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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원문보기 글쓴이: 오마니나
元経済ヤクザが読み解く「米中新冷戦」の本当の恐ろしさ
アウトローだからこそ分かることがある
2018. 10, 18 猫組長
전 경제 야쿠자가 해독하는 "미중 신냉전"의 진짜 공포
아웃로(outlaw)이므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2018. 10, 18 猫組長(네코구미쵸) 번역 오마니나
세상의 사람들--특히 발언력이 강한 사람 중에는, 정치를 "이즘의 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오래동안 지냈던 폭력의 세계에서, 정치는 "실리의 추구"라는 현실일 뿐이다. 평론가인 와타나베 데쓰야 씨와의 공저인 "2019년 말, 이면으로 풀어가는 일본경제"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을 폭력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자.
'펜스 연설'의 중요한 의미
우선은, 지금까지의 미중 대립의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먼저 말대포를 발사한 것은 트럼프 정권이다. 금년 3월 2일에 미 통상 확대법 232조를 적용하는 형태로, 중국제품을 주 표적으로 삼아 추가관세를 부과할 방침을 표명. 4월 2일에는 중국정부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대항조치를 발표했다.
그리고 7월 6일, 마침내 미국은 최초의 실행 조치로서 340억 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대해, 25%의 추가관세를 발동. 중국정부도 같은 날인 북경 시간 0시에 추가관세를 발동해, 미중 무역전쟁이 개전되었다.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은, 미국의 대 중국자세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씨(72)의 개인적 감정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트럼프식 외교술은, 상대에게 "예스냐"묻고 "네" 밖에는 허락하지 않으며, "노"의 경우는 한층 더 허들을 높혀 다시 "예스인가 아닌가"라는 것을 강요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더욱 더 강해지는 대 중국규제를 견인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회라는 사실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있다.
미중 무역전쟁 중에서 미국이 특히 문제삼은 것이 지적재산의 유출이다. 중국의 대형통신기 메이커인 ZTE(중흥 통신)를 절도범으로 단정해, 금년 6월에는 상원이 ZTE와 미국기업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조치의 계속을, 여야당 압도적 찬성 다수로 가결. 무역전쟁 개전 후에도 "대통령의 대중정책에는 일치한다"고 여야당의 의원이 코멘트.
중국기업이 미국 기업에 투자, 매수하는 것을 통해 지적재산유출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의회가 외자의 대미투자를 엄격하게 심사하는 신법을 만들어, 트럼프가 8월에 서명했다. 강경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의회 쪽이다.
더욱 강해지는 미국의 자세에 대해, 중국측은 반복해 개혁과 해방을 실시해 공평한 시장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어필해왔다. 그러나, 10월 4일에 펜스 부통령(59)이 워싱턴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구별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주장을 립서비스라고 깎아내리고, "제재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대결자세를 굽히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또한 펜스는, 중국공산당이 11월의 미국 중간선거를 향해 트럼프 패배에 간섭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방위안전보장에서도 중국과 대립할 것도 호소했다.
현재, 이 "펜스 연설"은 미국의 국가전략을 나타내는 강한 메시지로서서 각국의 인텔리전스 기관이 주목해, 분석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여야 정치권이 똘똘 뭉쳐, 중국을 구소련과 같은 적국으로 인정하고, 경제전쟁 뿐만 아니라 전면대립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횡행하는 암살
이에 대해 중국은, 중국공산당은 대미자세에서 "일체"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다. 그 좋은 사례 중의 하나가, 무역전쟁 개전을 하루 앞둔 7월 3일에 중국의 대형 항공사인 하이난 항공집단의 회장 왕젠 씨가 출장 중이던 프랑스에서 사망한 건이다.
왕씨는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보뉴마을의 교회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15미터의 벽에 올랐다가 전락사한다. 해남항공집단은 항공사업에 머물지않고 M&A에 의해 급성장한 기업으로서, 힐튼호텔을 국제적으로 전개하는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의 최대 주주였다. 또한, 중국과 깊은 관계에 있는 독일의 도이츠은행도 수중에 넣었다.
