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이성적이지는 않듯이,
인간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는 오히려
인간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합리화하려는" 존재에 가깝다.
라고 설명하고 있죠.
이러한 합리화의 기저에는,
"self-verification(자기 확증)"이라는 동기가 있는데, 저명한 심리학자 William Swan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이해가 같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내가 보는 나, 즉, self-concept에는 다양한 면모들이 녹아져있기 마련인데,
가령, 내 성격이나 능력, 특기, 장단점, 세계관, 가치관, 정치색 등을 모두 포함한
일종의 "정체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남들 역시 나와 똑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줬으면 하는 욕구인 건데,
(ex. 내가 스스로 잘났다고 느끼는 것만큼, 남들도 나를 잘났다고 평가해주기를 바람)
흥미로운 부분은,
이게 단순히 나란 사람 자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는 어떠한 생각들 역시 타인의 믿음과 같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ex. 우리는 천동설을 믿는데, 코페르니쿠스 네 생각은 인정할 수 없다. 불쾌하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내 믿음이 다수에 의해 지지된다는 걸 확인해야지만 불안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확증이란 인류의 "존재론적인 안정감"을 위해 요구되는 동기인 셈이죠.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내가 믿고 있는 생각이 부정당할 때 굉장한 불안감,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은 거의 수십년동안 쌓아져온 것이기 때문에,
이게 무너진다는 것은 거의 "존재론적인 타격"에 가깝기 때문이죠.
비록,
날 무너뜨리려는 그 새로운 생각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더 진리에 근접한 사실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그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의 불쾌감이
그 동안 쌓아온 내 신념이 무너질 때의 불쾌감보다 크지 않다면,
인간은 그 어떠한 합리화를 해서라도,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ex. 내 주변에는 여전히 지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천동설? 과학? 웃기고 있구만!!)
반면,
새로운 생각이 대세가 되어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의 불쾌감이 커진다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려는 자기 확증 동기는 깨지게 되죠.
(ex. 내 주변 대다수가 이제는 지동설을 믿고 있는데, 나만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자니 너무나도 바보같아 보인다...)
※ 여론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특정한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믿게 할수록,
그 믿음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어떠한 강력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믿음이 세상의 대세가 되면,
그 땐 오히려 대세를 따르지 않을 때의 불쾌감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인간의 자기 확증 동기가 비로소 깨지게 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는, 무엇이 진정 진리에 가까운가의 요소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장기간 지지하고 있느냐가 인간의 심리에는 더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얼마나 합리적인지 여부가 불쾌감,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안 불쾌하고 안 불안한지 여부가 내가 느끼는 합리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 마음이 안심되는 쪽으로 자꾸만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합니다.
가끔은 스스로를 믿지 말고,
무엇이 더 객관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능을 따르는 것과 본능에 역행해야 할 때를 가늠하는 일이란 언제나 어려운 미션인 것 같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우리는, 인간은 왜 이다지도 불완전 할까요. 제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면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지금처럼 꽤나 염세적인 사람이 됐을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불완전하기에 더 나아지고자 할 수 있고 어렵기에 재밌는게 사람이고 인생아닐까요
@농알못이에용 맞는 말씀이십니다. 맞아요. 그렇게 생각해야죠. :)
@SenesQ
@농알못이에용 우와~~ 감탄하게 되는 댓글이네요. 요즘 긍정적인 힘을 많이 잃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해결이 되는 부분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에고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봅니다.
1m 자와 0.9m 자를 놓고 나보다 앞선 열명이 0.9m 자가 더 길다고 하면 자신도 1m가 더 길다고 하는 사람이 열에 하나쯤 된다던가 하는 실험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저는 카페 운영지침이 바뀌며 이 부분 때문에 카페 탈퇴를 한 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명시적으로 금지된 표현을 써서 징계를 받는 게 아니라 괜찮을 거라고 판단한 글이 징계를 받았을 때
많은 회원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읽고 기억을 해야하는데 맨날 읽을 때만 느끼고 깨닫고... ㅎ
오늘도 좋은글 잘봤습니다~~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다. 오늘도 새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