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에서 나타나는 내용의 대부분에 대해서는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적 사고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것이 인류학자의 시각이었다는 점, 그리고 전쟁을 위해 쓰여졌다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비판점을 찾지 못했지만, 도덕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떠한 한 '문화권' 내에서 자라난 사람은 그 문화권 내의 사람'다운' 일정한 특성을 지닌다는 가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가정이 아니라 전제일 수도 있다. 즉, 이 책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그녀로 대표되는 인류학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문화 속에서 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라난 사람은 물론 그 속에서 자라난 사람다운 모습을 지니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문화 속에서 역시 미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온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그 사람'답다'는 것에는 인간의 여러 가지 행동패턴, 사고패턴 등이 포함된다.
인간의 사고패턴, 행동패턴은 기본적으로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사건에 대한 인간의 판단방향을 결정해주는 그러한 기준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패턴과 행동패턴을 스스로의 도덕성에 비추어 결정하고 습관화시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그 사람의 생활이 되어버린다. 이제 그렇게 습관화된 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가 라는 기본적인 질문은 생략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러한 인간 개개인의 도덕성이라는 것은 한 문화권 내의 도덕적 판단기준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인다운 도덕적 판단기준, 미국인다운 도덕적 판단기준,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들은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이러한 도덕적 판단기준이 과연 인간의 본성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본성에 따라 도덕교육의 성격과 중요성이 달라져야 하지 않은가 라는 것들이다. 즉, 인간의 본성으로서 자체적인 도덕적 판단기준이 존재하며,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라고 하면, 인간의 선함을 방해하는 사회적 기제들을 조정하는 쪽으로 도덕교육의 방향은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이며, 사회적 차원에서 도덕적 판단기준을 정해놓고 강제적으로 지키도록 하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면, 인간의 악함을 순화시키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도덕적 판단기준을 확실하게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하고, 그에 맞는 행동, 사고패턴을 습관화시키는 쪽으로 도덕교육의 방향은 또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자에서 도덕교육의 내용은 관습적으로 인간의 선함을 방해해왔던 요인들의 제시와 그에 대한 대처방법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악한 행위에 대한 경계, 선한 행위에 대한 보상 등을 내용으로 하는 예절과 같은 것을 보여주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후자에서는 도덕교육의 내용은 인간의 악한 본성과 그로 인한 불행한 인생들을 제시하고, 그러한 본성을 억제하고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들을 포함해야할 것이며, 방법적으로는 법과 같이 악한 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적으로 표현해놓은 것을 가르치는 것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과는 또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 어느 한 쪽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관점에 동의하고 있다. 즉, 인간은 어떠한 성질이나 본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타고나지 않으며, 그것은 사회 속에 태어남과 동시에 습득되고 가르쳐지며, 학습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본성'이라는 말이 기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 타고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 나타난 '일본인다운', '미국인다운' 인간은 모두 그러한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들 나름의 성격과 개성을 지니게 되고, 인간이기에 보편적으로 지니는 본성이라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도덕교육이라는 것, 인성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라는 점이다.
만약에 앞의 두 관점과 같이 인간의 본성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면, 도덕교육, 인성교육이라는 것은 상당히 소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이미 선한 인간의 본성, 인간성을 유지시켜주거나, 이미 악한 인간의 본성, 인간성을 억제시켜주는 것이 그 역할의 전부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때, 도덕교육, 인성교육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연속성, 그 사회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것으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사회가 최선의 상태에서 최선의 지향점을 향해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성질을 계발하고, 그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을 향해 각 개개인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의 역할을 모두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회에서 도덕적 판단기준이라는 것도 정해야 하며, 각 개인이 그러한 판단기준을 내면화시키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를 통해 대변되는 그 사회내의 '선배'들이 맡게 되는 역할이다. 국화와 칼에서 보면, '일본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일본인다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들이 전해져온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주로 그들을 기른 조상들과 부모들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조장된 것이기도 했다.
이상에서 다룬 것들을 정리해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에 따라 도덕교육의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며, 도덕교육이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도덕교육이 얼마나 적극적인 또는 소극적인 역할을 사회 속에서 담당하느냐는 문제이고, 곧 도덕교육의 중요성과도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도덕교육이 소극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도덕교육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통제하는 수준에서 그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가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내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패턴과 행동패턴을 규정하는 마음, 인성, 본성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차원으로 도덕교육이 올라가게 되면, 그것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교육이 다루는 것은 엄연히 '인간'이고, 인간의 내면세계이다. 물론, 이 사람이 얼마나 예절을 잘 지키고, 법규를 잘 지키는가 라는 표면적인 모습을 통해 도덕교육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실상 도덕교육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 속에서 그러한 예절과 법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속되는 생활 속에서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일관되게 발현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 문화권마다, 각 사회마다, 그리고 각 개인마다 저마다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 도덕교육의 적극적인 작용이 각 개인, 사회, 문화권마다 다르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국화와 칼에서 제시된 일본인의 모습은 지나치게 일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답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매여있는 루스 베네딕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인다운' 모습과 다른 차별적인 일본인다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거의 연구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먼저 고려해 봐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이 사회나 문화라는 일정한 영역을 넘어서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며, 그러한 가능성의 바탕아래에서 각각의 문화권이나 사회 내에서 행해지는 도덕교육 - 그것이 일정한 형식을 가진 제도교육이든, 가정교육과 같은 비공식적인 교육이든 - 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을 살펴보고,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가라는 정도로 파악을 해야할 것이다. 문화나 인간의 도덕성, 행동패턴, 사고패턴, 이러한 모든 것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십, 수백,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 사회에 대해서 그러한 지나친 요약은 잘못된 이해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인 '인류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인 '도덕교육'. 인간이라는 대상을 연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는 만큼 인간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그 내용과 필요한 질문들을 보다 상세하게 나누고 보다 일반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