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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12-09 주일설교
본문: 합 3:2
제목: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 한가족교회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주실 때는 그 말씀의 성취를 약속하시는 것으로 생각한다.
수년 내에 부흥을 주실 것으로 믿고 감사를 드린다.
하박국 선지자가 이 기도를 드릴 때 상황은 매우 좋지가 않았다.
우리에는 양도 없었고 외양간에는 송아지도 없었다.
무화과나무는 무성하지 못했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었고,
감람나무에는 소출이 없었고, 밭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찬송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8)
그는 환경은 어떨지라도, 자기가 믿는 힘은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분이 때가 되면, 내게 부흥을 주실 것이고,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을 믿었다.
1. 부흥은 연단 끝에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과 자녀들을 훈련하고 연단하신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시지만,
그 상태로는 축복과 부흥을 주실 수가 없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소망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경건의 훈련을 하신다.
또한 자녀들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하신다.
주리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면서 그 위험하고 광대한 광야 길을 걷게 하신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주시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시면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이 될 수 없음을 훈련하신다.
마음 속 우상들을 버리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의의 옷으로 갈아입게 하신다.
엘엘로헤 이스라엘 제단을 버리고 엘벧엘의 제단을 세우게 하신다.
옛사람과 그 행위들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로 지으신 새사람을 입게 하신다.
자아를 버리고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르는 훈련을 하신다.
욥도 그 많은 재산과 열 자녀들과 건강까지 잃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아브라함도 25년 동안 많은 고난을 겪으며 기다림 끝에 아들 이삭을 받았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 13년 동안 노예살이 억울한 감옥살이 하였다.
다윗도 십수년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며 도망자 생활을 하였다.
모세도 40년 동안 이방 미디안 땅에서 되는 일 없이 장인의 양을 돌봤다.
우리 주님도 베들레헴 마굿간에 나시고 30년 동안 목수생활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 한가족교회도 멱우리 15년, 화서 2년반,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우리에 양이 없는 세월이었고, 밭에 소출이 없는 세월이었다.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포기하고픈 마음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을 붙들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를 붙들었다.
때가 되면 이룰 것을 믿었고, 때가 차면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고 소망했다.
오늘 이 본문 말씀, 수년 내에 부흥을 주시옵소서를 주시니 감격하고 소망의 풍성함에 이른다.
여러분도 한가족교회와 함께 고난과 연단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고난의 모양과 환경은 달랐지만 이제 그 끝에 이르고,
축복의 계절, 부흥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소망하고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2. 부흥은 개인을 일으켜 세우심이다.
하나님은 욥을 갑절의 축복으로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요셉을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출애굽의 대역사를 감당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우리 주님을 지극히 높여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시글락성의 마지막 위기를 통과한 다음 헤브론으로 올라가게 하셨다.
원수 사울은 주님의 손으로 처리하셨고, 백성들로 기름부어 왕으로 세움 받게 하셨다.
모든 것을 잃는 시글락성의 고난은 헤브론의 영광을 불러오는 마지막 고난이었다.
한나는 브닌나로 인하여 많은 괴로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을 주심으로 한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나의 찬양이 우리의 찬양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2:1-8)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하실 것이다.
때가 차면 40년 만에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찾아오시듯 찾아오실 것이다.
다윗과 같이 시글락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헤브론의 영광으로 찾아오실 것이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것이다.
이제 우리가 손으로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은 고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부흥은 광야 생활의 훈련과 연단의 끝에 마침내 주시는 복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하시는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이 주의 오른 손을 높이 드시고 권능을 베푸시는 것이다.
이제 모든 고난에서 구원하시고, 이제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는 것이다.
부흥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던 자들이 기쁨으로 곡식단을 거두는 것이다.
3. 부흥은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부으심이다.
오순절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큰 부흥이 왔다.
기독교 역사마다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교회에 부흥을 주셨다.
수년 내에 이 부흥을 주신다고 오늘 본문 주시고 약속하신다.
