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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02
S#1. 산판 벌목장 (낮)
2년 후. 깊은 산중 벌목장. 전기톱 윙윙 돌아가고 있다. 아람드리 큰 나무 한그루 쓰러진다. 인부 두어사람, 나무를 끌고간다.
세준 모습 보인다. 작업복 차림에 먼지 잔뜩 뒤집어 쓰고 나무를 옮기는 중이다.
반장(60대 남) 올라온다. 인사하는 세준.
반장 : 수고 많어, 의사학생!
세준 : (땀 닦으며) 오셨어요?
반장, 세준 곁으로 와서 앉는다. 담배 한대 꺼낸다.
세준, 수건으로 얼굴 닦으며 곁에 앉는다. 담배 불 붙여주고 자기도 옆으로 돌아 한 대 피운다.
반장, 흰봉투 꺼내서 준다.
반장 : 그동안 고생했어.
세준 : 고맙습니다.
반장 : 나두 자네같은 아들 하나만 있으면 원이 없겠어. 우리 아들놈은 둥록금은 커녕 용돈 한번 제 힘으루 번 적이 없으니...
세준 : (웃고)
반장 : 언제 서울 올라가?
세준 : 내일 오후에요.
S#2. 벌목장 부근 읍내 (낮)
신나서 뛰어오는 세준. 가방 둘러메고 있다. 그을린 건강한 모습. 우체국으로 들어간다.
S#3. 우체국 안 (낮)
여직원 앞에 서있는 세준. 돈 건네고 송금 확인증 받는다. 만족스러운 듯 들여다보며 옆의 공중전화기로 간다. 번호 누르고.
세준 : ...민선생님?
S#4. 소망원 사무실 (낮)
민선생,전화 받고 있다.
민선생 : ...그래? 알았어... 고생 많았지? ...알아, 알아. 걱정마... 서희 아직 쪼끔두 눈치 못챘어...알았어, 잘 전해줄께...
근데 언제까지 비밀루 할거야?...서희가 후원자님한테 인사 한번 하구 싶다구 하두 졸라서 말이야...
(한숨) 알아, 그거야 알지만...중간에서 내가 영...
S#5. 공중전화부스 (낮)
전화하고 있는 세준.
세준 : 번번이 고맙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저어...어머닌 잘 계세요?
S#6. 소망원 원장실 (낮)
송원장, 창가에 서서 아이들 뛰노는 모습 바라보고 있다. 민선생 슬몃 문 열고 들어온다. 딱한 듯 잠시 본다.
송원장 : (기척에 돌아보고) 어, 왔어요?
민선생 : 서울 언제 올라가세요?
송원장 : 같이 갈래요?...(책상으로 오며) 장회장님댁 맏이 약혼한다는데 인사두 드리구, 물품두 구입하구...
민선생 : 잘됐네요. 저두 마침 서울에 볼일 좀 있는데...
S#7. 대학 도서관 열람실 (낮)
서희, 한쪽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있다. 면남방셔츠와 바지 같은 수수한 차림.
문득 책 위로 떨어지는 코피. 서희, 당황한다. 얼른 몸을 일으키다가 밀어놓은 자리 주인의 노트 위로 후두둑 코피가 떨어진다.
놀라서 얼른 닦는 서희.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일단 코를 막는다.
민혁 : (내려다보며) 비켜주시죠. 제자립니다.
놀라는 서희. 민혁 얼굴, 마치 괴물처럼 확대되어 시야에 들어온다.
얼른 고개 숙이고 코를 감싸는 서희. 민혁, 불쾌한 듯 책을 휙 나꿔채고 탁탁 턴다.
서희 : (일어나며) 죄송합니다.
서희, 얼른 코를 막고 돌아서서 화장실 쪽으로 간다. 민혁, 책장 피 묻은 면을 쫙 찢는다.
서희, 찢는 소리에 잠깐 멈칫하다가 서둘러 뛰어간다.
S#8. 동 화장실 (낮)
서희, 물로 코피를 닦아낸다.
S#9. 동 도서관 열람실 (낮)
서희, 다시 그자리로 온다. 황급히 책을 챙긴다.
서희 : (꾸벅) 죄송합니다.
가방 메고 서둘러 간다.
민혁 : 어이,
서희 : (돌아보는) 네?
민혁 : 자리 빌려 쓴 댓갑니까?
민혁, 지갑을 들어보인다. 서희, 당황하며 다가온다.
민혁, 주는 척하다가 약올리듯 일어나 손을 높이 든다.
서희, 몇번 까치발 뛰다가 얼굴 빨개지며 그냥 가만 서 있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다.
민혁, 히죽 웃으며 지갑 쓱 내민다.
S#10. 터미널 (밤)
세준, 가방 메고 터미널 나온다. 설레인다.
S#11. 대형 할인마트 (밤)
물건들이 높이 쌓여서 주욱 진열돼 있다. 카트 끌고 다니며 짐을 정리하는 직원들.
유니폼 입은 서희 모습 보인다. 물건 가득 실은 카트를 씩씩하게 끌고오며 직원들과 인사한다. 초조한 듯 시계본다.
지게차로 물건들을 진열대에 올리다가 실수로 와르르 서희 쪽으로 무너진다.
피하며 넘어지는 서희. 얼른 일어나 물건 챙긴다. 달려오는 여직원1.
여직원1 : 괜찮니?
서희 : 예.
여직원1 : 미안,늦었지?
서희 : (웃으며) 괜찮아요.
서희, 다시 시계본다.
S#11. 옥탑방 앞 골목 (밤)
서희, 장본 것 들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온다. 대문 입구쪽에 서있는 세준 모습. 밝아지는 서희.
서희 : (뛰어오며) 오빠!!
돌아보며 환히 웃는 세준.
S#12. 동 방안 (밤)
단칸 자취방. 단촐한 가구들. 소반으로 만든 책상과, 비키니 옷장과 박스 몇개, 이불 등.
상보를 짠 하고 여는 서희. 소박한 찬들. 김치, 고등어구이, 찌개, 계란말이 같은 것.
세준, 휘둥그레진다.
서희 : 와아, 반찬 많다! 오빠 좋아하는 고등어두 있네? 누가 이렇게 요리를 잘했을까요? 대단하군요?
세준 : 뭘 이렇게 준비했어?
서희 : 잠깐만!
뒤춤에 감췄던 폭죽을 탁 터뜨리는 서희.
서희 : 무사귀환 축하합니다! 학비 마련을 위해 방학 내내 산에 나가 나무를 베고 돌아온 장-한 대학생입니다!
세준 : (웃고) 뭐가 거창하다?
서희, 가만히 세준 눈을 바라본다. 행복하다.
서희 : 오빠,있지, 주인집 아줌마가 냉장고 주셨다? 오래된 건데두 되게 잘 돌아가. 밖에 있어. 볼래?
