妙音菩薩品(묘음보살품) 第二十四
7. 묘음보살이 안부를 전하다
"세존이시여, 정화수왕지 부처님이 세존(世尊)께 문안하시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편안하십니까?
기거하시기는 어려움이 없으시고 안락하게 행하십니까?
사대(四大)가 조화롭고 화평하십니까?
세상의 일은 견디실 만하십니까?
중생들도 제도하기 쉬우십니까?
탐욕이 많고 성냄이 많고 어리석고 질투하고 간탐하고 교만이 많은 이는 없습니까?
부모에게 불효하고 사문(沙門)을 공경치 않고
삿된 소견과 악한 마음을 가진 이는 없습니까?
다섯 가지 정욕(情慾)을 잘 관리하여 거두어들입니까?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마군과 원수를 잘 항복 받습니까?
오래 전에 열반하신 다보여래께서 칠보탑 안에 계시면서 오셔서 법을 듣습니까?
'다섯 가지 정욕'은 오근을 통한 그런 정욕이죠.
안부의 말이 아주 깁니다.
보통 만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기 다른 세계에 다른 부처님의 제자로서
묘음보살이 석가모니부처님 세계에 이렇게 법화회상에 공양하기 위해서 왔는데
안부가 간단할리가 없습니다.
안부가 ‘건강하고 편안하십니까?’
‘기거하시는 어려움이 없으시고 안락하십니까?’
‘사대는 조화롭고 화평 하십니까?’
‘세상의 일은 견디실 만합니까?’
‘중생들도 제도하기 쉽습니까?’
이런 등등 아주 골고루 문안을 여쭈고 있습니다.
또 다보여래께 문안하시기를,
'편안하시고 시끄러움은 없으십니까?
잘 참고 견디시며 오래 머무십니까?' 하시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다보 부처님의 몸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 저로 하여금 친견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보 부처님께 말씀하시었습니다.
"이 묘음보살이 친견하고자 합니다."
이 때 다보 부처님께서 묘음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그대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법화경을 듣고
문수사리 등을 보기 위하여 여기에 왔구나."
이렇게 다보부처님도 탑 안에서 묘음보살을 환영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묘음보살의 선근과 공덕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죠.
8. 묘음보살의 선근(善根)과 공덕(功德)
그 때 화덕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묘음보살이 무슨 선근(善根)을 심었으며
무슨 공덕(功德)을 닦았기에 이런 신통의 힘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화덕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이름이 운뢰음왕(雲雷音王) 여래·응공(應供)·
정변지(正徧知)이시니라.
국토의 이름은 현일체세간(現一切世間)이고,
겁의 이름은 희견(喜見)이었느니라.
묘음보살이 일만 이천년 동안 십만 가지 풍류를 연주하여
이 묘음이라고 하는 그 이름하고 연관이 있죠.
십만 가지 풍류를 연주하여 운뢰음왕 부처님께 공양하고,
팔만 사천 칠보발우(鉢盂)를 받들어 올렸느니라.
요즘도 음악공양 많이 있는 일이죠.
법당 천장을 보면 음악을 연주 하고 천신, 천녀들이 춤을 추는 그런 그림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한껏 발휘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이죠.
풍류를 연주해서 부처님께 공양했다 좋은 표현이죠.
그리고 ‘발우를 받들어 올렸다’
우리가 의식주 중에서 먹고 사는 일이 제일 중요하니까
발우를 올리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 때의 인연과 과보로 지금 정화수왕지 부처님 국토에 났으므로
이런 신통의 힘이 있느니라.
화덕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 운뢰음왕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묘음보살이 풍류를 연주하여 공양하고
발우를 받들어 올린 이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지금 여기에 있는 묘음보살마하살이니라.
그러니까 과거에 운뢰음왕 부처님께 풍류를 연주해서 올린이가
바로 여기에 찾아온,
오늘 찾아서 이렇게 대중 앞에 나타난 묘음보살이다 그랬습니다.
화덕이여, 이 묘음보살이 이미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들에게 공양하고 친근하여
오래도록 덕의 근본을 심었고,
또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백천 만억 나유타부처님을 만났느니라.
그러니까 묘음보살이 오늘날 이렇게 그 나라의 회상에서
대표가 돼서 부처님께 와서 이런 신통을 보이고 공양을 올리고 한 그런 것은
과거에 닦은 선근공덕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묘음보살로서 이런 모습을 나타나게 됐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후 '오래도록 덕의 근본을 심었고
그리고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백천 만억 나유타 부처님을 만났느니라'
이쯤 되면 보는 사람이 다 부처님이죠.
부처님 눈이라야 부처님이 보이지
아무리 부처님이 있다한들 우리가 부처의 눈이 아니고 부처의 안목으로 보지 못하면
부처님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백천 만억 나유타 부처님을 만났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모두가 부처님인데 묘음보살은 이미 그러한 눈을 갖추고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줄 알았다,
바로 그 안목, 그 소견이 오늘날 이런 묘음보살이 되었고
또 법화경의 사상을 제대로 체득하고 사는 진정한 법화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묘음보살품은 법화행자의 어떤 모범으로서의 보살이다
이런 그 말씀을 드리는데 바로 그겁니다.
그러한 근본정신을 이미 체득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묘음보살로서의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 법화경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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