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의학 (41)-
41 금 독종과 금 쥐
삼상 5:6 - 6:5 이신웅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워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싸움터인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다곤 신전이 있었다. 다곤 신은 블레셋의 주신(主神)의 하나로 얼굴과 두 손은 남자 모양이고 허리 아래 몸통은 물고기로 꼬리를 뒤로 치켜들고 있는 바다의 신이었다.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에 두자 다곤은 하나님의 궤 앞에 절하는 것처럼 엎드렸다. 다시 세워놓자 다음날 아침에는 얼굴과 두 손목이 끊어져 사람 모양은 없어지고 물고기 몸통만 남아서 뒹굴고 있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들을 치자 독종(독한 종기)의 재앙이 퍼져 그 지방을 망하게 했다. 아스돗 사람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두 가지였는데 먼저 그 땅을 황폐하게 했고 다음으로 그들을 독종으로 처벌했다. 땅이 황폐해진 것은 들쥐가 폭발적으로 많아져서 곡식을 먹어치웠고 나중에는 쥐의 시체로 그 땅을 해롭게 했기 때문이다. 죽은 들쥐들은 사람들에게 독종을 유행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여기에서 독종으로 번역된 단어는 아팔림(י)인데 종창(swelling), 혹(tumor), 산, 언덕을 의미한다. 같은 단어가 신 28:27 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치질로 번역되어 있다. 고대 히브리어에서 아팔림은 어떤 부어오른 것, 종기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후대의 히브리어에서는 치질로 사용된 것 같고 저속한 단어로 인식된 듯하다. 케레(Qere)에서 이 단어를 트홀림 (י)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고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마소라 본문의 필사본이나 인쇄본의 어떤 단어는 그 난의 여백에 읽어 할 것 또는 수정된 단어를 써놓아 올바로 읽게 해놓았다. 이 작업은 서기관들의 활동과 마소라 작업의 전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씌어져 있는 마소라 원문을 케티브(Kethibh)라 하고 읽도록 수정해 놓은 본문을 케레(Qere)라고 한다. 약 1300 군데에 이런 수정이 이루어졌다. 케티브란 아람어로 ‘쓰여진(that which is written)'이라는 뜻이고 케레는 ’읽어야 하는(what is to be rea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케티브에 아팔림(י)으로 쓰여진 단어를 마소라 학자들은 케레에서 트홀림(י)으로 대치하고 있다. 트홀림은 항문에 생긴 종양, 치질(hemorrhoid) 등의 뜻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독종을 치질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 시편 78:66 에는 이 사건을 이야기 하며 “그가 대적을 아호르(רוֹא)로 치시니” 라고 기록했다. 불가타역에서는 이 부분을 “그가 그의 적들을 그 뒷부분을 치셨다”라고 번역했고 루터도 ‘뒷부분을 (in the hinder parts)' 이라고 번역했고 영어 번역들은 루터를 따르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여 어떤 학자들은 독종을 치질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몸의 어떤 부분을 치신다기보다 무엇으로 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전염병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많다.
그 전염병은 폭발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커다란 멍울이 생기고 곪아터지고 생명을 잃게 하는 괴질이었을 것이다. 들판에 창궐하고 있는 들쥐 떼에 의해 생기는 병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에는 다섯 개의 중요도시가 있었는데 그 도시를 왕도(Royal city 삼상 27:5)라 했고 아스돗(Ashdod), 가사(Gaza), 아스글론(Eshkalon), 가드(Gath), 에그론(Ekron)이 이에 속한다. 그곳의 다섯 방백이 과두정치로 블레셋을 다스리고 있었다.
아스돗이 황폐해지고 독종의 재앙으로 망하게 되자 다섯 방백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전이 없는 가드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가드에서는 아스돗보다 더 많은 독종환자가 생겼고 큰 자나 작은 자가 모두 전염병에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다. 이곳에서는 백성들이 공포에 떨어 큰 사회적 혼란이 생겼고 온 성이 사망의 환란을 당했다. 이때 죽지 않은 사람에게서 독종이 나타났다. 에그론에서 이 전염병의 피해는 최고도에 달했는데 공포로 큰 혼란에 빠졌다는 것, 독종이 나타나기도 전에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것, 살아남은 사람에게 독종이 나타나고 그것으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록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다른 지역에서는 사타구니의 림프선이 부어올라 화농하고 사망하게 되는 선 페스트(bubonic plague)가 유행했으나 에그론 지역에서는 림프선이 붓기도 전에 패혈증을 일으켜 수 시간 내에 사망하게 되는 패혈 페스트(septic plague)로 발전하게 되어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었고 일부는 림프선이 부어오르는 선 페스트로 죽게 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7개월 동안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독종이 유행했고 뿐만 아니라 쥐의 시체로 들판이 황폐해졌다. 방백들의 회의가 다시 열렸고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보내기로 결정했다. 블레셋의 사제들과 무당들을 불러 모아 안전하게 궤를 돌려보내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궤만 보내지 말고 속건 제물을 같이 보내 속건제를 드림으로 병이 낫게 되고 또 하나님의 손이 왜 떠나지 않고 있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속건 제물로 다섯 도시의 다섯 방백의 수룰 따라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을 (five golden boils and five golden mice) 만들었다. 여기에서 방백과 그 백성들은 한 단위로 취급되었다. 위에 언급한 세 도시뿐만 아니라 블레셋 전 지역에 독종이 유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의 궤와 속건 제물을 수레에 싣고 젖 나는 소들로 끌게 하여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궤를 돌려보냈다. 이상이 블레셋 지방을 휩쓸었던 독종의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구약성경에서 페스트의 유행을 의심하게 하는 몇 기록이 있다.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사를 몰살시켰다(왕하 19:35). 학자들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나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비슷한 이집트의 신화도 있는데 헤로도토스에 의해 인용되고 있다. 산헤립이 아라비아 인과 앗수르 인으로 조직된 대군을 거느리고 이집트를 침공해 왔을 때 하룻밤에 수많은 쥐떼가 몰려와 그들을 괴롭혔다. 적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했고 많은 수가 죽었다고 한다. 고대에 쥐떼는 페스트의 상징이었다. 쥐 모양을 한 아폴로 스민테우스(Apollo Smintheus)는 페스트의 신이었다. 다윗의 시대에도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3일 동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7만 명을 온역으로 죽였는데 이때에도 페스트가 원인이었을 것이다(삼하 24:15).
