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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고영성 저(著)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플로렌스 채드윅. 1952년 7월 4일,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 섬에서 롱비치까지 장장 35km 거친 물결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상어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양편의 구조선을 제외하고 혼자 수영/ 먹지도 쉬지도 않고 거침없이 팔과 다리를 젓기를 16시간, 그녀는 슬슬 지쳤고 얼음같이 차가운 바닷물은 몸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시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응원했고 그녀의 곁에서는 어머니와 트레이너가 안내선에서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
- 안타까운 사실은 목표까지 겨우 800m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추위 때문도 아니고,피곤함 때문도 아니고, 안개 때문에 목표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목표 지점을 볼 수 있었다면 도착했었을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 세겜에서 위기에 빠진 야곱 가족
하나님이 정해주신 목표, 벧엘을 잊은 결과다.
안개 때문이 아닌 세상이 주는 만족감 때문이다.
- 위기 해결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35:1).
- “일어나” = 결단 촉구
- “올라가서” = 영적인 상승 의미
= 신앙을 회복하라. = “제단을 쌓으라”(창 35:1).
= 예배 회복
` “거기(벨엘) 거주하라”(1절).
- “살다”, “체류하다” = 하나님과 동행
= 결단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라.
2. 올라가는 방법
① 모든 이방 신상을 버리라.
② 몸을 정결케 하라
③ 의복을 새로 바꾸어 입으라(2절).
`가족들이 아버지의 의견을 다 따라준다.(4절)
이전만 해도 아버지를 다 무시했다.
그럼에도 지금 그들은 아버지 의견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본 것이다.
변한 야곱을 보았다.
사기꾼 같은 아버지, 기회주의자 같은 아버지...,
-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가 되기 전에는 절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가 이해될 때쯤 되면 아버지는 세상이 없다.
아버지의 눈물 - 이채 -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반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 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
` 몇 해 전 교회 등산부에서 옥천 정지용 생가를 갔다.
- 향수라는 시를 읽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와 너무나 일치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 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서 엷은 졸음에 겨운 아버지가 그립다.
고단한 인생살이.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아버지 야곱의 절망과 좌절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변한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 생명을 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진 것이다.
` 모든 우상을 다 내어놓는다.
-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
-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와서 처음 제단을 쌓았던 곳이다.
- 세겜에서 벧엘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 수많은 식솔들과 함께 많은 가축 떼를 거느리고 간다.
- 그런데도 야곱 가족을 공격하지 않았다.
- 하나님이 크게 두렵게 하셨기 때문이다(5절).
- ‘마하나임’의 하나님이 전후좌우에서 보호하신 것이다.
=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3절).
` 환난 날 = 돌이켜 보면 위기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가족과 이별/ 형과 원수/ 처가살이
가정의 어려움(라헬은 죽겠다고까지 함)
세겜에서의 위기(딸은 강간, 아들들은 살인, 노략)
하나님은 그때마다 도우시고, 이끄셨다.
오늘날 우리도 동일하다.
개인마다 위기의 시간을 말하라고 하면 끝이 없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해결해 주셨다.
야곱과 가족들은 모든 우상을 파하고 벧엘로 올라간다.
` 벧엘로 올라가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35:9)
신앙을 회복한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온다.
3. 슬픔을 이김
창 35장은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슬픈 장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다 죽는다(16-19).
난산 끝에 아들을 안고 라헬은 눈물을 흘린다.
어린 아들을 놓고 죽게 된 어머니의 슬픔이 가득하다.
아들 이름을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라고 짓는다.
야곱이 보다못해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로 이름을 바꿔준다.
노상에 아내가 죽자 길에 장사하고 떠난다.
` 목사님이 생일 상을 받고 너무 고맙고 좋아서 “나 사랑하지?” 그 사모님 왈 “생일날 죽고 싶어?”
- 남편 = 언제나 남의 편/
- 부인 = 언제나 남편의 존재를 부인
그럴지언정 부부의 정만큼 깊은 정은 없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다.
`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간통 사건(22).
` 아버지 이삭의 죽음 (27-29)
야곱이 떠날 때 이삭의 나이 137세
노쇠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야곱이 돌아올 때까지 30년을 살아 있었다.
그리고 180에 죽었다.
어머니 리브가는 언제 죽었는지 기록도 없다.
` 라헬이 죽고, 아들은 서모와 통간하고, 아버지가 죽었다.
본문에는 없지만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17세에 사라지고, 야곱은 그 아들이 죽은 줄 안다.
엄청난 고통과 슬픔이 그의 삶을 휘감았다.
그런데 야곱은 이 모든 슬픔과 고통을 이겨낸다.
- 히나님이 만나 주셨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 창35:9-12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통보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더 컸다.
