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이유는 동로마 제국이 서양사의 흐름에서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입니다. 현대 서양은 서유럽 내지 중유럽이 중심이 되어 중세 봉건제-근대 시민 사회의 흐름을 이어 왔습니다. 여기에 17세기 이후, 뒤늦게 미국과 러시아가 가세한 형국이죠. 이에 비하면 동로마는 참으로 애매합니다. 그들의 문명은 중세 유럽의 역사 흐름과는 거리를 둔 채 불가리아나 아라비아, 키예프와 같은 문화권들에 영향을 미쳐 왔을 뿐더러, 15세기 이후, 터키에 흡수되면서 이슬람의 역사와 문명을 풍성하게 만들다가 19세기 초, 그리스가 겨우 독립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더욱이 그 수도인 비잔티온(콘스탄티노플)은 여전히 터키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시점을 과거에 놓고 보면 특정 지역이 중심이고 특정 지역은 변방이라는 식의 사고 방식은 부당한 것이지만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딛고 있는 토대는 어디까지나 역사가 자신이 숨쉬고 살아 가는 현대입니다. 서구 역사가들의 입장에서 중세의 봉건 제도나 도시의 융성, 장원 제도, 기사 제도, 절대 왕정, 근대적 의미로서의 관료제와 상비군, 자본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바로 현대의 서양을 만들어낸 주류의 흐름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서유럽, 나아가 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던 동로마는 자연스레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8세기 이래 성화상 논쟁을 둘러 싼 갈등이 촉발되어 이후 동서 교회 대분열이 일어나면서 동로마 제국은 서유럽에서 종교적 영향력마저 상실해 버렸죠. 정치적으로도 그 제국은 6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여 샤를마뉴 대제가 서로마 제국을 재건하고 오토 대제가 신성 로마 제국을 세우는 시점에서는 사실상 동방 역사의 한 흐름에 편입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실상 이런 논리가 틀린 것만도 아닌 것이 동로마의 주된 상대는 불가리아인, 아바르인, 슬라브인, 모레아인, 투르크인 등이었습니다.
이는 동로마 제국이 서구 역사학에서 무시당해 온 2번째 이유와 맞물리게 됩니다. 그것은 동로마는 지극히 동방적인 냄새가 풍기는 국가였다고 믿어져 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최근 비잔티온 제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에 의해 그것이 착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지만 과거 서구 역사가들은 동로마 제국을 무슨 페르시아나 아라비아인들의 아류국쯤으로 간주했었습니다.
가령 황제에 대한 인신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의 과도한 충성심은 지극히 동방적-페르시아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죠. 이것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하여 무지와 몽매의 상징으로 치부되었고, 동로마는 자연히 발전이 정지된 역사, 영원한 아시아적 정체의 늪에 빠진 역사로 간주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헤겔과 마르크스, 레닌 등이 중국과 비잔티온, 인도를 경멸한 것은 그것이 동방 전제 군주제의 정체된 사회라는 논리에서였죠. 외관상의 문명 수준이 높아도 정체된 사회라면 그것은 서구의 고대 노예제-중세 농노제-근대 시민 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가장 원시적인 노예제 사회만도 못한 미개한 사회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후대에 자신들의 역사가 무시됨을 안다면 동로마인들은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할 겁니다. "우리들의 거대한 영토와 우아한 문명, 발전된 정치 제도는 당대 최고의 것이었으며 그에 비하면 서방인들은 야만인들이었다. 그런데 후대 역사가들은 어찌 그런 야만인들의 역사를 우리같은 문명인들의 역사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더 중요시할 수 있는가?" 라고 말이죠. 이것은 역사학이 과거 그 자체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철저하게 현대의 시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현대 서구의 동아시아 역사학에서 일본사는 대단히 중요한 연구 분야이며 중국사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대접받습니다. 1960년대 하버드 대학교의 역사학자이던 페어뱅크와 라이샤워가 저술한 <동아시아의 역사, 그 위대한 전통>이라는 책은 근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전근대 개설서인데 지면의 절반은 중국사에, 3분의 1 이상은 일본사에, 그리고 나머지 찌꺼기 지면은 한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에 주어졌습니다.
중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이 어떤 나라입니까? 근대 이전, 혹은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도쿠가와 막부 이전에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진 수준을 면치 못하던 문맹국입니다. 그런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이 강성해졌기 때문에 서구인들은 '그 부강의 비결을 그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라는 기대 하에 일본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겁니다. 일본의 봉건제를 서구의 봉건제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런 전통이 근대화를 가능케 했다는 식의 역사 해석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런 논리들이 꼭 틀린 건 아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웬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헤이안 후기와 카마쿠라, 무로마치 막부의 역사는 근 100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면서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우리 고려의 역사는 10여 페이지 남짓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이는 우리 조상님들이 저승에서 통곡하실 일입니다.
그나마 동아시아 역사서가 아닌 세계사로 범위가 넓어지면 아예 언급조차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과거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중국 제국이 현대 서구인들의 세계사 서술에서는 지극히 일부 지면만이 할애된 채 서술되고 있으니 한국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펴낸 <원시에서 현대까지 인류 생활사>라는 문명사 개론서를 보면 중국은 고작 전체 지면의 2-3%만 할애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이래 잠자는 용이라 불리며 혼돈과 침탈에 시달려 온 현대 중국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과거의 중국사마저 수준 이하로 간주되게 만든 결과입니다. 물론 현대의 중국이 강대국이 되면서 서구의 세계사 서술에서 차지하는 지금의 낮은 비중은 점차 높아질 것이 분명한 데 이것도 같은 이치에서입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이 중국과 같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받고 있는데 우리의 입장에서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은 단 1페이지도 할애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당히 2페이지를 할애받고 있는 중세 중앙 아프리카의 가나 왕국보다도 더 가치 없는 문명으로 서구인들에게 우리 역사가 비쳐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현대에도 여전히 못 사는 이들 지역의 역사가 중시된 것은 미국의 흑인 사회의 뿌리 찾기 때문입니다). 이런 류의 책을 보노라면 독자는 자연스레 서구인들의 사고 방식에 길들여져 자기 역사나 비 서양의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커져가게 되죠.
여기에서 동로마가 무시되는 세 번째 이유가 드러납니다.
동로마의 역사가 무시된 것은 그들의 역사가 계승되지 못한 채 끊어지고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에 거주하는 현대의 후손들이 무능하여 국제 거지나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동남 아시아인 근로자들을 천대하는 것과 동남 아시아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 같은 선상의 문제이듯 말이죠. 역사학만큼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 라는 논리에 충실한 학문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기회주의적인 학문이죠. 우리의 과거를 자랑스러운 것으로 세계인들에게 재평가받으려면 현대의 우리들이 부강해야만 합니다. 중국, 일본과의 역사 분쟁과 영토 분쟁도 다 우리 후손들이 못나서 조상들에게 욕 먹인 결과입니다. 일본인들은 후손들이 잘나서 별 볼일 없는 토호 수준이었던 봉건 시대의 자기 조상들을 전세계적 명사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음양사>로 주목받는 헤이안 왕조보다 우리의 통일 신라가 더욱 멋진 문명이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보다 이순신이 못한 인물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후손들이 못나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