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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훈장
박 완 서
그 거리엔 유난히 열쇠고리 장수들이 많았다. 그 밖에 손톱깎이장수, 병따기장수, 만능칼장수 등 잗다란 쇠붙이들을 벌여놓은 잡상인들이 즐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열쇠고리장수만이 내 눈에 자주 밟혔다.
“얼마요?”
나는 그중에도 제법 좌판이 큰 열쇠고리 장수 앞에 쭈그리고 앉으며 물었다.
신문을 보고 있던 청년은 나를 흘긋 한번 쳐다보고는 이백원짜리도 있고 삼백원짜리도 있다고만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다시 신문을 보았다. 뜻밖에 매섭고 심각한 눈빛이었다. 청년이 열심히 보고 있는 건 어느 대학교수가 극일(克日)을 주장하는 긴 논설이었다.
열쇠고리장수 청년이 항일투사의 후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침 잔돈이 없었다. 다행히 청년은 내가 주머니를 뒤지며 어쩔 줄을 모르는 데는 관심 없이 신문만 보고 있었다. 하필 천원짜리도 없이 만원짜리뿐이었다.
아무리 팔아주고 싶어도 좌판에 있는 것을 모조리 살 만한 고액권을 내놓고 거스름돈을 달래기가 돈이 없다는 것보다 더 미안하게 여겨져서 나는 열없게 웃으면서 일어섰다.
청년이 또 한번 흘긋 쳐다봤다.
“저어, 왜 자물쇠장수는 없죠?”
미안해서 뭔가 한마디 한다는 게 그만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자물쇠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내 집에도 내 사무실에도 필요할 때 잠글 수 있는 문은 수도 없이 많았다. 현관문을 비롯해 방문, 욕실문, 읏장서랍, 책상서랍, 문갑 문, 냉장고문에까지 열쇠구멍이 있어서 필요할 때 열고 잠글 수 있었지만 따로 자물쇠가 필요한 구닥다리 문은 하나도 없었다.
빠리제과점은 그렇게 시끌시끌하면서도 어딘지 시난고난 쇠잔해가는 것 같은 거리 중간쯤에 있었다. 나는 약도를 다시 꺼내 보았다. 제과점과 사격장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 여인숙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꼬부라져 오른쪽으로 셋째 집이었다. 제과점과 사격장은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그 사이로 난 골목은 좁았다. 그러나 골목이 있는 이상 약도대로 찾아온 건 틀림 이 없는데도 나는 잘못 찾은 것처럼 찜찜하고 낭패스러웠다.
노인네 문병이기 때문에 뭘 좀 사야 하는 건데 빠리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직 빈손이었다. 빠리제과점 골목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세련되고 정결한 고급 제과점을 연상한 게 잘못이었다. 시골의 구멍가게도 샌프란시스코니, 베니스니, 모나코니 하는 이름으로 행세하고 싶어하는 풍속도 모른대서야 간첩으로 오인받아 쌀 만큼 도처에 흔해빠진 게 그런 상호였다. 그런데도 그런 착각을 얼핏 한 것은 중동 출장길에 빠리를 거쳐온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잠깐 거쳤지만, 어쩌면 잠깐 거쳤기 때문에 더더욱,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었구나! 하는 찬탄과 선망이 아직도 가슴에 멍이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유리가 부옇게 흐린 진열장 속에 원색적인 조화로 장식한 싸구려 케이크와 양회 바닥이 고르지 못한 침침한 내부를 일별하고는 필요 이상의 혐오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돈으로 드려야지, 돈이 나을 거야, 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너우네 아저씨가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고 근래엔 사람도 못 알아볼 만큼 병세가 악화됐다는 걸 알기는 성표 형을 통해서였다.
십 년 넘어 서로 소식이 끊겼던 성표 형을 우연히 만난 건 며칠 전 거래처 사무실에서였는데 몸이 많이 불고 경기도 좋아 보였다.
“형님, 운동 좀 하셔야겠수.”
나는 수인사 끝에 할 말도 없고 해서 이렇게 그의 비만증을 건드렸었다.
“말도 말게. 집사람하고 나하고 합치면 자그만치 이백 킬로가 넘는다네. 게다가 막내딸년이 국민학교 오학년에 벌써 오십 킬로가 넘으니 오죽해야 차가 못 배겨나겠나. 자꾸만 뒤가 내려앉아서 이번엔 큰마음 먹고 육기통으로 바꾸었는데 견딜라나 모르겠어.”
나는 속으로 무슨 화제든지 제 자랑, 제 자랑 중에도 재력 자랑으로 몰고 가는 성표 형 버릇은 여전하구나 싶어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지만 또 만날 사람도 아니겠다 적당히 상대해주다 먼저 일어서면서 한번 찾아뵙겠다고 인사치레를 했다. 그때도 그는 요새 새로 이사했다는 아파트를 가르쳐주면서 그 아파트의 평수가 오십 평이 넘으며 평당 가격이 얼만데 요새도 매일매일 치 솟는다는 묻지도 않는 얘기를 중언부언했다.
