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봉산~남산~남대문
봄은 삶의 출발점이다.태반과 탯줄의 안전막을 벗어나는 다소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일련의 시련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순간이다.
도전에 대한 시도는 부모의 도움이 절실하다.태양(부,父)과 대지(모,母)가 힘을 모아
난막(卵膜)안의 생명체를 자극하고 호응하는 줄탁동시의 연출시도.
다들 생명있는 무리들의 본능적인 행태라고들 한다.꽃봉오리가 겉껍질을 가르고 비집고
꽃을 피우려면 부모의 부단한 도움이 절대적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봄은 어린 새싹과 꽃의 향연장이나 다름없다.그리고 자연의 무수한 향내의 기본 맛의
시원(始原)이기도 하다.봄을 여는 꽃을 언급하는 무례를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몇 개를 추려
고르라면,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개나리와 진달래 등이 봄꽃의 사대천왕으로써 자리매김되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들 중의 개나리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 가까이 두고 보고 있기 때문에 여지껏 저렴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사실, 봄날에 개나리꽃 만한 것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화려한 색감에서 나타나는 원초적인 감각과 농축된 화려함의 극치를 자연스럽고 화려하게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꽃이라 하겠다.
오늘 산행일정은 역시 개나리꽃 탐화산행이 될 것이다.
서울숲 전철역사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서울숲이 기다린다.차도에는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들로 넘쳐나지만, 인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보기 드물고 휴지조각이나
부스러진 나뭇잎사귀따위나 가끔 봄바람에 보도위를 뒹군다.
오늘일정은 이곳 서울숲을 경유해서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용비교를 건넌 다음,
곧바로 응봉산을 오른 후 대현산과 금호산,그리고 매봉산과 남산을 차례로 이어나갈 참이다.
대략 거리는 8,9키로에 네 시간 안팎이 걸리지 않겠는가?
아뿔싸! 서울숲공원 세력권으로 들러서니 일부구간이 구제역관계로 통제구간이 되었다.
철문에 자물쇠도 제법 단단하게 잠겨있다.
그러므로, 용비교를 건너가려는 일정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결국 한시간이라는 시간을 서울숲을 이리저리 떠도는 보헤미안 신세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공원에 산책나온 인근의 주민들에게 묻고 물어 응봉산으로의 빠른 루트를 캐 물은 뒤,
눈을 밝혀 응봉교의 임시통행 가설교를 찾아내어 성큼성큼 애면글면 중랑천을 넘는다.
중랑천을 어렵사리 도강하고(?) 한숨을 돌린 세 노마(청아,달거,나)들은 응봉역 앞을 지나서
2시방향으로 올려다보이는 샛노란 색깔로 분칠을 한 응봉산으로의 이동을 서두른다.
응봉산에서 바라본 한강
샛노란 원색의 개나리꽃들이 범벅을 이루고 있는 응봉의 외관은 노란 색동저고리를 맵씨있게
차려입은 작은 계집아이처럼 앙증맞고 귀엽기가 그지없고 발랄하기조차하다.
된비알의 비탈진 언덕 꼭데기까지 아등바등 주거지를 넓혀놓은 아금맞은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가? 개나리의 샛노란 빛의 이면의 그늘속에는 그렁그렁한 함묵의 처연함이 숨어있다.
꽤 가파른 동네 고샅을 벗어나면 이내 갈색의 나무계단이 구불거리며 입산객을 맞아들인다.
개나리 가득한 산비탈에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계단은 오가는 상춘객으로 북적인다.
해맑은 미소가 넘친다.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으며, 샛노란 개나리꽃 대궐에서의 낭만에
젖어보기도 하고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땀을 식히는 입산객들로 응봉의 멧부리는
이미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鷹峰山亭(응봉산정)"란 현판이 걸려있는
팔각정이 조망의 즐거움을 한결 부추긴다.못 이기는 척 머물러 발치의 세속화를 굽어살피며
내면의 날카로움과 거치른 영혼을 무디고 부드럽게 매만져 놓고 싶지만 또 다른 장소의
즐거운 만남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응봉의 멧부리를 뒤로하는 발길이 아쉬움 탓인가,머뭇머뭇 발걸음이 되작거려진다.