S#13. 동 옥상 (밤)
야경 바라보고 나란히 서있는 두사람.
서희 : (가만히 보다) 으음...오빠 꼭 산적같은 거 알어? 수염두 숭숭 나구.
세준 : 그러냐? (얼굴 쓸며) 씻지두 못하구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루 온거야.
서희 : ...흠,그렇게 내가 좋아?
세준 : 그래, 임마.
서희 : 나두 내가 좋아!
꿀밤 먹이는 세준. 서희, 세준 손을 본다. 상처가 있다.
서희 : (손 잡고 살피는) 다쳤어?
세준 : 어어, 좀 다쳤어. 나무 옮기다가 긁혔어.
서희 : (안쓰러운데) ...일...힘들었지?
세준 : 아니.
서희 : 얼굴이 꺼칠해졌어.
세준 : (얼굴 쓸며) 뭐가 꺼칠해? 건강해졌지.
서희 : ...(결심한듯) 오빠,
세준 : 왜.
서희 : ...내일 민선생님 올라오신대. 후원자님이 이번 학기 내 등록금 부쳐주셨대.
세준 : (정말 고마운듯) 아이구, 잘됐다. 너 매번 그분한테 고마워서 어쩌냐?
서희 : 그러게... 인사두 못드리구...
세준 : ...(흐뭇)
서희 : (잠시 사이) 근데 오빠...
세준 : ?
서희 : 원장어머니두 서울 오신대.
세준 : (설핏 굳는)
세준 : 어머니랑 인제 그만 화해해. 오빠가 먼저 찾아뵙구 빌어.
사이.
세준 : ...나중에.
서희 : 오빠 벌써 본과 사학년 올라가 ...내내 공부만 해두 부족한데, 방학마다 번번이 산판 벌목장에 가서 돈 벌 순 없잖아...
세준 : (말 돌리는) 수강신청 뭐뭐 했어?
물끄러미 보는 서희. 긴장 감돈다.
서희 : 벌써 이년이나 지났는데, 얼마나, 보고싶어 하시겠어...나 이젠 괜찮아. 오빠 보구 싶어두 좀 참으면...
세준 : (일어나며) 그 얘긴 나중에 하자...(시계보며) 그만 가야겠다.
서희 : 오빠,
세준 : (돌아서다 생각난듯) 아, 일요일날 바이킹 타러 갈래?
서희 : 바이킹?
세준 : 너 그거 타보는게 소원이라며? 나 돈 있을 때 잘해라. 기회는 단 한번! 간다, 안간다?
서희 : ......간다!
S#14. 민혁집 외경 (낮)
규모 큰 저택.
S#15. 민혁방 (낮)
민혁, 엎드린채 잠들어있다. 머리맡에서 울리는 핸드폰. 민혁, 귀찮은 듯 얼굴 파묻는다. 계속 울린다. 손을 뻗어 받는다.
민혁 : ...네....(귀찮은 듯) 네, 저예요, 엄마.....오늘 시간 없어요...(차가운) 내일두 없어요...
...네, 별 일 없어요...네...네...나중에 전화할께요. 끊어요, 엄마... 끊어요.
전화 끊는다. 그대로 죽은 듯 엎드려 있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내팽개친다.
S#16. 동 거실 (낮)
장회장 부부(둘다 오십대 후반), 송원장, 형준, 앉아있다. 깔끔한 양복차림의 형준.
민혁, 이층에서 가운 입으며 내려온다.
송원장 :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서울 한번 올라오기가 쉽질 않았어요.
장회장 : 아이들 돌보느라 바쁘실텐데 그런 말씀 마십시요.
송원장 : 요번에 애들 놀이기구 일체를 새로 달았어요...정말루 고맙습니다.
장회장 : 아이구, 별 말씀. 이원장님 살아계실때 내가 얼마나 신셀 졌는데요.
젊을때 오갈데 없는 나를, 거진 거둬주다시피 하셨잖습니까...성인이 따로 없으셨지.
민혁 : 세상엔 성인 곁에서두 세례를 못받는 사람들이 있죠.
장회장 : (눈길도 안주고 태연히) 인사 드려라. 송원장님 오셨다.
민혁 : 오셨어요? (고개 까딱하고 털썩 앉는다)
장회장 처 : (찌푸리고)
송원장 : 오랫만이구나.
형준 : 잘지냈냐?
장회장 처 : 형준이 이번에 연수원 마치지?
송원장 : 이녀석 이번에 판사 임용 됐어요.
장회장 처 : 아드님 두 분 다 이렇게 훌륭하니 얼마나 대견하세요?
장회장 : 세준이 좀 들르라 그러세요. 난 그녀석만 보면 흐뭇해요. 돌아가신 이원장님하구 똑닮았어.
들어오는 유리, 과일 쟁반 들고오며.
유리 : 원장님, 요즘 세준오빠 만나기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연락 해두 연락이 안돼요.
송원장 : ...으응...(당황하다 애써 태연)
민혁, 과일쟁반 내려놓는 유리 엉덩이를 툭 친다.
유리 : (인상쓰며) 오빠,
민혁 : (일어나며) 브래지어 끈 보인다.
눈길도 안주는 장회장. 차만 마실 뿐.
장회장 : (나직이) 다섯시에 민호 약혼식이다. 잊지마라.
민혁 : ...(가며)
S#17. 의과대학 교수실 (낮)
황교수, 손톱깎기로 발톱을 깎는 중이다. 소탈한 인상.
세준, 곁에서 프린터 뽑고있다.
황교수 : 왠 돈이 그렇게나 필요해? (깎은 발톱 후후 불어버리고)
세준 : ... (프린트 한것 내밀며) 여깄습니다.
황교수 : ... 젊은 녀석이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 뭐하게? 젊은 시절, 두 번 다시 안 와. 젊은 걸 즐기라구.
돈에서 자유로워야 진짜 자유로운거야.
세준 : (웃고) 예.
지영, 들어온다. 귀티 흐르는, 청순하고 앳띤 분위기다. 세준 보고 목례한다. 돌아보는 세준. 답례한다.
황교수 : 마침 딱 맞춰 왔구나.
지영, 잠자코 황교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재떨이를 휴지통에 비우며.
지영 : ...다,다, 담배...
황교수 : 알았다, 알았어. 줄일께... 이군 같이 나가 점심이나 먹지.
우리 딸래미 매일 홀아버지 밥해 대느라구 고생이라서, 모처럼 외식하자구 불러냈어.
세준 : 저어...
황교수 : 왜? 약속 있어?
세준 : 네. 죄송합니다.
지영 : (다 안다는듯 웃고) 서...서...서희 잘있어요?
세준 : (머쓱) 네.
황교수 : 이군 요새 누구 만나나?
