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빅 힛트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차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하나의 트랜드가 되고 있다. 문화적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할리우드의 영원한 버팀목인 가족주의와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서, 비빔밥 짬뽕 퓨전 식단을 차린 영화들은 그 이전에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분명하게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은 것은 [나의 그리스식 웨딩] 이후부터다.
[게스 후?] 역시 [차이]에 관한 영화다. 이번에는 피부색이다. 피부색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야 할리우드에서는 해묵은 것이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의 [정글 피버]에서는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와 데이트하다가 강간범으로 오인한 동네 주민의 신고로 곤욕을 치루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흑인 여자와 백인 남자의 관계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관계는 최근까지도 대중문화 속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 나잇 스탠드]에서, 흑인 중에서도 아주 새까만 웨슬리 스나입스가 백인 중에서도 아주 하얀 나스타샤 킨스키와 섹스를 하는 장면이 등장해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게스 후?]에 오면 영리하게도, 이제 주도권이 흑인으로 넘어갔다는 제스처를 보인다. 영화는, 흑백 남녀의 결혼에서 오는 인종적 차이를 다루는 코미디지만, 예전처럼 백인에게 주도권이 있지는 않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가 결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흑인 여자의 까만 피부색이 아니라 오히려 백인 남자의 하얀 피부색이다. 위치의 전도, 힘의 역학관계를 슬쩍 비틀어 버리면서 새로움을 주려는 낯설게 하기의 시도이다.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 사이몬(애쉬튼 커처 분)이 약혼자 테레사(조 살다나 분)와 함께 미래의 장인 펄시(버니 맥 분)의 집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그것이 흑인 여자 약혼자가 백인 시부모의 집을 방문해서 벌어지는 것 같으면 조금도 웃음이 일어날 상황이 아니지만, 웃음을 준다. 이러한 뒤집기의 시선은, 확실히 상황을 새로운 차이로 변화시킨다.
펄시는 백인 사위가 마음에 안든다. 그는 자신이 백인 사위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딸 테레사가 사윗감이라고 데리고 온 녀석이 희멀건 피부를 갖고 있는 백인이라는 것을 알자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한다. 흑인 장인과 백인 사위의 갈등이 [게스 후?]의 기본축이다. 그 사이에 흑인 장인 장모의 결혼 25주년 은혼식 개최를 둘러싸고 부부간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도 등장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결말의 해피엔딩을 향해 영화는 한 치 어긋남도 없이 계획대로 전진한다. 해피엔딩을 더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폭을, 즉 인종적 차이에서 오는 반목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펄시 부부간의 갈등도 노출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종적 차이에서 오는 편견이나 대안을 심각하게 모색하자는 것은 아니다. 피부 색의 차이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극복하면 된다. 웃고 즐겁게 살자.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모든 갈등의 외피는 크게 과장되어 있지만 내실은 별것 아니다.
흑인 장인이 꽤 큰 규모의 대출상담역이라는 화이트 칼라적 설정이나, 그가 백인들의 전유물에 가까운 미국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 나스카 매니아라는 설정 등은, 흑인 장인에게 낯설어 할 미국 백인 중산층 대중들을 겨냥한 화해의 제스처이다. 또, 개봉대기 중인 [애프터 선셋]도 그렇지만, 남자 동성애 코드를 코믹하게 활용한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진짜 동성애는 아니다. 남자 동성애 관계로 오인받을만한 상황을 설정해서 웃음을 주는 것은 두 영화가 비슷하다. 그만큼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동성애를 심각하게 바라보던 초기의 사회적 시선이 많이 누그러져 있다는 뜻이다. 대상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것은, 텍스트를 심리적 거리를 갖고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탱고는, 지금까지 갈등을 빚었던 양쪽 당사자, 흑과 백이든, 부부나 약혼자 사이든, 그들의 모든 갈등을 봉합하는 상징적 장치로 쓰여지고 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탱고는, 어쩌면 이런 [차이]를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매우 의미 깊은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게스 후?]에서 등장하는 탱고는 아르헨 탱고는 아니다. 컨티넨탈 탱고가 미국에 건너가서 힙합의 영향으로 부분 수정된 아메리칸 탱고다. 스텝도 조금 다르고 기본 자세도 조금 다르다. 힙합 식으로 컨티넨탈 탱고를 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음악에 대한 해석의 영역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영화가 끝나고 보너스처럼 등장하는 탱고 씬은, 탱고가 미국 주류 사회의 커다란 문화적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셀리 포터가 지금 [탱고 레슨]을 만들었다면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그렇게 악전고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 대중적 양념은 조금 더 들어가야겠지만.
어? [게스 후]를 아네? 70년대 캐나다 그룹을 어찌 알지? Un Dun이나 No Time, 아니면 American Woman도 영화 속에는 안나온다. 사실 영화는 별 하나 반에서 둘 사이. 탱고 추는 장면도 양념으로 들어가서 후지다. 극장에서 보지 말고 비디오로 보셈.
첫댓글 영화제목은 좋은데 영화는... '게스 후' 이들의 음악 한 곡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 [게스 후]를 아네? 70년대 캐나다 그룹을 어찌 알지? Un Dun이나 No Time, 아니면 American Woman도 영화 속에는 안나온다. 사실 영화는 별 하나 반에서 둘 사이. 탱고 추는 장면도 양념으로 들어가서 후지다. 극장에서 보지 말고 비디오로 보셈.
제가 한 때, 락 음악에 조금 관심을 가졌었어요.^^ 티비에서 할 때 보면 되겠네요.
이 영화 보고싶은데 별룬가바요?
볼만해요...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고싶은 맘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