기다란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줄느런한 샛노란 개나리꽃! 노란 병아리와 어린 아이들의 상징성이
돋보이는 봄의 정령! 그리고 개나리 우물가에서 사랑찾는 개나리 처녀,종달새가 울어 울어
이팔청춘 봄이 간다고 탄식하는 푸념이 금새라도 들려 올 듯한 봄날의 정념이 가득한
산길이기도 하다. 멧부리까지 침범한 듯 정수리 부분만 빼꼼히 들어 찬 숲이 빤히 올려다보이는
대현산으로 휘적휘적 세 노마들은 개나리꽃을 닮은 어린 유치원생들 틈에 섞여 응봉의 멧덩이를
뒤로한다.응봉의 멧부리를 뒤로하는 하산길 길섶에도 개나리꽃 천지다.
생태통로 육교를 건너서 우측의 비탈진 도로를 따르면 곧바로 독서당 공원이다.
독서당(讀書堂)이란 조선 때 젊은 문관 중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휴가를 주어 학업을 닦게 하던
곳인데 그것과 무슨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있는 지역인 모양인지 "독서당"을 앞세운 도로명이나
시설물 등의 이름이 자주 목격이 된다.서울숲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을 소비한 탓에
벌써 정오가 되었다.10시 쯤에 서울숲 전철역을 나섰으니 두 시간이 족히 흐른 셈이다.
뱃속이 다들 헛헛한 모양이다.
간 밤에 과음을 한 탓에 아직까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청아대장,간편식조차 준비하지도
않은 차림에 탁주 한 병은 고이 배낭에 모시고 있다.공원 잔디 밭 그늘진 곳에서 간단하게
오찬을 해결하고 대현산 멧부리로 발길을 옮긴다.
언덕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멧부리,비탈진 언덕을 따라 들어선 건물들은 대현산 정수리까지
순식간에 집어삼킬 기세다.아카시아와 참나무 숲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려 안간힘인데
그 사이사이 샛노란 개나리꽃이 냇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안쓰럽고,연분홍 진달래는 주변상황이
못내 아쉬운지 얼굴을 붉히며 뾰로통한 모습이 역력하다.
멧부리 한복판에는 대형 탱크가 버젖이 자리를 잡고 있다.물탱크로 여겨진다.
대현산멧부리를 뒤로하면 시가지로 내려서게 된다.다음 행로인 금호산을 오르려면,
시나브로 내려선 논골사거리, 10방향의 길 거너편 언덕자락일대는 재개발 현장인지 철거중인
주택들의 잔해들이며, 맨 땅이 드러나서 여차직하면 주변으로 흙먼지를 뿌려 댈 기세다.
매봉산을 오르면서 바라 본 남산
우측으로 차도를 따르면 이내 좌측으로 오르막 차도가 나오는데, 그 차도 곁 오르막을 따르면
곧바로 고갯마루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넓은 공원을 만난다.호당공원이다.
공원 지하는 배수지용도로 쓰인다고.축구장크기의 론그라운드가 제법 시원하고 널찍하다.
곳곳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테니스장이며, 게이트볼 등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이곳저곳 눈에 띤다.호당공원을 빠져나오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곳 사거리에서는 금호산공원을 가리키는 차도의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그 길을 따라오르다가 우측으로 나 있는 비탈진 골목을 오르면 금호산 8부능선까지 연결된
순환차도를 만나게 된다.시내버스 한대가 손님을 기다리며 한가하게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금호산의 정상부위는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서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군부대가 자리한 정수리 주변을 빙둘러 돌아가야 한다.
"응봉산근린공원"이라고 세로로 기다랗게 쓰여있는 커다란 빗돌이 초입에 우뚝 서있다.
멧부리 직전 8부능선을 180도 빙돌아 이동을 하여 금호의 멧덩이를 뒤로하면 매봉산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다가온다.
매봉산을 오르는 산길을 앞서 오르는 삼사십명의 등산객무리들이 보인다.단체 산행객이다.
배낭에 매달린 산악회 명찰이 좌우로 그네를 탄다.개나리 산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매봉의 멧부리다.
역시 팔각정이 우뚝한데 내걸린 현판의 이름은 응봉산에서와 똑같은 "鷹峰山亭(응봉산정)"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의 으뜸은 역시 한강의 조망을 빠뜨릴 수 없겠다.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와
영동대교 그리고 멀리 롯데월드 초고층건물이 박무(薄霧)에 실루엣을 드러낸다.
