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해운대와 동백섬의 추억
해운대 [Haeundae, 海雲臺]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좌동·우동 일대의 경승지.
명칭 유래
신라의 유명한 학자이며 문인인 최치원(崔致遠)이 낙향하여 절로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이 곳에 들렀는데, 주변의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동백섬 동쪽 벼랑의 넓은 바위 위에 ‘해운대(海雲臺)
라고 음각으로 새긴 데에서 현재의 지명이 유래하였다. 본래 대
(臺)는 높고 평평한 지형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해운대 역시 달맞이
고개와 그 주변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러나 현재는 해운대가
포함하는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내용
예로부터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
와 같으며, 그 위에는 온통 동백나무와 두충나무, 그리고 소나무
·전나무 등으로 덮여 있어 싱싱하고 푸르기가 사철 한결같다고 기록
될 정도로 알려진 명승지로서 대한팔경의 하나이다. 운대는 태종대·
몰운대·신선대·오륜대·의상대·겸효대·강선대와 함께 부산팔경에도
속하며, 해운대 자체에도 팔경이 있을 정도로 경치가 수려하다.
현재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온천, 고급관광호텔 등의 숙박시설 및
위락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피서지·
피한지 중의 하나이다. 운대 신시가지에는 2001년에 벡스코
(BEXCO)가 준공되고, 2005년에는 APEC 정상회담이 동백섬
에서 개최되는 등 국제컨벤션 중심지로도 성장하고 있다.신시가
지가 개발되면서 대단위 고층 아파트가 조성되어 해운대 관광
특구의 배후 주거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서쪽으로는 해운대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해수
욕장이다. 그러나 1970년부터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 및
하천 복개공사, 해안주변의 매립, 도로건설 등의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백사장으로 유입되어야 할 토사의 공급이
육지로부터 차단되었다. 이에 따라 해운대해수욕장의
사빈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매력있는 세계일류도시 해운대』(해운대구 문화관광과, 2010)
『민선 4기 구정백서-해운대를 말하다』(해운대구청, 2010)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해운대문화관광(tour.haeundae.go.kr)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래 사진은 느림산행방에서의 2019년7월12~13 무박2일 여행사진입니다


















해운대해수욕장 [Haeundae Beach, 海雲臺海水浴場]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일원에 있는 해수욕장.
개설
부산광역시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자연환경
해발 634m의 장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남쪽으로는
수영만에서 송정 해수욕장에 이르는 12㎞의 해안선을 끼고
있다. 백사장의 면적은 58,400㎥, 길이는 1.5㎞, 폭은 30
∼50m에 이르는 1965년에 개설한 국내 최대 해수욕장으로
수용능력이 12만 명에 달한다. 평균 수심 1m이며, 수온이
평균 22.6℃로 해수욕장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뒤에는 울창한 송림, 앞에는 넓고 깨끗한 백사장과 망망대해가
있어 풍치가 수려하여 신라의 석학 최치원(崔致遠)이 동백섬
의 넓은 바위 위에 ‘海雲臺’라 썼다고 하며,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그의 시가 한글과 한자로 각각 10편씩이나
새겨진 병풍석시비가 있다. 또한, 인어의 동상은 시원한 해풍
을 받으며 운치를 일으키고, 이곳에서 해운대 바닷가와 시가지
를 굽어보는 경치는 가히 절경이며, 날씨가 좋으면 일본의
대마도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대한팔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현황
전국에서 가장 많은 피서객이 몰리는 여름이면 백사장에 펼쳐
진 형형색색의 질서정연한 파라솔로 장관을 이룬다. 2008
년에는 해수욕장 1.5㎞ 구간에 설치된 7937개의 파라솔의
수가 세계 최고의 기록으로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19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된 해운대구는 최근 각종
부대시설과 편의시설을 신설 및 교체하여 피서객들에게 쾌적
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947∼2004년 사이 백사장의 면적
54%, 폭 34%가 감소하였으며, 매년 2천800㎥의 모래를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모래사장을 만들어오고 있다. 근본적인
모래유실 방지책으로 미포와 동백섬에 수중방파제를 설치하고
모래를 투입하는 모래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백섬·오륙도·달맞이언덕·누리마루 APEC 하우스·부산
아쿠아리움·해운대온천·요트경기장 등 다양한 관광자원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산바다축제·해운대Beach
Festival 등과 같은 각종 국내·외 문화·예술행사가 사계절
개최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1983)
해운대구청(www.haeundae.go.kr)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운대 동백섬(海雲臺冬柏島)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섬.