“참, 아저씨도 여전히 건강하시겠죠?”
나는 그의 돈 많은 척이 울컥 듣기 싫어서 중동을 자를 겸 뒤늦게 너우네 아저씨 안부를 물었다.
“으응? 삼촌 그 양반…….”
성표 형은 뒤가 켕기는 것처럼 묘하게 끄는 소리로 이렇게 더듬대고 나서 건강치 못할뿐더러 얼마 못 사실 것 같단 얘기를 했다.
“형님도, 그 얘길 어쩌면 이제야 하세요. 하마터면 돌아가시기 전에 못 뵐 뻔했잖아요? 일간 꼭 찾아뵙겠어요.”
이러면서 수첩을 꺼내 건성으로 들은 그의 아파트 동호수를 적어놓으려고 했다. 그제야 그는 아저씨하고 같이 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삼촌 딴살림 내드린 지가 벌써 언제부터라고. 자네 뭘 그렇게 놀라나? 친부모도 함께 살기가 힘든 세상인데 그만하면 오래 모셨지. 살림 나셨다고는 하지만 그 어른이 모아놓은 재산이 있나, 경제력이 있나, 생활비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니 요즈음 세상에 삼촌한테 그만큼 하는 조카자식 없네, 없어.”
처음엔 좀 기가 죽은 듯하던 성표 형이 점점 기고만장해지면서 언성을 높였다.
“그럼 혹시 그 동안에 아저씨가 새장가라도?”
“새장가?”
성표 형이 큰 소리로 반문하면서 한바탕 웃어제쳤다. 부자연스럽도록 호탕한 너털웃음에 거대한 배가 강진(强震)에 흔들리는 땅덩이처럼 경망을 떨었다.
“새장가는 아무나 드나? 돈이 있든지 사내 구실을 제대로 하든지…….”
그는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껄껄대기 시작했다. 그가 그의 삼촌을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딴 사람도 아닌 내 앞에서. 나는 성표 형하고도 너우네 아저씨하고도 촌수가 닿는 친척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근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걸 그가 모르지 않으련만.
나는 성표 형이 너우네 아저씨를 그렇게 잔혹하게 깔아뭉개는 게 나에게 대한 간집적인 모욕까지 겸하고 있는 것처럼 불쾌
했다.
“그럼 지금 위중하신 양반이 혼자 사신단 얘기예요, 뭐예요.”
나는 볼멘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성표 형은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피둥피둥했다.
“집사람들이 죽을 지경이라네. 다니면서 수발을 들다가, 뒤도 못 가리게 위중해지시고부터는 숫제 똥 치는 사람을 하나 따로뒀지. 두면 뭘 하나, 똥 치는 것도 전문직이라고 똥 치고 빠는 것 외엔 생판 몰라라 하는걸. 숨넘어가는 낌새도 몰라라 할까봐 하루 걸러라도 안 들여다볼 수가 없지. 시부모 없는 데로 시집와서 마냥 편하다가 요새 된통 걸렸지. 그 분풀이가 다 어디로 가겠나. 허구한 날 바가지를 박박 긁어쌓는데, 그 눈치 보랴 비위 맞추랴 그것도 똥 치는 수고 못지 않다네.”
그가 똥 소리를 어찌나 걸찍하고 실감나게 하는지 나는 코를 감싸쥐고 싶었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때 바쁜 일을 핑계로 먼저 자리를 뜨면서 물어본 너우네 아저씨의 현재 거처가 바로 P동의 빠리제과점과 사격장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 여인숙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꼬부라져 오른쪽으로 셋째 집이었다.
나는 그가 일러준 대로 약도를 그리면서 그의 똥 소리를 들으면서 느낀 분노와 혐오감이 차츰 너우네 아저씨가 그래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으려니 싶은 안도감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성표 형의 태도가 그만큼 거침없이 떳떳한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아는 P동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심의 품위 있는 주택가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빠리제과점 골목이란 소리가 나로 하여금 밝고 편안한 거처를 연상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착각이 쑥스러워, 애꿎은 빠리제과점한테 한껏 모멸의 시선을 던지고 나서 사격장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사격장 안은 그 속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껌껌했고, 한길로 튀어나온 나무시렁 위에는 대여섯 자루의 권총이 음산한 무쇠빛으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나는 사내답지 못하게 총부리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버릇이 있었다.