`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 65세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무려 1,000여 곡을 작곡
- 삶은 고단했다. 아내를 잃고 재혼했는데 열 한 명의 자녀를 잃었다. 가정적이었던 바흐가 어떻게 슬픔을 어떻게 이겼는지 궁금해했다. 어떻게 계속해서 음악을 쓸 수 있었는가?
- 답을 찾았다.
- 작곡이 끝날 때 항상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썼고, 시작 부분에는 "Lord help"를 썼다.
-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
- 바흐의 모든 음악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아픔을 극복한 것이다.
적용1) 벧엘을 회복하라.
` 가장 비참한 인생은 예수님 안 믿는 인생이다.
예수님을 안 믿으면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사람이다.
영원한 이별만이 그 앞에 있다.
너무나 억울해서 지옥에서 영원히 이를 갈 것이다.
바로 지금 예수님 영접하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반응하지 않는다.
- 영적으로 나타해고 무감각한 상태에 안주한다.
- 배 밑 칸에서 잠자는 요나와 같다.
마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약5:7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8...,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9...,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더디 온다고 졸며 자고 있느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심도 인지못하고 산다.
예수님을 심판주가 아닌 구원주로 만나야 산다.
오늘 “주님 내 안에 오셔서 저를 구원해 주세요. 예수님 믿고,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결단하고, 고백하라. 다른 길과 다른 방법은 없다.
적용2) 우상을 제거하라.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우상이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다 우상이다.
죄악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다 우상이다.
- 세상의 것, 우상에 몰두하느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잊었다면 오늘 그 자리를 회복하라.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잊었다면 회복하라.
모든 예배를 사모하라. 수요일에도 나와서 예배하라.
사경회에 나와서 성경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라.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
`지나치게 많은 따개비가 붙어서 죽어가는 고래를 보았다.
히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약1:21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세상 것들이 달라붙으면 결국 죽게 된다.
7080세대가 부르는 은혜로운 찬양이 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며 사랑할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세상 헛된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 더 귀하다
` 헛된 것들 뿐인 이 세상을 위해 사느라 주님 만날 준비를 못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한다.
1. 벧엘을 회복하라. 2. 우상을 제거하라.
적용3) 위로받고, 위로하라.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야곱은 이 슬픔과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났다. 고통을 이겨나가고 있다.
` 요9장 길 가실 때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을 예수님이 만났다./ 제자들이 맏는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자깁니까? 부모입니까?
- 사람들은 약점을 보면 판단하고, 비평하고, 비난한다.
- 예수님은 다르게 해석하신다.
요9: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는가?
` 눅19장 여리고에서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를 만나신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돌을 던지는데 예수님은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위로자이시다.
위로자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서로가 또한 위로자가 되어 주라.
고단한 인생살이속에 서로 뜯고, 물고, 씹어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싸우기로 작정하고 교회 왔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고, 서로에게 위로자가 되라.
` 정지용의 향수를 읽어 드렸다.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나는 그런 곳에서 자랐고, 그런 애뜻한 추억이 있다.
엄마 무릎을 베고, 형과 누나들과 깔깔거리고 웃고, 놀던 어린 시절이 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럼에도 나는 소망이 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
모두가 다시 다 만날 그날을 소망 삼고 있다.
` 어느 날인가 우리 모두 죽음의 침상에 눕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낼 수도 있고, 내가 그곳에 누워서 사랑하는 가족들 이별을 할 수도 있다.
그 슬픔과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그 침상에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며 기도해주는 가족과 성도들 때문이다.
나는 목사이지만 김광석과 이문세를 좋아해서 종종 레코드 판으로 듣는다.
그러나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나오면 판을 넘긴다.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 머리가 늘어가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그런 날이 우리에게 올 것이다.
그럼에도 소망이 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혼자 가지 않는다.
` 항해자라는 찬양이 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 주시는 그 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의 항해의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이 깊은 바다에 날 홀로 버려두지 마소서.
우리 중에 한없는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분이 계신가?
주님이 잡고 있는 그 손을 결코 놓치지 않으신다.
키를 잡으시고, 항해의 끝까지 함께 하신다.
혼자가 아니다.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당신의 삶을 살라.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그곳에서 사랑하는 모두와 영원히 함께 산다.
눈물도, 아픔도, 근심도 없는 곳에서 영원한 기쁨과 행복속에 영생한다.
그 날을 준비하라.
결론) 34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수영선수 채드윅
채드윅은 두 달 뒤에 다시 도전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안개가 더 짙었다. 물도 너무 차가웠다. 하지만 13시간 47분이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카탈리나 섬에서 롱 비치까지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록은 남자 기록을 2시간이나 단축한 대단한 것이었다. 기자들이 또 물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까?” “마음속으로 목표 지점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눈물 나는 아픔의 시간이 있는가?
지금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 바라보라.
찬양: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기도: 아픈 분들에게 하나님 위로하심이 있기를
내가 위로자가 되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