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지개 색을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선 보라가 빠진 여섯이고 멕시코에선 다섯 가지란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두세 가지 색으로만 나타낸다고 한다. 이처럼 언어는 연속적으로 이어진 대상을 끊어서 표현한다. 새해 아침도 일 초 사이에 한 해가 가고 오곤 한다. 계절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더워진 날씨라도 봄은 봄이고 여름은 여름이다.
올봄은 황사가 많이 일지 않고 자나간다. 가뭄이 심했다지만 봄비도 살짝살짝 내려주었다. 바람이 조용해선지 큰 산불 걱정 없었다. 오월 중순을 맞은 주말 일기예보는 남부지방엔 꽤 많은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반나절 토요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몸이 근질거렸다.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서 시립도서관에 들려 대출도서를 반납했다. 그리고 불모산동으로 갔다.
산기슭 싱그러운 신록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갔다. 근래 드물게 본 운무 낀 스카이라인이었다. 무엇보다 인적 없는 탈속의 공간이 좋았다. 간간이 선 버드나무는 고향마을 동구 밖 같은 느낌을 주었다. 중장비가 지나간 자국에 택지개발 측량 푯대가 세워져 있어도 시골 정취 물씬한 정경이었다. 허물어진 돌담 이끼가 마을의 역사를 증언하고 텃밭은 묵어 푸성귀를 가꾸질 않았다.
창원에서 마지막 남았던 자연마을은 택지로 개발되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기계음이 들리지 않고 인부도 보이질 않았다. 전기연구원 곁으로 난 오솔길로 혼자 걸었다. 시내를 빠져 나올 땐 아파트 울타리 빨간 넝쿨장미꽃을 보았다. 산자락 가시덤불속엔 하얀 찔레꽃이 피었다. 장미가 양장 차려 입고 멋을 부린 여인이라면 찔레는 무명치마저고리에 비녀를 꽂은 수수한 아낙이었다.
나는 한국인의 유전자를 우직하게 지켜가는 사람이다. 진한 커피향보다 구수한 숭늉에 익숙하다. 느끼한 피자보다 된장국에 입맛이 길들여졌다. 반듯하게 정리한 논밭보다 구부렁한 논두렁 밭두렁에 더 운치를 느낀다. 벼농사 대신 유실수를 심었거나 묘목을 가꾸기도 하지만 불모산동 인근엔 계단식으로 된 논을 구경할 수 있다. 몇 해 전만해도 이맘때면 모내기 준비를 해 두었다.
최근 새로 단장한 시멘트 길엔 자동차도 사람도 지나질 않았다. 야트막한 고개를 살짝 넘으면 성주사 계곡이다. 수원지 입구에서 들어오는 찻길과 만났다. 비오는 주말이라선지 다니는 차량이 드물었다. 성주사 주차장도 텅 비었다. 여러 개 생수통에다 약수를 받는 사람이 서넛 보였다. 주말엔 신자든 관광객이든 더러 찾던 절간 앞에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말 그대로 절간 같았다.
용화전각 지나다 관음보살님께 손을 모았다. 산기슭을 하얗게 수놓았던 아카시 꽃은 지고 있었다. 시든 꽃잎이 길바닥에 수북했다. 아카시 꽃을 승계해서 피어난 때죽나무 꽃이 송이송이 피었다. 때죽나무 꽃망울은 가지에서 아래로 드리워 피었다. 성주사 들머리 같이 나무 아래서 쳐다보기 좋은 곳이라 눈에 쉬 뛰었다. 어릴 적 때죽나무 열매를 으깨 물고기 잡은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종각 아래 약수를 한 모금 떠 마셨다. 연못에선 많은 연잎이 면적을 키워가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더 커 보인 연잎엔 빗물이 투명한 물방울로 뭉쳐 있었다. 돌고 도는 물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가 싶었다. 연못가엔 자연석 조경 틈으로 노랑꽃창포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꽤 넓은 연못가를 노랑꽃창포가 장식했다. 종각 지나 길가에 선홍색으로 핀 석죽화로 눈이 부셨다.
단청을 마친 지장전 곁 연지에선 여러 송이 수련이 피어 있었다. 공양실 돌아 대웅전 계단을 올랐다. 우산을 쓴 채 바깥에서 서성이다 구름에 싸인 산자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왔던 길로 에둘러 다시 돌아 나올 때 친구로부터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비오는 날이라 집안에 있을 것으로 보고 전화했단다. 둘은 어스름 빗속에 마주앉아 소주잔을 비웠다. 봄날은 가고 있었다. 0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