명칭 유래
해운대 동백섬은 동백섬으로도 부르는데 동백나무가 무성
하게 자라 붙은 이름이다. 섬의 모양이 또한 다리미와 비슷
하다고 하여 다리미산 또는 다리미 섬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자연 환경
해운대 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남서쪽에 자리한 백사
장 끝과 연결된 육계도[모래톱으로 육지와 연결된 섬]이다.
본래 해운대 동백섬은 장산(萇山)의 산등성이인 간비오산의
말단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섬이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과 함께 춘천천의 토사
공급으로 흙, 모래, 자갈 등이 내려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해운대 동백섬의 남쪽과 동쪽 해안은 계단 모양의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사빈 해안이 발달해 해운대
해수욕장과 연결되어 있다. 해운대 동백섬 주위에는 본래 동백
나무가 우거졌으나 현재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북쪽으로 해운대 장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옆으로
구곡산(九曲山)과 감딤산이 산맥을 이루고 있다.
현황
고도 57m의 해운대 동백섬은 1999년 3월 9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섬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
동백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섬의 중앙에는 신라 말기의
유학자 최치원(崔致遠)[해운대의 지명은 최치원의 호에서
따옴]의 동상과 시비(詩碑)가 있으며, 동쪽의 해벽(海壁)
에는 최치원이 ‘해운대(海雲臺)’라고 새겼다는 바위가 있다.
해운대 바닷가 쪽의 암반과 해식애 위에는 황옥 공주의 전설
이 담긴 동백섬 인어상이 있고, 해운대 동백섬 주위로 산책로
가 조성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 바다와 숲이 만드는 절경과
함께 멀리 광안 대교, 오륙도, 달맞이 고개 등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섬의 서쪽 수영만에는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픽
경기 대회 때 설치한 수영만 요트 경기장과 여러 위락 시설이
그대로 갖추어져 있다. 또한 섬의 남단에는 2005 APEC
정상 회의 장소인 누리 마루 하우스가 건립되어 있다. 동백섬
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인문적 요건으로 도시민과 관광객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해운대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여름 휴가철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젊은 열기로 붐빈다.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문헌
『부산 지명 총람』3(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1997)
『부산의 자연 마을』3-해운대구·기장군(Ⅰ) 기장읍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8)
『한국 지명 유래집』-경상편(국토지리정보원, 2011)
부산광역시 강서구청(http://www.bsgangseo.go.kr)
부산광역시 문화 관광(http://tour.busan.go.kr)
부산광역시청(http://www.busan.go.kr)
지역 정보 포털(http://www.oneclick.or.kr)
큐비 여행(http://www.qubi.com)
해운대 문화 관광(http://tour.haeundae.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해운대 엘레지 / 손인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 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히
그때 그시절 그리운 시절
못잊어 내가 운다
♥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버리자
저 바다 멀리 멀리
♥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도 가련다 떠 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있거라
▼해운대 옛모습 -
50년대부터 '라디오'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했던 미남(美男),
미성(美聲)의 가수 손인호 선생은 '얼굴 없는 가수'였습니다.
그는 '한많은 대동강'을 비롯해 '울어라 기타줄', '하룻밤 풋사랑'
'해운대엘레지' '비 내리는 호남선'... 같은
우리의 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가수로써는 약 150여곡의 노래를 발표
그가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01년,
75세 때 가요무대 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서였습니다.
2003년, 뒤늦게 가수분과에 입회, 77세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에 적을 둔 셈이고 이어 40여년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습니다.
본명 손효찬(孫孝燦). 1927년 평북 창성 출생.
그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에 참가,
'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차지하는데 이 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권유로 이남 행을 결심,
해방 이듬해인 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옵니다.
당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끌던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모집에 응모,
참가자 3백 명 중 1등을 차지해 악단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윤부길씨가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하다가
현재 손인호 선생의 가족은 부인 이선자 여사를 비롯해 3남1녀,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네 아버지가 가수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요.
2019-07-27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