지영 : ...우,우 우리끼리...먹어요,아빠. (세준보고 웃고)
세준 : (미안한듯)
S#18. 대학 강의실 복도 (낮)
세준, 서둘러 걸어간다.
민혁 : 어이,
세준 : (돌아보며 반가운) 민혁아,
민혁 : 그동안 어디루 잠수했었냐?
세준 : (정답게 배를 툭 치는) 왠일이냐? 학굘 다 나오구?
민혁 : (받아서 다시 툭 치고) 너 찾으러 온 지구를 헤메구 다니는 중이다.
세준 : 왜?
민혁 : 간만에 술이나 한잔 하자.
세준 : 미안. 나 오늘 약속이 있어서...
민혁 : (슬몃 살피고) 약속?
세준 : 응.
민혁 : 너두 약속이 있냐? 누구 만나는데?
세준 : 어어,
민혁 : 누구 만나는데?
S#20. 대형 할인 마트 안 (낮)
서희, 한쪽에서 유니폼 입고 물건 나르는 중이다. 대형 카트에 가득 실린 상품들. 힘겹게 끌고와 하나씩 내려놓는다.
민혁 : (E) ...한서희씬가요?
돌아보는 서희. 민혁 서있다.
서희 : (의아한) 네...
민혁 : 세준이 기다리시죠?
서희 : 네, 그런데요...(본듯하다)
민혁 : (본듯한데) 어, 혹시...어제 도서관에서...
서희 : (기억 스치며)
기분 상했던 기억이 짧게 지나간다.
민혁 : (껄껄 웃고) 어제 미안했어요.
서희 : (미소) 아니예요. 근데, 세준오빠한테 무슨...
민혁 : 아 참....(장난끼 발동한다) 세준이 병원 갔어요.
서희 : (굳는) 병원요? 어디가 아파서요?
민혁 : 아, 저...
서희,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서희 : 어떻게 된거예요? 어디가 아파서요?
민혁, 오히려 당황스럽다. 피식 웃는다.
민혁 : 놀라셨나봐요. 병원에 아르바이트 소개 받으러 갔다 온거예요. 제가 자알 모셔왔으니까 염려 놓으십쇼.
이 녀석 잠깐 화장실 갔어요.
긴장 탁 풀어지며 멍하니 바라보는 서희. 이사람, 뭐가 이런가...창피한 듯 눈물을 쓱 닦는다.
가만히 지켜보는 민혁.
민혁 : (악수 청하고) 인사 드리겠습니다. 장민혁입니다.
들어오는 세준. 서희 밝아진다.
S#22. 민혁 차 안 (낮)
민혁, 운전한다. 뒷좌석에 세준과 서희.
민혁 : 이 녀석이 서희씨 얘길 단한번두 한 적이 없거든요? 맨날 동생 만나러 간다면서 슬쩍 사라져버리구 그러드니...
정말 동생이예요?
세준 : (얼른) 임마, 너 갈 데 있다더니?
민혁 : 괜찮대니까? ...정말 동생이예요?
서희 : 네...어머니가 같거든요.
세준 : (당혹)
서희 : (웃고) 저한텐 원장어머니구 오빠한텐 친어머니구 그 차이지만요.
민혁 : (멈칫 미안한듯) 아아, 그러셨군요...
서희,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세준의 옷깃에 붙어있는 흙먼지를 털어준다.
서희 : 아르바이트 또 하게?
세준 : 교수님 친구 분이 개업을 하셨는데 일손이 모자라는 모양이야.
서희 : 등록금은 벌어놨잖아?
세준 : ...어어, 워낙 사정이 급하다구 당분간만 도와달라는데...경험두 쌓구...거절하기가 좀 그랬어...(얼버무리고)
서희 : (마음 아픈듯)
세준 : 밥은 먹었어?
서희 : 옷이 이게 뭐야? 농구했구나? (털어주며)
민혁, 다정한 두사람을 룸미러로 가만히 본다.
민혁 : 집이 어디예요?
서희, 세준, 본다.
S#23. 서희 옥탑방 안 (낮)
세준, 의자 위에 올라가 페인트붓으로 천장에 방수액을 바르는 중이다.
얼룩이 져서 지저분한 천장 벽지 일부를 뜯어내고 방수액 칠한다. 서희, 의자 붙잡고 곁에서 거든다.
서희 : (올려다보고) 응, 거기야, 거기...거기서 물이 뚝뚝 떨어져.
세준 : 한심하다...어떻게 지었길래 비만 오면 물이 새냐?
서희 : 그러게말이야.
구석에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민혁. 물끄러미 보고 있다.
세준 : 걱정 마라. 이 오빠가 손을 대서 안 낫는 데가 있냐?
민혁, 방을 한번 휘이 둘러본다. 책도 한번 후루룩 넘겨보고...시계 다섯시 다 돼간다.
세준 : (민혁 잠깐 본다) 너 무슨 일 있냐? 오늘 왜이렇게 한가해?
민혁 : (피식 웃고)
서희 :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녁 지어 드릴께요.
민혁 : 아녜요. 저 약속 있어요..
의자가 휘청한다.
서희 : (웃고) 어, 조심해, 오빠,
세준 : 잘 잡아.
웃고 다정한 두사람. 민혁, 물끄러미 보다가 일어나며 장난스레 의자를 탁 쳐버린다. 거의 넘어질듯 어,어,하는 세준.
세준 : 임마,
민혁 : 나, 간다.
S#24. 백화점 정문 앞 (낮)
명여사(50대), 승용차에서 내린다. 점퍼차림의 중년남자 한사람, 운전석에서 손 흔든다.
명여사, 소녀처럼 손을 막 흔들어준다.
민혁, 떨떠름하게 지켜보고 있다. 차 떠나고 민혁과 눈 마주치는 명여사. 천박한듯 화려한 차림. 모자쓰고 화장도 짙다.
명여사 : 아이구, 우리 아들! 얼마나 보구 싶었다구!
다가와 끌어안으며 볼을 부비는 명여사.
민혁 : 사람들 봐...(떼어내며) 누구예요?
명여사 : (돌아보는) 봤어? 보이 프렌드! 소개 시킬걸 그랬니? (손에 낀 반지 흔들어보이는) 프레젠트 받은거야. 이쁘지?
민혁 : 또 유부남 아녜요?
명여사 : (샐쭉) 넌 애가...(다시 볼을 쓸며) 아이구, 우리 새끼 말랐네?
S#25. 백화점 의류매장 (낮)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빙 돌아보는 명여사.
명여사 : 이쁘니? 어때?
민혁 : (덤덤히) 예뻐요.
명여사 : 이걸루 할께요.
지갑을 꺼내더니 잠깐 멈칫하는 명여사. 민혁에게 내민다. 민혁, 본다.
명여사 : (교태부리듯) 니가 내줘.
민혁, 지갑 받아들고 계산대로 간다.
민혁 : 계산해주세요.
