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만 남아있는 작은 평행선 수인선
흔적만 남은 수인선 구간을 돌아 보았다.( 촬영장소: 안산역과 공단역 사이) [2007. 4. 7일. 토요일 날씨 흐림 한국의산천 ] 어린 시절 정확히 말해서 중학교 시절 무더운 여름 친구들과 먼지나는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는 버스(당시 버스요금 13원)를 타고 소래에 도착하여 망둥어 낚시를 하고, 소래역에서 꼬마기차를 몰래 올라타(무임승차) 고잔역까지 와서 물이 빠져 단단해진 갯벌에서 축구를 하고 고등어 통조림 찌개를 끊이고 밥을 해서 먹고 놀았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고깃배와 포구의 모습을 보여주던 사리포구도 시화방조제가 생기고 나서 매립이 되고 지금 그 자리에는 포구의 희미한 흔적을 되집을 수있는 호수공원이 생겼고 그 주변으로는 아파트 숲인 고잔 신도시가 들어서 있다. 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된다고 하지만 이곳은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밭이 되었구나. 상전벽해의 고사성어의 놀라움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와 덜컹거리는 기차의 느낌은 우리의 마음을 과거로 돌려주는 타임머신이다.
▲ 수인선 선로 ⓒ2007. 한국의산천
며칠전 뉴스를 접했다. 그 뉴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수인선따라 레일바이크 달린다
폐쇄된 수인선 협궤열차에 레일 바이크가 도입될 전망이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는 수인선 협궤열차 안산 구간(4㎞)을 관광용으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3일 밝혔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1995년 말 폐쇄됐으나 선로는 대부분 원형대로 보전돼 있다. 구는 이를 위해 지난달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철도부지 무상사용 동의를 얻어 이 일대 땅 1만2,000여평을 말끔히 정비했으며 주변에 로즈마리, 라벤더와 같은 허브식물과 해바라기 등을 심을 계획이다. 구는 또 사람이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레일 바이크를 도입하고 협궤열차 2량도 복원해 운영할 계획이다. 레일 바이크는 강원 정선군이 2004년 폐광지역의 석탄 운반용 선로를 이용해 처음 도입하면서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단원구 관계자는 “조만간 도입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라며 “레일 바이크가 운영되면 안산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7. 4. 3 한국일보> |
한국의 협궤철도(狹軌鐵道)
협궤란 선로폭이 표준궤보다 좁은 선로를 지칭하며 정확한 수치는 1067밀리미터이다. 우리나라에서 쓰인 협궤는 76.2cm (762밀리미터)이다. 표준궤는 1435밀리미터, 광궤는 1524밀리미터나 1674밀리미터이다
협궤선로는 수인선과 수려선에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선되었다.
▲ 원곡동 수인선 터널 ⓒ2007. 한국의산천
수인선
인천광역시 송도(松島)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선. 총길이 52km. 본래 경기만(京畿灣)의 소래(蘇萊)·남동(南洞)·군자(君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하여 1935년 9월 23일에 착공하여 37년 8월 6일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朝鮮京東鐵道株式會社)의 사설철도로 건설되었으나, 광복 후 국유화되었다.
수려선(수원~여주)의 농산물을 인천으로 연계수송도 하였다.
▲ 수인선 협궤 선로 (폭 76.2cm) ⓒ2007. 한국의산천
카메라 삼각대를 놓아보았다. 양쪽 발이 닿은 거리가 선로의 폭이다. 그렇다면 기차는 크기가 얼마만 했을까?
꼬마기차가 다시금 보고 싶다.
▲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흔적이 남아있다.ⓒ2007. 한국의산천
일제는 1937년 경기도 이천 여주 지역 쌀과(수려선)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수원역~남인천역(수인선 지금의 중구 신흥동)간 수인선 협궤열차를 운행했다. 당시 일본은 여주 이천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최고품질의 쌀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수원~여주간 수려선과 함께 수인선을 이용한 것이다.
▲ 공단역과 안산역 사이 왼쪽으로는 전철 4호선이 지난다.ⓒ2007. 한국의산천
해방후 60년대 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차가 객차 6량과 홤루차 7량을 달고 수인선 15개역을 하루 평균 7차례 운행했다. 그러나 버스 등 대체교통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다 철도청은 79년 송동~남인천간 5.9km의 운행을 중단했다.
▲ 수인전 철로 위를 지나는 전철 4호선 다리 ⓒ2007. 한국의산천
이어 92년 7월엔 소래역~송도역 운행이 끊겼고 수인선 복선전철화 계획이 구체화된 지난 94년 9월에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송도역26.9km구간을 폐쇄, 수원~한양대역까지만 열차를 운행했다.
▲ 지금은 구불 구불한 선로이지만 과거에는 서민의 일상과 많은 애환을 실고 달렸던 수인선 선로ⓒ2007. 한국의산천
수인선 열차는 달릴때 심하게 흔들렸다. 객차내 폭도 2m 남짓해 덜컹더거릴 때면 맞은편 승객과 무릎이 닿기도 했다. 그래서 꼬마열차를 탄 승객들은 금세 말문을 트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수인선 역중 유명한 곳으로 단연 소래역이 꼽힌다.