현지경찰은 사고사라고 주장했지만, 이면사회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있다. 해남항공집단에는 국가주석인 시진핑(65) 씨의 오른팔로 꼽히는 국가부주석 왕치산(70) 씨의 개입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것을 방패로 삼아 급성장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왕젠씨는 반왕치산 파의 필두다. 반복된 M&A에 의해 해남항공집단의 채무도 팽창해, 17년에는 중국정부로부터 채무압축을 요구받고 자금사정이 악화. 올해 들어와 대량의 자산매각을 천명하자마자 왕젠씨가 "사고사"해, 왕치산 파가 회사의 톱이 되었다.
전락사가 암살로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와 관련된 또 다른 "암살극"이 일어난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중국 3대 국유석유회사 중의 하나인 시노펙·그룹(중국석유화공집단)내에서 일어났다. 03년 경, 중국은 국가전략으로서 석유비축량을 큰 폭으로 확대시킨다고 발표. 그에 따라, 당시의 나도 석유 비즈니스를 위해 관여했다. 그 거래처의 하나가 시노펙의 자회사였던 것이다.
때마침 그 시기는 왕건씨가 프랑스에서 "사고사"한 직후인 것이다. 시노펙의 자회사 스탭으로서 지금도 친교가 있는 인물이 나에게 초조해하면서 이렇게 상담해 온 것이다.
"두려워서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말레이시아에 망명하고싶다.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유를 물어보자, 시노펙 간부 등이 역시 줄줄이 프랑스로 출장을 갔을 때, 1명이 사고로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해외에서도 뉴스가 되지 않않지만, 그 인물은 이렇게 밝혔다.
"해남항공집단의 사건과는 별개로, 이쪽은 시진핑파와 반시진핑파의 싸움이 원인입니다"
1978년에 당시 국가주석이던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후, 미국과 중국은 이른바 호혜의 관계를 계속해왔다. 비록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덩샤오핑 노선과 집단지도체제로 중국공산당을 운영해 온 과거의 지도자인 장쩌민(92), 후진타오(75), 원자바오(76)씨는 아직 생존해 있다.
그 후진타오 시대의 10년 간(2002~2010), 중국의 GDP는 4배가 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변모한다.
"미중의 밀월관계야 말로 중국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 온 장쩌민 씨를 최고참으로 하는 구지배층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마찰 확대는 시진핑씨를 끌어내리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
전쟁을 포함한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석유"는 국가의 전략물자. 그것을 관장하는 거대기업인 시노펙 내의 암살극은, 중미 무역전쟁을 계기로 한, 중국공산당 내의 권력 투쟁의 격렬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안화의 "달러 속박에서의 탈출"
그런데 현재의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물건"을 둘러싼 관세를 무기로 한 응전이지만, "물건"의 움직임에는, "돈"(머니)의 움직임이 연동된다. "위안화가 달러에서 독립하려 한다"는 관측이 지하경제에 전해지고 있다.
아다시피 위안화는 사실상, 달러페그제다. 경제기반이 약한 신흥국에서는, 환율시장도 불안정해, 제3국 통화에 의한 영향도 받기 쉽다. 그래서,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와 연동시키는 것을 달러페그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위안화는 달러의 지배하에 있는 상태다.
과거 중국은 홍콩을 금융센터로 만들어, 외화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현재, 특별행정구인 홍콩으로 달러를 가져가도 "필요없다"면서 거절받게 되어있다. 그대신 추천되는 것은, 중국정부의 지배 하에 있는 내륙에 만든 새로운 금융센터 "심천"으로의 대한 반입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내에서 국외로 돈을 빼내는 것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한 때 중국인의 대량구매가 잠잠해 진 것도 이 때문인데, 중국국내에서 비지니를 행해 번 돈(머니)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되어있다. "외화는 모두 국내로 끌어들이고, 한번 들여온 돈(머니)은 국외로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그런데 금년--특히, 미국이 중국제품에 대한 추가관세를 발표하고 나서, 중국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금"(골드)의 구입량을 가속시키고 있다. 중국시민들은 역사적으로나 자산으로서 금보유를 선호하지만, 이번 움직임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금(골드)을 찾고 있는 것은 중국의 정부계 기업이며, 게다가 현물이다.