S#26. 백화점 커피숖 (낮)
명여사와 마주 앉아있는 민혁. 명여사, 손수건으로 눈물 찍고 있다.
명여사 : 유린 잘있니? 걔 아직두 내 얘기 통 안하니?
민혁 : (덤덤히 보는)
명여사 : 얘, 나 오래 못살 것 같애. 작년에 수술 받은데가 밤마다 아퍼. 밤중에 일어나 혼자 누웠음 너랑 유리 생각에...
(눈물 훔치고) 나 느이들...정말 너무 보구싶어.
민혁 : (달래듯) 괜한 말씀 마시구 차 드세요, 식어요.
명여사 : 느이 아버지, 인간이 그렇게 매정할 수가 없다. 재수술 때문에 전화했드니 딱 한마디, 오실장하구 얘기하래.
그게 다야. 그게 다란다.
민혁 : ...(싸늘해진)
명여사 : 너 이 엄마 보구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니? 엄마는 니 생각 뿐이야. 나 죽으면 너희들 불쌍해서...
민혁, 더 참을 수 없어서 일어난다.
민혁 : 저 가볼께요. 약속 있어요.
겁먹은 얼굴로 올려다보는 명여사.
명여사 : 왜 벌써? 오늘 엄마 집에 가서 자구 가.
민혁 : 갈께요.
명여사 : 얘! 얘! 민혁아!
민혁, 나가버리는데...
S#27. 민혁 차 안 (저녁)
거칠게 차 몰고 가는 민혁. 음악을 튼다. 강한 비트의 음악. 볼륨을 점점 높인다.
차를 급회전하더니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기 시작한다.
S#28. 까페 (저녁)
세준, 들어온다. 주위 둘러본다.
형준 : 여기다.
세준, 다가와 앉는다.
형준 : 잘지내니?
세준 : 음. 형은?
형준 : 얼굴이 안 좋다.
세준 : ...그래? (웃고)
종업원 차 주문 받는다.
형준 : 커피요.
세준 : 저두요.
사이.
세준 : 형수는 잘있어?
형준 : ...어머니 많이 편찮으시다.
세준 : ...
형준 : 심장이 또 도지셨어...너 계속 이렇게 지낼거냐?
세준 : ...(굳는)
형준 : 꼭 이렇게 살아야 하니? 형으로서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더 늦기 전에 정리해라.
더이상 너 이렇게 망가진 꼴 못 보겠다. 뒷일은 형이 다 책임질테니까 그만 끝내.
세준 : ...
S#31. 옥탑방 앞길 (저녁)
서희, 옥상에서 빨래 널고 있다. 다 널고 돌아서서 방쪽으로 가는데 저 아래 길가에 와서 서는 민혁의 승용차.
서희, 무심히 들어가려다가 다시 돌아본다. 차에서 내리는 민혁. 서희, 놀란다.
멀리서 정중하게 인사하는 민혁.
서희 : (내려다보고 소리치는) 세준오빠 여기 없는데요? 오빠 갔어요!
민혁 : ...미안하지만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서희 : 네?
민혁 : 여자친구한테 옷을 하나 선물하구 싶어서요. 가서 같이 좀 골라주세요. 전 여자옷은 볼줄 몰라서요. (씩 웃고) 부탁해요!
S#32. 백화점 의류매장 (저녁)
서희,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나온다. 민혁, 만족스러운 듯 본다.
서희 : (난처하고 창피한듯)
민혁 : 그거 좋은데요.
서희 : 여자친구가 정말 저랑 체격이 비슷해요?
민혁 : 왜요? 일일이 입어봐달래서 기분 상했어요?
서희 : 아뇨...그럼 이걸로 하실래요?
잔뜩 골라놓은 옷들. 서희, 주섬주섬 제자리에 챙기는데.
민혁 : 그냥 둬요. (종업원 보고) 여기요! 여기 골라놓은 거 다 계산해주세요.
서희 : !
S#33. 레스토랑 (밤)
고급 레스토랑. 서희, 민혁, 마주 앉아있다. 어색한 듯 둘러보는 서희.
민혁, 서희를 살피고 미소 짓는다. 웨이터 각자에게 메뉴판 내민다. 서희, 난처하다.
민혁 : (메뉴판 짚으며) 이걸로...
서희 : ...(망설이다) 저두 같은 걸로...주세요.
민혁 : 부담스러워요?
서희 : ...네.
민혁 : 바쁜 서희씨 불러서 고생 시켰는데 이 정도 대접은 해야죠. 편하게 생각하세요. 학교 선배로 그저 편하게 대해요.
서희 : ...(난감한데)
S#34. 서희 옥탑방 앞 (밤)
세준, 착잡한 기분으로 층계 올라온다. 문 두드린다. 불꺼져있다.
주위 살피다가 난간에 기대고 서는 세준. 기다린다.
S#35. 레스토랑 (밤)
민혁과 식사하는 서희.
민혁 : 그럼 학비랑 생활비는 누가 대주나요?
서희 : (대답하기 싫지만) ... 어떤 분...(머뭇) 후원자 분한테서 도움을 받고 있어요.
민혁 : 아아 ...
서희 : ...
민혁 : (잠시 생각) 저 어릴때 아버지 따라 소망원에 한번 간 적 있었어요. 그때 우리, 만난 적 있을지두 모르겠네요.
서희 : ...(조금씩 기분 나빠지는) 네, 그럴지두 모르겠네요.
잠자코 고개 숙이고 서희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민혁.
민혁 : 우리 아버진 부자예요. 중학교만 중퇴 하셨지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모으셔서 지금은 계열사를 몇개 거느린,
명색이 재벌이예요. 의지가 대단한 분이시죠.
서희 : ...(포크질 멈춘다)
민혁 : 더 들어보실래요? 우리 어머닌 요정에서 일하다가 아버질 만났어요. 어머닌 나랑 여동생을 낳은 뒤에 버림 받았어요.
주름두 생기고 입에서 냄새두 나고...한마디로 더이상 예쁘고 젊질 않았거든요.
서희 : (가만 본다. 왜 이런 얘길 하지?)
민혁 : (냉소 어리는) 아마 지금두 어디선가 배다른 형제들이 쑥쑥 자라고 있을 겁니다. 끔찍하죠.
서희 : 저어,
민혁 : 왜요?
서희 : 잘 먹었습니다. 그만 가봐야되겠어요.
민혁 : (물끄러미 본다) ...서희씨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부담 없이 그저 친구로.
서희 : ...
민혁 : 괜찮죠? (씩 웃는)
S#36. 서희 옥탑방 앞길 (밤)
차에서 내리는 서희. 민혁, 차에서 함께 내린다.
서희 :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돌아서는데)
민혁 : 잠깐만요.
차에서 옷봉투들을 꺼내서 내미는 민혁. 서희, 멈칫 본다.
