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최근 서울 서초구에 미국산 다임러크라이슬러 차량을 판매하는 ‘SK모터스 반포전시장’을 개설했다.
SK모터스는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에너지판매부문의 수입자동차 사업부로, 2001년부터 지난달까지 도요타 렉서스 자동차를 판매해왔다. 그러나 올해 초 회사가 분식회계 파문에 휩싸이고 도요타가 결별을 선언함에 따라 렉서스 판매를 중단하고, 대신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손을 잡았다.
SK그룹 내부에서는 도요타의 결별선언 이후 수입차 사업을 포기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도요타를 판매하면서 확보한 2260명의 고소득층 고객 DB(데이터 베이스) 등 그동안 키워온 수입차 판매사업의 노하우를 살리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사업을 재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여기에는 최태원(崔泰源·43) 회장의 사업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SK네트웍스는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SK㈜의 자(子)회사로, 수입차 사업 진출은 최 회장이 최종 결정했다.
최근 대기업 2~3세들의 수입차 판매사업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효성그룹은 최근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의 서울지역 판매권을 획득했다. 벤츠 판매사업에는 조석래 회장의 셋째아들 조현상(趙顯相·32·효성 전략본부 상무)씨가 나서고 있다. 효성은 과거 폴크스바겐·아우디를 국내에 수입·판매했으나 소극적인 마케팅으로 판매가 늘어나지 않자 사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 벤츠 사업에는 조 상무가 초기부터 적극 참여, 사업에 강력한 추진동력이 되고 있다.
또 볼보를 판매 중인 두산그룹에서는 ㈜두산 상사BG(비즈니스 그룹)의 박정원(朴廷原·42) 사장이 수입차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박 사장은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 그는 내년 초 국내 수입차 시장에 진출하는 일본 혼다의 판매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칼텍스정유는 최근 도요타코리아에 경기도 분당지역의 렉서스 판매사업권을 신청했다. 하지만 도요타가 대기업보다는 개인이 사업을 맡아줄 것을 요구함에 따라 LG그룹 허씨 집안의 후계 경영인인 허용수 ㈜승산 사장이 대표를 맡아 회사를 설립키로 결정했다. 승산은 물류전문 회사이다.
이에 앞서 코오롱그룹 이웅열(李雄烈·47) 회장은 자동차 수입자유화 직후인 지난 87년부터 독일 BMW 판매사업에 나서면서 일찌감치 수입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재벌 2~3세들이 수입차 시장에 뛰어드는 데에는 먼저 자동차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자리잡고 있다. 어려서부터 국내외 고급 승용차를 보고 자란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 수단’ 정도로 여겼던 1세들과 달리, 이들 2~3세는 카레이싱이나 자동차 박람회 등 ‘자동차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의 경우 세계최고 자동차 경주대회인 F1(포뮬러원) 레이스를 직접 보기 위해 해외 경주장을 자주 찾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사업에 손댄 재벌 2~3세들은 수익성이 나지 않아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수익성 없는 사업에 손을 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런 비판은 무색하게 됐다. 수입차 판매대수는 지난 98년만 해도 2075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만6119대를 기록했고, 올해는 2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입차는 대당 평균 가격이 높아 딜러가 남기는 이윤(차량 가격의 약 10~20%)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수입차 사업을 병행할 경우 기업 이미지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점도 수입차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지난해 국내 판매회사를 모집할 때 재계의 내로라하는 그룹들은 대부분 판매권을 얻기 위해 벤츠와 접촉했다. 벤츠 판매권을 확보한 효성은 고급차 벤츠의 이미지가 효성그룹의 기업이미지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입차를 사는 고소득 고객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는 점도 수입차 사업의 매력으로 꼽힌다. BMW를 판매하는 HBC코오롱은 지난해 사업 영역을 해외 명품으로 확대, 가격이 1000만원대 덴마크 고급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슨(B&O)과 1100만~3300만원대인 일본 후지쓰의 벽걸이 TV를 판매 중이다. HBC코오롱은 올해 수입차 외에 오디오·TV 판매에서만 1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도 자금력이 풍부한 국내 대기업과 손을 잡기를 원하고 있다. 중견기업의 경우 불황이 닥쳤을 때 쉽게 사업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 2~3세들의 수입차 판매경쟁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은행 대출을 통해 사업을 일으킨 대기업들이 신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대신, 해외 수입차를 들여와 손쉽게 장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수입차 판매권 획득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 자동차 회사들의 요구에 굴복해 불리한 딜러(판매회사) 계약을 체결,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장기간 안정된 애프터서비스를 원하는 수입차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들이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