석유 비축량 증가의 시점이 그랬듯이, 지하 경제인들은 이런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한다. 나의 지인도 이 기회에 한 밑천 잡으려고, 중국용 금(골드)을 찾아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 중의 하나가, 위안화의 달러 지배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미국으로 세계의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골드)의 3분의 2가 모였고, 달러는 금 1온스= 35달러의 기축통화가 되었다.
현재의 세계정세에서 위안화가 당장 달러의 속박을 벗어나 이탈하기는 어렵지만, 외화를 자국 내에 꽉 채우면서, "금"(골드)보유량을 높히므로서, 조금이라도 달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중국정부의 속셈은 보일 것이다.
국내외의 미디어는 트럼프 시대의 분단을="악"이라고 파악하는 보도가 많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가 "이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핵 폐기를 호소한 것은, 세계평화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핵억지력에 의존하지않는 방위안보정책이 군사비에 대한 압박이 적다고 생각했을 뿐인 것이다.
아시아의 말단국가의 정보기관 조차도, "오바마 당선인은 냉담한 인간이다"라는 것이 공통인식이다. 오바마 시대의 글로벌리즘 발흥도, 세계의 융화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으로 이루겠다는 현실적 정책의 결과일 뿐이다.이상하게도 일본에는 "우애(友愛)"라고 하는 이념을 진심으로 믿고 실천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중간선거 이후에 완화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 긴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회다. 1945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44년간 미국은 구소련과 냉전을 벌였다. 그때문에, 옳고 그름을 떠나, 두 개의 거대 대국이 긴장을 발생시키므로서, 자유주의 진영은 놀랄 정도의 경제적 과실을 얻을 수 있었다.
맹금류와 같은 미국의 이익추구는, 1991년에 구소련을 붕괴시킬 때까지 계속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전쟁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미국의 경우, 그것은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인 것이다.
그렇지만, 격변의 시대야 말로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트럼프 시대의 분단도 "선악"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이득을 보느냐"라는 시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신시대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https://gendai.ismedia.jp/articles/-/57974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은, 미국의 대 중국자세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씨(72)의 개인적 감정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트럼프식 외교술은, 상대에게 "예스냐"묻고 "네" 밖에는 허락하지 않으며, "노"의 경우는 한층 더 허들을 높혀 다시 "예스인가 아닌가"라는 것을 강요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더욱 더 강해지는 대 중국규제를 견인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회라는 사실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있다.
"미중의 밀월관계야 말로 중국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 온 장쩌민 씨를 최고참으로 하는 구지배층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마찰 확대는 시진핑씨를 끌어내리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
전쟁을 포함한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석유"는 국가의 전략물자. 그것을 관장하는 거대기업인 시노펙 내의 암살극은, 중미 무역전쟁을 계기로 한, 중국공산당 내의 권력 투쟁의 격렬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의 세계정세에서 위안화가 당장 달러의 속박을 벗어나 이탈하기는 어렵지만, 외화를 자국 내에 꽉 채우면서, "금"(골드)보유량을 높히므로서, 조금이라도 달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중국정부의 속셈은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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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猫組長(ねこくみちょう :고양이조 조장 1964년 5월 25일~)은 일본의 평론가, 전 야마구치(야쿠자)계 조장
효고현 코베시 출신. 아버지는 샐러리맨. 아버지의 전근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 상경한다. 대학은 경제학부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일본은 호경기에 들끓고 있었다. 대학 2 학년 때 중퇴하고, 선배가 근무하던 오사카의 부동산회사에 근무. 일을 시작한 지 얼마안되어 버블경기가 온다.