▲ 수인선의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철 4호선이 지난다.ⓒ2007. 한국의산천
수인선 협궤열차의 폭은 표준궤도의 절반인 76cm에 불과했다. 작고 힘이 달려 안산 원곡고개 등지에선 손민이 내려 걷거나 열차를 밀어야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건널목에서 일어난 협궤열차와 버스의 총돌사고로 협궤동차가 넘어졌다는 이야기도 그 당시 수인선을 이용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수인선은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추억속에 남아있다.ⓒ2007. 한국의산천
▲ 지나간 영화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속으로ⓒ2007. 한국의산천
▲ 수인선 옆 언덕으로 모녀가 산책을 하고 있다.ⓒ2007. 한국의산천
▲ 지금은 사라진 소래역사 (용인문화원 사진 참고)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의 일제의 물자수탈 수단으로 탄생했지만 반세기 넘게 인천 ~ 수원간 해안가 서민들의 발노릇을 톡톡히 하며 이들의 애환을 싫어 날랐다. 열차 한량이 시내버스보다 작고 불품도 없었찌만 교통수단이 부족햇던 수인지역 주민들에겐 더없이 소중했다. 그러다 산업화 도시화 물결에 밀려 운행 58년만인 지난 95년 12월 31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소래역사에서 수인선 승하차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여주의 농산물(수려선)을 수인선을 통해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70년대 이후 염전지대의 물량확대와 교통의 편리성 요구가 증대되자 이용객과 화물이 줄어들어 경제성이 크게 낮아졌다. 73년 11월 종착역이던 남인천역이 폐쇄되고 77년 화물수송이 중단되었다. 95년에는 여객운송을 중단하고 철거하였다.
수인선의 인천 종점(?)인 용현동, 과거 종합 버스 터미널 옆의 수인역에는 수원과 안산쪽에서 수확한 농작물 특히 잡곡을 가지고 모여들어 장을 이루었다. 지금도 그곳에는 잡곡 시장이 형성되어있다.
1977년 인천병력이 군 입대 할때는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논산으로 갔다. 나역시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집결 한 후 4열 종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헌병들의 호휘를 받으며 수인역으로 걸어간다음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깜깜한 밤을 달려 논산 훈련소로 이동했다.
수려선
수원에서 출발하여 신갈,용인,양지,이천을 지나 여주까지 운행
수려선(수원 ~ 여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철도가 그렇듯이 수려선 역시 경기도 여주-이천지역의 쌀을 수인선이나 경부선을 이용, 빠르게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30년 5월 1일에 개통된 수려선은 처음 개통할 당시는 수원~이천간 53.1km만 운행하였다. 양지역에는 승객외에 장작, 숯, 벼 등의 수화물을 취급하였는데, 하루 60t정도를 취급하였다.
▲ 수려선(수원 ~여주) 마지막 폐선 신문기사 (1972년)
수려선(水驪線;수원∼여주간 철도)
▲ 인도교로 변산한 소래 철교 ⓒ 2007 한국의산천
그 시절에도 소래포구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서는 물론 가족과 함께 정겨운 나들이를 하던 곳이다. 주부들은 밑반찬으로 식탁에 올릴 조개젓이나 새우젓, 벤뎅이젓 등을 사기 위해 협궤열차를 타고 고래를 찾았다.
▲ 12년간 사용되지 않아 황폐해진 소래역사(출처: 조선일보 2007. 4. 7) ⓒ 2007. 한국의산천
택지 개발로 내달 철거
1937년 수인선 협궤열차 개통에 맞춰 세워진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 인근 소래역사(驛舍)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소래역사는 일제가 인근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반출하기 위해 지은 31평 크기 단층 벽돌 건물. 1995년 말 수인선 열차가 운행을 중단하면서 기능을 잃었다. 건물 내부에 의자와 매표소 흔적이 남아 있지만 노숙자들 안식처가 된 지 오래다. 최근 인천시 문화재 위원들이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협궤 철로의 흔적이 모두 없어졌고, 건물 내·외부가 대부분 훼손되는 등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문화재로서의 등록 가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이곳에 역사가 있었다는 표지석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조선일보]
▲ 소래 철교의 노을 ⓒ 2007. 한국의산천
92년 7월 송도역~소래역간 열차운행이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송도역 주변엔 협궤열차를 타고 농수산문을 파는 아낙네들이 반짝시장이 유명했다. 소래에서 갓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과 인근 농촌에서 가꾼 각종 채소들은 협궤열차에 싣고 올라 송도역 앞에서 장을 벌인 것이다.
지금은 꼬마기차가 다니지 않는 소래 철교위로 연인들과 사진 촬영 애호가들이 찾고 있다. 그 옛날 수인선과 함께한 서민들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하늘에는 빨란 노을이 아름답게 걸려있다 -한국의산천-
첫댓글 수인선 협과 열차가 "칙칙 폭폭"하고 소래다리로 오면, 소래다리를 건너던 아주머니가 철로 침목위에 `털석' 주저 앉아 꼼짝 못하고 "나 죽여라!'소리 질럿렀었다. 기차가 서고, 기관사가 뛰여 와서 아주머니를 업고 철로 침목을 건너 뛰어 다리를 건너 주고, 다시 기관차로 달려와서 기관차를 움직였다. 마치 철인 10종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또 열차 안에서는 농수산물이 범벅이 되어서 물물교환이 더 손쉬웠었다 꽃삽 어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