집의 아들녀석이 한창 장난이 심할 때였다. 장난감총으로 내 가슴을 겨냥하고, 땅땅땅 총소리를 낼 적에 나는 죽는 시늉을 하면서 쓰러지는 대신 당장 아이한테서 총을 뺏어 집어던지고 나서 그런 못된 장난을 어디서 배웠는지 대라고 따귀를 때리면서 호령을 했었다. 그 일은 두고두고 아내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나의 아비 자격을 트집 잡는 좋은 꼬투리가 되곤 했었다.
나는 총구를 조심하며 사격장의 권총을 잡아보았다. 음산한 무쇠빛과는 달리 플라스틱제였다. 가쁜한 권총 총구는 끈 달린 코르크 마개로 막혀 있었다. 그런 놀이를 본 적이 생판 없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배신감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다. 문병을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목적이 문병 외에 딴 저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우네 아저씨는 어느 만큼 중태인 것일까, 뒤도 못 가린다니 사람도 못 알아볼지도 모르지. 목숨만 붙어 있다뿐 의식은 이미 죽은 환자를 문병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구나 생전에 한번 뵈었다는 걸로 가책이나 비난을 면할 만큼 의리를 지켜야 할 사이도 아니었다. 중태란 소식 대신 부음을 들었대도 문상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이였다.
그러나 나는 되돌아서지 않았다. 나는 너우네 아저씨가 지금 처한 상황을 똑똑히 봐두고 싶었다. 내가 보길 원하는 게 그분의 행복한 말로인지 비참한 말로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만약 그분이 지금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성표 형을 용서할 수 없었다. 성표 형의 유들유들한 비만증까지도 치가 떨렸다. 그러나 그분의 임종의 자리가 정결하고 편안하고 유복해도 역시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지가 않았다.
도대체 네가 바라는 건 뭐냐? 나는 엉뚱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에게 이렇게 따졌다. 그러나 확실한 건 너우네 아저씨가 어떻게 죽어 가나를 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P동은 내 기억 속의 품위 있는 동네와는 얼토당토않았다. 옛날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땅 속으로 반쯤 가라앉은 것처럼 쇠잔해 보였고, 아침마다 싸리비 자국이 정결하던 골목길엔 보도블록이 고르지 못하게 깔려 더럽고 울퉁불퉁했다. 집집마다 다투어 간살을 추녀 끝까지 내밀어 집 꼴을 추악하게 만들고, 가뜩이나 좁은 골목을 더욱 좁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런 누추한 골목길을 더듬어 여인숙이 있는 삼거리까지 오는 동안에 벌써 그런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싸잡아 오죽잖은 사람들로 얕보고 있었다.
여인숙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꼬부라져 오른쪽으로 셋째 집 역시 기둥이 삐딱하게 기울고, 대문 문지방이 길보다 낮아 침몰해가는 폐선처럼 보이는 고옥이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었다. 나는 앞집 대문 앞까지 물러나 그 집의 푹 꺼진 용마루와 기왓골 사이에서 자라는 풀을 바라보고 나서 대문 틈으로 안의 동정을 살폈다. 다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간살은 넓어 보였고 가지각색의 쓰레기통이 여러 개 놓여 있고 하나같이 꾸역꾸역 넘치는 걸로 봐서 여러 가구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큰기침을 하면서 대문을 밀었다. 문간방 연탄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끓어넘는 빨래를 막대기로 뒤적이고 있던 여자가 흘긋 쳐다봤다. 열린 중문으로 꽤 넓은 안마당과 여러 가구의 세든 방들이 보였지만 나는 꼭 그 문간방에 너우네 아저씨가 누워 있을 것 같았다. 성표 형한테 들은 똥 소리를 단박 연상할만한 퀴퀴한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빨래를 삶던 아주머니는 나를 다시는 쳐다보지 않고 빨래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러 가구가 사니까 드나드는 사람도 많은데 익숙해져 있는 눈치였다.
“저, 말씀 좀 여쭤보겠는데요.”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그 아주머니한테 말을 시키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물어봐요. 난 이 집에 눌러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암것도 몰라요.”
“너우네 아저씨가 여기 사신다고 들었는데요?”
“글쎄, 난 이 방에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이라 이 집 일은 암것도 모른다니까요. 들어가서 물어봐요. 자그만치 여섯 가구나 사는 집이니 너우네 아저씨가 없으면 여우네 아저씨라도 안 있겠어요?”
아주머니는 농지거리까지 하면서도 쳐다보진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그 아주머니한테 말을 시켰다.
“영감님이에요, 홍씨 성 가진. 노환으로 위중하시다고 듣고 문병을 왔는데요.”
비로소 여자가 부스스 일어섰다.
“홍씨 성인지는 모르지만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이 있는 건 이 집에서 이 문간방밖에 없는데…….”
“아주머니는 그 노인 시중을 들러 출근하시는 분이군요'”
“맞았어요. 근데 아들 손주도 들여다보지 않는 산송장을 문병 온 댁은 뉘시우?”
