만일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이원(李園)은 하루아침에 초왕의 외숙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그 부도덕한 행위를 이원은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다.
'이야말로 난세(亂世)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는 춘신군에게 한 달간 말미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이원(李園)은 일부러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약속한 기일보다 두 달을 더 보내고서야 춘신군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춘신군 황헐(黃歇)이 꾸짖듯 물었다.
"한 달 만에 온다던 사람이 이렇듯 늦게 오면 어떡하는가?"
이원(李園)이 태연스레 대답했다.
"소생에게 여동생이 있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이번에 제(齊)나라 왕이 저의 집에 사자를 보내어 여동생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신을 접대하느라 기일 내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여자를 좋아하는 춘신군(春申君)으로서는 귀가 번쩍 트일 만한 말이었다.
'제왕(齊王)이 후궁으로 달라고 청할 정도라면 이원의 여동생 미모는 천하절색이 아닌가?'
슬며시 물었다.
"그대는 여동생을 제왕(齊王)의 후궁으로 보내기로 약조했는가?"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핑계로 명확한 대답은 주지 않았습니다."
"잘했네. 내가 그 여동생을 한 번 볼 수는 없을까?"
"소생은 군(君)을 섬기는 가신입니다. 군께서 원하시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 날로 이원(李園)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여동생 이언(李嫣)을 데리고 진현으로 돌아왔다.
과연 이언(李嫣)의 미모는 천하절색이었다.
춘신군(春申君)은 그녀를 보자 첫눈에 반했다.
기쁨을 눌러 참으며 이원에게 황금 3백 일과 백옥 두 쌍을 선물했다.
그 뜻을 어찌 이원(李園)이 모르겠는가.
그 날 밤, 춘신군(春申君)은 이언과 함께 잠을 잤다.
그 날만이 아니었다.
매일 그녀의 처소로 들어가 지냈다.
이원의 여동생 이언(李嫣)은 춘신군의 애첩이 된 것이다.
3개월 후 이언에게 태기가 보였다.
이를 안 이원(李園)은 은밀히 누이동생을 불러 물었다.
"남의 소실로 있는 것과 정실부인으로 지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언(李嫣)이 두말할 나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첩과 정실부인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원(李園)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정실부인과 왕후(王后)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겠느냐?"
"오라버니께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고 계십니다. 왕후가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제야 이원(李園)은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춘신군을 섬겨보아야 너는 고작 첩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일 초왕(楚王)을 섬기게 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마침 우리 나라 왕에게는 자식이 없고 너는 잉태를 했다. 네가 초왕(楚王)의 후궁이 되어 아들을 낳기만 한다면 그 아들은 장차 초나라 왕이 될 것이요, 동시에 너는 태후(太后)가 된다. 너는 이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
이언(李嫣)은 오라비 이원을 닮아 머리가 잘 돌아갔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으나 이내 이원(李園)이 말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오라비께서는 저보고 궁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까?"
"바로 그거다."
"춘신군(春申君)께서 저를 놓아주실런지요?"
"그거라면 염려없다. 너는 오늘 밤 춘신군과 잠을 잘 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 그러면 춘신군도 승낙하고 반드시 네 말대로 할 것이다."
이원(李園), 이언(李嫣) 남매는 낮은 음성으로 모략을 꾸몄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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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연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