민혁 : 서희씨 꺼예요. 가지세요.
서희 : 네?...여자친구...
민혁 : (OL) 저 여자친구 없어요... (차에 오르며) 갈께요.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차에 올라버리는 민혁.
서희 : 저기요! 잠깐만요!
차 떠나버린다.
S#37. 옥탑방 입구 (밤)
서희, 곤혹스런 얼굴로 옷봉투들 들고 올라온다. 열쇠로 문을 여는데 바닥의 귤 한봉지. 메모지 끼워져있다.
세준(E) : 임마, 어딜 그렇게 늦게까지 다녀? 전화할께.
미안하고 안타깝다. 다급히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 주위 둘러보는데...
S#38. 서희 자취방 안 (밤)
서희, 옷봉투를 물끄러미 본다. 난감하다. 옷봉투들을 치우다가 슬그머니 하나 꺼내서 본다.
내가 뭐하구 있나 싶다. 황급히 도로 넣고 구석으로 밀어버리는데.
혜정(E) : 서희야! 한서희!
놀라는 서희.
S#39. 옥탑방 입구 (밤)
문 열리고 나오는 서희. 혜정과 민선생 서있다. 혜정, 머리며 차림새가 심란하다.
서희 : (놀라) ...혜정아?!
혜정 : (얼싸 안으며) 서희야!
S#40. 자취방 안 (밤)
서희, 민선생, 혜정 둘러앉아있다.
서희 : (글썽이며 손 잡는) 어디서 어떻게 지냈어? 얼마나 보구싶었는지 알어?
혜정 : 나두...(눈물 닦으며 웃는)
민선생 : 쯧쯧, 그렇게 반가울거 도망은 왜 쳤어?
서희 : (본다)
민선생 : 막 서울루 출발하는데 얘가 딱 전활 했드라. 글쎄 서희 니 연락철 묻잖니?
혜정 : (둘러보며) 아우 좋다? 전화두 있구, 방두 깨끗하구...너 대학교 다닌대매?
서희 : 응. (미안한데)
혜정 : (속삭이듯) 야, 너땜에 원장어머니랑 세준오빠랑 의절했다면서? 진짜니?
툭 치는 민선생. 혜정, 히히 웃는다.
서희 : ... (머뭇) 원장어머니는요?
민선생 : 원장님은 먼저 내려가셨어.
서희 : ... 요즘두 제 얘기 아무 것두 안 물어보세요?
민선생 : 으응...그렇지 뭐.
민선생, 가방에서 돈봉투 꺼낸다.
민선생 : 이번 학기 등록금.
서희 : 고맙습니다. 고맙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혜정 : (뭔가 하고 보는) 뭔데? 누구한테 고마워?
민선생 : 으응...서희 도와주시는 후원자 분이 있어.
혜정 : 후원자요?
민선생 : 서희 대학갈 때부터 여태껏 얼굴 없이 도와주시는 분.
이것아, 너두 도망 안가구 대학 갔으면 이런 복이 생겼을지 누가 알어?
혜정 : 진짜루요? (삐죽거리는)
서희 : 민선생님 그 분...
민선생 : 연락처 나두 모른다니까? 그분이 그러길 원하시는데 낸들 어쩌겠니. 사실 좋은 일은 그렇게 하는 거다.
옷봉투들 열어보는 혜정.
혜정 : 이거 뭐야? 야아, 이렇게 좋은 옷을 누가 사줬어? (꺼내서 대보는)
서희 : (당황) 어, 도로 돌려줄 옷이야. 텍 떼지말구 입어, 혜정아.
혜정, 좋아라 옷을 입어본다. 서희, 가격표 뗄까 조바심.
S#30. 개인 의료원 외경 (밤)
내과. 소아과 이층 건물.
S#31. 의료원 복도 (밤)
세준, 진료실 쪽에서 쓰레기통 수거해서 나온다.
S#32. 병원 뒷편 소각장 (밤)
소각장에 불길 타오르고 있다. 주사기, 약솜 등 수거물 한가득 안고와서 불 속에 던지는 세준. 불빛 바라보며 착잡한 시선.
병원 쪽에서 기웃거리다가 세준 발견하는 유리. 뒤에서 다가온다. 장미 꽃다발 안고있다.
유리 : 오빠 그러구 있음 되게 멋있는 거 알어?
세준 : (돌아보고 놀라) 너 여기 어떻게 알구 왔어?
유리 : 오빠 내 손 안에 있는거 아직두 몰라?
세준 : 그새 민혁이한테 들었구나?
유리 : 오늘 우리 큰오빠 약혼했어.
세준 : 그랬어?
유리 : 두번 만나구 약혼이래. 그게 뭐야? 난 그런 결혼 안한다.
세준 : ...
유리 : 오빠,
세준 : 왜?
유리 : ...(씩 웃고) 아냐...(둘러보며) 설마 여기서 먹구 자구 하는 건 아니지?
세준 : 그럼 어때서?
유리 : ...저녁 먹었어?
세준 : 먹었어. (막대기로 불길 휘저으며 웃고) 꽃은 뭐하러 사 와? 나 환자 아냐.
S#41. 동 방안 (밤)
불꺼진 방안. 세사람, 나란히 누워서 잔다. 베개 모자라 팔을 베고 있는 서희. 민선생, 잠들었다.
서희 : ...자?
혜정 : 아니.
서희 : (팔 잡고 매달리며) 오랫만에 같이 자니까 참 좋다. 너두 좋지?
혜정 : 그래.
서희 : 재석이는?
혜정 : ... 그자식 얘긴 꺼내지두 마.
서희 : 왜.
혜정 : 지가 나 좋아한다구 거진 강제루 끌구 올라온거 아니니. 올라와서 당장 있을 데가 어딨어?
첨엔 비닐하우스에서 돗자리 깔구 살았어. 쌀은 있는데 불이 없어서 생쌀두 먹구 그랬어.
서희 : (마음 아픈)
혜정 : ...그 자식은 노가다 하다가 허릴 삐끗해서 얼마전까지 내내 내가 먹여 살렸어. 나 도저히 더 못살겠드라.
내 한몸 추스리기두 바뻐.. 찢어졌어.
서희 : ...혜정아,
혜정 : ...왜.
서희, 혜정 손을 꼭 쥐어준다.
혜정 : (피식 웃고) ... 세상 참 불공평해? 그지? 서희야, 넌 좋겠다. 넌 머리라두 좋아서 공부라두 잘했지.
후원자두 공불 잘해야 후원을 하지. 돌대가리, 나는 왜 태어났냐? ....(눈물 훔치며 돌아눕는)
야, 우리 부모들은... 버릴 새끼는 뭐하러 깠을까? 응?
서희 : (혜정을 끌어안아주는) ...
S#42. 옥탑방 외경 (아침)
S#43. 동 방안 (아침)
창밖이 밝다. 서희, 잠들어있다. 혜정자리 비어있다. 일어나 이상한 듯 두리번거리는 민선생.
