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다. 군침 도는
나는 자칭 만두 킬러다. 자다가도 ‘만두 먹자’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다. 입맛이 없다고, 소태 씹는 맛이라고 밥을 깨작거리다가도 ‘만두 먹지?’하면 군침이 돌 정도다. 왜 만두에 쑥 빠졌는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그냥 만두가 맛있다. 마트에 진열된 만두는 느끼해서 손이 잘 안 가지만 공짜로 들어온 만두라면 사양 안 한다. 솔직히 밥보다 만두요. 국수보다 만두다. 국수 집 가도 만두가 있으면 꼭 시켜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만두가 느끼하면 초간장에 마늘 다져넣어 찍어먹으면 된다. 김치만두든, 고기만두든, 야채만두든, 만두라면 뭐든지 좋다.
택배 기사가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들어온다. 아들이 보냈다는 만두가 도착한 것이다. 충북 단양에서 온 마늘 만두다. 받자마자 포장을 뜯었다. 냉매까지 넣어 보낸 박스 안에서 세 가지 만두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만두 도착!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만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들에게 문자부터 넣었다. ‘벌써 도착했어요? 빨리 갔네요. 아버지랑 맛있게 드세요. 그 집 유명해요.’ 아들의 목소리도 밝다. ‘내일은 주말, 할배 할매랑 잘 먹을게. 양이 많더라. 몇 개 남겨둘게. 추석에 너희들과 먹자. 근데 비싸겠던 걸.’했더니 ‘돈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한다. ‘그래, 고맙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미는 안다.
몇 년 전 대만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다. 아들은 대만에 유명한 것이 만두라 했다. ‘엄마, 대만가면 유명한 만두집 많아. 원 없이 드시고 오세요.’ 아들은 유럽여행에 이어 대만을 몇 번 다녀왔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가 2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다. 그 동안 고생하며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 원룸 비, 여행경비로 썼다. 아들은 대만의 먹자골목부터 돌아봐야 할 여행지, 어떤 음식이 맛난지 사전 지식을 전수했다. 아들과 나는 식성이 비슷하다. 아들이 맛있다면 맛있는 거다. ‘만두 원 없이 먹고 오기’ 벼르고 갔지만 포식은커녕 일행과 농부 눈치에 짓눌러 목구멍만 축이다 왔다. 애석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인 두 아이는 집에 올 때나 명절 때면 서울이나 근교의 유명한 만두집을 찾아 만두를 사 오기도 하고 택배로 주문을 해서 보내기도 한다. 이번에는 아들이다. ‘며칠 내로 택배 하나 갈 것이라’는 문자가 도착한지 이틀도 채 되기 전에 택배가 도착했다. 개봉을 했다. 세 종류의 만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만두는 자잘하다. 입에 넣으면 쏙 들어 갈만한 크기다. 맛은 봐야 아는 거지만 눈으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내일까지 냉장보관하려면 저녁에 잠이 안 오겠다. ‘우선 몇 개만 쪄 먹어봐? 튀겨봐?’ 머릿속을 굴리다 고개를 젓는다. ‘내일 두 어른께 별식 대접해야지. 만두떡국과 찐만두로.’ 소문난 만두집에서 시킨 만두는 비싼 만큼 양은 푸지지 않다. 한 자리에 앉아 다 먹어치워도 될 것 같다.
아이들 어릴 때는 만두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과 같이 둥근판을 펴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펴 놓고 주전자 뚜껑으로 찍었다. 두 아이는 밀가루 범벅이 되어 장난치기 좋아했다. 만두 속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부드럽게 간 돼지고기에 두부는 물기를 없애고 마늘, 고추, 당면 등을 자잘하게 썰어 넣어 소금 간해서 버무리면 된다. 가지런하게 채반에 담아 놓은 만두를 보면 눈이 호강하고, 입에 군침이 돌았다. 그 만두를 한 번 먹을 만큼 팩에 담아 냉동보관하거나 통에 담아 냉동 보관해 놓고 농부의 새참도 하고, 아이들 간식도 하고, 떡국만두를 끓이기도 했다. 만두만인가. 짜장면이나 피자도 집에서 만들곤 했다.
아련한 추억이다. 이제 번거로워서 못한다. 두 아이도 떠난 집, 먹을 사람도 없는 집이다. ‘우리가 머 무 샀나. 너거가 다 갖다 묵제.’ 시어머님은 흔히 그런 말을 했다. 그땐 섭섭했는데 지금은 시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제 두 아이는 내 품을 벗어났다. 삼시세끼를 스스로 해결한다. 곁에 계신 시부모님만은 아직 챙겨야 할 입장이지만 느슨하다. 노인들 먹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별미나 영양식이면 된다. 나는 늘 음식을 만들 때면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사의 손은 마술이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여자의 손도 마술이다. 재료만 준비되면 입맛 도는 음식이 척척 나온다. 일부러 간을 보지 않아도 눈썰미로 손대중으로 간을 할 정도로 익숙해질 때쯤이면 음식 만드는 것에 넌더리를 낼 나이가 되어 있다는 것이 서글플 따름이다.
나는 자꾸 세 종류의 만두를 들었다 놨다 한다. 어떤 만두가 맛있을까. 만두 같지 않은 만두다.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새우만두를 먼저 먹어볼까. 고기만두를 먼저 먹어볼까. 아니면 김치만두를 먼저 먹어볼까. 아무래도 김치만두가 가장 칼칼할 것 같다. 내가 만든 만두도 신 김치를 총총 썰어 넣은 것이 맛있었다. 육 고기가 들어가면 칼칼한 땡초를 넣어야 제격이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느리 증후군을 앓는 한국의 주부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시댁 안 가고 가족끼리 오붓한 명절을 보낼 젊은 부부도 많을 것 같다. 시부모가 아흔을 넘고, 며느리가 노인 대열에 서면 시댁 나들이 접기가 쉽지 않겠지만 나는 만두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