버블이 절정일 무렵, 도쿄의 증권회사에서 일하던 선배로부터의 권유로, 4명의 동료와 함께 투자회사를 가지게 된다. 25세 정도였던 시절인 1989년, 加藤暠(가토 아키라 : 전설의 주식 투기가)가 작업한 주식매도 작전에 참가했다가 실패해, 투자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그에 따라 개인자산 5억 엔을 잃고, 오히려 2억엔 정도의 부채가 생겼다.
이 때 사업관계로 알게된 오야붕의 도움을 받아 야쿠자로서의 인생이 시작된다. 기업에서 직접 주식을 사는 "신주 인수, 상대 거래"로 시장을 통하지않고 저렴하게 주식을 입수하거나, 기업에서 직접정보를 얻는 인사이더(내부자)거래등을 구상한다.
구성원 18명 정도의 야마구치계 단체의 조장을 맡았다. "조장"이라는 계정 이름으로 Twitter를 이용해, 발신한다. 2012년 6월 13일을 마지막으로 중단상태였던 Twitter를 야마구치가 분열하기 6일 전인 2015년 8월 21일부터 재개한다. 고베 야마구치로 가는 이탈파임을 시사하고, 야마구치 분열 소동의 내부정보를 계속 발신해,독자정보를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높은 정확도와 속보성으로 주목을 받는다. 2015년 11월, "HARBOR BUSINESS Online"편집부와의 인터뷰에 응한다. 스즈키 토모히코(鈴木智彦:자유기고가)가 직접취재를 신청해, 그 달, 도쿄의 요정에서 처음 만난다.
2016년 2월 22일, "HARBOR BUSINESS Online"에 "오프쇼어에서 꿈틀거리는 유령 머니의 정체"를 기고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와타나베 테츠야, 쿠도 아키오 2명과 "R-ZONE"에서 대담을 가졌했다. 같은 해 10월 3일에는 "R-ZONE"에 대한 기고에서, 자신은 "조직이 가진 폭력성과 경제를 합리적으로 이용해, 지극히 실용적으로 야쿠자 인생을 걸어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인물
자칭 네코노미스토・고양이 평론가.
전문은 거시경제・금융시장론・금융.
전문분야는 국제금융거래와 투자전반. 투자자로서도 활약.
투자자문회사에서 야쿠자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 '건실한' 인텔리 경제 야쿠자"(야마구치 관계자)라고 한다.
Twitter로는 야쿠자 관련 트윗 외, 경제뉴스와 인터넷상의 화제안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도 많다.
고양이를 좋아하며, Twitter에 고양이의 이미지도 자주 게시한다.
르네상스의 미술가인 카라바치오를 높이 평가하고 "카라바치오가 자아내는 폭력성과 예술의 재능에 마음을 빼앗겼다", "카라바치오는 광기의 천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식뿐만 아니라 투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과 '정보', 그리고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식거래의 결론은 다음의 4가지라고 주장한다.
주식은 시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 발행시켜 사는 것이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발행완료주식은 기업에게 직접 얻은 정보 만으로 산다.
기업에 발행시킨 주식은 시장에서 가격을 올린 후에 매도해버린다.
작전주식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정보는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있다. 결코 인터넷에는 없다. 따라서, 투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컴퓨터 앞에서 일본 은행의 리포트를 읽는 것보다, 밖에 나가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공동저서
와타나베 테츠야 "야마구치 분열과 국제금융 : 내부자가 밝히는 야쿠자와 자금과 세계 경제의 관계" 토쿠마 서점 2016년 12월.
오키타, 시바타 다이스케 "고양이조" 유명강사진에 의한 금단의 드릴 야쿠자와 폭주족의 알려지지 않은 실태"토쿠마 서점 2017년 7월.
와타나베 테츠야 "야쿠자와 오일머니 : 석유로 250억엔을 번 전 경제 야쿠자가 그 수법을 밝힌다"토쿠마 서점 201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