민선생 : 서희야, 일어나봐. 혜정이 가방이 없다? 얘 어디 갔니?
서희 : (일어나는) 네?
민선생 : 옷은 여기다 벗어놓구... 옷 벗구 어딜 갔을까?
서희, 놀라며 둘러본다. 옷봉투 하나 헤쳐져 있고 책상 위에 쪽지가 놓여있다. 들고 읽는다.
혜정(E) : 서희야, 인사 없이 떠나서 미안하다. 나중에 돈 벌어서 갚을께. 잘있어. 성공해라.
민선생, 들여다보다가 사색이 된다.
민선생 : 얘, 돈! 니 돈! 등록금!
서희 : !
S#44. 의료원 복도 (낮)
꼬마를 등에 업은 여인, 다급히 들어온다. 세준, 가방 메고 나오다가 본다.
여인 : (사색) 의사선생님 어디 계세요? 우리 애 죽어요! 숨! 숨을 못쉬어요!
얼른 꼬마를 받아 업고 뛰는 세준. 간호사, 나오다 본다.
S#45. 진료실 (낮)
꼬마에게 응급조치 하는 간호사. 얼굴 하얗게 넘어가는 꼬마.
세준, 곁에서 보다가 안되겠는지 급히 다가와 심장에 충격을 가한다. 간절한 얼굴로 정성을 다해서 처치한다...
어느새 혈색 돌아오는 꼬마.
세준 : 정신 드니? 꼬마야?
꼬마 : (서서히 눈을 뜨고)
여인 : 정호야!
세준, 땀 닦으며 환히 웃는다.
S#46. 의료원 원장실 (낮)
세준, 의료원장 따라 들어온다. 50대 남. 자리에 앉는 원장.
원장 : 수고했어. 아주 큰일을 했어. 본과 삼학년이라구?
세준 : 네.
원장 : 황교수가 추천할만 하구만. 지내기 불편하진 않아? 말이 업무보조지, 잡무에 청소에..밤에 제대로 잠두 못 잘거 같은데?
세준 : 불편한 거 없습니다. 다 좋습니다. 미리 경험두 되구요.
원장 : 공부만두 정신 없을텐데...(딱한 듯) 고생이 많네. (봉투 내밀며) 자, 부탁한 선불. 등록 아직 안했어?
세준 : (봉투 들어보이며) 해야죠. 고맙습니다.
세준, 인사하고 나가는데.
원장 : 앞으론 나 없다구 함부로 환자 다루구 그러지 마. 나 잡혀 가.
세준, 돌아보고 웃는다.
S#47. 서희 자취방 (낮)
서희, 혼자 얼굴 묻고 덩그러니 앉아있다. 시선 속으로 옷봉투와 혜정 옷이 보인다. 착잡하다. 눈시울 젖어온다.
울리는 전화벨. 서희, 전화 안 받는다.
S#48. 의료원 로비 공중전화. (낮)
전화 내리고 잠시 의아한 세준. 다시 어딘가에 전화 건다.
세준 : ...민선생님?
S#49. 소망원 사무실 (낮)
민선생, 전화걸고 있다.
민선생 : 어, 세준이구나? ...으응, 어제 갔다가 아침에 내려왔어.... 혹시 서희한테 들었니?.. 어어...(괴로운) 저기 말이야,
서희 그 등록금을...(한숨) 털려버렸어. 다 내잘못이다...얘 어쩌니, 니가 얼마나 힘들게 모은 돈인데...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한숨) 혜정이라구 기억나니?...그래, 맞아.
송원장, 입구에 서있다. 등 뒤에서 다 듣고 있다. 싸늘하게 굳어져 있다.
민선생 : 서희랑 어제 셋이 같이 잤거든? 자구 일어나니까..(원장 시선 모르고) 글쎄 걔가 그 돈을 들구 사라졌지 뭐야...
송원장 : ...
S#50. 의료원 로비 (낮)
전화 마치고 공중전화 앞에 서 있는 세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전화기 든다.
서둘러 번호 누르는데, 신호음만 갈 뿐이다.
S#51. 서희 옥탑방 안. (밤)
불꺼진 방. 서희, 웅크리고 앉아있다. 계속 울리는 전화벨.
S#52. 옥탑방 앞 (밤)
송원장, 층계 올라온다. 입구에 서서 불꺼진 안을 살핀다. 문을 한번 열어본다. 쉽게 열린다.
S#53. 옥탑방 안 (밤)
송원장(E) : 서희 안에 있니?
서희, 웅크리고 있다가 움찔 한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앉았다가 두려운듯 일어난다. 방문을 연다.
송원장 들어온다. 놀라서 굳어져있는 서희. 송원장, 싸늘한 시선으로 방안을 둘러본다.
송원장 : 오랫만이다.
서희 : (고개 떨구고) 그동안...잘 계셨어요?
송원장, 자리에 앉는다. 시선이 옷장, 책상, 그리고 옷봉투들에 머문다.
서희 : ...차라두...
송원장 : 됐다. 너두 앉아라.
서희 : ...(앉으면)
송원장 : 그동안 아가씨가 다 됐구나.
서희 : ...
송원장 : ...(싸늘히) 방은 누가 얻어줬니?
서희 : ...(망설이며 보는)
송원장 : 학교는 누가 보내주구, 생활은 누가 돌봐주니?
서희 : ...후원자님이요...
송원장 : 후원자?
서희 : ...네.
송원장 : 무슨 후원자?
서희 : (난감한듯 본다. 이윽고 결심) 후원자님이 한 분 계세요. 어떤 분이...도움을 주고 계세요.
송원장 : ...그 후원자 누군지 아니?
서희 : 네?
송원장 : 누군지두 모르구 그저 고맙습니다, 하면서 뻔뻔하게 매번 돈을 받았니? 소망원 원장인 내가 모르는 후원자두 있어?
서희 : ...
송원장 : 후원자가 세준이란 거 몰랐니?
서희 : (놀라) 네?
송원장 : 나 쳐다보지 마라. 나는 니 그 눈이 싫어. 순진한척, 착한척, 그 눈에 사람들이 속겠지만, 정말 착한건 그런게 아니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남을 아프게 하니? 엄마랑 아들이랑 연 끊게 하구, 고생고생 벌어서 돈 갖다주면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구...키워준 은혜를 이렇게 갚을 수가 있어?
서희 : ...(충격으로 멍한)
송원장 : 우리 아들 지금 어떤 꼴로 사는지 니 그 착한 눈엔 안 보이니? 걔가 왜 그 고생을 해야 해?
걔가 왜 니 학비까지 벌면서 살아야 하니?
서희 : (떨구고 눈물 글썽인다) 몰랐습니다.