“한 고향 어른이에요. 진작 와 뵈었어야 하는 건데 몰랐어요. 며느님은 자주 들르나요?”
“들르면 뭘 해요. 굶겨 죽였단 소린 안 들으려고 먹을 거 떨어질 만하면 들렀다간 노인을 들여다도 안 보고 가는걸.”
“좀 뵐 수 있겠습니까?”
“벌써 사람 못 알아보는 지 오래예요. 그래도 뵙고 가는 게 도리지. 암, 도리구말구.”
아주머니가 횡하니 삶은 빨래 대야를 마당 수돗가에 갖다놓고는 문간방 미닫이문을 열었다. 하마터면 게울 뻔하게 야릇한 냄새가 끼쳐왔다.
아주머니가 먼저 방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뒤를 보시는 족족 깨끗이 치워드리건만 욕창 때문에 그래요. 살 썩는 냄새가 똥오줌 냄새보다 훨씬 더 고약하거든요.”
내가 도망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주머니 때문이었다. 아주머니 의 시선은 거의 매달리 다시피 내가 문병을 완수하길 촉구하고 있었다. 나는 요령껏 호흡을 절제하며 구두를 벗고 올라섰다. 방문은 내 키보다 낮고 방 속은 침침했다. 아주머니의 얼굴엔 옳지, 옳지, 부추기면서 어린애에게 쓴 약을 먹이려는 어며니의 그것과 같은 부드러운 강요와 아부의 빛이 서려 있었다. 나도 마지못해 방 안에 들어서긴 했지만 낮은 반자를 머리에 인 채 뻣뻣이 서 있었다.
“자아, 문병을 왔으면 가까이서 뵈어야죠. 사람을 못 알아보신다고 했지만 말로 표현을 못 해 그렇지 속으론 다 아실 거예요. 며느님이 밖에서만 왁자지껄 떠들다 간 날은 영감님 얼굴에 섭섭하고 괘씸해하시는 티가 완연한걸요. 말을 못 해 그렇지 듣기도 다 들으실 테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요, 어여.”
아주머니가 등을 미는 바람에 나는 풀썩 주저앉았다. 저게 너우네 아저씨일까? 나는 멍청하게 눈을 치뜨고 누워 있는 노인을 가까이서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이분은 제가 찾는 너우네 아저씨가 아닙니다, 라고 외치면서 도망을 치고 싶은 지도 몰랐다. 키는 작달막했지만 다부진 몸매가 살이 내리고 뼈와 가죽만 남으니까 어린애만했다. 그의 부피는 겨우 요 위에 비닐을 깔고 덮은 다후다 이불이 주름잡힐 만했다. 융으로 된 파자마의 목둘레가 맞지 않아 뼈만 남은 어깨까지 드러나 보이는 게 무참했다. 나는 뭐라고 말하는 대신 이불로 그것을 가려주려다 말고 목과 어깨뼈 사이가 앙상하다 못해 너무 깊이 파인 걸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것처럼 마지못해 이분은 너우네 아저씨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을 뺀 골격 모양이 그렇게 생겼으련만 그 무참히 파인 곳을 보자 나는 불현듯 앞뒤로 번쩍번쩍 빛나는 자물쇠를 주렁주렁 늘이고 다닐 때의 너우네 아저씨를 떠올렸다. 너우네 아저씨가 월남해서 처음 잡은 직업이 자물쇠장수였다.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자물쇠 공장도 없을 때라 그의 상품도 신품이 아닌 중고품이었다. 특히 미군 부대를 통해 흘러나온 미제 자물쇠는 값도 비싸고 이윤도 많았다. 너우네 아저씨는 이런 중고 놋쇠 자물쇠를 특수한 약으로 반짝반짝 닦아서 끈이 달린 조끼 비슷한 방수천에다 앞뒤로 빈틈없이 달아매고 장사를 나섰다.
나의 어린 눈에 그런 너우네 아저씨는 마치 가슴에 훈장을 하나 가득 달고 백만 대군을 사열하러 나가는 장군처럼 위대해 보였다. 앞뒤로 놋쇠 자물쇠가 금빛으로 반짝거려서만은 아니었다. 너우네 아저씨의 하늘을 찌를 듯 기고만장한 몸짓과 어떤 긍지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 땜에 이 고생을 하는데, 내 자식 뿌리치고 대신 데리고 나온 내 장조카, 우리 홍씨 문중의 종손, 성표놈 하나 공부 잘 시켜 성공하고, 손 퍼뜨리는 거 볼 욕심 하나야, 다른 거 없어. 시체 젊은이들은 내 마음 몰라줘도 지하에 계신 조상님네들은 다 아실 거구먼.”
