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공항' 갈등 유감
지난 2월 23일 부산발전연구소 초청으로 부산 남쪽 끝자락에 추진 중인 가덕도 국제공항에 관한 강의를 했었다. 미국서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아 현지 사정에 다소 어두웠던 나로서는 부산 시내를 거의 도배하다시피 한 플래카드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플래카드의 내용은 한결같이 동남권 신공항은 가덕도라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은 무척 감정적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플래카드들을 보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은 너무 감정적이고 정치적이어서 현지인들은 오직 가덕도라야만 한다는 말 외에는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으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걱정됐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당은 허남식 부산시장을 비롯해 기자들과 도의원, 시의원, 그리고 전문가들로 꽉차 있었다.
나는 미국 의회에서 건설교통 소분과위원회 위원장을 했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선 주민들의 반대로 신공항 설치가 무척 어렵다는 얘기를 했다. 또 공항 규모의 사업을 위해서는 수많은 공청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공항들은 하나같이 활주로를 바다를 향해 지었다. 이처럼 푸른 바다나 호수를 끼고 활주로를 건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소음 문제고, 다음은 만일 기체 이상으로 비상착륙을 하게 될 경우 남은 휘발유를 몽땅 바다에 버릴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대략 그런 정도의 말을 했는데 그 다음 날 현지 언론들은 마치 내가 가덕도 신공항 개발을 지지한양 보도했다.
나는 가덕도와 밀양에서 공청회를 아직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기에 공청회부터 하는 것이 순서라고 얘기했다. 공청회를 두 도시가 합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여기서 서로 다른 견해를 들어 보고 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항공사들도 초청해 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도 말했다.
미국에서는 신공항을 건설한다고 하면 지역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는데 한국에선 모두들 유치하느라 안간힘이다. 공항이 들어서면 경제가 발전할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미 연방 하원의원 시절 내 지역구에 온타리오 국제공항이 들어 왔지만 중간급 호텔 하나가 공항 근처에 자리잡은 것 말고는 경제발전은 없었다. 주변의 땅값도 별로 오르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비행장은 주변경관은 아름답지만 착륙하기가 위험한 활주로로 알려져 있다. 주택으로 밀집된 언덕을 넘자 마자 바다가 보이면서 그 앞에 펼쳐진 활주로에 착륙하려면 대체로 다이빙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1980 년도에 대형사고가 (PSA 항공회사) 났고, 수 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저 유명한 남가주, 오랜지 카운티에 있는 존 웨인 공항의 활주로는 바다를 향해 이륙하게 되어 있는데 그 밑에 있는 고급주택가에 미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이륙할 때 최대 속력을 냈다가 이후 엔진을 거의 끄다시피 한 채 조용히 글라이드로 바다까지 나간다. 그 다음에 다시 엔진을 작동해 최대 속도를 내는 묘한 방식을 써서 조종사들이 싫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딴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해도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에 한국의 혐오시설 같이 갈 데가 없어 그냥 현재 방식대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부산 가덕도에 이어 다음 날인 2월 24일엔 대구경북연구원의 초청으로 대구를 갔었다. 그랬더니 왜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했느냐고 물어 오해를 푸느라 애를 썼다. 이들은 밀양 비행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산봉우리를 몇 개 깎아내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높지만 그렇다고 가덕도에 공항을 만들면 대구 지역 주민들은 부산 남쪽 바다 끝으로 가느니 차라리 인천비행장 으로 가는데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결국 가덕도와 밀양은 양쪽의 의견이 팽창한 가운데 한치도 물러 설 태세가 아니었다.
이제 양쪽 다 물러 날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아 보였다. 결국 3월 30일에 정부는 입지평가 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빌려 밀양과 가덕도 두 곳 다 신공항 건설 입지로 부적절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백지화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 비로소 시작된 것 같다. 이미 2년전에 국토연구원 연구 결과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끌고 오다가, 잔뜩 희망에 부푼 이들에게 이제와서 경제성이 없어 신공항 공약을 백지화 시키자니 펄펄 뛸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선거 때까지는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 이 싸움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걱정이다. **
<필자 소개> 김창준: 前 美연방하원의원(3선)
1939년생, 보성고 졸업, 1961년 도미, 美 Univ. of Southern California(USC) 토목공학과(67년), 동대학원 (69년) 졸업/ 한양대 정치학 박사/ 76년 고속도로.하수처리공사 설계회사 Jay Kim Engineering 설립/ 90년 美 캘리포니 아주 다이아몬드바시 시의원. 시장/ 92년 캘리포니아주 제41지구 연방하원의원 당선, 3선 연임 (제 103, 104, 105대) / 현 워싱턴 한미포럼 이사장, 대통령실 정책홍보 자문위원, 경기도 명예대사, 한국경제 신문 고문, 경북 포항시 국제고문 등으로 활동중/ 저서: <나는 보수다> <국산정치 미제정치> <흔들어라, 나는 희망을 놓지않는다> / 컬럼: 한국일보 회고록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미주 중앙일보 ‘김창준컬럼’, 워싱턴 WKTV ‘김창준 데스크’, 한국경제신문 시사컬럼 ‘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등 연재./메일: changjoon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