송원장 : 모르는게 자랑이야? (점점 열 오르는) 나한테 세준이가 어떤 아들인지 그것도 몰랐지? 너 아는게 뭐가 있니?
(목 메이며) 아는게 뭐 있어? 응?
송원장, 서희를 마구 잡아 흔든다.
S#54. 대학교 수납 창구 (다음날 낮)
세준, 창구 직원 앞에 서있다.
세준 : 92학번 역사교육과 한서희요...등록금 고지서를 잃어버렸거든요...
창구직원, 전산단말기를 두드린다. 세준, 돈봉투에서 수표들을 꺼낸다.
창구직원 : (자판치며) 역사교육과 한서희....지금 등록하시게요?
세준 : (수표 내밀며) 얼마죠?
S#55. 의료원 앞 (낮)
서희, 고개 숙이고 입구에 서 있다. 세준, 걸어온다.
세준 : (환히 웃고) 언제 왔어?
서희 :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세준 : 야아, 너 화가 단단히 났구나? 어제 하루 못 만났다구 그렇게 화가 나?
서희 : 어디갔다 오는 길이야?
세준 : 어어, 학교에...일이 좀 있어서.
서희 : (만감 어리며 바라본다)
S#56. 근처 공원 (낮)
서희와 세준, 연못가에 나란히 걸터앉아있다. 서희, 세준 얼굴을 가만히 본다.
세준 : (능글거리며) 그러구 보지마. 내 얼굴 잘생긴거 나두 안다.
서희 : (마음 아프다) 오빠 나한테 뭐, 할 얘기 없어?
세준 : 할 얘기?
서희 : (본다)
세준 : (피식 웃고) 있긴 있지. 와아, 너 쪽집개 다 됐다? 안그래두 너 찾아갈려던 참인데...실은 나 이번 학기 휴학할려 그래.
서희 : !
세준 : 놀랬냐? 야, 휴학 한번 안하구 대학 다니는 것두 비정상이야. (한숨) 공부가 너무 힘들어. 의대 아무나 가는거 아니라드니..
한 학기 휴학하면서 뒤쳐진 과목 공부 좀 해둘려구...한 학기 정도면 뭐, 늦는것두 아냐.
서희 : ...(마음 아파오고)
세준 : (웃고) 임마, 휴학 별거 아냐.
서희 : ...오빠,
세준 : 왜?
서희 : 나...등록금 잃어버렸어.
세준 : (멈칫하다 놀라는 척) ...그랬어? 언제?
서희 : (밉다) 걱정없어. 후원자가 내 등록금을 또 내주겠지 뭐. 아마 민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오겠지?
서희야, 그분이 등록금 걱정 말래, 벌써 다시 다 내주셨단다...그렇게..
세준 : ...(굳는)
서희 : 그리고 오빠는 휴학을 하는 거지. 오빠 등록금을 줘버렸을테니까. 후원자는 오빠니까.
세준 : ...(나직이) 어디서 들었니.
서희 :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날 속였어?
세준 : ...
서희 : (기가 막힌듯 피식 웃으며 글썽인다) 멍청하게 난...정말 오빤 줄은 꿈에두 몰랐어. 세상엔 정말 좋은 어른들이 많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어...바보, 한심이, 이러니까 난 안돼.
세준 : ...누구한테 들었니? 민선생님이 그러시데?
서희 : ...(아프게 본다)
잠시 사이.
세준 : ...그렇게 해야 니가 좀 더 편할 것 같았어.
서희 : ...
세준 : 그렇지만...그게 뭐가 어때? 나 그동안 행복했어. 니가 학교에 다니고, 따뜻한 방에서 잠들고, 편안하게 쉬는 거,
그저 보는 것만으로두 행복하드라.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뭐가 잘못됐어?
서희 : 방학마다 힘든 산판에 가서 일하구, 밤에는 야간 경비 서구, 낮에는 애들 가르치구, 어머니랑은 의절하구,
그게 잘못된게 아니야?
세준 : ...그래. 잘못된거 아니야.
서희 : ...(목메이며) 오빠 이러면... 내가 감격할 줄 알았어? 그동안 돌봐주시고 등록금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눈물 흐르고)
세준 : ...아무 생각 말구, 그냥 그대로 살면 돼. 아무것두 달라질 거 없어.
서희 : ...(아프게 보는)
S#57. 의료원 로비 (낮)
세준, 주머니에 손 꽂고 착잡한 듯 들어온다. 간호사에게 인사한다.
간호사 : 세준씨, 집에서 전화 왔었어.
세준, 본다.
S#58. 터미널 입구 (낮)
세준,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뛰어들어간다. 쌕 하나 둘러메고 있다.
S#59. 소망원 인근 개인 병원 입구 (낮)
S#60. 동 병실 (낮)
들어오는 세준. 링거 꽂고 잠든 송원장. 형준, 곁에 있다가 돌아본다.
형준 : 왔구나.
세준, 잠든 송원장 얼굴을 본다.
형준 : 어제 서울 갔다오시드니 아침 드시구 쓰러지셨단다.
세준 : ...(마음 아픈)
형준 : ...(마뜩찮고)
S#61. 송원장 병실 (시간경과)
링거액병이 다 돼간다. 세준, 링거액 속도를 조절한다. 다시 송원장 곁에 앉는다. 한참 회한에 젖어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눈 뜨는 송원장. 세준과 눈 마주치자 굳는다.
세준 : 오랫만이예요, 어머니.
송원장 : ...(외면)
세준 : ...
송원장 : 누가 연락했니. 형준이냐?
세준 : ...좀 괜찮으세요?
송원장 : 뭐하러 왔니...에미 얼굴 다신 안보겠다더니.
세준 : ...
송원장 : 가거라.
세준 : ...
송원장 : 가서 니 맘대로 잘 살아봐.
세준 : 어머니,
송원장 : (그대로 외면)
잠시 사이 두고...
세준 : ...이해해주세요.
송원장 : 뭘 이해해? 이럴 거 없다. 서울로 올라가.
세준 : ...(송원장 손을 잡는다)
송원장 : ...(싸늘히 손 뿌리치며) 가거라.
세준, 잠시 보다가 조용히 돌아서서 나간다.
송원장 : ...(외면한 채) 너 나 안 좋아하지?
세준 : ...(멈칫 서는)
송원장 : 느이 아버지하구두 그랬다. 느이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나 참 행복했다... 하지만 늘 거리가 있었지.
세준 : ...
송원장 : ...나한텐 너 아니고도 돌봐야 될 자식들이 많다. 가거라.
S#62. 대학 수납창구 (낮)
서희, 난감한 얼굴로 창구 직원 앞에 서있다.
S#62. 수납창구 앞 캠퍼스 (낮)
직원(E) : 한달 후에나 환불이 가능합니다.
서희, 생각에 잠겨 걸어온다. 멀찌기 나무 뒤편에 서서 서희를 지켜보는 재석. 망설이다가 조금씩 따라온다.