그가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에 과연 자기 아들을 뿌리치고 장조카만을 데리고 월남한 게 그렇게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품는 것조차 그의 앞에선 나쁜 마음처럼 죄스러웠다.
그가 하찮은 자물쇠 행상을 하면서도 무훈이 혁혁한 장군처럼 당당하게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도덕적인 만족감 내지는 도취감 때문이었다. 그는 그 도덕을 완수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그의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를 어쩌다 내비치는 적은 있었지만, 그 도덕 자체의 가치를 의심하거나 재고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리라. 그의 당당함이 흔들리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가 그의 장조카이자 홍씨 문중의 귀중한 종손인 성표 형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뿌리쳐야만 했던 친아들 은표는 나하고 동갑내기였다. 은표는 홍씨 문중의 씨족마을인 너우네에 살았고, 나는 너우네보다 개방적이고 마을도 큰 편인 범바위골에 살았었다. 우리 마을에서 작은 등성이만 하나 넘으면 너우네여서 동갑내기끼리 놀기도 잘하고 싸움도 잘했다. 은표는 나보다 힘이 좀 셌지만 나에겐 형이 있어서 팽이도 깎아주고 썰매나 연도 만들어주는 게 큰 빽이었다. 나는 빽을 믿고 그애를 약 올렸고, 그애는 힘으로 나에게 앙갚음을 했다. 같이 읍내 국민학교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싸움을 거의 안 하고 줄창 붙어다니게 되었다. 주로 은표가 우리집으로 나를 부르러 왔고 학교가 끝나면 우리집에서 숙제를 하다가 늦으면 저녁까지 먹고 갔다. 나보다도 형이 잘해주는 데 은표가 더 끌렸던 것 같다. 가끔 나는 형이 우리 둘한테 똑같이 잘해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은표가 나보다 더 형에게 알랑거리는 것도 샘이 나서 심술을 부릴 적도 있었다.
“너도 형 있잖아? 느네 형한테 해달래지 왜 남의 형만 못살게구냐?”
이러면서 형이 깎아준 팽이나 접어준 딱지를 왁살스럽게 압수하면 은표는 기가 죽어서 성표 형은 친형이 아니잖아, 사촌형이란 말야, 하면서 변명을 했다.
그때도 성표 형은 그를 낳자마자 과부가 된 홀어머니와 함께 작은집인 은표네하고 같이 살면서 삼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형이나 아우가 소생을 남기고 죽었을 때, 남은 형이나 아우가 조카자식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책임지는 건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이라지만 너우네 아저씨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입히는 거 먹이는 게 누가 보기에도 층하가 지게 키웠다. 이밥도 귀한 시절, 성표 형의 밥그릇엔 이밥을 퍼담고 은표 밥그릇엔 여름엔 시커먼 보리밥 겨울엔 샛노란 조밥인 걸 나도 몇 번이나 보았었다. 설빔도 성표 형만 해 입혔고, 신발도 성표 형은 운동화, 은표는 검정 고무신을 사신겼다. 신발이나 설빔처럼 돈 드는 건 몰라도 부엌에서 밥 푸는 것쯤은 여자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법한데 너우네 아저씨가 쥐고 있는 가도(家道)가 하도 엄해서 식구들은 그가 안 보는 데서도 감히 거역할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았다. 동서끼리 아무리 의가 좋다 해도 은표 어머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고, 청상과부가 되어 시동생한테 얹혀사는 성표 어머니라고 속 편할 리가 없었다. 소풍 가는 날이나 운동회날 같은 때, 큰어머니 몰래 준 돈이라고 자랑하면서 은표가 군것질하는 것만 봐도 그 여자의 편지 않은 마음이 충분히 짐작됐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게 너우네 아저씨의 이런 편애를 너우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칭송해 마지않았다. 나 보기에 너우네 사람들은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일가 문중의 이런 칭송에 힘입어 너우네 아저씨는 그때부터 그렇게 당당했었다. 피난 내려와 자물쇠장수가 되기 전부터도 너우네 아저씨는 가슴에 훈장 단 것처럼 으스대며 다녔고, 남의 후레자식까지도 너우네 아저씨만 만났다 하면 일장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는 자기 자식은 막 기르고 조카자식을 어르고 떠는 걸로 아무도 감히 용훼(容喙)할 수 없는 도덕적인 완벽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삼팔선이 가까운 우리 마을은 6·25 때 제일 먼저 인민군이 들어왔고 패주할 때도 나중까지 머물러 있었다. 나의 어린 눈에 그들은 장난감총으로 장난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잘도 죽였다. 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가에 곧게 자란 미루나무에 사람들을 동여매놓고 난사하는 걸 은표와 나는 끈끈한 손을 맞잡고 구경했었다. 사람들은 죽어서도 눕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었다. 그때의 뙤약볕과, 무수한 은화(銀貨)를 매달아놓은 것처럼 뙤약볕에 반짝이던 미루나무 잎과, 죽음을 뿜던 음산한 총신은 오래도록 나의 기억에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때 일찌거니 처가로 피신했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달아나고 나서 헤아려보니 부역하지 않고 살아남은 청장년은 한 명도 없대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우네 아저씨가 피난도 안 가고 부역도 안 하고 마을 속에서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인덕이었다. 