오랜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유장한 품새를 보이는 한강은 반도의 민족을 쉼없이 끌어 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산과 들은 물론이고 하천 변두리까지 민족의 터전은 불려나간다.
물은 사람을 모으고 산은 사람을 나눈다 했는가? 언덕까지 치받고 올라선 터전은 멧부리까지
먹어치울 기세이고 하천의 수변까지 넘볼 기세를 보인다.
오글오글 바글바글 발치에 펼쳐보이는 우리가 살고있는 민낯이 이러할진데 세상사
복잡다단한 것은 당연지사,이곳에도 상춘객들이 샛노란 개나리꽃에 취하여 들뜬 표정이
여실하고 북적이기도 매한가지다.최종목적지인 남산타워가 지척이다.
갈색바탕의 담뱃갑 모양의 신라호텔이 눈길을 끌고, 잿빛의 국립극장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손짓을 한다.개나리꽃의 배웅을 받으며 매봉의 멧부리를 뒤로하면 하얏트호텔과 팔각정으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팔각정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성곽마루"라고 쓰여있는 현판이 내걸린 팔각정,해가 뜨는 방향에서의 남산과 주변일대의
풍광이 발길을 잡는다.해가 떠있는 쪽으로는 한강너머 청계산이 아련하다.
남산 팔각정
남산기슭을 더듬으며 솟아있는 빌딩숲 그리고 대한민국의 심장인 중심 시가지가
눈부신 모습으로 시야를 압도한다.산길은 반얀트 호텔 경내로 안내된다.여기서는
호텔정문 방향의 차도를 따라야 하고, 이내 버티고개 네거리에 닿게 된다.국립극장 앞 사거리.
길을 건너 국립극장 정문 좌측으로 남산 숲으로 들어가는 잘 포장된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이름모를 산새가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마른 가지사이를 누비며 부지런이 짝을 부르며 부산을 떤다.
등산객에게 아스팔트 도로에서의 이동은 따분하고 지루하기 마련이다.게다가 간간이 산간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의 행렬은 이런 기분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차도를 벗어나는 산길에는 입산객들이 간간이 눈에 띤다.길가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에 여념이 없는가하면, 요기삼아 간단한 주점부리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주저함이 없어보인다.남산서울타워와 팔각정,광장이나 다름없는 넓은 공간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린다. 중국인 관광객(요우커)들이 한 몫을 거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편의시설 전망대 주변은 울긋불긋한 색상의 셀 수 없는 열쇠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중국의 어느 유명산에서 시작된 풍습이 이곳 남산타워 주변까지 번진 것은 혹시 아닐까?
각양각색의 울긋불긋 열쇠꽃밭이나 다름없다.꼭 잠긴 열쇠처럼 변치말고 이별말자는 의미와
또 다른 다양한 뜻이 각각에 꼭꼭 담겨있으리라...
팔각정 옆으로 봉화대 다섯구가 투명한 방책을 두르고 대한민국의 심장을 맞대고 서 있다.
낮에는 연기,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 봉수대,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람산,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
황해도-한성 무악 동봉,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제5봉수대는 전라도-
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봉수를 받았다고.지정번호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4호이다.
당시의 조선시대의 심장은 경복궁,지금 이곳에서 경복궁은 빌딩숲에 가리워져 어림짐작만
가능하다.경복궁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파란기와을 인 청와대가 확인이 가능하니 현 위치를
가늠하는 수밖에 없다.봉수대를 관할하는 관계 조정대신들이 지방에서 올라온 연락상황을
수시로 인지하려면 봉수대와의 시각확보가 제1요건이 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으며,
담당관으로서의 자격적격여부는 시력이 으뜸임은 따져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유명 풍수학자가 청와대 뒷산 인왕산의 형세와 모양을 두고 품평을 한 말이 떠오른다.
청와대 본관 정면에서 청와대의 후광(後光)격인 북악산을 바라보면, 북악의 멧부리는
달마의 머리부분이 되며,대머리진 머리아래 양 옆으로 불툭 솟아있는 둥그스름한 화강암 바위는
달마의 돌출된 눈동자가 된다고,해가 뜨는 방향으로 45도 비스듬히 앉은 자세에서 얼굴을
정면으로 돌려 두 눈은 청와대를 쏘아보고 있는 모양새다.