지영, 맞은 편에서 온다.
지영 : ...(반가운) 서, 서희야!
서희 : 어, 오랫만이야, 지영아.
지영 : ... 드,등...(괴로운 듯 숨 가다듬고 보는)
서희 : (웃고) 등록하러왔어? 그동안 전화해두 통 없드라?
지영 : (환히 웃는) ...하,학원 다니느라구...
서희 : 나 먼저 갈께, 지영아. 또 보자!
지영 : ...가,가게?
서희 : (손 흔들고) 응. 연락할께!!
서희, 서둘러간다. 지영, 뭔가 아쉬운듯 보다가 돌아서서 걷는데 순간, 급히 오는 재석과 부딪친다.
지영이 안고오던 책 떨어지면서 책갈피에서 등록금 지폐가 쏟아진다. 지폐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악 소리 지르는 지영. 주위 사람들 돌아본다.
지영, 주섬주섬 지폐를 줍는다. 재석, 당황하며 지폐 몇장 주워주다가 얼른 서희 쪽을 본다. 저만치 사라지고 있다.
쫓아가는데 지영, 뭐라고 말을 못하고 헉헉거리며 재석을 본다. 주위에 있던 남학생1, 재석을 쫓아가 잡는다. 뿌리치는 재석.
남학생1 : 너 뭐야?
재석 : 놔, 이거!
고개 들고 보면 벌써 사라지고 없는 서희. 안타까운데...지영, 멀리까지 뛰어가 지폐를 주워온다.
재석 : 이거 안놔? (지영보며) 야 이기집애야! 너 땜에 놓쳤잖아!
지영 : ....
남학생1 : 돈 다 맞아요? 세어보세요. 맞아요?
지영 : ...
재석 : 이 새끼들이! 사람 뭘루 보는거야? (지영 쏘아보며) 야, 너 말해. 내가 도둑이야? 내가 도둑이야?
지영 : ...
재석 : ...말해!! 너 벙어리야?
지영 : ...미,미,미,미안해요...도,도,도둑 아니예요...내,내가...잘,잘...못 한거예요...
당혹스레 지영을 보는 남학생, 잡았던 손을 놓는다.
인사 꾸벅하고 돌아서는 지영. 눈물 글썽한다. 지영 바라보는 재석의 시선.
S#63. 서희 자취방 (저녁)
서희, 옷장 열고 옷들을 꺼내서 가방에 싸기 시작한다.
마음 정리한 듯 방을 둘러본다. 책들도 정리한다. 구석에 옷봉투들이 보인다.
서희, 봉투 보기 싫은 듯 외면하고 짐 싸다가 다시 조용히 돌아본다. 옷들을 꺼내본다. 가격표 텍을 들여다본다.
S#64. 백화점 의류매장 (저녁)
서희, 옷봉투들 들고 온다. 망설이다가 종업원에게 다가간다.
서희 : 저어...
종업원 : 어서오세요.
서희 : 죄송하지만...옷을 좀 바꾸고 싶은데요. (옷봉투 보이고)
종업원 : 그러세요...골라보세요.
서희 : 그게 아니구...저어...(빨개진) 돈으로 환불을 좀...
종업원 : 네?
S#65. 호텔 룸 (밤)
친구들 셋과 포카 치고 있는 민혁. 삐딱하게 담배 꼬나물고 있다. 각자 패를 들고 있다.
칩을 다섯개 내놓는 친구1. 민혁 시선이 번득거린다.
민혁 : ...콜!
칩을 내놓는다. 울리는 핸드폰. 민혁, 전화 받는다.
민혁 : 네에...
S#66. 호텔 커피숖 (밤)
재즈 피아노 음악 연주되고 있다. 민혁, 한쪽에 앉아있다.
서희, 어색한 듯 주위 살피며 입구로 들어온다. 민혁, 지켜보며 미소 짓는다.
민혁 : 여기요, 서희씨.
서희, 다가와 앉는다. 무척 어색한 듯.
민혁 :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요. 친구들하구 있어서 빠져나가기가 어려웠어요.
서희 :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민혁 : 무슨 일 있어요?
서희 : ...부탁 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호흡 가다듬고 바라본다)
민혁 : 무슨 부탁인데요?
서희 : (망설이다가) ...지난 번 그 옷...
민혁 : 옷? 아아 그거? 왜요? (능글거리며) 돌려주실려구요?
서희 : ... (다시 망설이다 결심한다) 아뇨.
민혁 : ?
서희 : 어차피 저한테 주신 거니까 돈으로 물러주실 수 없으신가요?
민혁 : (당혹)
서희, 굴욕감을 참는다.
서희 : 오늘...백화점에 갔었어요. 카드로 계산 하셔서 돈으로 환불이 안된다고 해요. 카드 주인 계좌로 입금이 된다고 합니다.
민혁, 담배 한대 불 붙인다. 지긋이 서희를 바라본다.
서희, 난감하고 수치스럽다. 찻잔 놓고가는 웨이터.
민혁 : (흥미로운) ...돈...필요해요?
서희 : ...(입술 깨물고)
민혁 : 사정을 말씀 해주시면 도와드릴께요.
서희 : ...(얼굴 붉어지며 본다)
민혁 : (서희 얼굴 빤히 본다)...무슨 일인가요?
서희 : ...꼭 말씀 드려야 하나요?
민혁 : (능글거리며 웃고) 왜요? 곤란합니까?
서희 : ...네.
민혁 : 그럼 저두 곤란한데요?
서희 : ...(본다)
민혁 : (시계보는) 이거 어쩌죠? 죄송합니다. 친구들이 위에서 기다려서요.
서희, 지긋이 본다.
서희 : 그럼...됐습니다.
민혁 : ...(잠깐 생각하다) 미안해요. 조심해서 가세요.
일어난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민혁. 서희, 떨구고 있다가 이윽고.
서희 : 저기요.
민혁, 돌아본다.
서희 : ...말씀 드릴께요.
S#67. 동 커피숖 안 (시간 경과)
음악이 멎는다. 피아노 연주하던 연주자, 악보 걷고 일어난다.
찻잔 놓여있고 재떨이에 담배꽁초 몇 개. 웨이터, 재떨이 비워간다.
민혁, 차 한잔 마시며 서희 얼굴을 가만히 본다.
서희 : (시선 피하고) 제 등록금 환불은 한달 뒤에나 된다고 해서요. 세준 오빠 내일 중으로 등록을 안하면 휴학처리 됩니다.
어차피 저한테 주신 옷이라면...돈으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민혁 : ...
서희 : ...(본다) 죄송합니다.
민혁 : ...그거면 세준이 등록금이 됩니까?
서희, 치욕스럽다. 입술 깨문다.
민혁, 서희를 뚫어져라 본다. 희미한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