부흥은 하나님이 때가 되어 성령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고 선물이기에,
우리 마음대로 이룰 수 없고, 우리는 다만 믿고 감동으로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의 부흥을 인간들이 조작해서 만드는 것을 부흥주의라 한다.
기독교 역사에는 참된 부흥도 있었고, 부흥주의의 인위적 조작도 있어 왔다.
휫트필드와 조나단 에드워드가 중심으로 일으켰던 1차 영적대각성은 참된 부흥이었다.
그러나 찰스 피니가 일으킨 소위 2차 대각성은 인위적 부흥주의였다.
불행하게도 현대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그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참된 부흥은 오기 전에 성경으로 돌아가고 교리에 충실하는 성령의 준비기간이 있다.
부흥주의는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무시하고 결단을 강요하고 숫자 불리기에 급급하다.
대대적인 운동을 만들고 부흥사들의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부흥을 조작한다.
부흥주의는 미혹의 영들의 은사를 동원하는가 하면 보여주기 위한 쇼를 연출한다.
그들은 교회를 많이 세우지만 성경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키고 만다.
말씀도 성령도 없는 교회는 미혹의 영의 놀이터가 되고,
세상의 포로가 되며,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되고, 세상 지혜에 사로잡히는 교회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인도하에 큰 문, 넓은 길로 가서 멸망에 이르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
남은 그루터기의 거룩한 씨들만이 구원 받는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들어간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선지자들이 주님 곁을 떠나 지옥으로 간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야 한다. 분별해야 한다.
그들의 미혹을 부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양의 옷을 입고 있으나 노략질하는 이리들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하셨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현대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이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30-31)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극히 적었다.
다수의 백성들과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제단에 만족하고 평안과 축복을 구가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다.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을 나왔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2세들도 사사시대의 암흑시대를 살다가 멸망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거부했고
많은 백성들의 동조하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도 멸망하고 말았다.
지금 현대 교회와 교인들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과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현대 교회는 현대판 이스라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보다 현대교회 이스라엘이 더 악한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구약 이스라엘처럼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제도권 중심 교권 중심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해준 참된 가르침의 전통을 무시하고 초등학문에 종노릇하고 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3:10)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10)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막7:7)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7:8)
그 가르침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 받은 사람들이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었다.
오늘날 유명 신학교에서는 청교도 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현대신학만 가르치고 기독교 참된 유산들을 버렸다.
그래서 19세기의 대표적 청교도 스펄전은 우리는 오직 청교도신학만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유명 신학교에서 신학 교육 받고 목사된 사람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섬길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앙과 신학으로 교회는 돌아가야 한다.
부흥주의의 조작이 아니라 참된 부흥을 구한다면 성경과 성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그 교회에만 하나님은 성령을 부으셔서 참된 부흥을 주실 것이다.
성경은 성령이 쓰셨기에, 그 성경과 교리에 충실한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참된 부흥은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주께 대한 소문에 우리가 놀라야 한다. 주께서 주의 일을 부흥케 하신 소문에만 놀라야 한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시고,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신, 소문에 놀라야 한다.
큰 교회를 이루었다 교회가 부흥했다 하는 인간들의 소문들에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부흥을 이루어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
참된 목자들은 다 하나같이 부흥은 ‘오순절의 재현’이요 ‘성령의 부으심’이라고 했다.
참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주의 역사가 크게 일어났다.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변화된 사람들의 열매를 보고 놀라서 교회로 몰려왔다.
술집과 교도소들이 텅 비고 가정이 변화되고 도시가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었다.
부흥주의는 숫자만 키울 뿐 성령의 이런 역사와 열매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상담학과 경영학의 기법과 프로그램들이 변화를 조작하고 있다.
성령에 의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사람은 변화된 적이 없다.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하신 것이 바로 부흥이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것이 부흥이다.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는 것이 부흥이다.
홍해와 요단을 가름 같이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부흥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부흥이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구원하시고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하는 것이 부흥을 구하는 기도이다.
한가족교회와 청교도아카데미가 수년 내에 부흥할 때,
주의 일을 나타내실 때에,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놀라게 될 것이다.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