어쨋든 그런 모양새에 대한 호불호(好不好) 해석은 관전자나 풍수가에 따라 백가쟁명식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봉화대 터 조금 앞의 지점,국사당 터, 대리석 바탕에 검은돌에 새겨진 글을
살펴보면, "조선 태조 4년 12월,남산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목멱신사를 세워 국사당이라
불러오다가 1925년 종로구 무악동으로 옮김"이란 간단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돌계단을 따라 비탈진 내리막을 따른다.연신 눈길을 잡아매는 대한민국 심장의 시가지가
발길을 잡는다.절경의 전망대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서 갖은 폼을 애써 잡아가며 기념촬영을
한 노마들은 발길을 잡는 절경의 조망처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곳을 뒤로하면 과거의 무지개회관 앞에 곧바로 이르게 되며,조금 발길을 옮기면,
흑갈색 동상 하나가 불쑥 나타나 늙은 세 노마를 무섭게 쏘아본다. 안중근의사 동상이다.
후둑후둑 빗발이 하나둘 늘어가더니,시나브로 소나기를 퍼부을 기세를 보인다.
기상예보와는 달리 온종일 파란 하늘에 그저 감지덕지 했는데,
오늘 산행의 피날레는 기상예보의 정확성에 일조를 하려는 느낌이 든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신성인한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봄비에 젖어
번들거린다.그 뒷편으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여유있는 시간에 찾았드라면 세심하고 꼼꼼하게 기념관을 둘러보고 살펴보고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삼았을텐데, 주마간산식으로 덜렁덜렁 둘러보고 기념관을 나서려니
부끄러움과 죄송함으로 뒷골이 간지럽기만하다.
남산에 피어있는 열쇠꽃
피날레 100미터를 남겨두고
호랑이가 장가가려 했는가,빗줄기는 멎었고, 물 먹은 땅에서 품어져 나오는 구수한 땅내음이
향기롭다. 씁쓸하고 비릿하고 쉰듯한 도시 냄새를 한순간에 구수한 땅내음이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뒤로하면, 곧바로 오른 손을 펴서 정면을 가리키는 김구선생의
동상이 나그네의 발길을 잡으려 한다.푸른색 녹이 얼룩얼룩진 선생의 동상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엄숙함과 고결함이 묻어있으며 일구월심 애국애족의 의지가 담겨있다.힐튼호텔 앞이다.
오른쪽 저만치 빌딩숲 사이로 대한민국 국보1호 숭례문이 다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보아도 낯이 익고 익숙한 자태와 반듯한 풍모! 덩치 큰 고층 빌딩숲 탓인가,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들고, 아담한 체수에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돈다.
분주하게 오고가는 차량들로 붐비는 차도를 따르면 곧바로 남대문 시장이 반갑게 손짓한다.
시끌벅적한 남대문 시장 주변에서 뒷풀이하기에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퇴계로 넓은 도로를 건너 회현동 길가의 생선굽는 냄새 진동하는 식당으로 후줄근한 행색의
세 노마들은 찾아든다.동네는 회현동인데 식당이름은 명동이다.
점심식사시간에 손님이 넘쳐서 오늘 준비한 생선이 바닥이 났으니 그나마 남은 간고등어나
드시려면 드시라며 배를 잔뜩 내민다.고르고 잰다고 특별한 곳 뭐 있나?
그러나 막상, 일구월심(?) 원하던 막걸리는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다.달거형이 슬그머니 바깥으로
막걸리를 구해보려 가게문을 나서보아도 구할 길이 없는지 빈손으로 투덜대며 들어온다.
주인 아낙에게 주문을 해보니, 바깥으로 나가기 무섭게 막걸리 두어 병을 들고 발걸음도 가볍게
냅다 들어선다.갈증해소겸 알콜보충겸 겸사겸사,안마시자니 섭섭하고 마시자니 갈 길은 멀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머릿속 계산기와 함께 술잔을 잡은 주름진 손도 연신 바쁘게 오르내린다.
세 노마들이 바로 턱밑에 위치하고 있는 회현지하철역사 내리막 계단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30여 분이 흐른 뒤다.
(2015년4월 2일)
매봉산에서 바라 본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