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미사(8:30)에 참석했다.
한동안 못뵈었던 형제, 자매님을 뵐 수 있었다.
아침미사에 나오시는 분은 주로 그 시간에 나오시니까.
오늘의 독서, 복음, 신부님의 강론은 모두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말씀이었다.
가난하고, 눈멀고, 귀멀고, 말못하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나누신 주님의 사랑 실천이 주제였다.
그동안 세상은 가난, 질병, 장애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 문제가 되고 있지만) 비도덕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주님의 시대와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집단간 폭력으로 인한 살인이 큰 문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비와 평화을 빈다.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민족이 다른 것으로 싸우고 같은 민족끼리도 싸운다.
종교와 종파가 다른 것으로 싸우고 같은 종파 내에서도 싸운다.
팔레스타인(무슬림)과 이스라엘(유대교)은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양쪽이 다 같은 하느님을 부르는 정교회가 다수다.
미국 같은 나라에도 고질적인 인종차별이 아직 남아있다.
남북한은 동족이라면서 계속 어르렁거린다.
엄청난 자연재해에도 남쪽의 도움은 거절하겠다고 한다.
이 시각 지구촌 곳곳에는 인간의 폭력으로 무참히 죽어가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있다,
이게 인류사의 본질이라면 우리가 올리는 기도가 뭔 소용이 있을까,
불경스런 의문이 일어나기도 한다.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맨날 가슴만 세 번씩 치는 내 탓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파견 성가 48번은 오랫만에 부르다보니 두어 군데 음정, 박자가 어긋났다.
미리 한 번 불러보고 갈 걸. 이건 정말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