남에게 후하게 베풀고 착한 일을 쌓아서 얻은 인덕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제 자식보다 조카자식을 더 위해 길렀다는 데서 얻은 인덕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마땅치가 않았다. 그때 나는 너우네 아저씨가 무사해서 은표가 그 억울한 신세를 못 면하게 된 게 은근히 속상했는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 나는 은표하고 놀 수가 없었다. 나는 너우네에 얼씬도 못 하게 식구들의 감시를 받았다. 너우네에 염병이 돈다는 거였다. 여자들이 싸울 적에 염병을 할 년, 또는 염병을 하다 땀도 못 낼 년, 하고 욕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도깨비나 귀신처럼 가상적인 공포였을 뿐 그걸 정말 앓는 사람이 생길 줄은 몰랐다. 딴 집도 아닌 은표네서 그걸 앓는다고 했다. 처음엔 은표가 앓는다고 했고, 다음엔 성표가 앓는다고 했고, 할머니도 걸렸다고 한다.
읍내 미군 부대에서 나와서 소독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아직 집 밖으로 번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소독뿐 아니라 좋은 약도 지어주는 모양이니 죽지는 않을 거라고 어머니는 나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약이 아무리 좋아도 노인네가 살아나긴 힘들걸, 하면서 혀를 차는 걸로 봐서 그 병이 얼마나 고약한 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은 또 너우네에서 부음이 왔을 때 조문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옛날엔 염병을 앓는 집은 몰살을 하게 마련이고, 아무도 시체를 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집 안에서 썩는 내를 정 참을 수 없으면 마을 사람들이 불을 질러 집과 함께 태운다는 끔찍스런 얘기들도 했다.
“쓸데없는 소리, 지금이 옛날이야? 남의 나라 병정도 겁 없이 드나들며 소독을 해준다 약을 지어준다 하는데 한 마을 사람들이 한다는 소리들이…….”
아버지는 이렇게 못마땅해하셨지만 혼자서 문병을 갈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딴 집으로 옮지도 않고, 그 집에서도 연달아 앓는 사람이 안 생기는 걸 보면 미제 소독, 미제 약이 좋긴 좋은가봐.”
사람들도 이 정도로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선뜻 은표네를 드나드는 사람은 안 생겼다. 살아나긴 세 식구가 다 살아났는데 머리칼이 몽땅 빠지고, 다리 살이 말라붙어 걷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게 꼭 귀신같더라는 소문도 돌았다. 너우네에 사는 가까운 친척들끼리는 더러 드나드는 모양이었지만 우리 범바위골 사람들은 아직 너우네를 지나다니는 것도 두려워했다.
은표네 염병을 고쳐놓은 미군 부대가 슬그머니 읍내 학교를 비우고 어디론지 떠나버렸다. 인민군도 끔찍한데 중공군까지 합세해서 다시 내려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염병의 소문보다 훨씬 불길한 소문이었다.
어느 고약스럽게 추운 날, 우리는 마을을 비우고 피난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름 난리에 마을엔 소 한 마리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고 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다 죽느니 집에 앉아서 죽겠다고 버티는 노인이 생기면 대개의 남자들은 노인네를 돌보라고 아내를 떼어놓고 떠났다. 자연히 젖먹이도 남게 되고, 막상 길에 나선 건 살아남은 청장년과 길을 걸을 만한 사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식구가 너우네를 지날 때 나는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거치적대면서 은표네 집에 들렀다 가자고 졸랐다. 아버지는 가타부타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때였다. 지게를 진 너우네 아저씨가 집을 나서고 있었다. 지게에 진 건 피난보따리가 아니라 성표 형이었다. 솜 두루마기를 입고 솜 포대기를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있어서 머리칼이 몽땅 빠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열 살이 넘는 소년이 지게에 탄 걸로 봐서 염병의 예후가 얼마나 무섭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표만 데리고 가시게요?”
사람들이 물었다.
“어차피 하나밖에 못 데리고 떠날 바엔 조카자식을 구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여부가 있나요.”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건성으로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병석에 있는 노모를 혼자 놔두고 떠날 그가 아니었고, 아내와 형수를 남겨두고 혼자 떠나려니 못 걷는 두 아이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선택을 함에 있어 고뇌나 갈등이 조금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만만하고 고집스러워 뵈는 그에게 맹렬한 적의를 느꼈다.