역사적으로 비슷한 예가 많은데 1629년에 미라노에서 페스트로 16만 명이 죽었고 1714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30만 명이 죽었고 19세기 말에 모스크바에서 67만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필립 지글러가 쓴 흑사병(the black death)이라는 책에는 1348년부터 2년 반 동안 전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에 대한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수많은 들쥐들이 죽어 나뒹굴고 있었지만 페스트의 원인을 쥐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은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14세기의 의사나 학자들은 오염된 공기의 흡입이 페스트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풍을 따라오는 독기를 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사제들은 사치와 호색을 피하라고 설교했고 환자가 발생하면 도망치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기도하라고 했다. 병이 유행하는 도시에 성상을 가져다 놓고 성인들의 뼈를 들고 행진도 하고 도시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씩 환자가 죽어 나가자 도시는 집단 광기에 빠지고 교회주변에는 매장 터가 없어졌다.
독일에서는 이 광기의 부산물로 ‘채찍질 고행단’ 이라는 것이 생겨 떼를 지어 마을과 도시를 순회하며 자신을 채찍으로 자해하고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교회의 권위에 맞서기까지 했다. 어떤 도시에서는 유대인을 학살하기도 했는데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페스트가 유행하게 되었다고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유대인과 나병환자를 화형에 처하기도 했고 감금하여 굶어 죽게도 했다. 사회적으로 도덕이 붕괴되어 약탈과 성폭행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데카메론(Decameron)을 쓴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1348년 자신이 경험한 페스트를 그의 책의 서두에서 의학교과서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카치오의 기록에 의하면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은 갑자기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멍울이 부어올라 달걀만 하기도 하고 사과만큼 커질 때도 있는데 이를 가보치올로(gavocciolo)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어서 검푸른 점이 팔이나 허벅지에 나타나고 5-6일 후면 사망했다. 페스트의 가장 흔한 종류인 선(腺) 페스트(bubonic plague)를 말하고 있는데 부어오른 림프선이 화농하기 전에 대개 사망한다.
그보다 급성 경과를 취하는 것이 폐 페스트(pulmonary plague)인데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고 폐렴이 생겨 기침하고 피를 토하다가 2-3일 내에 사망한다. 더 지독한 것은 패혈 페스트(septic plague)인데 피 속에 세균이 증식하여 패혈증을 일으키고 림프선이 부어오르기도 전에 수 시간 내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페스트는 Pasteurella Pestis 라는 세균의 감염으로 생기는 전염병인데 이 세균은 동물의 혈관이나 벼룩의 위장에서 서식한다. 원래 페스트는 야생 설치류에 유행하는 질병이지만 인간들과 가까이 접하는 들쥐들이 감염되면 피를 빨아먹은 벼룩( Xenopsylla Cheopsis)이 사람을 물어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폐 페스트에서 환자의 포말을 통하여 감염될 수 있다고 하나 흔치 않은 일이고 전술한 감염경로가 가장 흔한 방법이다.
페스트 환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고(90%) 인상적인 것은 림프선이 부어오르는 것이고 고대의 유대인들은 그것을 독종이라고 표현했다. 놀라운 것은 그 질병의 원인으로 쥐를 생각했다는 점이다. 근대의 유럽 인들도 알지 못한 일을 3000여 년 전 중동 인들은 페스트와 쥐를 연관 지어 생각했다. 그래서 질병을 물리칠 목적으로 금 독종과 금 쥐를 만들었던 것이다. 아마 금 독종은 부어오른 림프선 모양으로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달걀 같은 모양이었을 것이다.
금 독종과 금 쥐는 속건 제물로 바쳐졌지만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 재앙의 원인과 같은 것을 만듦으로 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