너우네 아저씨까지를 포함한 우리 일행이 동구 밖을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여자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은표 아부지, 은표 아부지, 통곡에 간간이 이런 소리가 섞이는 걸로 봐서 은표 어머니가 통곡하는 소리였다.
그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에 우리 일행은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나 너우네 아저씨만은 지게를 지고 잘도 걸었다. 그후 나는 오래도록 그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잊지 못했다.
피난 내려와서도 한동안은 너우네 아저씨와 이웃해 살았다. 밤새도록 반짝반짝 닦은 크고 작은 자물쇠를 앞뒤로 주렁주렁 달고 장군처럼 거만하고 당당하게 장사를 나가는 너우네 아저씨의 권위는 완벽했다. 내 자식을 사지에 뿌리치고 조카자식을 구해내서 공부시킨다는 게 그렇게 위대한 일일까? 나는 그의 당당함에 압도된 채, 속으론 언제고 그의 위대성이 터무니없는 가짜라는 걸 보고 말 테다, 라는 엉큼한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휴전이 되었지만 우린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삼팔 이남이었기 때문에 꼭 돌아갈 수 있을 것을 믿었던 우리는 하필 우리 고향 쪽에서 남으로 쳐진 휴전선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너우네 아저씨인들 그때 이별이 영이별 될 줄만 알았으면 설마 지게에 은표 대신 성표를 올려놓지는 않았으련만…… 형과 나는 고향을 아주 잃은 비감 때문에 이렇게 너우네 아저씨의 처사를 인간적으로 해석하려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너우네 아저씨는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장조카를 구했노라고 으스댔다. 장조카를 공부시킬 위대한 사명을 띤 그의 행상이 조그만 점포로 발전할 무렵 우리도 생활이 좀 나아져서 딴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러나 자주 소식을 주고받았고, 만날 기회도 심심찮게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동향인의 군민회도 우리 식구가 모두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참석하는 즐거운 모임이었지만 너우네 아저씨네도 꼭 숙질(叔姪)이 함께 참석했다. 또 실향민끼리의 의리라는 것도 각별해서 고향땅에선 서로 모르고 지냈던 사이끼리도 경조사를 서로 연락하고 적극 참석했다.
결혼식장 같은 데서 가끔 만나는 너우네 아저씨는 성표를 대동할 적도 있었고 혼자일 적도 있었다. 물론 앞뒤에 자물쇠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왕년의 행상 티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엔 언제나 그가 자물쇠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제 자식을 모질게 뿌리치고 장조카를 데리고 나와 성공시키기 위해 온갖 고생 다 했다는 걸로 자신을 빛내려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자물쇠 행상일 적에 매일 밤 그것을 닦아 훈장처럼 빛냈듯이, 요새도 매일 밤 자신의 내력을 번쩍번쩍 빛나게 닦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특이한 내력으로 어디서나 빛났다. 동향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나잇살이나 먹은 이들은 그의 자랑을 끝까지 들어주고 아낌없이 그를 칭송하고 존경하는 걸로 자신의 도덕적인 결함까지 은폐하려 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은표 어머니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잊지 못 하는 한 그의 위대성이 가짜라는 게 드러나 그가 웃음거리가 되는 걸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단념할 수 없었다.
동향인의 결혼식도 잦았지만 장례식도 잦아졌다. 동향인이 모이는 자리에도 세대교체 현상이 나타나 나잇살이나 먹은 이들이 점점 줄었다. 너우네 아저씨의 자랑을 들어주고 칭송할 사람도 그만큼 줄었다. 자신의 내력이 더이상 자신을 빛내줄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너우네 아저씨는 눈에 띄게 풀이 죽어갔다. 나는 그런 허점을 놓칠세라 젊은 사람들한테 그가 한 짓을 풍겼다. 젊은 이들의 반응은 노인들의 반응과 판이했다. 우린 이미 너우네 아저씨가 신봉하던 케케묵은 도덕과 상관없는 세대였다. 그건 한낱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웃음거리라면 너우네 아저씨는 더 큰 웃음거리였다. 좀더 생각이 깊은 젊은이라면 너우네 아저씨가 자기 처자식에게 저지른 비인간적인 처사에 분개해 마지않았고, 그를 숫제 징그러운 괴물 취급을 하려 들었다.
그 무렵부터 성표 형이 삼촌과 동행해서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삼촌의 행색은 어딘지 자꾸만 초라해졌다. 성표 형이 돈 잘 번다는 소문 때문에 그의 초라함은 더욱 눈에 띄었고 악의에 찬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돈 잘 버는 조카한테 자가용 좀 내달랠 것이지 왜 걸어오셨느냐는 둥, 돈 잘 버는 조카 훈 삼촌치곤 너무 추비한데 돈 잘 버는 조카가 싸구려 양복을 해드렸을 리는 없고, 홀아비 티가 그렇게 추비한 모양이니, 돈 잘 버는 조카한테 새장가나 들여달래라는 둥,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들이 맞대놓고 놀려 먹었다.
그러다가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도 동향인이 모이는 자리에 발을 끊게 됐다.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동향인의 모임에 나갔다 뿐 나의 고향은 이제 서울이었다. 내 자식의 고향이 서울이니까, 그사이에 나도 중년으로 접어들어 아버지에 속하기보다는 자식들에 속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아저씨,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나는 멍청하게 치뜬 아저씨의 눈에 내 눈을 맞추려고 애쓰면서 이렇게 악을 썼다.
“아무도 못 알아봐요.”
아주머니가 옆에서 일러줬다.
“말은요?”
“말을 하면 사람을 알아보게요.”
아주머니는 말은 못 해도 속으론 사람을 다 알아볼 거란 자신의 말을 이렇게 번복했다.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내가 돌봐드린 지가 석 달이 넘는데 그전부터 그랬나봐요. 나 같은 사람이 수없이 갈렸다니까…….”
“가만히 좀 계셔보세요. 뭐라고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데요.”
나는 노인이 입을 쭝긋대는 것 같아 이렇게 아주머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글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다니까요. 인기척이 나니까 먹을 걸 줄 줄 알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 목숨이 뭔지, 저 지경이 되고도 먹는 거라면 저렇게 상성이에요. 사람 그림자만 얼씬대도 입 먼저 내두르는 걸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그런 줄 아시면 얼른 잠술 걸 좀 해다드리세요.”
나는 벌컥 화를 냈다.
“아니, 이 양반이 누구한테 함부로 역정을 내고 그래요. 창자가 말라 죽지 않을 만큼은 드리니까 걱정 말아요. 그래도 똥에서 헤어나질 못하는데 입 내두르는 대로 퍼넣었다간 누구 똥구뎅이에 빠져죽는 꼴 보려고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주머니는 밖으로 나가 냄비를 덜컥 댔다.
“아저씨, 저 알아보시겠어요? 네, 아저씨?”
나는 아저씨의 입이 괴롭게 쫑긋대는 게 암만 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 또다시 이렇게 악을 썼다. 입만 아니라 멍청하던 눈에도 초점과 빛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감정 표현도 힘에 겨운 듯 이불 밖으로 나온 앙상한 손이 꿈틀꿈틀 경련을 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멀건 죽냄 비를 갖고 들어와 노인의 쭝긋대는 입에 퍼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뜻밖에 그는 이를 악물면서 도리질을 했다.
“에그머니, 이제 죽을 날이 정말 가까웠나봐. 곡기 끊으면 죽는다는데…….”
아주머니가 경망스럽게 숟갈을 내던지며 놀랐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확신을 얻고, 그의 경련지는 손을 잡고 애타게 외쳤다.
“아저씨, 너우네 아저씨,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네, 너우네 아저씨,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이윽고 아저씨의 손에 힘이 쥐어지는 듯하더니 입놀림이 확실해졌다. 나는 그의 멍청하던 눈에 그윽한 환희가 어리는 걸 똑똑히 보았고 그의 입이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은표야, 아아, 은표야.”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그의 아들을 뿌리치고 대신 조카를 데리고 피난 내려온 뒤 한 번도 아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은표의 단짝이었던 나를 보면 은표도 어느 하늘 밑에 죽지 않고 살았으면 저만할 텐데 하고 비감하는 눈치라도 보일 법한데 한 번도 그런 적조차 없었다. 그는 아들을 뿌리침과 동시에 아들의 이름까지 잊어버렸을뿐더러 아예 기억에서 지우고 사는 사람 같았다. 아들 대신 장조카 데리고 피난 나왔다고 자랑할 때의 아들도 보통명사로서의 아들이지 은표라는 고유명사로서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은표 소리는 나만 겨우 알아들을 만큼 희미했다. 그러나 내 귀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다. 그는 사력을 다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하, 삼십여 년 전 은표 어머니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는 이제야 앙갚음을 완수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길 오랫동안 바라고 기다려 왔을 터인 데도 쾌감보다는 허망감에 소스라쳤다.
다시 열쇠고리장수가 늘어선 거리로 나왔을 땐 해가 뉘엿뉘엿 했다.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이면 가슴에 하나 가득 갖가지 자물쇠를 늘인 채 봉지쌀과 자반고등어를 사들고 뒤뚱뒤뚱 걸어오던 너우네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봉지쌀과 자반고등어 때문인지 자물쇠가 훈장으로 보이는 엉뚱한 착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외롭고 초라한 자물쇠 장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직시할 수 있기까지 자그마치 서른두 해가 걸렸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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